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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으로 살리라(3)
2023년 1월 22일 / 시편 1:1-3
1. 세상 사람들 특히 불교에서 추구하는 겸손과 성경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셨던 것을 비교
법륜스님의 강의 : 겸손이란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데서 나타나는 삶의 자세이다. 세상을 평등하게 보면 자기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돈이 많은 사람이든 돈이 적은 사람이든 다 똑같이 대하게 된다.
지위가 낮은 사람도 똑같이 대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 참 겸손하구나’ 이렇게 말한다. 내가 특별히 겸손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이 똑같이 대하니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저 사람 참 당당하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열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면 누구나 다 똑같이 대할 수가 없다. 내가 돈에 집착하게 되면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비굴해지고 돈이 적은 사람에게는 교만해진다. 높은 지위에 집착하면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비굴하게 굴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교만하게 구는 것이다.
이처럼 겸손과 교만 당당함과 비굴함은 겉으로 보면 똑같이 고개를 숙이거나 고개를 드는 것 같지만 그 뜻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겸손’과 ‘당당함’은 평등성에 기초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교만’과 ‘비굴함’은 차별성에 기초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 : 마 11:28-30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 16:24-25 /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마 20:25-28 / 그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방인이 왕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을 내리누른다. 26)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만일 너희가 으뜸이 되기를 원하거든 반드시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 28)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온 것이다.'
요 12:24 /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이 나는 죽어야 한다. 내가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밀알 하나가 그대로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한 알의 죽은 밀알에서 많은 밀알이 맺히듯이 새 생명들을 풍성하게 거두게 될 것이다.
2. 겸손 (ταπεινοφροσύνη 타페이노프로쉬네)의 덕목에 관하여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덕목(virtue) 가운데, 예수님을 다른 성인들이나 영웅들로부터 구별하는 덕목은 겸손이다. 마태복음 11:29에서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마음이 온유(πραΰς 프라우스)하고 겸손(ταπεινὸς 타페이노스)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종교인들로부터 구별하는 덕목이 되어야 한다. 겸손은 교만이라는 악(vice)과 대조되어 요구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필수 덕목이다. 시편과 잠언은 특별히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며, ‘겸손은 영광으로 이어진다’(잠 15:33)는 교훈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겸손의 삶은 낮아짐의 삶이며 희생과 섬김의 삶이다.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으며,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겸손한 마음(τῇ ταπεινοφροσύνῃ 테 타페이노프로쉬네)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라고 권면하였다. 바울은 이 마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이해하였다(빌 2:3). 바울은 초대교회에 ‘그리스도 찬양시’(빌립보서 2:6-11)로 알려진 시를 인용하는데, 바울은 이 시가 예수의 겸손한 마음을 고차원적인 신학으로 표현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빌립보서 2:5의 ‘이 마음을 품으라’에 사용된 φρονέω(프로네오)는 마음을 뜻하는 φρήν(프렌)에서 나온 동사이다.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에 대해서 바울이나 초대교회 교인들은 그것을 덕목으로 간직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권면한다’(고후 10:1)라고 하였다. 또한, 초대교회는 분명히 역사적 예수님의 모습을 ‘겸손’한 모습으로 기억하였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겸손은, 당시의 철학자들이 ‘고상한 마음’(μεγᾰλό-φρων 메가로프론: 직역하면 큰 마음, 높은 마음)이나 ‘고귀함’(μεγᾰλοφροσύνη 메가로프로쉬네)을 지향하는 것과는 대조되는 덕목이다. 마음과 영혼의 교육을 지향하는 철학자들은 존귀함(nobleness)과 높음(highness)의 가치를 고양하였다. 하지만 이런 철학자들의 추구와는 달리, 예수님의 삶은 높은 곳으로(μεγάλως 메가로스) 향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ταπεινος 타페이노스) 향하여 언제나 살았다. 예수님의 마음은 권력과 지위, 인기와 영광을 탐하지 않고, 언제나 낮아지는 삶을 지향하였다. 그래서 겸손은 다른 어떤 신앙의 덕목이나 열매보다 특별하다. 예수님의 존재와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겸손의 덕목을 가장(假裝)하는 거짓 가르침과 선생들도 교회 안에 존재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꾸며낸 겸손’(골 2:18)과 ‘자의적 숭배와 다를 것이 없는 겸손’(골 2:23)의 위험을 경계하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겸손은 최고의 덕목이지만, 겸손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이미 자의적 숭배에 빠지게 된다. 예수님의 겸손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더욱 영광스럽게 해 주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신앙의 다른 열매와 덕목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3. 겸손이란 무엇인가?
