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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무진을 포함한 20명의 결사대는 불과 며칠 만에 속도, 스케일, 정교함 모두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귀환을 펼쳐 보였다. 그는 자무카에게 카라칼지드 사막 전투에서 탈탈 털려 발주나 호숫가로 피눈물 범벅된 퇴각을 하기 이전보다 더 강력한 칸이 되었다. 출신부족인 몽골족을 거의 통합했고, 타타르에 이어 커레이트족을 집어삼켰다. 외가이자 처가인 올쿠누트와 옹기라트를 포함하는 등 수많은 군소부족까지 자신의 휘하로 정리했다.
1
테무진 울루스는 다문화국가, 혹은 다문화사회로 발전하고 있었다. 몽골인(이 경우는 몽골 '부족' 은 물론 인종적 구분으로 몽골인, 즉 '몽골로이드' 까지 포함해서 썼다.), 아랍인, 투르크(돌궐, 혹은 터키)인, 아리안족의 피가 섞였다고 봐야 하는 위구르인, 기타 말갈, 여진, 타타르, 거란, 탕구트족 등 다양한 인종집단이 섞여 있었고, 백성들의 종교도 가지각색이었다. 당시 몽골어로 '차캉' 이라 부르던 시베리아 숲 속의 순록 유목민도 흘러 들어왔다. 이들은 코카서스인종과 몽골인종의 백-황 혼혈집단이었다. 전편에 설명한 대로 발주나 호숫가에 모인 20명의 결사대는 역사에 출현한 최초의 근대적 집단이었다. '발주나의 맹약' 이후의 테무진 울루스는 20명의 결사대가 양적으로 확장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테무진의 극적인 몰락과 재기의 스토리는 지난 두 편, 19회 <사막의 폭풍> 과 20회 <왕의 귀환> 에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기록을 보면 테무진이 커레이트족 백성들을 평화롭게 통합하고,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 상당히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테무진은 '잘못을 저지른 대빵과 그 주변' 과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된 백성' 을 철저히 구분했다.
그렇다고 커레이트 왕족을 절단내기도 좀 뭐했던 것이, 진짜 잘못을 저지른 건 옹 칸과 셍굼 두 부자로 압축되기 때문이다. 커레이트 왕족들은 커레이트의 운명을 결정짓는 쿠릴타이에서 테무진을 배신하려는 옹 칸과 셍굼의 비겁함을 비난했었다. 특히 옹 칸의 동생이자 테무진과 여러번 손을 잡았던 자카 감보는 테무진에게 별다른 잘못을 한 적이 없었다. 원래 옹 칸은 테무진에게 커레이트족을 유산으로 남겨주려고 했었고, 테무진은 옹 칸 사후 커레이트족을 자연스럽게 상속받기 위해 커레이트 왕족과 결혼을 통해 인척관계를 맺으려고 했었다. 테무진은 셍굼의 억지와 옹 칸의 배신으로 어그러진 결혼사업을 마무리짓기 위해 자카 감보의 가족을 택했다. 어쨌든 커레이트 부족민들은 왕가의 혈통에 충성하던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한다면 왕가와의 결혼은 하는 편이 좋았다. 자카 감보는 테무진 편을 들다가 옹 칸에게 쫓겨 간신히 나이만에 도망간 상태. 그러나 그의 가족은 커레이트족에 있었다. 테무진은 일단 자카 감보의 딸인 '이바카 베키' 를 자신의 처로 삼았다. 본부인 보르테, 그리고 타타르족 칸의 두 딸인 예수겐과 예수이에 이은 네 번째 부인이었다. 이바카에겐 '소르칵타니' 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데다 총명하기 이를 데 없던 소르칵타니... 테무진은 그녀를, 아직 약혼자가 없던 막내아들 톨루이와 결혼시켰다.
소르칵타니는 몽골역사상 가장 중요한 여성이다. 왕실의 남자들이 정복사업에 뛰어들어 전선에서 싸울 때 제국의 행정을 관리하고 통치한 것은 그녀였다. 소르칵타니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여성이다. 커레이트 왕실은 독실한 기독교도들이었고, 그녀 역시 기독교 신자였던 만큼 소르칵타니의 자식들은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갖게 된다. 소르칵타니는 한때나마 몽골을 기독교에 우호적인 국가로 만들었고 이는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매우 강렬한 사건이다.
