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후감이기보다는 읽으며 메모해두었던 내용을 올려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읽은 책의 흐름으로 식물과 생태계, 환경에 대해 알아보았다.
노고시모에서 나온 두 책과 다시 나무를 보다 로 식물의 세상에 대해 감각하고 새로운 정보를 접했으며, 전략가 잡초를 통해 식물이 어떤 습성으로 생존하는지 배웠고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통해 환경이 어떤 시점에 도달해있는지를 전반적인 시점에서 가벼운 수준으로 훓어보았다. 이번 회차에서 읽은 책은 화석 자본으로, 화석연료로 범위를 좁혀 조금 더 깊게 환경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화석자본을 열며 작가는 공장을 얘기한다. 투덜거리는 인간보다 말없이 돌아가는 성실한 공장의 편리함으로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대기 오염이 급속화됐다.
미래에 대해 안일하게 예측하는 동안 화석자본은 성장과 편리를 위해 사용이 가속화되었다.
2024년 1월 , 가장 높은 자살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은 imf이후 성장을 위해 경쟁사회로 돌입하며 가파르게 성장을 이루었다.
부를 추구하며 경쟁하는동안 사람들의 정신은 피폐해졌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자살율은 높아졌다.
oecd 국가 중 한국은 자살예방 예산이 가장 적게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장을 위한 것에 예산이 많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낙오자에 대한 배려, 고려가 없다. 능력주의가 만연하여 성공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바에야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의 자살율을 보며 화석자본 속 이야기를 생각한다. 고성장을 위해 우리는 가차없이 사람을 갈아 기술을 개발하고 편리를 곳곳으로 퍼트렸다.
사람도 당장의 성장을 위해 쓰이고, 화석연료도 고성장을 위해 구조 속에서 연소가 가속화 되었다.
사람은 경쟁 속에서 정신이 피폐해져 높은 자살율을 기록하고, 화석연료가 연소되며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는 지구 안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축적되는 중이다.
사람을 품은 지구가 이산화탄소로 이상해져가고 있다. 지구가 아프다기 보단 지구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류가 힘들어지고 있다.
성장을 위한 구조 속에서 사람의 생존을 스스로가 위협한다. 환경적, 정신적으로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2024 갈등 종류
세대 갈등
성별 갈등
빈부 격차
정치 대립
교육 경쟁과열
1장 :화석경제 역사
화석경제를 정의하고 바라보는 틀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들여다보다.
화석연료에 중독된 사회, 느린폭력, 구조적 악몽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경제는 문제가 즉석에서 휘발되어지지 않고 누적된다. 역사 속에서 켜켜이 축적되어 미래세대에게 기후 위기등의 짐을 지우고 파멸을 초래한다.
기후변화란 다양한 시간규모의 지저분한 혼합물.
사람들은 가격 유인에 반응한다. -> 시행착오 , 서서히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다루는 법 숙지 -> 경쟁심 있는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동기가 혁신을 낳을 것.
재생가능한 대체품들은 가격 우위를 점해야 한다. = 시장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영국의 산업혁명 , 에너지 전환, 화석경제의 기원 ,
성장을 낳는 공식, 석탄 이용의 질적 도약, 증기 기관-열의 운동으로의 전환,
증기 기관
연속적인 회전 으로부터 운동을 획득해야한다. -> 제임스 와트가 1784년 석탄을 이용한 연속적인 원 운동을 생성하다 = 기관 -> 이를 통해 화석경제의 기반이 생성되었다.
석탄이 기계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확장을 위해 경제의 혈관 속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자기지속성장의 버팀목
1.기계 : 1인당 생산량,노동생산성 증대
2.운송수단 : 원료와 완제품을 해상과 육상으로 가로질러 이동시킴
상품 제조, 유통 - 공간을 꿰뚫는 성장의 일부로 결합
경제적 경쟁 , 군사적 침략 - 화석경제를 영국 제도 밖까지 투사, 확장 - 타국은 국가로서 생존을 위해 이 기술을 모방할 수 밖에 없었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영화 데어윌 비 블러드는 1800년대 말-1900년대 초까지의 미국에서 유전을 개발하고 돈을 벌려하는 한 남성에 대한 영화이다.
역사가 250년 정도로 짧은 미국에서 큰 돈을 벌려하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묘사했다.
사실 인물은 자본을 넘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인간성을 죽여버리는 묘사가 영화의 핵심이고 서늘함을 전달한다.
자본이라는 주제에서 책과의 접점을 느겼다.
