- 2004년 6월 24일 부산의료원 내 고(故) 김선일씨 빈소에서 부친인 김종규씨가 아들의 영정 앞에서 울부짖고 있다.
2004년 6월 22일 김선일씨가 “제발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는 장면이 알자지라 방송에 나온 뒤 이틀도 지나지 않아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방향 35km 떨어진 지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알자지라 방송이 김씨 피랍 테이프를 처음 방송한 시각은 한국 시간으로 21일 오전5시였다. 이 테이프에서 이라크 저항단체는 “24시간내에 한국군이 철군하지 않으면 인질을 참수하겠다”고 위협했다.
김선일씨는 17일(현지 시각) 바그다드에서 200여km 떨어진 미군 리브지 캠프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던 중 이같은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시간이나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우리 정부는 21일 오전8시 정부 국가안보회의를 개최해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평화와 재건을 위한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하고, 즉각 각종 루트를 총동원해 김씨 무사 석방을 위한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22일 밤10시 20분(현지시각 오후 5시 20분),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바그다드 부근에서 발견됐다는 미군 당국의 연락이 왔고, 이내 김씨 시신임을 확인됐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우리 측과 진행한 석방 교섭에서 우리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파병 철회와 관련한 요구를 전달했다가 이것이 수용되지 않자 김씨를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