다스린 영토와 인구로 보면 소르칵타니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시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지만, 그녀가 벌였던 진한 투쟁의 역사와 권력의 밀도는 빅토리아 여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이야기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재빨리 본론으로 돌아오도록 하자.
테무진을 초원에서 깔끔하게 'delete삭제' 한 쾌거를 뻑적지근하게 축하하는 자리에서 난데없이 수만 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테무진에게 대패, 간신히 몸만 빠져나간 옹 칸과 셍굼... 이 두 부자에겐 비참한 최후밖엔 남아있지 않았다.
2
지난 편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또 설명하게 만들지 말고 1편부터 쭉 읽어보는 바른 습관을 갖도록 하자).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는, 초원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면 서쪽으로 튀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당연히 옹 칸도 서쪽으로 튀었다. 테무진이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심이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반면 옹 칸의 지지율은 바닥을 친 지 오래였다. 막상 몸을 피하고 나자,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위병도 없이 말 그대로 혼자 서쪽으로 튀었다.
많은 역사서에서 옹 칸이 나이만으로 간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오류다. '나이만의 국경수비대장' 을 만났다고 해서 그리 기술되고 있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우리는 이렇게 퉁치고 넘어가는 거 못 보는 족속이지 않는가? 함 살펴보자.
첫째, 옹 칸이 나이만으로 갈 리가 없다. 나이만이 옹 칸 동생들의 망명을 받아준 것은 정치적으로 옹 칸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즉 나이만이 커레이트족 자체의 적국이라고 단언하기는 좀 뭐해도, 옹 칸 개인에게는 명백한 적국이었다. 그는 나이만과 두 번 싸웠으며, 두 번 모두 처참하게 패배해 테무진에게 한번만 살려달라고 싹싹 빌지 않았는가. 특히 그중 한 번은 나이만의 군대를 대표하는 에이스 '쿡세우 사브락' 장군에게 제대로 당했었다.
두 번째. 초원에는 국경이란 개념이 없었다. 국경이 없는데 어떻게 국경수비대가 있겠는가. 국경선을 긋고, 거기에 수비대를 상주시키는 건 정주문명 국가에서나 하는 거다. 고정된 영토가 없는 데다가 모든 인구가 계절마다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인구밀도도 극도로 적은 초원에서 특정한 곳에 상주하는 병력이 있을 수 없다.
<몽골비사> 는 옹 칸이 만난 나이만의 군사를 '전초' 라고 적는다. 전적으로 옳다. 원래 전초란 전쟁시에 동원/집결된 군대에 속한 작은 부대로, 본대가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기에 앞서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정보를 물어오는 정찰대 내지는 소규모 특수부대를 뜻한다. 하지만 유목민들은 평시에도 전초를 운용했다.
정주-농경국가는 평시에 성을 쌓고 군사를 주둔시킨다. 반면 유목민들은 국경도 국경수비대도 없었지만, 대신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말을 타고 세력권 주변을 누비며 무슨 일 없나 하고 살펴보는 전초를 운용했다. 고정된 영토가 없으니 임시 둥지 주변을 살피는 '옵저버' 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초를 국경수비대로 오인해 기술한 것은 정주문명의 기준으로 기마-유목문명을 이해하려는 오류다. 기라성같은 몽골 학자들이 줄줄이 실수한 걸 보면 고정관념은 역시 무섭다. 하긴 그들 모두가 정주문명의 일원이니...
중국인들이 내몽골의 몽골인 배우들을 동원해 만든 대하드라마 <성길사한(成吉思汗)> 을 보면, 이 대목에서 정말 목책으로 두른 국경이 나오고, 거기에 나이만 병사들이 창을 들고 주욱 서 있다. 당시 초원엔 단 한 명의 보병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옹 칸은 해외여행하면서 국경 넘을 때 비자 제출하듯 나 좀 들여보내 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식이다. 그랬을 리가, 절대로 없다. 다시 말해 그 드넓은 초원에서 옹 칸이 나이만의 전초와 딱 마주친 건 더럽게 운이 없었다는 거다. 처음 보는 노인네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니, 전초부대가 옹 칸을 심문한 건 당연한 거고. 전초의 지휘관은 '코리 수베치' 라는 인물이었다. 누누이 설명했지만 코리는 지휘관이라는 뜻. 아마 소대장에서 중대장 정도 되었을 수베치는 자신의 순찰구역에 들어온 노인을 수상하게 여겼다.
