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22년 9월호 가상 인터뷰 : 박종현 아동문학가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아동문예≫
박옥주(아동문학가)
동시인 박종현은 1938년 5월 28일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나 화순군 이서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등산 장불재와 티메봉에 올라 산 너머의 큰 세상을 꿈꾸며 초・중학교를 거쳐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시절 문예부에서, 문삼석・최국인과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두・전양웅 등의 학우들과 문학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교단에서 어린이 글짓기 지도에도 열성을 다하는 한편, 1965년 동시집 빨강 자동차를 펴내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창작 활동을 함으로서 교단 문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수에서 8년여의 교직 생활을 접고 광주로 옮겨 ≪교육주간≫・≪교단≫・≪교육평론≫・≪수업연구≫ 등 교육 출판 관계 일을 했다. 그러다가 당시 아동문학 발표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1976년 5월 1일 광주시 서석동 디귿자 셋방에서 ≪아동문예≫를 창간하여 지금까지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현재 통권 453권에 이르는 국내 굴지의 아동문학 전문지를 만들어 왔다.
박옥주 : 2020년 3월 14일이었어요. 그날, 쌍문동 자택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엄마가 계신 하늘나라로 떠나셨어요. 그곳에서 오빠를 신앙으로 이끌어 준 「나뭇잎배」의 박홍근 선생도 만나셨지요. 오빠, 이제는 더 이상 편찮지도 않고 평화롭게 지내시겠지요? 오늘 인터뷰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뜻밖에도 “편집장!” 하고 부르는 오빠의 우렁찬 목소리가 귓전을 울려 고개를 들고 사무실 안팎을 휘~ 둘러보았답니다.
박종현 :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이 가족 모임을 할 때면 “나는 행복하다.”라며 언제나 행복의 씨앗을 심어 주셨었지. 그런 어머님과 나의 대부인 박홍근 선생이 함께 계신 이곳 하늘나라에서 나는 지금 무척이나 행복하단다. 무엇보다도 ≪아동문예≫를 결호 없이 한결같이 발간하는 것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단다.
박옥주 : 문득 생각이 나네요.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이었어요. 장 협착이 재발해서 한일병원에 입원했는데, 링거를 줄줄이 달고 힘겹게 다르륵다르륵 소리를 내며 느닷없이 사무실에 나타나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이름을 불렀지요. 깜짝 놀라 “입원 환자가 여기엔 왜 오셨냐?”고 했더니 “옥주야, 나는 죽어도 이곳에서 죽을란다.”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뭉클 눈물샘이 터졌던 기억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 납니다.
박종현 : 그랬었지. 내 분신과도 같은 ≪아동문예≫를 두고 떠나야 하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단다. 숨을 가삐 몰아쉬면서도 곁에 누구라도 보일라치면 “편집장!” 하고 불렀으니, 사랑하는 여동생과 ≪아동문예≫와 이별하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걸 느꼈던 거지. 또 내가 없어도 ≪아동문예≫가 순항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단다.
박옥주 : 스물여덟 살 청년 박종현! 여수에서의 교직 생활을 뒤로하고 광주에 어설픈 둥지를 마련하여 ≪아동문예≫를 발간하기 위해 애쓰던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에 아동문학가는 많은데 아동문학 전문지가 없음을 한탄하다가 마침내 ≪아동문예≫를 창간하여 전국의 아동문학가들에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 주셨잖아요.
박종현 : 그러게, 어찌 잊을 수가 있겠니? 그땐 ≪아동문예≫를 발간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었다. 서석동에서 다달이 잡지 발송할 우편 요금을 걱정하던 때였지. 좁은 마루에서 밀가루 풀을 쑤어 봉투를 붙이던 일, 발송비가 없어 옆집으로 돈을 꾸러 가던 일 등등, 허드렛일을 불평도 못 하고 순순하게 해 주었던 네가 참으로 고맙구나.
박옥주 : 1981년 광주를 떠나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한 후에도 고생은 여전했지요. 그런 와중에도 특별 기획 일인칭 ‘나’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소설인 태양을 향해 달리는 기차와 해가 세 번 뜨는 산 등을 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다 열거할 수 없어 아쉽지만, 특집으로 꾸몄던 연작시와 특선시를 통해 역량 있는 동시인 손동연・박두순・권영상과 동화작가 박상재・백승자 등 수많은 인재를 아동문학가로 배출하고 함께하는 마당을 펼쳤으니 참으로 귀하고도 기쁜 일이지요.
