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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1-8)
지금까지 우리는 주일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자기 선언을 살펴보았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나는 ~이다’라는 자기선언을 일곱 번 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일곱번째 자기선언.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5)는 말씀입니다.전통적으로, 포도나무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처럼 역사의 걸음을 걸어 왔습니다.
(사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하나님께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 심었는데 그들은 들포도 열매를 맺혔다고 책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탄식하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렘 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질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실패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산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포도원을 황무케 하고 찔레와 가시가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나느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본문 1절을 보시면,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농부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농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기대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폭염을 견디면서 긴긴 나날을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이유는 가을의 풍선한 열매를 기대하는 것때문입니다. 꽃은 호화롭고 아름다운 매력이 있지만, 농부의 궁극적인 기대는 꽃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사실 성경은 꽃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종종 꽃은 순간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인생의 허무에 비유됩니다. (벧전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그런데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바로 꽃을 구하는 세대입니다. 궁극적인 열매인 생의 보람이나 진정한 의미보다도, 한 순간의 쾌락과 만족을 구하는 데 급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마태복음 21장 33절 이하에 보면 포도원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있는 포도원 주인이,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 종을 보내 수확한 것들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나 주인의 부탁으로 포도원을 관리하던 농부들은 열매도 변변치 못했고 욕심도 생겨서, 주인이 보낸 하인들을 매번 죽여 버렸습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이스라엘 민족은 열매 맺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이제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이들을 통해서 열매를 맺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백성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요 교회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백성의 위대한 출발점이 될 제자들을 3년간 가르치셨습니다. 이제 그 제자들의 곁을 떠날 시각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식하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생명의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떨어지면 죽는 관계입니다. 또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과 교회에 기대하시는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들은 어떻게 맺어질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성경에서는 열매를 두 가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격적인 열매입니다
인격적인 열매란 주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품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면, 당연히 그 주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이것이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꾼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가져야 진정한 열매는 바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을 닮은 인격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최초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처럼 외적인 모양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 성품의 첫 번째가 바로 사랑입니다.(요일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의 성품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격적인 열매에 대한 다락방 강화의 이 유명한 메시지는 요한복음 13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3장에는 사랑의 열매가 중점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어지는 14장에서는 평안의 열매를 말씀하셨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그리고 15장과 16장에서는 특별히 기쁨의 열매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요 15: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 16: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으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이처럼 사랑,평안,기쁨을 맺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바울 사도가 가르쳐주신 성령의 열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갈 5: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하나가 되면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이제는 더러운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안에 거하면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성품을 갖게 되는 새사람인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이시듯 우리의 삶도 사랑이어야 하고 주님이 참 기쁨을 가지고 사셨듯 우리도 항상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상황에서도 놀라운 하늘의 평안을 지니고 사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그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인격의 열매는 다른 외적인 것들보다 더욱 소중합니다.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가진 우리는 어떤 탐스러운 열매보다도 먼저 영적인 변화와 인격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특별히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과 나이와의 연관성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그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더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인격적인 변화가 없을 경우에는 나이를 헛먹은 것이라고 하여 심히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요한서신을 비롯한 서신서들을 보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한 가지 큰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앞에 설 때에 부끄러운 인격으로 서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흘러간 시간에 비례하여 내가 주님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나를 구원하시고, 내 안에 거하시며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주님을 더욱더 닮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몇 년을 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지, 내 자신의 인격이 바로 나의 신앙연륜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여러분 한분한분이 예수님의 성숙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께 붙어있음으로 정말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이 이 교회당에 가득차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전도의 열매입니다.
(16절)“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가서 핍박도 받고, 어려움도 당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위로자요 돕는 자이신 성령께서 함께하시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게 됩니까?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가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신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는 얼마만큼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내 직장에서, 내 가정에서, 내가 걷고 있는 삶의 거리에서 나는 내 안에 거하시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얼마나 이웃들에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올해 들어서 지금까지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었습니까? 주께서 나에게 기대하시는 열매를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맺어가고 있습니까? 나는 정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갖고 있습니까?
그들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까? 죽어가는 한 생명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나라에 잔치를 벌일 일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구원의 영광과 천국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계속 찾아가서 생명의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2. 어떻게 열매을 맺을 수 있습니까?
두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본문의 다른 표현을 빌리면 주님에게 붙어있는 것입니다.
(4절)"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여러분은 정말 그리스도께 붙어 있습니까? wnwsla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비극 중에 하나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많아도 주님뜻대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와의 변할 수 없는 생명의 관계!”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생명입니다. 나의 길입니다. 나의 진리입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여러분은 이러한 신앙고백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내가 이러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항상 거해야 합니다.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본문은 우리가 주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항상 주님안에 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거한다'는 단어는 15장에만 해도 11번이나 등장합니다. 또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서는 40번이나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거한다'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지속적으로'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다가 내일은 멀어지는 삶이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변해도, 내 신앙을 흔드는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어떤 위험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이 신앙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롬 8: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계속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관계만 맺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계속해서 주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뢰하되 마지 못해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안에 거하라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을 먹고 살지만 진정한 교제가 없이 서로의 존재만을 확인하며 사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침에 잘 잤느냐고 얼굴을 한번 보고는 헤어집니다. 저녁에 와서도 잘 지냈냐고 하고는 잠을 자고, 아침에 또 일어나 나갑니다. 이들 사이에는 교제는 물론이고 사랑의 의미마저 상실되어서, 무덤덤한 부부생활이 계속될 뿐입니다. 이것은 하숙 생활이지, 한 집에 거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거한다'는 말은 그냥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라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놀랍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함께 거하는 곳에는 사귐이 있고 대화가 있고, 정말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요 교회인 것입니다. 능동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 예수께서 참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신 삶이 '거하라'는 단어에 담긴 뜻입니다. 그분은 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한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나를 주관하시어 지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거한다는 것은,
첫째, 죄에서 깨끗케 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김을 받았습니다. (3절)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이해하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둘째,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 산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죄를 깨끗케 하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나를 깨끗케 한 이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날마다 체험합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고 주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영적교제를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나의 주님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인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말로만 주여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의 실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생명의 엄청난 부요와 놀라움을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그리스도를 계속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열매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영적 침체에 빠지는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 자체까지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 삶의 장에서 경험하는 고민과 갈등과 좌절과 방황과 눈물과 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그리고 내 안에 거하시는 이 주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날들 동안 어떤 사건이 우리를 낙심케 했습니까? 우리의 의욕을 좌절시키며 우리를 멈추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유혹과 곤란이 우리의 발걸음을 붙들어 매든지 간에, 주께서는 우리가 계속 그분 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계속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답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여, 이 말씀으로 네가 지배를 받으면 열매를 맺으리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5절).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안에 거함으로 인격적인 면에서 주님을 닮아가고, 부족한 나를 통해서 이웃들이 주님앞에 돌아오는 이런 변화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날마다 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공급받고 그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주님이 기대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연륜은 얼마나 됩니까? 영적인 나이에 맞는 열매를 맺었다고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세월만큼, 여러분의 삶 속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자비와 양선과 오래 참음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와 새로운 삶을 찾게 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지나온 많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자랑 한번하지 못하고, 복음 전파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신앙을 뿌리부터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은 세월, 이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예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까지도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뢰하십시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보혜사 성령으로 너와 함께하겠다. 나를 증거하라. 나를 나타내라." "주여! 탐스럽고 싱싱한 열매를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날을 위하여 단순히 주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 주안에 거하는 성도로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양문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