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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논산을 떠나 이리로 향했다. |
연무로 가는 길은 비포장이라 해서 이리로 돌아 전주로 들어가기로 했다. |
강경을 거쳐 함열을 거쳐 이리에 도착하니 어귀에 원광대학이 있고 생각보다 매우 도시다운 |
면이 있었다. |
이리 역앞에 화장실에 들리러 가다가 우연히 서울서 출발하여 제주도까지 갔다가 사정상 |
기차로 올라간다고 한탄하는 대학생 같은 동료를 만났다. |
자전거 여행이 그렇게 재미 있었다며 일일이 내 전도를 설명 해준다. |
아마 일행이 여럿이었나 보다. |
이리를 출발해 전주행, 도로가 널찍하고 고갯길도 없고 여태껏 지나온 어떤길보다 좋았다. |
전주에서 비빔밥을 사먹고 또 남원을 향해 출발 53km의 여정을 시작했다. |
엉덩이가 아프고(땀띠인 모양) 왼발 뒷금치에 상처 때문에 발에 힘을 주지 못해 |
여전히 자전거는 거북이 걸음이었다. |
억지로 억지로 남원을 6km 남기고 무리하게 고갯길을 올라온게 뒷바퀴에 빵쿠가 났다. |
할 수 없이 고개 휴게소 옆에 텐트를 치고 1박을 하기로 했다. |
처음으로 빵구를 수리하려 했으나 잘 안되는 것 같다. |
내일 바람을 넣기로 하고 텐트안에 들어오니 이건 아슬아슬! 촛불이 넘어지면 이 나이롱 텐트안이 다 |
탈텐데 빨리 이 글을 쓰고 촛불을 꺼야지 하는 생각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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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꼭 있다고 하더라 |
힘들게 정상을 올라 내려 갈 때 난 무지무지한 희열을 느낀다. |
마침내는 자기 최면에 빠져 사고라도 낼성 싶다. |
인심이 좋고 자연이 맑고 내가 건강하니 이 자전거질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
놀라운 변화, 강한 남자, 우물밖 개구리 그리고 탄력있는 엉덩이 |
이것이 이 여행의 끝이 되겠다. |
1982년 8월 15일(일)
첫 텐트안의 잠이라 잠이 잘안와 어젯밤은 거의 뜬눈으로 설쳤다. |
모기향을 바로 머리맡 앞에 키워 놓고 잔 탓인지 잠이 부족 한 탓인지 아침부터 머리가 |
띵한게 컨디션이 영 안좋았다. |
5시 반부터 자전거 수리를 했으나 잘 안돼 1시간여 애를 먹다 근근이 떼워 놓고 |
남원 고갯길을 내려 오는데 또 한번 터져 또 떼웠다. |
남원에 도착하니 다른 여늬 도시와는 옛집터 좀 보이고 향단이 춘향이 글이 많이 보이는게 |
관광도시라는 이미지를 선뜻 느끼게 했다. |
마침 광복절이라 향락인파가 많이 보였다. |
남원을 출발 광주로 향한다는게 이건 내 실수, 곡성으로 접어 들어 그 땡볕에 눈물고개를 넘고 |
그로부터 근 50여 km의 비포장 자갈세례를 받았다. |
원래 순창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국도가 포장이 잘 되있는게 지도에도 나와 있으련만.... |
양쪽 발목과 엉덩이가 불이 나게 아프다(have been) |
도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낚시차 전국을 도는 사람을 보았다. |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음엔 그걸로 하자! |
자갈밭을 잘 견뎌 준 내 엉덩이도 빵구 과반사로 나던 내 자전거가 이상스럽게 고분고분 하다. |
남원을 출발 곡성으로, 곡성에서 옥과리를 거쳐 대덕 광주로 들어 왔다. |
광주는 생각보다 화려 하진 못하고 옛날에 만들어 놓은 도시 같았다. |
운전수들의 보행규칙이 불량하고 운전이 사납고 공중전화 박스 하나 좋아 보였다. |
그러나 사람들이 역시 서울 빼 놓고선 다들 좋은 것 같다. |
남원서 광주 사이 경면리 라는 곳에선 경면체육대회라고 해서 각 국민학교 마다 들썩들썩 땡볕에 |
축구시합을 다하고 난리다. |
오는길에 수박이 먹고 싶어 1,000원에 하나 사 혼자 다 먹으니 그후론 물도 밥도 먹기가 싫다. |
이렇게 돈 쓰다간 하루 평균 10,000원씩 쓰겠다. |
피곤한 척 핑계로 일찍 여인숙에 들려 여장을 푼다. |
첫댓글 1982년 여름이라고라~ 으메 벌써 24년이란 세월이 흘러부렀네요. 지금은 쪼까 바뻐서 대충읽었는디, 본께 일기를 써놓은것 베켜놓은것 같은디....나중에...
