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무척이나 포근하고 해맑은 태양 빛을 빨아들이는 산천과 초목의 생기 담뿍 넘치는 아침이었다. 막내와 이틀 전에 말씨름 후로 아비도 아주 후회스러웠고, 엊저녁 퇴근하는 막내를 보는 아비의 마음이 너무 면구스럽고 안쓰러웠지만 토끼 꼬리만 한 자존심이 풀리지 않아 미안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저녁을 지내고, 아침에 큰딸의 메일을 접하고 많은 생각을 했단다.
부모의 도리를 지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나를 깊이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우울해지고 내리쏟는 따가운 태양도 나를 비웃는 듯 외면하고 있더구나!
지난 추억 되돌려봐도 너희들은 우리의 기쁨과 행복 주머니였고 잘못하고 있다고는 추호도 생각해본 적 없었고 앞으로도 우리가 사는 동안 너희들의 가득한 사랑 받고 싶음은 감출 수 없는 마음이지만 혹여 너무 늙거나 병이 들어 너희들 곁에 짐이 될 때, 애틋한 사랑이 식어가지 않을까 걱정이 앞을 가린단다.
너희들은 늙은 부모가 아프면 병원비를 마련하는 일이 무척이나 걱정된다는 막내의 말도 틀린 생각이 아님을 아비도 알고 있고 그토록 신경 써주는 너희들의 효심에 우리는 다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부모가 못나 너희들에게 풍족한 부를 물려주지 못하고 삶의 여울 속에서 이리저리 시달림을 볼 때마다 늘 아픈 가슴만 조이고 있었지.
우리가 한국으로의 귀국도 20여 년이나 혼자 떨어져 외롭게 살아가는 막내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고 미국에 있는 너희 남매는 우리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으로 한국에 와서 살다 보니 늙은 부모의 병 치료비 문제가 막내에겐 무척이나 크나큰 부담으로 마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을 알게 되니 괜히 온 것 같은 후회도 드는구나. 부모가 젊었을 때는 따로 살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늙은 몸 짐짝으로 막내에게 안기는 부담을 생각하니 막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엄마가 아픈 몇 년 동안 집안 식구 누구 하나 편한 마음 없었지만, 아비의 고민과 시달림은 상상을 초월한 힘겨움 속에 무엇을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깊은 고뇌 속에서 옛날의 발자취가 눈앞에 현실처럼 펼쳐지고 잘해준 일보다 못 해준 일만 눈 앞을 가려 서글픈 후회와 회한의 너울은 메마른 대지 위에 일렁이고 석양 속 나목의 잔가지를 흔들고 있구나! 이제 80줄에 들어서 얼마를 살 것인가는 가늠할 수 없기에 아비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가 시장 보는 일 좋아하는 것은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너무 큰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즐거워하는 시장보기마저 일일이 간섭한다면 엄마는 무엇으로 재미를 붙일까 생각하여 억지 간섭은 하지 않고 있으나 어떨 때는 집에 있는 물건을 또 사 오는 일이 있어 막내가 힘겨워하는구나. 엄마가 쓰는 얼마의 돈, 큰돈도 아니고 고작 시장에 가서 먹거리 사는 일과 입맛 없을 때 외식비 기만 원 쓰는 일이지만 건강이 몇 년을 버텨줄 것인가도 늘 의심의 여지로 남아 두 발로 걸어서 입에 맞는 음식 찾고 시장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없다면 엄마의 즐거움을 무엇으로 대신 해야할까?
시들어가는 정신과 육신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작금의 현실 속을 헤매면서 우리 집안이 이렇게나마 험한 꼴 당하지 않고 자식들 큰 속 썩이지 않고 건강히 자라준 것은 너희 어머니의 인내와 사랑과 헌신으로 50여 년의 무구한 세월 속에, 우리 가족의 행복 지킴의 봉사가 바탕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아비가 너희들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주고 싶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지않아 자그만 일이라도 돕고 싶은 게 아비의 생각이란다.
내가 젊었던 시절 노인이 굶어 죽었다는 기사를 접할 때, 냉장고에 먹을 것을 가득 두고도 굶어 죽었단 그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80이 가까워져 오니까 이해를 하겠더구나.
먹을 것은 있으나 찾아 먹기가 귀찮고 배도 고프지 않고 입맛이 당기지 않아 굶어 죽는 인생의 허망함! 지금이야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아직도 많은 독거노인들의 생활상은 심심찮게 전파를 타고 있는 불쌍한 현실을 보면서 아비는 자식들이 같이 있기에 푸근한 행복감으로 늘 감사하고 있단다. 엄마가 집에서 하루 세끼 해결하면 똑같은 반찬을 먹기 힘들어하고 예전처럼 건강이 바쳐주지 못하니 반찬 만들기 귀찮아하고 또 늙어서 몸 놀리기 싫은 탓도 있겠지.
“집에 먹거리가 냉장고에 가득 쌓여 있는데 또 외식했어요?”