겸손(謙遜)이란 남을 대할 때 거만하지 않고 공손한 태도로 제 몸을 낮추는 것이며,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 뿐만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이웃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 겸손은 자기보다 남을 존중히 여기며,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폄하(貶下)하지 않는 것이다. / 겸손은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것이며 / 이해응 받기보다 먼저 이해하는 성품이다. 또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배우려고 내려앉아 조용히 청취하는 자세이다.
겸손은 높임 받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겸허하게 섬기는 것이며 /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 종의 자세를 가지는 것으로서 우선순위에서 자신을 맨 나중에 두는 마음 자세이다. / 겸손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 관용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 겸손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노래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같이 슬퍼하는 마음이다. / 겸손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높임 받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더 자신을 살펴보면서 자신을 비우는 자세이다. / 또한 높아지는 것은 내려가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겸손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는 마음이며 참음으로 이겨내는 마음이다. / 겸손은 그 어떤 영광스러움도 자신만을 위하여 누리기보다 모두 함께 나누며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 겸손은 자신의 보잘것없는 이성의 이해력과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생각하는 지혜로운 성품이다.
라이프 성경사전에서 교만(驕慢, arrogance) / 잘난 체하며 겸손하지 않고 방자히 행함. 능력을 과시하며 자기를 최고로 자랑하는 행위. 성경에서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최고의 범죄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시 18:27; 잠 29:23; 렘 50:31). 오만(傲慢). 거만(倨慢). 교만하다가 실패한 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①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방해한 바로(출 5:2) ② 에스더 당시 유다 민족을 전멸시키려 했던 바사 제국의 총리 하만(에 3:5) ③ 신(神)으로 자처하다 느부갓네살 군대에게 멸망당한 두로 왕(겔 28:2-9) ④ 이스라엘 멸망을 기뻐하며 자만하다 멸망한 모압인(렘 48:29) ⑤ 자신이 건설한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다 정신 질환에 걸려 짐승처럼 행세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단 4:30) ⑥ 성전 기물로 유흥을 베풀면서 자신을 높이다 나라를 잃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단 5:23) 등이 있다.
교만과 겸손을 비교 / 교만(驕慢)은 괴물같이 흉측스러운 것이며 겸손은 천사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 교만은 지옥이 낳은 아들이라면 겸손은 천국이 낳은 아들이다. / 교만은 패역을 도모하게 하는 것이며 겸손은 의를 이루는 것이다. / 교만은 사상누각처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며 겸손은 반석 위에 세운 튼튼한 집이다. / 교만은 패망의 원흉이며 겸손은 성공의 원동력이다. / 교만은 가장 악한 것이며 겸손은 가장 선한 것이다. / 교만은 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겸손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한다. / 교만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겸손은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 겸손이 가장 중요한 성품이라면 교만은 가장 못된 성품이다. / 교만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하고 겸손은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게 한다. / 겸손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성품이라 할 수 있지만 교만은 우리의 삶에서 제거되어야 할 악하고 끔찍스러운 것이다. / 마음을 비우는 겸손의 성품이 우리의 마음 자세와 행동에 매우 아름다움 유익을 주지만, 교만은 우리의 마음을 황폐케 하며 우리의 앞길에 장애물이 되어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 겸손이란 사람이 사람 되는 가장 소중한 성품이다.
어떤 사람이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을 찾아가서 물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성품이 무엇입니까?’ 그때 어거스틴은 ‘겸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또 다시 물었다. ‘그럼 두 번째로 중요한 성품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은 ‘겸손이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세 번째로 중요한 성품은 무엇입니까?’ 이번에도 어거스틴은 ‘겸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이 대화에서 겸손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겸손한 성품을 늘려나가고 교만은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교만에 대해 경고하기보다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교만으로 흐르는 성향이 매우 강하고 빠르며 너무나 자연스럽기까지 한다. 도리어 겸손한 성품이 이상할 정도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교만처럼 쉽게 들어오는 것이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이만하면 겸손한 사람이지..’라고 할 때가 가장 교만할 때이다. 그러므로 항상 자아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야 한다. 겸손은 가장 소중한 성품이다. - 최원탁 / 전주현암교회 담임목사
4. 겸손이 몸에 배게 하라
가수 조영남의 노래 가운데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래가 있다.
