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눈치
염상구는 자애병원에 자주 들르는 이지숙 선생을 의심하고,
병원의 간호사를 협박하여 안창민이 병원에 머무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지숙도 자신을 미행하는 것을 알고 미리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염상구 일행이 병원에 닥쳤을 때는
이미 안창민과 염상진은 그곳을 떠난 뒤였다.
결국 전명환 원장, 간호사, 이지숙은 재판소에 넘겨졌다.
이지숙 또한 공산당원이었지만,
경찰은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이지숙은 안창민의 애인으로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하였다.
후에 군민들의 진정서를 통해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다.
이지숙은 풀려난 뒤 선생님 자리에서 짤리고,
서민영 선생이 운영하는 야학에서 일하게 된다.
1. 심재모와 서민영
좌익의 활동이 빈번해지자,
벌교에 계엄부대가 들어왔다.
그 계엄대를 이끄는 계엄사령관은 심재모 중위라는 젊은 군인이었다.
심재모.
그는 일제시대 학도병 출신으로 원리원칙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는 일제시대부터 친일세력을 증오하였다.
해방 후 그들이 척결되지 않고, 다시 권력을 잡자
그것 또한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그런 그가 계엄사령관으로 벌교에 왔으니,
그의 눈에 토벌대의 횡포와 권력에 빌붙은 지주들을 싫어하였다.
그리고 그는 계엄령 아래 통제되었던 것 중에
야간통행금지를 제외하고 모두 해제하였다.
그리고 그는 김범우의 소개로 서민영 선생을 만나 농촌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민영은 심재모에게
동학운동에서 시작하여, 일제시대 악덕 지주가 생겨나게 된 원인,
그로 인해 일제시대 후반부에 생긴 소작쟁의,
그리고 해방이후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의 토지개혁 실패로,
일제시대보다 더 지독한 지주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재상황까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시 농촌 문제는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민영 선생의 입을 통해 작가 지은이는
당시 나라를 이끌어가는 이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
"내가 처음에 농민의 문제가 곧 나라의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
이 나라는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있네.
식민지시대 지주들과 결탁해서 권력을 잡은 정부이기 때문이야.
지주치고 친일파고 민족반역자가 아닌 자는 일 퍼센트도 안될 걸세.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그들은 일제치하에서 누린 부귀와 지은 죄로 해방과 동시에
마땅히 모든 기득권을 박탈당했어야 했고, 민족앞에 사죄했어야 했네.
그리고 모든 소작인들은 일제치하에서 겪은 굶주림과
당한 고통의 대가로 마땅히 지주들의 소유를 분배받았어야 하네.
그런데, 미국의 세력이 작용하고,
이승만은 집권야욕으로 민족을 배반하고, 지주계급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뭉쳐지고,
서로를 위해 상호작용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네.
내가 크게 우려하는 바는 지주계급들로 이루어진 현정권이
농민이나 반대세력권을 일본놈들 식으로 무작정 공산주의로 몰아가는 것이야.
그 방법은 모든 계층, 모든 분야의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들한테까지
퍼져나가 공산주의를 자기네들의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공격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이거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주객전도야.
참으로 큰일날 일이지.
일본놈들한테 배워도 못된 것만 배웠지.
일본놈들은 하나님 믿는 나 같은 사람도 공산주의자로 몰아댄 형편이었으니까,
농민운동에 가담한 농민들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이 없었지.
물론, 앞에서 살폈듯이 농민단체 중에는 공산세력이 이끌었던 게 있었어.
그러나 거기에 연관된 농민 전부를 공산주의자로 모는 건 위험천만한 경솔이고 악의야.
설령 그들이 공산주의적 구호를 외쳤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소작쟁의의 수단일 뿐이었어.
그들이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신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정치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야.
다만 감상적이거나 소영웅적인 지식인이나 지하 공산조직이 그들을 이용했을 뿐이야.
지금도 형편은 마찬가지지.
당장 농지개혁을 단행해 논밭을 무상으로 분배해봐.
벌교지역을 예로 들더라도, 이번에 입산한 농민들의 구십 퍼센트는 아마 하산하게 될 거야.
자기네들의 절대 목적이 성취됐는데 공산주의를 추종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말야.
현정부는 그 간단명료한 원인해결은 하려 하지 않고 공산주의만 척결하려 하고 있어.
말이 해방일 뿐이지 정치하는 방식이나,
지주들이 그대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나,
변하지 않은 소작조건이나, 그대로 일정시대의 연장인 게야. 그러니 소작쟁의가 계속될 수밖에.
친일파 지주계급들, 참 짐승만도 못한 족속들이야.
일제 때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군정과 야합해서 더 부자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야.
적산을 차지한 게 다 그들 아닌가.
그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반대세력은 계속 공산주의자들로 몰아 붙이겠지.
이미 정치적으로 국토와 민족이 분단됐는데,
그것도 모자라 반쪽에서지만 민족 분열까지 조장하고 있는 게야.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점점 더 문젯거리가 생길 거야. 이 나라 장래가 큰 걱정이네."
...
이 뿐만 아니라 백범 김구 선생같은 독립운동가들이나,
이승만 같은 기회주의자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을
소설속의 서민영 선생을 입을 통해 전해 주고 있다.
2. 좌익의 움직임
아들 정하섭의 좌익활동으로 난처한 입장에 있는 술도가집 사장 정현동은
몰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벌교를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소식이 그의 땅에서 소작을 하고 있던 소작농들의 귀에 들어갔다.
소작농들이 정현동에 와서 기물을 파괴하고,
정현동의 처남을 부상입히는 소동을 부리다가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정현동을 비롯한 지주들은 그들이 당연히 징역살이를 할 줄 알았지만
계엄사령관 심재모에 의해 협의로 일단락 짓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지주들과 심재모 사이는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염상구의 감시망에 정하섭이 소화의 집에서 나오는 것이 걸려들었다.
정하섭은 잡지 못했지만,
정하섭과 선을 대고 있던 소화,
소화 집에서 같이 기거하고 있던 하대치의 아내 들몰댁,
그리고 정하섭의 부모, 정현동과 그의 아내가
경찰에 입건되었다.
소화는 모진 고문으로 정하섭의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
그리고 염상진의 수하 중 한명인 배성오는
집 창고에 숨어 있다가
이를 눈치챈 배성오의 형이 신고하여 난투중에 죽고,
배성오의 어머니는 자살을 한다.
공산주의자를 가족으로 둔 불행은 비단 배성오의 어머니만이 아니다.
염상진, 하대치, 안창민 등의 가족들은 경찰서를 들락거리면서
몸도 마음도 폐인이 되어 버렸다.
무엇을 위한 사상인가?
당시 백성들에게 눈을 돌린 나라를 상대로 하여
공산주의가 그들에게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투신하였지만,
그에 비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안타깝다.
책제목 : 태백산맥 3
지은이 : 조정래
펴낸곳 : 해냄
펴낸날 : 1995년 1월 15일 (2판본)
정가 : 6,800
독서기간: 2007.12.05 - 2007.12.08
페이지: 365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