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1
얼굴 하나야
손가락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호수2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꾸 간지러워.
바다3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온다.
시인에게 시의 길고 짧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짧은 시를 좋아한다. 그나마 이해하기도 쉽고 암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드는 좋은 시를 되뇌이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정확한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때 나는 머릿속에 그려진 흐릿한 이미지만으로도 호흡이 차분해지고 기분 좋음을 느낀다. 나태주 시인의 '들꽃'이 그랬고, 김용택 시인의 '향기'가 그러했다.
- (들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향기) 길을 걷다가 문득 그대 향기 스칩니다. 뒤를 돌아다봅니다. 꽃도 그대도 없습니다. 혼자 웃습니다.
이번에 읽은 정지용 시인의 많은 좋은 시 중에 3편의 짧은 시가 마음에 들어왔다. '호수1·2'와 '바다3'이다. '호수1'에서 시인은 보고픈 마음을 호수에 비유했는데, 화자의 마음이 부풀어 올라 호수 전체가 그리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듯했다. ‘호수2’는 ‘호수1’과 전혀 다른 맥락의 시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누군가가 써 놓은 감상문을 읽다가 놀랐다. 그가 해석하는 '호수1·2의 연결은 이렇다. "시인님은 '호수1'을 그리움의 심연으로 만들어 놓고 나서, '호수2'에 풍덩 뛰어들어 자맥질하는 한 마리의 오리가 되고 말았군요! 그리움의 깊고 짙은 심연 속을 하염없이 헤어 가는 가여운 생명이 되고 말았군요."라고 말이다. ‘그리움에 자맥질하는 오리’라니, '역시 시는 어렵군'이라고 말이 절로 나온다. '바다3'는 '바다 우로 밤이 걸어 온다'는 시구가 인상적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이보다 명료하게 이미지화 시킬 수 있을까 싶다. 마치 밤이 생명체처럼 뚜벅뚜벅 바다 위를 걸어오는 듯 느껴져서 이다.
시인의 상상력과 그것을 표현한 시들이 나의 마음이 미소 짓게 한다. 그래서인지 한때 좋아했던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시처럼 살고 싶다. 어느 날 찾아온 생각이 나를 살아 있음으로 떨리게 할 때, 나는 그 생각을 따라 바람처럼 일어서 따라나설 것이다. 쏟아지는 햇빛처럼 혹은 퍼붓는 비처럼 혹은 푸른 들판의 미풍처럼 내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어째서 삶을 시처럼 살 수 없단 말인가?"라는. 오랜만에 그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너도 시처럼 살라'는 그의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