♬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 내가 최고지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나보다 잘난 사람 또 있을까 나보다도 멋진 사람 또 있을까 겸손 하나 모자란 것 빼고는 내가 당대 제일이지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힘들어
돌아가신 울아버지 울 어머니 날더러 겸손하라 겸손하라 하셨지만 지금까지 안 되는 건 딱 한 가지
그건 겸손이라네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정말로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정말로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힘들어 휴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양하게 있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겸손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결코 많지 않다. 겸손은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다. 허영심이 강한 사람은 오만하다. 실제로는 모두에게 골칫거리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착각하기 쉽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강물이 모든 골짜기의 물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래로 흐르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손함이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자기를 세우는 것이다. 용기와 힘을 함께 갖춘 사람은 결코 교만하지 않다. 몸을 낮추는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 불손한 사람은 선심을 쓰고도 욕을 먹는다. 그러나 공손한 사람은 없어도 구할 수 있다.
겸손(謙遜)의 겸(謙)은 <공경할 겸>, 손(遜)은 <따를 손>을 쓴다. <공경하여 따른다>는 뜻이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높이어 귀하게 대하고 자신을 낮춘다. 자신이 잘하는 일이나 자랑할 만한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잘난 척하지 않는다.
남을 존중할 줄 안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겸손하다'고 한다. 겸손한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큼 행동하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자기의 능력과 위치를 아는 사람이다.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이다.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驕慢)이다. 교만은 잘난 체하며 겸손함이 없이 건방지다. 자기 자신을 모른다. 자기 자리를 잘 모른다.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교만이다. 물론 겸손도 지나치면 교만이 될 수 있다. 새만금일보 | 기사입력 2018/09/19
5. 겸손의 확실한 증거 10가지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덕목을 가르치면서 사랑을 먼저 언급하지 않고, 겸손을 제일로 꼽았다(롬 12:1-10).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기독교의 제일 되는 덕목으로 겸손을 최고로 들었다.
겸손에 반대되는 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악덕 가운데 제일 근본이 된다. 교만은 악덕의 어미이다. 크리스천의 겸손은 비굴하거나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능력과 자신감에서 나온다. 사람은 자기를 겸손히 낮추기 보다는 스스로 높임으로써 상대적으로 남을 업신여기기 쉽다. 그래서 이웃 간에 갈등과 미움과 분쟁을 낳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크고 높으신 분이면서 가장 낮아지셨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시고 죽기까지 겸손하셨다.
세상은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고 PR을 잘하는 것이 마치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같지만 성경은 그와 반대로 가르치고 있다. Cruciform Press의 설립자이며, 온타리오 토론토의 그레이스펠로우십처치의 담임목사인 팀 찰리스가 쓴 ‘겸손의 확실한 증거 10가지’가 기독교 전문 사이트 처치리더스에 실려 소개하였다.
팀 찰리스는 이 글에서 ‘교만’은 최악의 죄악인 반면, ‘겸손’은 최고의 미덕이라고 했다. 또한 ‘크리스천은 성령으로 인해 교만이 죽고, 겸손의 미덕을 갖는 삶으로 변하는 기쁨이 있다’라며 성경이 말하는 겸손의 10가지 확실한 증거를 밝히고 있다.
1. 스스로를 낮춘다.
욥은 ‘네가 낮춤을 받거든 높아지리라’라고 말하며,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라고 했다(욥기 22:29). 겸손한 사람은 다윗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시편 22:6)’고 한 것처럼 진정한 성찰의 순간에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낮추어 생각한다.
2.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높인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이기적인 야망이나 자만심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라’라고 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려고 하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과 거기에 더 숨어있는 죄를 보려고 노력한다. 그는 자신의 타락 정도를 잘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장점을 찾으려고 한다. 또한 자신에게서는 죄의 흔적 하나하나를 찾아 헤매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서는 은혜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쓴다.
3.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한다.
벌레가 가장 달콤한 열매에서 번식하듯 자만은 자신이 큰일을 해냈다는 생각에서 싹틀 수 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기도도 하지만, 그 다음에는 자신의 틀에 박힌 공부와 연약한 기도에 대해 반성한다. 자신의 가장 좋은 순간조차도 여전히 죄로 인해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최선의 노력을 하지만 여전히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크리스천으로서의 덕목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지 않고, 그리스도로 인해 자신감을 갖는다.
4. 상황을 보기보단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겸손한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도 원망을 자신의 부족한 영적상태에서 찾으려고 한다. 위선자가 자기의 선함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면, 겸손한 영혼은 언제나 자신의 악함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 잡힌 바 되어 셋째 하늘까지 다녀온 엄청난 특권을 누린 바울도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라고 외쳤다. 신실한 크리스천은 지식이 성장할수록 자신의 무지와 믿음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한다.
