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56) 동탁의 멸망 <하편>
이튼날 동탁은 일찍 일어나, 목욕재개 하고 황궁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이날의 행차는 어제보다도 더욱 호화로웠다.
호위군사와 악대를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황궁을 향해 들어가다 보니, 검은 두건(頭巾)에 푸른 도포를 입은 도사풍(道士風)의 노인이 하얀 깃발을 들고 길가에 서 있었다.
그 깃대 중간에는 베(麻:마) 헝겊이 동여매 있고, 하얀 깃발에는 <입 구(口)>자가 두 자 씌어져 있었다.
입 구 자가 두 개 쓰인 것은 <여포>의 여(呂) 자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깃대에 베 헝겊이 매여져 있는 것은 <여포>의 포(布) 자를 나타낸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여포를 경계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 턱이 없는 동탁은 배행하는 이숙을 보고,
"저 늙은이는 뭔가?"
하고 물었다.
"아마 미친 점장인가 봅니다."
이숙은 아무렇게나 둘러대고 말했다.
이윽고 동탁 일행은 북액문(北掖門)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누구를 막론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갈 수 없는 금문(禁門)이었다.
동탁이 수레에서 내려 문 앞으로 다가서니, 수많은 만조 백관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너도나도 동탁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경하드리옵니다." ... "축하드리옵니다."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동탁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북액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하여 황제가 계시는 집정전(執政殿) 계단 위를 올려다 보니, 사도 왕윤이 황궁앞 계단 제일 높은 곳에서 황제의 칙서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동탁이 경건한 자세로 다가서 가니, 왕윤이 조서를 읽어 내린다.
"황명이오! 역적 동탁은 조정을 모독하고 천하를 어지럽혔으니, 모든 충신들에게 명 하노니, 역적 동탁을 없애라!"
그러면서 왕윤은 칙서를 동탁에게 내던지며 외쳤다.
"죽여라!"
그 순간 왕윤의 뒤에서 검을 든 수많은 무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이에 벼락같이 놀란 동탁이 황급히 문 앞으로 돌아서며 소리쳤다.
"여포! 여포는 어디 있느냐!"
그러자 여포는 적토마를 타고 나타나며,
"황명을 받들어 동탁을 죽여라!"
하고 소리치며 방천화극(方天畵戟)을 들어, 한칼에 동탁의 배를 냅다 찔러버렸다.
이에, 동탁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으니, 이때 동탁의 나이는 54세, 초평 4월 22일 대낮,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자 왕윤은 그 자리에 풀썩 꿇어앉으며 ,하늘을 우러러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시어, 드디어 역적 동탁을 죽여 없애고, 대 한(漢)왕조를 구했습니다! "
동탁이 나가자빠진 것을 본, 만조 백관들이 쌍수를 들어 만세를 외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이어서 여포가 소리쳤다.
"황명을 받들어 역신 동탁을 죽였다! 그를 따르던 나머지 무리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그러면 일체의 죄를 묻지 않겠다!"
그러자 북액문 밖에 동탁을 호위해 온 수많은 병사들은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꿇어앉았다.
"동탁을 도와 천하를 어지럽힌 놈이 이유다. 누가 그 놈을 잡아오겠냐?"
이번에는 왕윤이 외치자, 이숙이 군사를 몰고 승상부로 달려갔다.
일행이 승상부로 달려 들어가는데, 많은 무사들의 손에 끌려 나오는 처량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이유였다.
이유는 평소에 부하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던 터라, 동탁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부하 병사들이 이유를 사로잡아 끌어낸 것이었다.
왕윤은 이숙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이유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런 연후에,
"역적 동탁과 이유의 머리는 잘라, 창 끝에 꿰어가지고 장안성 마루에 높이 매달라! 그리고 미오성에는 아직도 동탁의 일족과 그의 군사들이 많이 있다. 누가 그들을 쳐부수고 재물을 몰수해 오겠나?"
하고 묻자 여포가 큰소리로 나선다.
"내친 김에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왕윤은 여포에게 이숙과 황보숭(皇甫崇) 장군을 딸려 주면서 군사 삼만을 데리고 미오성으로 떠나게 하였다. 그리고는 만조 백관들과 함께 어린 황제를 배알하였다.
"신들이 폐하를 뵈옵니다. 황제 폐하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만조 백관들은 어린 황제 유협의 앞에 무릅을 꿇고, 만세 삼창을 외쳤다.
이윽고 왕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 왕윤이 아뢰옵니다. 역적 동탁을 조금전 북액문에서 처형 했습니다. 대 한 왕조의 혼란이 평정된 것은 천하 백성들의 기쁨입니다. 황제 폐하의 홍복이옵니다."
그러자 헌제는,
"명을 받들라!"
하고 기쁜 어조로 말하였고, 집정관이 조서를 읽어 내린다.
"상제의 명으로 왕윤은 조정의 태사로 봉해, 상국이 행하던 국사를 관장하고 여포는 충훈후(忠勳侯)에 봉하고 군위장군(軍尉將軍)직을 수여한다. 이상!"
왕윤이 엎드려 절하며 아뢴다.
"명에 따르겠사옵니다."
그러자 만조 백관들은 일제히 복창(復唱)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