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우련전 교우촌 (순례지/성지)
간략설명: 김종한 안드레아가 살던 교우촌
도로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일월산길 14-97 부근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우련전은 덕산 부곡(德山 部谷)의 땅이었는데,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경화옹주(敬和翁主)의 시가가 있는 곳이라 해서 재산현(才山縣)으로 승격시켜 복주목 안동의 속현으로 두었다.
그 후 광무 10년(1906년)에 봉화군 재산면에 편입되었다. 이곳 우련전은 영양군과 봉화군 경계의 일월산(1219m) 산중에 있는 심산유곡의 마을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부근에 많은 사람들이 묘를 썼다고 하며, 현재는 폐교된 갈산 초등학교 분교 건물이 있다. 한편 이곳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귀양지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곳에 신유박해(1801년) 전인 1798년경 충청도 면천고을 솔뫼에 살던 김종한 안드레아(金宗漢, ?-1816년)가 우련전으로 이주해오고, 부근의 건사골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윤집 가정이 피난 오는 등 몇몇 신자 가정들이 피난 와서 살기 시작하였다. 1815년 을해박해가 일어난 뒤 김종한은 영양에서 안동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안동으로 끌려가 영장 앞에 섰다. 영장은 우선 그에게 배교한다는 말을 유도해 내려고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으므로 옥에 가두게 하였다가 이틀이 지난 후에 감사의 명령으로 다리에 매질을 한 후 대구로 이송하였다. 그는 대구 옥에서 모범된 신앙생활을 하며 항상 다른 신자들의 지도자로서 옥에 갇힌 이들의 신앙생활을 돌보았다. 다른 교우들과 함께 1년 6개월 정도 옥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 마침내 임금의 사형 윤허가 떨어져 1816년 12월 19일(음력 11월 1일) 대구 관덕정에서 7명이 함께 칼을 받고 순교하였다. 김종한 안드레아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그와 함께 우련전에서 붙잡힌 건사골의 예비신자 이윤집도 배교하지 않고 꿋꿋하게 신앙을 증거하다가 굶주림과 심신의 쇠약으로 인해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신자들이 잡혀간 후 이곳 우련전의 교우촌은 없어지게 되었다. 남은 가족들이나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아마 김종한의 가족들은 칠곡의 신나무골에서 얼마간 살다가 고향인 충청도로 간 듯하다.
그 후 이곳에는 외교인들이 들어와 살았으며, 한때는 동학교도들이 성행하였다. 또한 구한말에는 주민들이 의병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특히 강릉 김씨 김진휘의 부친 김태경 등 3형제가 맹렬히 의병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부친이 아들 대신 왜경에게 붙들려가서 처형을 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현재는 옛날 증조부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김진휘 등 몇 가정이 당귀, 고추 등을 재배하며 살아가고 있다.
[출처 : 안동교구 홈페이지, 내용 일부 수정(최종수정 2016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