5.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바라본다.
겸손한 사람은 큰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비난하기를 거부한다. 아브라함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라고 했으며,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라(욥 1:21)’며 잘못 진행되는 듯한 일에도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았다.
6.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
겸손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모든 칭찬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하고 그리스도께만 돌린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영예를 그리스도께 돌리며 주님만 크게 한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영광과 찬양을 포함한 모든 것을 주님께 돌린다.
7. 적의 비난과 친구의 책망을 감내할 줄 안다.
겸손한 사람은 죄에 대한 책망을 받아들인다. 죄 많고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너무 높은 자리에 올려놓아 조언조차 받아드리기 힘들어 하지만, 경건한 사람은 자기를 책망하는 사람을 오히려 감사해 하고 사랑한다.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 9:8)’ - 겸손한 크리스천은 적의 비난과 친구의 책망을 견딜 수 있다.
8. 자신의 업적이 가려지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겸손한 사람은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이름과 업적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일부러 질투의 추악한 죄악과 싸우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즐겨 말한다. 겸손한 크리스천은 비록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양보하는 자리까지 간다.
9.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심을 의식한다.
교만한 사람은 만족하지 못하고 ‘다고 다고’하며 불평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는 자신의 죄에 비해 자신의 상태가 훨씬 나쁘지 않음을 보고 놀라며, 형편과 사정에 상관없이 그의 초점은 작은 거룩함에 있다. 또한 최악의 경우조차도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상황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10. 낮은 곳에 처할 줄 안다.
겸손한 사람은 기꺼이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사람들이 꺼리는 일에도 주의를 기울일 줄 안다. 그는 부자의 호화로운 연락을 즐겨하기보다 나사로의 염증을 닦아주는 것을 더 기뻐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너무 고귀하고 너무 거룩하여서 어떤 일에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기꺼이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라(롬 12:16)’라고 강조한다.
겸손은 초자연적인 영적 요소를 위한 부가적인 선택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일상에서 생활 가운데 실천하는 것이다. 겸손하게 성화되기를 원하는가, 위의 10가지에 자신을 비추어 스스로를 솔직히 평가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며 기도하자.
겸손(謙遜 humility) - 김석균 작사∙작곡
1. 슬픔속에서도 울지 않는 것 / 억울해서 울지 않는 것 /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속에도 걱정하지 않는 것 / 사랑할 수 없는 사람조차도 사랑하며 품어주는 것 /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용서하여 주는 것 / 어떠한 자기 주장도 버리고 /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2. 참을 수 없어도 화내지 않고 / 끝까지 인내하는 것 /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조건에서도 감사하며 사는 것 / 칭찬이나 비난 가운데서도 침묵하며 살아가는 것 / 말씀 순종하기 어려울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 어떠한 자기 주장도 버리고 /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겸손은 겉사람이 드러나지 않고 속사람이 드러나는 것 /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 / 어떠한 자기 주장도 버리고 / 오직 모든 것을 주님 뜻에 맡기며 /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주가 강함을 보여줌이 진정한 겸손
겸손은 모든 사람이 설교하지만, 아무도 실천하지 않고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하나의 미덕이다. - J. 셀든(영국의 법학자)
6.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의 차이
1. 다른 사람의 실패에 집중한다. /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에 압도된다.
2. 비판적이고 흠을 잡는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꼼꼼하게 지적하면서 자기 잘못은 대충 지나친다. / 인정이 많고 자신이 얼마나 많이 용서를 받았는지 알기 때문에 용서를 많이 한다.
3.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낮추어 본다. /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보다 존중한다.
4. 독자적이고 자부심이 강하다. / 독립적인 영성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 정한다.
5. 자기가 옳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하려 한다. / 논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6.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가 지나치다. /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며 온순하다.
7. 자기 시간과 권리, 명예를 보호하려 한다. / 자기를 부인한다.
8. 대접받기를 좋아한다. / 의욕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
9. 유명해지고 싶어한다. / 다른 이들에게 충실하고 그들의 성공을 돕는다.
10. 자기 향상을 원한다. / 다른 사람들의 승진을 마음으로 바란다.
11. 인정받고 높이 평가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 시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12. 자신이 간과되고 다른 사람이 승진하면 상처를 받는다. /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주고, 다른 사람 들이 고무되었을 때 기뻐한다.