"당신 누군데 여기서 알짱대는 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포로가 될 망정 신분을 떳떳이 밝혀야 죽지 않을 상황이었다.
"나는 옹 칸이다. 커레이트족의 왕 옹 칸 말이다."
저 추레한 몰골로, 동료도 없이 혼자 어슬렁거리는 노인이 그 옹 칸이라고? 수베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옹 칸과 커레이트족은 건재했다. 우리야 테무진이 며칠 만에 극적으로 초원의 중-동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수베치의 입장에선 서울역에서 마주친 노숙자 행색의 노인이 자기가 일본 천황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 노인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급히 하는 이유는? 그야 적의 스파이라서 그런 게 뻔하지 않을까.
"이 노인네가 미쳤구만."
수베치는 그 자리에서 옹 칸을 죽여버렸다. 비록 우리의 주인공 테무진에게 한없이 비겁했고 역사가들의 말마따나 2류 군주였던 옹 칸이었지만, 그래도 약육강식의 초원에서 살아남은 사내였다. 유럽에까지 명성을 떨친 강력한 칸의 최후 치고는 너무나 허망하고 비참했다.
3
한편, 셍굼은 아버지와 떨어져서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사막 지대였다는 걸 보면 꽤나 서쪽으로 갔던 모양이다. 셍굼은 '쿠쿠추' 라는 심복을 데리고 있었는데, 쿠쿠추의 직급은 셍굼 쿠리엔의 거세마 관리자였다. 우리는 테무진이 신임하던 배다른 동생 벨구테이가 테무진 오르도의 거세마 관리자였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초원에서는 원래 말 목동이 양 목동보다 계급이 높다는 것, 말 중에서도 군용마로 쓰이는 거세한 숫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한마디로 쿠쿠추는 셍굼 밑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쿠쿠추는 아내와 동행하고 있었으니, 셍굼 일행은 세 명이었다. 테무진에게 워낙 완벽한 포위섬멸을 당했는지라, 정신없이 빠져나온 이 초라한 일행은 별다른 식량이 없어 쫄쫄 굶고 있었다. 그러다가 셍굼이 사막 한가운데 물웅덩이에 모여 물을 마시고 있던 야생마를 발견한다. 이게 웬 떡, 아니 밥이냐...
"쉿~"
셍굼은 야생마들을 놀래키지 않고 사냥하기 위해 말에서 내려 활시위를 잰 채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자 쿠쿠추는, 셍굼의 말을 낚아채 튀어버렸다! 뒤통수 제대로 맞은 셍굼, 사막 한 가운데서 말도 없이 헤매다 죽게 생겼다. 이제 쿠쿠추와 그의 아내는 셍굼을 버리고 살 길 찾아 가면 되는 거였지만...
여자는 남편이나 배우자가 인격적으로 저열한 행동을 보이면 실망과 함께 경멸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가 겨우 이런 인간을 믿고 함께 살았단 말인가? 쿠쿠추의 아내가 그랬다.
"당신, 셍굼이 개자식인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적어도 당신한테는 은인 아니야? 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불렀어? 그냥 '쿠쿠추' 하고 부른 게 아니라 항상 '나의 쿠쿠추!' 하고 부르면서 당신을 끔찍이도 아낀 사람 아닌가? 좋은 옷감이 있으면 당신하고 나눠서 함께 옷을 해 입었고, 좋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당신을 불러서 함께 즐긴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배신을 할 수가 있어?"
"이봐 마누라, 셍굼은 완전히 끝났다고. 그리고 냉정히 생각해 봐. 초원에 셍굼 저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저 사람이랑 같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겠냐구. 이왕 버리고 떠날 거 말이라도 빼앗아 챙기는 게 당연하지... 현실적으로 생각해, 현실적으로."
"아니 씨바... 그래 그 사람이 개자식이라고 치자. 헌데 다른 사람은 다 셍굼을 버려도 당신, 아니 너만큼은 그러면 안되지 이 비겁한 자식아! 우린 셍굼한테 당장 돌아가서 마지막 남은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그러나 아내에게 돌아온 쿠쿠추의 대답은 찌질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이 개같은 년이(정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된다.), 남편 말은 안 듣고 셍굼을 챙겨? 네년이 나보다 셍굼을 더 좋아하는 걸 보니 그놈의 마누라가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이것도 역사에 기록된 대사다. 찌질남의 대사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한 모양이다.)"