긍게 상기가 2/14 이여야! 옛날 일기장 보니 나와있3!
~탄력있는 엉덩이 ㅎㅎ 지금의 몸매 이때 만들어진 몸매이신가요? 암튼 존경스럽습니다. 82년 8월이면 저는 대입학력고사 준비한다고 무더위속에 학교에서 보충수업중이었을때인데... 좋은아침님이 한 10년만 젊으셨으면 같이 한번더 일주하자고 조를텐데 아무래도 지금은 무리죠? 아 진짜로 할일(하고픈 일)은 많고 몸은 게으르고 시간은 없고 ㅠㅠ
14일간의 전국일주 시작이 논산이였나요? 의문점이 왜 전라민국에서 놀았는걸 올려주셨남요, 그것이 궁금하옵니다. 글고 광주가 얼마나 좋은도시인데, 공중전화박스만 눈에 들어오던가요? 저는 전국일주라기는 너무 거창하고, 자전거하이킹 이라고나 할까요...무안-목포-강진-해남...그렇게 쭉 돌아다녔습니다.
우리집 서울 서교동에서 시작해서 전국을 U턴으로 돌았죠. 남원은 특별히 수제비님이 곡성에 아이스케키 촬영지를 올려 주셔서 기억을 되돌아 봤습니다. 광주에서는 길에서 마음 좋은 아저씨를 만나 여행의 많은 도움을 받았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1982년. 광주는 견디기 힘든 때였답니다. 시민들의 의지와는 딴판으로 흐르고 있었으니깐요.
광주사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입니다. 당시 저도 외국에서 외국언론이 전하는 무지한 시민들이 희생 당한 모습을 잘 봤지요. 그래서 더 그 흔적을 보려고 굳이 광주를 들렸는데 많이 머무르진 못하고 바로 지나쳤어요
그땐 총각이었습니까? 아님은 장가를 가셨나요. 그리고 그땐 예배당에 다니시지는 않았나요. 8월15일 일요일 교회 안가시고 자전거 타고 놀고만 계시니까요. 그땐 전 종로3가에서 알바해서 둥록금 대기 바빴습니다.그렇게 그렇게 졸럽은 했지유
그땐 28살이니 당연 총각이었지요. 그땐 예배당에 잘 안다닌 기억입니다. 광주사태 때는 국내에 없었는데 82년 광주사태 직후라 그런지 광주가 좀 분위기가 딱딱해 보였어요. 광주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연락 해 보니 배타고 나갔다카고...
그럼 그때 배타고 있었나유. 엔제부터 신자인가요 그리고 먼 동기가 있었나유, 아니면 단순히 장가 가실려고 하셨나요....
물탈퇴님! 많으걸 알려고 하면 거석 하잔여? 잘 아심시롱...교회는 중학교 때부터 나갔어요.
이왕이면 홀딱벗고 압시다. 알켜줘...
홀딱 벗으면 팬다 되불제 물탈퇴님!
홀딱 벗어도 하얀팬티 입었잖여...
홀랑 벗어도 뺑둘러 허연건 아니잔여
지송해유, 홀딱입고 알켜줘유.. 혹시 그때 수영복 차림으로 자전거 일주 하신것 아니시죠?
그때도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보름을 돌았더니 1년 내도록 꺼멓게 살았어요.
좋은아침님. 일기 쓰는 습관 존경스럽고요. 24년전 일기 잘 보관하고 있는 것도 凡常의 사람들에겐 흔한 일이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늘 일기 쓴건 아니고요 그당시는 특이한 경험이라서 기록을 남겼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