13. 무의적으로 자기가 속한 조직이 자기와 자기 은사를 얻는 특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 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 ‘나는 이 일을 할만한 가치가 없어’라는 마음을 갖는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게 하시지 않는 한, 자신은 하나님께 드릴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안다.
14. 자기가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 자신이 배워야 할 게 많음을 알고 겸손히 행동한다.
15. 자의식(自意識) 강하다. / 자기 자신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16. 다른 사람들을 멀리한다. /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친밀하게 사랑하려고 한다.
17.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데 날카롭다. / 개인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깨닫는다.
18. 가까이 하기 어렵고, 비판을 받으면 화를 잘 낸다. / 겸손한 자세로 비판을 받아들인다.
19.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자신의 이미지와 평판을 위해서 일한다. / 참된 것 에 관심을 둔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시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세상의 평 판에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20.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눔을 어려워한다. /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기 자신을 공개하고 솔직하게 대한다.
21. 자기가 지은 죄를 아무도 모르기를 원하고 본능적으로 은폐하려 한다. / 일단 마음이 깨어지면 자기 잘못을 기꺼이 밝힌다.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22. ‘내가 잘못했어. 날 용서해줘’라고 말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용서를 구한다.
23. 죄를 고백할 때 개괄적으로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 죄를 고백할 때 하나하나 열거할 줄 안다.
24.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를 걱정한다. / 자기 죄의 원인과 뿌리에 대해 마음 아파한다.
25, 죄 지은 것을 몹시 후회하지만, 죄가 드러나고 밝혀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 죄를 진심으 로 뉘우치고 버린다.
26. 관계에 오해나 대립이 생기면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용서를 구하길 기다린다. / 관계에 오해나 대립이 생기면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했든 상관없이 먼저 화해하려고 한다. 관계에 오해나 대립이 생 기면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했든 상관없이 먼저 화해햐려고 한다.
27. 남과 비교할 때 자기가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고 그분의 자비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28. 자신의 정직한 마음 상태를 보지 못한다. / 바르게 산다.
29. 자기는 회개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 회개하는 마음이 꾸준히 필요함을 깨닫는다.
30. 자기에게 부흥이 필요 없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학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속적으 로 하나님께 새롭게 만나고 성령님으로 늘 새롭게 채워져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7. 가장 겸손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홍창구, 시인·수필가·前 애월문학회장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필자는 당연히 겸손이라는 덕목을 꼽겠다. 겸손(謙遜)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말한다. 겸손은 자신의 인격과 성과를 받쳐주고 지켜주는 아주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똑똑하지만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한 사람은 쌓아놓았던 것을 반드시 한꺼번에 쏟아버리는 우를 범한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행복과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 겸손의 미덕이 아닌가 한다. 성실한 사람과 유능한 사람 중에 성실한 사람을 더 점수를 준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일지라도 성실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겸손의 가치와 미덕를 알고 있지만 자신의 못난 이기적인 마음과 자만심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무조건 비굴하게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낮추는 것이다. 비굴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신이 겸손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일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학에 보면 종신양로 불왕백보(終身讓路 不枉百步) 종신양반 부실일단(終身讓畔 不失一段)이라는 글귀가 있다. 평생 남에게 길을 양보해도 그 손해가 백보 밖에 안 되고 평생 밭두둑을 양보해도 한 단보(段步)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는 겸손의 덕목을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으로 많은 고민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인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자만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자만심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각박한 사회생활에서의 인간관계를 두렵게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겸손의 미덕과 진실한 마음은 대인관계뿐 아니라 사회생활 속에서 어떠한 어려운 일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지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는 아닐까?
도가(道家)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老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명언을 남겼다. 물은 만물을 생육하게 해주고, 세상의 더러운 것을 다 씻어주며, 가장 낮은 곳에 처해도 묵묵히 자기의 역할을 다 하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물과 같은 친구를 사귀라고 했다. 불가에서는 물로 번뇌를 씻는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잘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들을 낮은 자세로, 그 짐을 말없이 지고 가는 겸손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매우 적다. 특히 한국 사람은 완장만 차면 갑질과 기고만장해진다.