박종현 : 아무렴, 1981년 서울 인사동 동일빌딩 4층으로 사무실을 옮겨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녔던 일, 원고료는커녕 오히려 작가들에게 어려운 부탁만 했던 일 등등, 돌이켜보면 ≪아동문예≫가 지금까지 튼실하게 지탱하는 것은 많은 분의 희생과 헌신의 손길이 함께한 덕택이 아니었겠니. 교직에 있던 아내의 내조와 특히 네가 함께 살아 낸 고단한 삶이 보이지 않은 족적으로 ≪아동문예≫ 곳곳에 남아 있지.
박옥주 : 그간 많은 병마에 시달리셨어요. 1991년 뇌출혈로 20여 일간 생사를 넘나들었고, 2000년에는 위암 수술, 2014년에는 백두산 여행 중에 쓰러져 의식 불명이었다가 4일 만에 회생한 이후로도 대여섯 번이나 장 협착 등으로 병원을 오가며 병마에 시달렸지요. 그렇지만 언제나 오뚝이처럼 일어나 ‘기적의 사나이’로 불리게 된 것은 오빠의 분신인 ≪아동문예≫를 발간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박종현 : 그렇단다. 잡지 발행은 바로 내 존재 이유였다. 그래서 ≪아동문예≫ 발간만이 내가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끈이었다. 아동문학가들과 함께 호흡하며 내가 존재하는 곳도, 또한 내가 죽을 곳도 오로지 내 열정과 혼이 깃든 ≪아동문예≫라고 생각했지.
박옥주 : 어려운 잡지 발간 사업을 진행해 오면서도 ‘어린이 청소년 문학 강좌’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했던 행사 등 정말 많은 일에 열정을 쏟으셨어요. ‘아동문학의 날’과 ‘문학상’ 제정 등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할 수많은 사업도 추진하셨어요. 그러면서도 오빠는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 오셨어요.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작품을 구상하고 잡지 발행을 챙기고 계시지요?
박종현 :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단다. ≪아동문예≫가 대한민국을 넘어 언젠가는 세계 아동문학사에 길이 남을 멋진 잡지가 될 거라고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 ≪아동문예≫와 함께해야 하겠지. 따지고 보면 좋은 작품 발표의 장을 제공하고자 ≪아동문예≫를 창간하였고 앞으로도 그런 작품들을 발굴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아동문예≫를 발간해야 하지 않겠니. 이런 일들은 ‘귀하’들이 도와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단다.
박옥주 : ‘귀하’라는 호칭을 들으니 살며시 웃음이 나네요. 오빠가 평소 즐겨 쓰던 ‘귀하’를 생각하면서요. 오빠를 사랑하는 95명의 작가들이 추모의 정을 한데 묶은 귀하! 나 박종현이라는 추모 문집을 2021년 3월 14일에 펴냈어요. 1주기를 맞이하여 가족과 각지의 친지・작가 분이 한자리에 모여 추모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돌아간 부모님을 모신 광주 선산에 함께한 오빠 묘소 앞에서 작가들이 글을 낭독할 때 마음이 여간 기쁘고 애틋한 정으로 따뜻하셨지요?
박종현 : 아무렴. 참가해 주신 모든 분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구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린다.
박옥주 : 2020년 3월 14일, 차갑게 식어 가는 볼을 쓰다듬으며 “엄마가 섬그늘에~”를 불러 드렸지요. 그 동요를 들으면서 오빠는 미소를 지으며 평안한 모습으로 엄마 곁으로 가셨어요. 매일 저녁 8시면 전화를 주고받던 엄마가 “내 아들, 그간 고생했다.” 하며 마중 나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눈을 감는 순간 여든셋의 박종현이 스물여덟 살의 박종현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을요.
“박종현! 스물여덟 살의 종현으로 돌아간다면 그 척박한 곳에 ≪아동문예≫라는 씨앗을 다시 뿌리겠는가?”
여든셋의 박종현은 망설이지 않고 말하겠지요.
“귀하! 물으나마나. ≪아동문예≫는 내가 살아 온 이유야. 나의 뿌리이고 원동력이며 나의 영혼이지!”
박종현 : 고맙다. ≪아동문예≫를 끝까지 지켜 다오.
박옥주 : 올해 5월에는 안종완 발행인과 전국에서 올라온 작가들을 모시고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문학상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많은 분이 참석하여 뜻깊은 자리가 되었지요. 그러니 염려 마세요. 피와 땀으로 뿌리 내린 ≪아동문예≫는 무성하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귀하’들이 계시니까요.
첫댓글 그리움과 감동이 2022년도 초가을 하늘을 가득 채웁니다.
박옥주 주간님 감사합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옥주 주간님의 가상 인터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요.
아름다움을 추억하게 합니다. 주간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