이런 병신 개마초... 이제 쿠쿠추의 아내는 남편이라는 인간을 완전히 혐오하게 되었다.
"여자가 돼서, 남편에게 이쁘다는 소리는 못 들을 망정 개년이란 소리나 들어 먹다니, 내 팔자야... 그럼 어쩔 수 없다. 셍굼에게 그의 황금 술잔이라도 주어라! 그거라도 있어야 물이라도 떠 먹고, 노잣돈이라도 할 거 아니냐."
"쳇."
쿠쿠추도 할 말이 없었는지, 셍굼에게 달려가 황금잔을 던졌다. "받으슈!" 서로 정나미가 뚝 떨어진 쿠쿠추와 아내는 투닥거리며 테무진 울루스를 향한다. 나이만에서 망명객으로 받아줄 가능성도 희박하고, 나이만 외의 초원 전부는 테무진의 영역이라 달리 갈 데도 없었으니... 그리하여 부부는 테무진을 알현하게 된다. 물론 테무진에게 서로를 일러바치러 간 걸 보면, 서로 자기가 잘했다고 굳게 믿은 모양이다. 이 시리즈를 읽어온 독자들은 알 것이다. 테무진이 두 부부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지.
테무진은 '계약의 인간' 이이다. 셍굼은 개자식이 맞다. 하지만 사회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는, 법과 같은 '보편적 약속' 이 존재하지 않았던 초원의 전통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계약이 법과 도덕을 대신한다. 테무진 자신은 개인 사이의 도덕률을 사회의 단위로 확장시킨 혁신가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간의 약속을 중요시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기는 커녕 누구보다 배신자를 혐오했다. 테무진은,"뭐 이런 인간 말종이 다 있나." 하며 쿠쿠추를 처형해버렸다. 물론 쿠쿠추의 아내는 백성으로 받아들였고, 거기에 더해 상까지 두둑히 주었다.
그리고 중년의 천애고아 셍굼은... 말도 없이 용케 탕구트(서하)까지 갈 수 있었다. 물론 걸어갈 순 없다. 평생 부유하게 살았던 셍굼은 옷이나 장신구가 무척 고급이었을 것이다. 행색을 바꾸면 운 좋게 만난 캐러밴이나 아이막에서 말 한 마리 정도는 살 수 있다. 물론 쿠쿠추가 던져준 황금 잔으로 말을 구했을 수도 있다.
탕구트는 셍굼의 출신을 고려해 일단 망명을 허락해줬다. 물론 고급 망명객이 아니라 평범한 외국인 거주자 정도의 신분이었다. 하지만 셍굼은 탕구트에서도 자신이 귀족 신분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초원에서 귀족들이 자주 하던 짓, 즉 마음에 드는 평민의 물건을 그냥 가져버리는 행동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마구를 집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탕구트 관리의 입장에서는?
그냥 절도다.
인지능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 아무리 셍굼이라지만 그 정도로 멍청할 순 없다 - 습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외국인 거주자가 범죄를 저질렀으니 그 결과는 당연히 추방이었다. 셍굼은 사막과 초원이 섞여 있는 서쪽, 위구르족 유목민(상인들도 있었다.)들이 흩어져 사는 지대로 갔다.
처음 위구르족 현지인들은 끈 떨어진 셍굼을 받아준 것 같다. 하지만 셍굼은 거기서도 비슷한 실수를 한 모양이다. 탕구트가 셍굼에게 더 나았다. '추방' 은 행정처리다. 행정편제가 있는 나라나 취할 수 있는 조치다. 빡친 위구르 현지인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셍굼을 응징했다. 간단하고 소박하게, 다구리를 놔서 셍굼을 때려 죽였다.
역사를 오래 디비다 보면 재미난 현상이 생긴다. 어느 시점부터는 누가 착하고 나쁜지, 누가 세고 약한지 하는 기준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한 명의 사람으로 다가온다. 영웅이나 비겁자나, 승자나 패자나 연민과 교감으로 접근하게 된다. 셍굼처럼 비참하게 죽어도 별다른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 인물을 만나기란 참 드물다. 안녕, 셍굼.
여하튼 셍굼은 이 시점에서 몇 년을 더 살다가 죽고, 살아있을 때의 셍굼 이야기가 한 번쯤 더 나올 예정이지만 역사에서는 지금 퇴장한다고 보면 되겠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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