우리 사회 지도층에 계신 많은 분들이 겸손하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겸손함의 미덕을 자주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래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다.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가장 겸손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민 12:3 / 모세는 이 말을 듣고도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무척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겸손한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8. 겸손에 대한 예화들
▣ 겸손한 위인들 /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톤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우주에 관해 아는 지식은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해 아는 지식보다 적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겸손의 모습은 슈바이처 박사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그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지을 때,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못질하는 일을 직접 했다. 그때 혼자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슈바이처는 옆에 있던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저는 지식인이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일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했다. 이에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자네만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웬만큼 배웠다 싶으니까 이젠 아무 일이나 다 하겠더군.” 세계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 꺼려하던 막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좋은 일례이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듯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다. 이같은 주님의 겸손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 휫 필드와 존 웨슬리 / 두 사람은 목회의 방법이 같았고 구령의 열정도 똑같았다. 그러나 신학에 대한 이해는 달랐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의 신학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던 한 사람이 휫필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목사님은 웨슬리 목사님과 신학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른데, 목사님께서 천국에 가시면 웨슬리 목사님을 만나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휫필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웨슬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을 것이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휫필드의 대답이었다. 비록 신학이 다르지만 웨슬리 목사의 능력과 영향력을 인정한 휫 필드 목사의 태도는 매우 훌륭하다. 우리는 조지 휫 필드처럼 온유함과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 이웃을 위한 겸손 / 유명한 흑인 교육가 부커 워싱턴 박사가 앨라배마에 있는 터스키기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후 그 지역의 부자들이 사는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 때 어느 백인 부인이 그가 워싱턴 박사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 흑인이려니 해서 멈춰 세우고 몇 달러 줄 테니 장작이나 패달라고 요청했다. 총장은 그때 특별한 일이 없었고,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장작을 패서 그녀의 벽난로 옆에 차곡차곡 쌓아주었다. 일이 다 끝나 그가 돌아간 후 그 집 흑인 하녀가 그를 알아보고 주인에게 알려 주었다.그 부인은 너무 부끄럽고 당황해서 다음날 아침에 총장실로 찾아가 백배 사죄했다. 그러자 부커 워싱턴 총장은, “부인, 괜찮습니다. 저는 가끔 가벼운 육체노동을 좋아합니다. 그뿐입니까. 이웃을 위해 돕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요.” 하며 위로를 했다고 한다. 정말 겸손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을 세워주신다(마 23:12).
▣ 겸손은 더욱 존귀하게 / 영국의 간호원이었던 나이팅게일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하여 전쟁터로 나가 부상병을 간호하고 1만 3천명의 호열자 환자를 치료함으로 군인들로부터는 싸움터의 천사로 또는 광명 부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도 참혹했던 크리미아 전쟁이 영국과 터어키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오고, 러시아의 패전으로 끝이 나게 되자 나이팅게일이 영국으로 귀국하려 했을 때에 전 영국 국민들은 그녀를 전쟁의 영웅보다도 더 존귀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명예스런 훈장이나, 자기 영광받기를 즐겨하지 않은 나이팅게일은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예정을 바꾸고, 1956년 8월 15일 아무도 모르게 프랑스로 갔다. 이와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영국 국민들은 한때 크게 실망하였으나 나이팅게일의 겸손한 태도를 알고 더욱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교만으로써가 아니라 겸손한 마음과 생활 태도로만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위인전을 보면 김모재라는 사람이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교훈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은 일찍이 내가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의 자식들 중에 그런 행실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 원치 않으니 너희들은 언제나 겸손함과 조심성을 가지라. 이것이 참 사람의 위덕이니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의복을 입은 짐승으로 세상을 마칠 것이라."라고 교훈했다. 그리고 유대교의 경전인 탈무드를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에 높은 산이나 큰 나무들 중에 거하지 않으시고 볼품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말씀하신 것은 교만한 자보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아는 자 중에 거하시기를 즐겨하시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다.
▣ 윌리엄 캐리 이야기 / 윌리엄 캐리는 위대한 선교사이며 우수한 언어학자였다. 그는 성경을 인도의 34가지 방언으로 번역하였다. 그가 선교사로 인도에 왔을 때 어떤 이들은 혐오와 경멸의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느 만찬회 석상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한 사람이 윌리엄 캐리를 망신시키려고 여러 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캐리씨! 당신은 옛날에 구두짓는 사람이었다면서요?”라고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캐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구두짓는 사람이 아니라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자신은 구두를 만들 줄도 모르는 수선공에 불과했다고 겸손히 대답한 것이다. 선교의 사역 후 마침내 그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성경 어느 본문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 같은 죄 많은 인간에게 무어라 말해 준다는 것부터 과분하게 생각되지만 꼭 말해준다고 하면 ‘오!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의 많으신 자비를 좇아 내 죄를 도말하소서’라는 구절을 읽어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겸손을 잃지 않고 훌륭히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다.
