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4.10.13 주일 낮 예배
말씀: 시 51:10/ , 하나님이여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2)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제목: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라
- 들어가는 말씀 -안해, 안에
" 아내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아내는 혼인관계에서의 여성을 일컫는다. 처 또는 부인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아내 또는 부인은 결혼한 남성 배우자가 상대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남의 아내를 말할때는 부인으로 부르고 남에게 자신의 아내를 말할 때는 처, 마누라, 집사람, 여편네, 지어미로 부른다. 대한민국의 경우 2010년대에 들어서는 '와이프'란 영어로 부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아내’의 옛 형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번역소학》의 ‘안해’이다. 문화어로는 지금도 ‘안해’로 표기한다. ‘안’은 안쪽을 뜻하며 ‘밖’의 반댓말이다. ‘ㅐ’는 처격 조사 ‘-ㅐ’로 보는 설과 사람이나 물건에 붙이는 접미사라는 설이 있다. 아내는 안에 있는 해라는 뜻이랍니다. 아내는 안에서 해처럼 빛이 나야 합니다. 아내는 안에서 해가 되지 못하면 밖에서도 안 됩니다. 아내가 안에서 해가 되지 못하면 집 안은 어두워지게 됩니다. 우리 집 안에 빛이 되는 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1. 그리스도를 내 안에 두라
오늘 본문 말씀에는 '내 안에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해, 아내 등에 대한 말을 맨 처음 서두로 꺼낸 것은 안에 있는 것을 우리 말에서는 이토록 귀중한 의미로 쓰인다는 이야기 입니다.
한자로 안 安자는 ' 宀(집 면) + 女(여자 녀(여))' 라는 합성어로 되어 있습니다. 즉, 집안에 여자가 있으면 편안할 안이 됩니다. 역으로 말하면 집에 있는 여자는 또한 온 집안의 편안함을 제공해야 하는 사명도 있습니다.
옛말에 하루 망치는 것은 아침에 술이 덜 깨는 것이요, 일 년을 망치는 것은 신발이요, 평생을 망치는(조지는) 것은 아내라는 것입니다. 집안에 여자가 잘 못들어오면 3대가 망할 뿐만 아니라 그 집안이 멸족하는 수도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우리 만나성도님 중에 아내되시는 분은 모두 편안 할 안자의 주인공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은 토마스 아 캠피스가 쓴 책으로서, 신앙생활을 위한 영성 서적입니다. 혹자는 이 책을 성경과 비교할 수 있는 고전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이란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인간의 지성과 인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리스도의 삶과 주님의 행동을 본받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근본적인 목적으로 쓴 서적입니다.
엊그제 한강 소설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강은 그의 책에서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서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입니다. 작가 한강은 수상 소감에서 "존엄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든 장소, 모든 시대가 광주가 될 수 있다"며, "이 책은 나를 위해 쓴 게 아니며 단지 내 감각과 존재와 육신을 죽임을 당한 사람, 살아 남은 사람, 그들의 가족에게 빌려주고자 했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도바울이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이 서신서를 쓴 것은 아닙니다. 사도 스스로 자기를 변명하고자 쓴 서신서의 내용입니다.갈라디아서 1장1절에서 사도는 자기의 출신을 밑도 끝도 없이 갈겨 날립니다.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사도는 이 서신서를 쓰시면서 사실은 유대율법주의자를 향하여 자신의 본질과 주님의 본질을 스스로에게 문답식을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 뜻데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을 주님과 대등한 선상에 놓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도가 주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리고 주 안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할렐루야
말미암다 라는 동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현상이 다른 일이나 현상이나 대상으로" 인하여 일어나거나 비롯되는 상태가 되다. 앞에 서술한 체언이나 구가 원인이나 계기나 근거가 됨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 바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셨고 이어서 주님을 통하여서 많이 양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 믿는 믿음을 두라
“나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라는 “길”을 통해 그분께 다가갈 때 우리를 받아들여 주십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요16:23-24) 또한 예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우리의 원죄를 구속하여 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를 아니 그 피를 이어받은 우리를 십자의 보혈로 구속하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 진리입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진리를 말씀하셨으며 진리와 일치하게 사셨습니다.(벧전2:22).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는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요8:31-32). 바로 믿음은 들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사야 53:1, 로마서 10:16~17
듣기는 귀는 더디 하고 말은 빨리 하는 오늘의 세태는 불신 풍조로 치솟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질서는 혼미해 가고 있음을 개탄한다 창세기에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말은 모든 창조의 근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만나인은 말을 정확히 전하는 주님의 종들인 줄 믿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궁극적으로 말씀으로부터 생산되어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덮어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에 대한 성서의 교훈인 것이다.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부탁의 말씀을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의 말씀 듣기를 거부한 자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다 하겠다. 2세기의 순교자 저스틴 마티((Justine Martyr)는 증언하기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혹은 도시인이든지 농민이든지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든지 걸어다니는 사람이든지 그들 가운데는 언제든지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5만번 응답 받는 "뮬러"의 기도 비밀을 보면 믿음을 성장시켜 주는 지침들 중에 응답 받는 기도의 비밀이 있다.
