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이상(李箱)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보이지도않는꽃이.
<시문학TV 해설>
꽃으로 상징되는 생과 창조의 본능(에로스)과 묘혈로 상징되는 죽음과 파괴의 본능(타나토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포리아 즉 절벽을 표현
1. 에로스- 생의 본능(>성적 충동), 창조적
프로이트(Freud)의 퍼스낼리티 이론에서의 생의 본능을 말한다. 에로스는 생존으로 이끄는 모든 본능과 관련된다. 따라서 비록 에로스가 성적 충동에 중심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에로스는 반대적 의미를 갖는 파괴적인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와는 대조적으로 창조적인 것이다.
2. 타나토스- 죽음본능, 파괴적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죽음의 본능'을 가리키는 용어.
타나토스(Thanatos)는 그리스어로 '죽음'을 뜻하는 'θάνατος'에서 유래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죽음의 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이 단어는 심리학 용어로도 사용되는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그의 저서 《쾌락 원칙을 넘어서(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본 용어을 제시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내면에는 자기 보존의 본능과 성적 본능이 합쳐진 삶의 본능과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으로 구성된 죽음의 본능이 공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삶의 본능을 에로스(Eros),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Thanatos)라고 불렀다. 에로스는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본능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힘은 바로 에로스에서 나오는 것이다. 반면, 타나토스는 생명을 지닌 사람이 생명이 없는 무생물로 돌아가려는 본능으로 죽음을 지향하고 파괴하려는 충동을 보인다. 그래서 인간 자신을 사멸하고,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학대하며, 타인이나 환경을 파괴시키려 하고, 서로 싸우며 공격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본능은 한쪽이 우세한 경우 서로 충돌하지만, 때로는 서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대체되기도 한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인간의 몸에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공존한다고 설명하였다.
3.아포리아-어떠한 사물에 관하여 전혀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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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 백척간두, 낭패불감(狼狽不堪)
낭패-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임.
낭(狼)’과 ‘패(狽)’는 이리 낭, 이리 패.모두 전설상의 동물인데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아주 짧은 대신 성질이 포악하고 지략은 부족했죠. 반대로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짧은 대신 유순하면서도 지략이 뛰어났습니다. 따라서 낭과 패는 함께 다녀야만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었던 반면 낭과 패가 서로 제 고집을 부리면 어떤 일도 제대로 될 리 없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 낭과 패가 함께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는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문태준>
아마도 시인은 꽃이 핀 것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꽃잎이 둥글게 열리는 것과 꽃의 둘레를 달무리처럼 둥글게 감싸는 향기를 맡고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 둥근 공간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눕힌다. 죽은 사람의 몸이 놓이게 되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이 묘혈인데, 그처럼 오목하게 파인 곳에 자신의 몸을 눕힌다. 이 시는 시인의 다른 시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이지만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밝게 만개한 꽃과 비산하는 꽃 향기의 반대편에 차디찬 주검과 서늘한 묘혈을 배치하고 있다. 열린 공중과 유폐된 땅 속, 두 공간은 서로 차단되어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이 이격된 거리를 가파르고 낙차가 큰 절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에도 병이 든 육체를 바라보는 시인의 황폐한 자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은 실험적인 글쓰기를 보여준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기이한 발상과 국어 문법을 파기한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파격 그 자체이다. 절망적인 근대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자아의 분열과 의식과잉을 그는 익히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해서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오감도 烏瞰圖〉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쳐 연재 15회 만에 전격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독자들은 이상의 시에 대해 "개수작", "미친놈의 잠꼬대" 등의 화포와도 같은 말들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시인 이상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온도차가 뚜렷했다. 희대의 문제아였고, 모던 보이였고, 모더니스트였고, 천재작가였으며,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고은)이었고, "모국어의 훼손에나 기여한 시인"(유종호)이었으며, 그는 "잉크로 글을 쓰지 않고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썼다"(김기림).
그러나 이상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미술에 솜씨가 있어 하융(河戎)이라는 이름으로 박태원의 신문연재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그의 시는 숫자와 도형의 사용, 공간 분할 등을 보여주는 바, 이것은 그가 한때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일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