▣ 루터와 쯔빙글리가 겸손하게 된 동기 / 유럽의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쯔빙글리는 각자가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방향이 서로 반대였다.두 사람은 종교개혁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의견충돌로 얼굴을 붉혔다.루터는 공재설을 주장하며 매주일 성찬식을 하자고 하였고, 츠빙글리는 기념설을 주장하면서 년 3-4회만 하자고 하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스위스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두 마리의 염소가 매우 좁은 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염소들은 다리의 중간에서 오도가고 못했다.곧 한판 싸움이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하게 엎드렸다.그러자 다른 한 마리가 염소의 등을 밟고 유유히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염소에게서 ‘겸손’과 ‘양보’를 배운 것이다.스스로 낮추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분쟁이 없다.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기 스스로를 낮추셨고, 인류는 그분의 등을 딛고 영원한 생명의 문에 들어가게 되었다.
▣ 겸손 / 불손한 사람은 선심을 쓰고도 욕을 먹는다. 그러나 공손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 유능한 매는 발톱을 감춘다. 겸손은 검보다 강하다. 승리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를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랑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손이 그 첫째 계단이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다(어거스틴). 겸손이란 독일말로 Demut 즉 '힘'이란 의미이다. 칭찬을 받았을 때가 아니고 꾸지람을 들었을 때 그 때에 겸양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겸손한 사람이다(J. 파울) 겸손한 자는 남을 비판하지 아니하며 또한 비판하는 소리도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영안으로 온 세상을 보니 마귀가 온 땅에 그물을 편 것을 보고 두려워 탄식하기를 ‘누가 능히 이 그물을 벗어나겠는가?’ 하니 한 천사가 대답했다. ‘겸손한 자만이 능히 이 마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안토니)
▣ 프랑스 포앙가리 대통령의 겸손 / 유명한 쏠비대학의 라비스 박사가 있었는데, 그 대학 강단에서 박사 교역 50주년 기념식이 열렸을 때 많은 손님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모여 기념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때 라비스 박사는 답사를 하려고 강단에 올라보니 맨 말석 학생들이 앉은자리에 포앙가리 대통령이 학생들과 함께 앉은 것을 보고 너무 황송하여 단상으로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끝까지 거절하며 “나는 배운 제자로서 이 영광스런 자리에 대통령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 축하하러 왔다.”라고 하였다. 그때에 라비스 박사는 “우리가 이렇게 겸손하신 대통령을 모시었으니 앞으로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 섬기는 지도자 / 남침례교단의 유명한 빌 핸드릭스라는 교수님이 계신데, 교단 전체에서 존경을 받는 대단한 학자이다. 침례교단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이 골든게이트 신학교의 학장으로 모시기 위해서 그분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핸드릭스 박사는 그 부탁을 거절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저는 교장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가르치는 교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지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그런 지도력이 저에게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을 한 분 추천하겠습니다. 제 제자 가운데에 폴랏트 박사라는 분이 계신데 이분은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분의 추천을 참고해서 폴랏트 박사가 골든게이트 신학교의 학장이 되었다고 한다. 학장이 된 다음에 폴랏트 박사를 가르쳤던 스승인 핸드릭스 박사는 자기의 제자 밑에서 교수 일을 하면서 신실하게 자기의 제자를 섬기면서 그 학교의 발전에 혁혁하게 기여했다고 한다. 이런 삶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그것을 망각하는 데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어두움이 초래된다.
▣ 토스카니니의 겸손 / 한번은 베르디를 추앙하는 오페라가 밀란에서 계획되면서 누가 이 오페라를 지휘할 것이냐가 거론되었을 때. 명지휘자 마스카그니가 당대의 유명한 토스카니니와 함께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둘 중에서 선택이 난감하게 되자 할 수 없이 두 사람 다 지휘하게 하도록 결정되었다. 그러자 마스카그니는 자기에게 토스카니니보다 더 높은 금액의 사례를 주지 않으면 지휘할 수 없다고 고집하였다. 결국 그는 토스카니니보다 높은 금액의 사례를 받았다. 한편 토스카니니는 무료로 이 오페라를 지휘하였다. 그 이후의 평판은 짐작하지 않아도 분명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토스카니니는 그의 자기 겸허로 시민들의 더 높은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었다. 서양 속담에 ‘빈 수레가 큰 소리를 낸다’ 우리에게도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는 속담이 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4:6에서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라’고 간절하게 당부하였다. 교만할수록 마귀를 닮고. 겸손할수록 예수님을 닮기 때문이다.
