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5. 제사) 노란 애기 벌 앵앵 하던 곳 ㅡ 곽선희
한 손엔 아기 면기저귀. 또다른 한 손엔 큰 아이. 등엔 작은 아들 들쳐 업었다. 포항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이젠 읍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갈아 타야 한다. 큰 아이를 보고 ''너희들 먹을것 까만 비닐봉다리에 있다. 엄마가 모르고 안챙기면 네가 잘 챙겨야 해~'' 하면 ''응'' 하고 대답한다. 시골로 들어가는 버스가 오자 어떤 사람이 앞질러 버스에 오른다. ''엄마! 저거 우리거야.'' 하고 잽싸게 큰 아이는 잡는다. ''어디어디~ 응 아니야. 정말 뭉치도 비슷하게 생겼구나. 우리 것 여기 있어.'' 그래도 참 기특하다. 잊지 않고 염두에 두었으니. 이제 겨우 걸음마를 완성한 아이가 끝내 사랑스럽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당시 그러면서 거뜬히 업고 걸리며 남편을 뒤로 하고 먼저 시댁으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시댁을 향했던 일이 새삼 가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벼이삭이 흔들거리는 황금 들판에서 저건 메뚜기 라고 한단다 하며 아이들에게 얘기하며 소나무 두 그루가 보이는 곳에 촛점을 맞추어 논두렁을 걸었던 기억이 새록하다.
컹컹! 방문객을 알리는 개 짖는 소리에 어머님은 달려 나온다. 맨드라한 마당. 펌프질하는 수돗가에 핀 봉선화 맨드라미. 빨래 느는 장대에 뽀얀 호청들. 뒤편에 너른 과수원. 밭엔 상추, 쑥갓, 마늘쫑, 정구지, 파, 가지, 감자, 방울토마토, 뿌리깊은 냉이는 지천에 있다. 아이들은 뉘 집 아이나 좋아라 마구 달리고 싶어 했고 어른들은 행여나 하고 노심초사다. 저녁때가 되면 어쩔수 없이 고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밭에서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챙겨 좁은 부엌으로 들어간다. 어머님은 남의 부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아노 하며 절대 두 사람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애써 챙기었다. 가마솥에 쑥을 콩고물 묻혀 된장 풀어 쑥국 끓이는 것도 그 부엌에서 배웠고 사과밭 일꾼들 놉할때 참 준비로 국수 삶고 국물 내고 마늘 이파리 쫑쫑 다져 양념장 만드는 것도 그때 보았다. 어머니 손맛은 모두가 알고 있다.
시골의 깨끗한 공기는 마음을 정화하고 제사 후 음복을 할때는 이상하게 모든것이 유달리 맛이 있다. 시골에 가는 날이 부담이 되면서도 자가용이 각자 생기면서, 좀 더 큰 차를 구입해 어른들을 모시고 함께 가는 길은 따뜻한 혈육의 정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누구는 전 부치고 생선을 굽고, 병풍을 두르고, 제사상을 내고, 제사 음식을 올리고, 메를 괴고, 밤을 치고, 지방을 쓰고, 향을 준비하고, 술 비울 큰 그릇도 준비하고, 제기와 접시 내어 떡과 과일도 홀수로 담고, 어느 새 저마다 자기 일을 찾아 한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아이들이 음식에 손을 대지 않게 신경을 쓴다. 아이들은 길게 늘어 서서 절을 두 번씩 올리며 어른들 흉내를 곧잘 낸다. 하마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가 곁눈질 하며 때론 웃지마라 해도 웃으며 따라들 한다. 어른들의 정장차림은 따라하지 않아도 반듯이 차려 입는다.
어느 가을 날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이 집 저 집에서 준비한 준비물과 예초기, 낫, 상차림 할 포와 과일 술, 마실 물과 수건을 들고 산을 올랐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거리고 고추잠자리 빙빙 돌았다. 이름모를 들꽃들 반기는 조상들의 묘로 향하는 길은 햇볕도 따사로왔다. 으례히 예초기로 거침없이 벌초를 하면 뒤에서 좀 떨어져 잔나무 가지나 풀들을 낫으로 한데 모아 한 곳으로 치우는 일은 여자들 몫이다. 벌도 조심해야 하고 뱀도 조심해야 한다. 여기저기 벌초하러 온 사람들 소리도 들린다. 힘겹게 그 작업이 끝나면 머리카락을 반듯이 깍은 양 그렇게 단정할 수 없는 산소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뿌듯한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흔에 낳은 늦둥이 딸아이가 아장아장 걸어가더니 산소앞 상석에 고사리 같은 손바닥으로 티끌들을 쓸듯이 매끈하게 쓸어 내렸다. 참 이상하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태어나 스스로 아버님 어머님 대전에 보고하는 것일까. 이것을 보고 피는 물보다도 진하다 라고 하는 것일까 아이의 무심코 하는 행동이 때론 기이하게도 보인다. 어른들이 간단히 차려 온 포와 과일과 술을 올리고 길게 늘어서 두 번 절을 올렸다. 중고등학생이 된 손자 손녀들도 읍을 하였다. 자식들을 늘 두루두루 살피시던 부모님이 이곳에 누워계신다.
우리가 시골에 갈때면 감포 시장에서 늘 맛있는 초장에 싱싱한 횟감을 손수 마련하시고 기다리던 아버님 어머님이시다. 이제 어른들은 가시고 열 번 드리던 제사는 다섯 번으로 합쳐 제사 드리다가 이제는 아예 아들네로 건너갔다 하니 친척들도 발길을 끊었다. 결혼식이나 상 치룰일이 생기면 볼 수 있는 것이 다이다. 요즈음 젊은이가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코로나19로 각자 서로를 안 본지가 오래다. 옛날의 그 조상들에 대한 예는 사라져만 간다.
미소 띈 아버님 어머님 모습은 벌초 후 비석에 노란 애기 벌 앵앵 거리며 내게 희망을 안겨 주던 그때 일과 오버랩 되며 영원히 기억속에 간직되리라.
(20240109)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