첫째가 말씀을 주의 깊게 읽고 깊이 묵상해 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비로소 주님의 성품과 그 인격을 파악하며 닮아 가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 외에 친절하심, 사랑, 은혜, 자비, 전능하신 힘, 지혜, 믿음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된다. 가난 고난 사랑하는 이의 죽음, 봉사의 어려움, 재정의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능력을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지혜가 무궁하시고 그 자녀들을 기꺼이 도와 주신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믿음을 강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을 묵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강화해 주는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뮬러"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곧 하나님을 향하는 자세임을 말한다.
"들음으로 믿음을 얻는다"는 비결은 먼저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지혜를 갖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외롭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말은 항상 믿어도 되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의지하고 기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며, 신뢰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들은 든든한 사람이라고 한다. 든든한 사람은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다. 가벼운 사람은 어디를 가나 따돌림을 당하고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그러므로 말로 기교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철철 흐르는 물처럼 말만 번지르르 할수록 소문만 난 잔치 집처럼 된다. 입이 무겁다 함은 삼갈 줄 안다는 것이며 삼가 할 줄 아는 자라면 말이 행동을 부른다는 속뜻을 안다. 그러므로 생각 없이 말하고 생각 없이 행동한다면 비탈에서 굴러 내리는 돌덩이와 다를 것이 없다. 굴러 떨어지는 돌덩이는 짓눌러 버리고 굴러간다. 함부로 하는 말이나 무모한 행동은 굴러 내리는 돌덩이와 같다. 굴러 갈 때라면 굴러가고 멈출 때라면 멈출 줄 안다는 것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된다. 중심을 잡은 마음은 허튼 짓을 범하지 않는다. 이 마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중심으로 마음은 행동에 이른다.
우리 만나인의 입은 오직 주님을 구주로 인정할 때, 아멘이라고 말하면 이 말은 오직 믿는 믿음으로서만이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만 사용하는 말하는 입을 크게 할 줄 믿습니다.
3. 믿음으로 인한 의- 하나님의 의와 유대인들의 자기 의 (롬 10:5-15)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의와 유대인들의 자기 의를 대비시켜 언급한 바 있습니다(롬10:3). 유대인들의 자기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율법을 잘 지켜 행함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인한 의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다시 살려 일으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사람의 대속의 구원자로 믿고 그를 주로 받아들임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의를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다시 언급합니다.
먼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5절에서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합니다. 여기서 모세가 기록했다는 것은 레18:5의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신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살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함으로 살려면 그 중 어느 하나도 어김이 없이 완벽하게 다 지켜 행해야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다 죄인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규례와 법도를 완벽하게 지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의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행위에 따른 의가 아니고 믿음으로 인한 의를 세우신 것입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본문 6절 이하에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에 비해 믿음으로 인한 의가 얼마나 쉬운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6-7절을 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완벽하게 행하기 위해서는 그의 뜻을 온전히 알아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에도 올라가 봐야 하며 무저갱에도 내려가 봐야 할 터이니 마음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며 누가 무저갱에 내려갈 것인가 하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승리하시는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