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웨스틴조선호텔’ 자리는 대한제국시대의 환구단이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조선호텔이 있기 전에는 일제에 의해 세워진 ‘조선경성철도호텔’이 있었고요. 일제는 1914년 환구단을 없애고 그 자리에 지하1층 지상3층의 서구식 신식호텔을 지었습니다.
환구단이 있던 곳은 조선 초부터 명당자리로 이름났던 곳입니다,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가 결혼한 뒤 살던 저택으로 ‘소공주댁’으로 불렸는데, 지금의 소공동 이름은 이 ‘소공주댁’에서 유래하였다고 하지요. 조선후기에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이 있었고, 고종이 1897년 10월12일 새벽에 황제로 즉위하면서 대한제국의 예법에 맞추어 제사시설을 조성하였던 곳입니다.
환구단은 3층의 화강암 원형 제단 위에 황색으로 칠한 원추형 지붕의 제사시설이며, 부속 건물로는 황궁우(皇穹宇)와 석고각(石鼓閣), 그리고 어재실, 향대청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황궁우는 하늘신의 위패를 보관하는 팔각형 3층 건물이며, 석고각은 돌로 만든 북을 보관하던 곳이지요.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애석하게도 황궁우와 돌북, 환구단 정문뿐입니다.
일제가 작심하고 없앤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상징적 시설이었지요. 예로부터 천자라고 주장해 온 중국이나 천황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과 대등한 자격으로 서기 위해, 황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한편, 서구 열강에 대한 독립적인 국가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치적·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황궁인 경운궁(덕수궁)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맞은편 조선호텔의 환구단 터에 유적으로 남아있는 황궁우와 석고도 함께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1. 환구단은 황단(皇壇) 또는 원구단(圓丘壇), 원단(圓壇)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환(圜)이라는 글자를 한자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를 환, 에울 환 이외에 둥글 원으로도 나옵니다. 즉 원구단이 더 정확한 명칭이고 한동안 원구단이라 하였지만, 현재 유적 안내판에 환구단으로 표기되어 있기에 통일하여 환구단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2. 황제가 되면 천세에서 만세로, 전하에서 폐하로, 교서가 칙서가 되고, 과인이 짐으로 바뀌 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