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4월 25일(목) 잠언 22:1-16 찬송 295장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16.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개역 개정)
-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삶을 대조 제시하는
총 375개의 금언들의 종결 -
이 부분은 제 1-9장에 나오는 솔로몬 잠언의 첫 번째 모음집인
젊은이를 위한 잠언에 이어 375개의 여러 주제의 짧은 경구로 이루어진
솔로몬 잠언의 두 번째 모음집인 10:1-22:16의 종결 부분이다.
솔로몬 잠언의 두 번째 모음집은 의인과 악인의 생활 태도가 대칭적 구조로
비교 서술되어 지혜로운 자로 하여금 악한 행위를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오늘 말씀도 크게는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비교로 일관되나
작게는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여러 삶의 모습과 관련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므로
장 전체를 단락별로 묶어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 부분은 저자, 문장 형식, 사상 등
그 어떤 측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6절)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비록 짧은 문장의 말씀이지만 이 짧은 말씀 속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교육의 중요한 요소들이 모두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원문을 따라 6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선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아이’는 ‘젖먹이’를 가리킨다.
이는 교육을 시작해야 할 때를 시사하는 것으로서
젖 먹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말한다.
이처럼 교육이 일찍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구부러진 나무는 평생 구부러지게 된다’는 말처럼
인격 또한 어릴 적부터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평생 왜곡된 상태로 고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대적 사단은 어린아이라고 해서 결코 가만 두는 법이 없다.
때문에 바른 교육은 어릴 적부터 시작해야 한다.
두번째로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고 하였는데
이는 자녀 교육의 내용을 가리킨다.
즉 자녀 교육은 일찍 시작하는 것만큼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점도 중요한데
이에 대하여 본문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요컨대 자녀에게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어떻게 행해야 할 바를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바른 인격과 신앙을 지닌 인간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인간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며(전12:13)
또한 이러할 때만이 참된 지혜를 얻어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잠1:7; 수1:7-8)
마지막으로 본문은 어떠한 자세와 방법으로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을
교훈하고 있는데 ‘가르치라’는 말이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말은 ‘바치다’라는 뜻과 함께 셈어계인 아랍어로는
‘(젖먹이에게 대추야자 시럽을)떠 먹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렇게 볼 때 ‘가르치라’는 말은 젖먹이에게 말씀을 떠 먹이듯
정성으로 가르치되 그 목적이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임을 교훈해 준다.
이는 우리에게 기도로 사무엘을 얻어 일찍부터 하나님께 바쳐
말씀으로 양육토록 했던 한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삼상1:11-28)
이에 비추어 세상 사람들의 교육을 보면 영재교육이니 하며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은 비슷하되
그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는 젼혀 다름을 알 수 있다.
곧 세상 사람들은 일찍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되 마땅히 행할 바,
곧 인격과 도덕 교육보다는 지식을 먼저 주입하기에 바쁘며
그 목적 또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오직 남보다 먼저 위에 오르기 위한 기술만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어떤 행동도 제지하지 않으며 훈계와 징계를 아낌으로써
아이를 점차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례하며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마치 엘리 제사장이 자녀들의 비행을 금하지 않음으로써
문제아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삼상2:12-17, 22-34)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교육할 때 세상의 방법을 본받지 말고
말씀처럼 먼저 하나님께 바치는 자세로 정성껏,
마땅히 행할 바를 어릴 적부터 가르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사무엘처럼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좇고 의를 행하는 자로 양육함으로써
자녀들로 형통한 삶을 살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도록 해야한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