2장
플라이토스세의 대형동물상 멸종이나 지중해연안 고원의 삼림파괴조차도 전체 생태계를 건드리지 못했다.
육상 , 수중 생태계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거나 행성 전체의 상태를 한꺼번에 건드리는 수준을
지금 이탄 농도 증가로 생물권 내에 과잉축적된 열이 달성해 내고 있다. (p 51)
9 - 12장
증기기관은 결정적인 전환기의 기술이었다. 이는 지금껏 영향력을 잃지 않은 화석경제의 위대한 첫번째 화신이기도 하다.
우대에 몇 차례의 재배치와 개장을 거쳐 여전히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한때 발전되던 증기. 현재의 화석경제는 무엇으로 변화했는가.
이러한 특정 범주의 이데올로기 형성방식은 물신주의라고 알려져있다. 구조적 위기가 벌어지던 수십년동안 영국 부루주아지는 증기물신주의를 발전시켰다.
자동적인 움직임과 초인간적인 힘을 부여받은 기계는 이제 작업자들이 가진 하나의 자산을 훔쳐서 이를 스스로 동체에 이식함으써 권능의 물적 체현이 되어 등장한다.
공장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말 그대로 말소한다.
브루주아 계층에 의해 자본을 불릴 수단으로 증기가 채택됨.
증기 채택의 과정은 증기기관이 절대적으로 훌륭해서가 아닌
상황 맥락적으로 증기가 발견 된 것.
1 중세로부터 이어져 온 기계 우상화
2 새로운 발전을 욕망하는 인류의 심리
3 말 안듣는 노동자들을 대체할 당장의 좋은 수단
노동자들 처우가 비참해질수록 반발하는 세력또한 키워짐.
브루주아는 증기를 숭배하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간 증기를 악마로 치부
기후변동이 인간이라는 종 내에서 기원했다는 점, 천체의 기후를 주무를 수 있는 권력이 자연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이 서사의 주된 모순 - 기후 변화는 탈자연화 되지만 그 원인이 "인간의 내제적인 특성"으로부터 도출됨으로써 바로 그 즉시 재자연화되어 버린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바로 이것이 인류세가 만들어낸 위상의 변화이다. (p417)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된 출발점은 인류의 빈곤, 결핍으로부터.
인류의 분열(브루주아-프롤레타리아)이 화석연료 연소의 필수적 내재 요인일 가능성 있다.(높다. 아니, 작가에 따르면 출발점 그 차제일지 모른다.)
증기력의 발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실패가 더 일반적인 결함의 증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co2 배출은 차라리 그 소유주에게 원동기가 제공하는 편익에 부수된 부작용이었다.
->이 책은 왜 그토록 역사를 집요하게 추적하는가. 그 당시 사회를 생생하게 뒤따라가는가.
현재의 사회는 자본주의가 너무나 당연하여 마치 이미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며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보다 더욱 의심할 바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 지경(심각한 기후위기)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역사적 상상력 속에서라도 일견 영원한 것 과 일시적인 것 을 서로 전도시켜야만 한다.
오늘날 생물권은 불안정하고 자본주의는 안정적이지만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둘의 자리를 바꿔야만 한다. (p430)
13장
경쟁이라는 화석 무정부주의
수차
알안달루스 - 안데스산맥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 , 이런 사회가 지닌 하나의 공통분모는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소유관계.
자원은 공동집단의 의해 소유되거나 통제되었다. 흐름이라는 공유재가 가진 본성은 아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관계
경쟁이 곧 법칙. 자본가는 시장에 의존하기에 노동자, 재료, 도구 라는 생산의 전제조건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적 거동을 취하도록 강제된다.
재투자하고 확장하지 않으면 경쟁자들에 의해 밀려나게 될 것이다. 이윤을 극대화함으로써만 유리한 고지를 지킬 수 있다.
공유재는 사적으로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자들의 비합리성 때문에 그 용량에 미치지 못하는 양 만이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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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삶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영국의 노동자들과 같이 살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들이 환대하는 전원과 무성한 숲이 그들을 강하게 유혹하고 그 편이 훨씬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다른 생명으로부터 시간을 획득하여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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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의 노동을 통제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노동양식은 격심한 노동과 무의상태가 교대하는 형태를 띄었다.
이형태는 오늘날에도 몇몇 자영업자들 - 예술가, 작가, 소규모 농업인, 그리고 아마 학생까지 포함해서
자이에 여전히 남아있는데 공교롭게도 이게 인간 노동의 자연스러운 주기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는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즉, 다른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는 시점이 아니라 그 일이 수행되어야 할 때 그 일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