▣ 자만은 마귀의 유혹 / 어느 날 마귀가 성 프란시스를 찾아 왔다. 그리고 칭찬하기 시작했다. 전도 많이 한 것, 많은 물질을 포기한 것 명예를 포기하고 청빈생활의 본을 보인 것, ‘이런 일은 당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추켜 주었다. 마음을 고무풍선처럼 부풀게 하고 자만에 빠지게 했다. 한참 듣고 있던 그는 사탄의 말을 가로 막았다. “만약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나는 부족해서 이것 밖에 못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가.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하겠다.” 마귀는 쫓겨 가고 그는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신앙인들에게 이런 유혹이 종종 있다. 철야기도를 한 후, 전도하고 난 후, 헌금하고 난 후, 교회 건축 마친 후에 이런 사탄이 찾아와 종종 유혹하는데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유명한 것, 훌륭한 것 / 엔리코 카루소(1873-1921)는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가수이다.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그는 많은 노력으로 폭넓은 음성영역을 구축하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만 607회나 출연하는 진기록을 보유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도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거리낌 없이 노래를 불러 사람들은 그를 자존심 없는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시내를 걷다가 옛 친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음식을 청할 때 종업원이 그를 알아보고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요리사 아저씨! 테너 가수 카루소 선생님이 오셨어요.” 종업원의 말이 떨어지자 요리사가 즉시 달려왔다. 그리고는 아주 공손한 태도를 인사를 했다. "선생님을 이곳에서 뵈올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평소에 선생님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들려드리지요.”하고 카루소가 아주 쉽게 말했다. “정말요? 선생님과 같은 세계적인 가수의 노래를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요리복을 입고 있는데 어쩌지요?” 그가 매우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하고 카루소는 그를 위안시키고 즉시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식당 홀 안에 가득히 울려퍼졌다. 노래가 끝났을 때, 모든 손님들은 그가 카루소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아름다운 선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요리사는 더욱 감격해 했다. 잠시 후, 식사가 시작되어 친구가 카루소에게 왜 아무 곳에서나 그렇게 노래를 부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나의 노래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네. 더욱이 저 요리사도 요리를 맛있게 해서 남들을 기쁘게 해주는 예술가가 아닌가. 예술가를 위해 노래 하나 하는데 그렇게 인색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유명하다는 것과 훌륭하다는 것은 다르다.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유명한 것이지만, 어렵고 딱한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행위는 훌륭한 일인 것이다. 카루소의 폭넓은 인간존중 정신을 소위 유명하다는 사람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 하나님 앞에서는 /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는 한 번 자기 군대의 진영 시찰을 나갔다. 그는 이른 아침 간소한 옷을 입고 캡을 쓰고 산책을 나섰다. 이리저리 들러서 돌아오는 길에 한 곳에 오니 거기는 두 갈래 길이 있고 그 길가에 한 거만한 군인이 배를 내밀고 한 손에 담배를 피우고 연기를 피우며 서 있었다. 황제는 그 앞에 가서 군대 예를 하고 길을 물었다. 그 군인은 아주 교만한 태도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담배 낀 손으로 한쪽 길을 가리키며 ‘이리로 가!’ 라고 반말을 썼다. 황제는 그 길로 두어 발자국을 옮기다가 그 군인의 거만한 태도에 흥미있어 다시 발길을 돌리고 그 군인을 향하여 말했다. ‘당신 계급이 뭡니까?’ 이 군인은 신이 나는 듯 거만하게 말했다. ‘자네 한 번 맞춰 보게나.’ ‘네, 상사인가요?’ ‘아니, 그 위야!’ ‘그러면 소위입니까?’ ‘아니, 그 위야! 난 대위란 말이야!’ ‘대위님! 훌륭하십니다.’ 황제가 발을 돌이키려 할 때, 그 군인이 물었다. ‘자네는 계급이 뭔가?’ ‘예, 이번에는 대위님이 한 번 맞춰보시지요.’ ‘자네 일병인가?’ ‘그 위입니다.’ ‘그러면 상병인가?’ ‘아니오, 그보다는 한참 위입니다.’ ‘그러면 중위인가?’ ‘아니, 그 위입니다.’ 이 때, 군인은 좀 당황하였다. ‘그러면 나와 동급이군, 대위인가?’ ‘아니, 그보다 훨씬 위입니다.’ 군인의 거만했던 허리가 구부러지고 말소리가 점점 떨렸다. ‘그러면 당신은?’ ‘난 이 나라의 황제요!’ 군인은 떨면서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용서를 빌었다. ‘일어나라. 너나 나나 한가지다. 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대위이든, 황제이든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겸손하게 살도록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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