툭 던지는 한마디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 가늠키 힘들었단다.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은 노인들은 움직임을 싫어하고 밥 씹기도 귀찮아한다던 말들이 남의 얘기가 아니었음을 실감하는 요즈음 너희 엄마가 밥 씹기가 귀찮고 힘들다며 식사를 안 할 때 밖에 나가 국수나 짜장면을 시켜 드리면 한 그릇 다 드심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곤 했단다. 우리가 얼마를 살다 갈까? 90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12년, 85세를 산다면 앞으로 7년, 80을 산다면 2년! 노을이 붉게 물들어 서녘으로 기움같이 인생의 가풀막 앞에서 살아온 생을 반추하며 살아있는 그때까지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심은 부모의 지나친 과욕이었을까? 아비가 막내의 말에 서운함을 느낀 것은 속이 너무 좁고 욕심이 많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막내가 가끔 하는 말들에서 서운함이 몰려온단다.
“나 돈 하나도 없어요, 저축 좀 하셨다가 병원비 마련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걱정되었으면 그렇게 말을 할까 안쓰러울 뿐이지만 꼭 그렇게 정곡을 찌르면서 대화를 해야 했을까 근근이 쓰는 연금 쥐꼬리만 한 돈에서 아프기 전 아껴서 병원비라도 모아놓고 가란 지극히 당연한 말 이었는데 귓속을 맴도는 서운함은 어째서였을까? 귀에 거슬리고 입에 써서 뱉어버리는 고약한 심보를, 이렇게 늙어가도록 버리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미웠단다. 너희들의 생각을 다 들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자그마한 돈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모자라면 우리들이 보탤게요!” 빈말이라도 이렇게 말해 줬다면 우리 앞으로 나오는 돈 흥청망청 써 버리고 너희들에게 손 내밀 우리도 아니겠지만 그런 덕담 듣는 우리의 마음은 너희들의 흡족한 사랑 속 꽃밭을 걷고 있었겠지!
물론 너희들에게 입이 있어도 할 말은 없지! 아비가 모자라서 풍족한 돈도 준비 못 하고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는 처량함에 우리의 본질도 깨닫지 못하는 주제에 그 적은 돈 이나마 다 써버릴 생각을 하는 부끄러운 우리들이 되었구나!
지난번 큰딸의 메일을 보고 또 서운함이 몰려오더라.
“엄마 아빠도 내 나이 때 부모한테 그렇게 잘해 드렸어요?”
아빠의 서운함이 천길 구렁으로 떨어져 방황했단다. 그래 큰딸 말도 맞는 말이지 아비도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 말을 되돌려 해석 하자면 엄마 아빠도 너희들 나이때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했지 않느냐 우리가 효도하고 싶지 않아 안 한 것 아니고 형편이 그렇지 못해서 효도를 못하는 것인데 나무라지 말란 말로 들려서 엄청 황당했단다.
너희들에게 보태주지 않는다고, 효도하지 않는다고 강압적으로 요구하며 불효한 자삭들 이라고 나무란 적 있더냐? 자식들의 효도란 금전으로 에움 하는 것이 아닌 부모의 걱정 끼쳐드리지 않고 동기간에 화목함과 부모의 자존심 건드리지않고, 맞서서 옳고 그름을 다투는 일이 없이 너희들이 조금만 참아주는 것이 효도라 생각하고 있단다. 자식들에게 강요해서 효도가 이루어질 것이 아님을 아비는 알고 있단다. 서로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존경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효도가 아날까 생각한단다. 누가 뭐라 해도 너희들을 사랑하고 고마운 마음에서 너희들의 넘치는 효도를 받고 있음을 알기 바란다. 그래서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 속을 마음껏 누리고 있지않느냐?
말씨름은 언제나 막내의 앙잘거림으로 시작됐고 우리 한국에 살면서 막내에게 간섭하는 일 없었다. 걔도 다 큰 놈이고 간섭한다고 고쳐질 리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지.
사위들 있는 데서 그런 얘기하지 말란 말 수긍이 가고 옳은 말이지, 그렇다면 사위들 있는 데서는 대화의 분위기를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는 너희들의 현명함이 먼저가 아니었을까?
이 모든 것이 부모의 잘못으로만 치부된다면 그래도 할 말은 없겠지만 서운한 마음은 가슴에 남아 응어리로 간직할 수밖에 없겠지!
막내에게도 몇 번 말해준 적 있었지만, 아비 생각엔 너희들이 부모가 늙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아니 인정하기 싫은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물론 너희들 생각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많이 늙었고 모든 사고와 행동에서 우리 자신도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어쩌다 기억이 희미해 물건을 어디에 둔 것을 모를 때 정말 생각이 나질 않으니까 모른다고 우기고, 내가 한 말도 기억에 없어 하지 않았다고 억지 부릴 때가 종종 나타나고 귀가 어두워 무슨 소린지 잘 듣지 못하면 “정말 답답해 환장하겠어! 금방 해 놓고도 모른다고 잡아떼고”
“반 귀먹어리 식구들이라 정말 답답해 죽겠어!” 물론 너희들 심정 모르진 않지만, 부모가 늙었다는 현실과 늙으면 이런 현상이 온다는 이해라도 해 준다면 답답하다 환장한다 이런 대화가 튀어나왔을까? 이런 소리 듣는 부모의 아픈 마음 생각해 봤는지?
물론 부모니까 농담 반 격의없이 흘리기도 하겠지만, 말을 잘 못 들으면 곰상곰상 다시 말해줄 수는 없는지? 말의 중요성을 항상 기억하여 마뜩잖아도‘역지사지’를 염두에 두고 대화할 것을 부탁하고 싶다. 너희들이 부모에게 마음이나 금전적으로 잘해주지 못해서 생기는 서운함이 아닌 평소에 말 한마디의 서운함으로 몰리는 삭풍 때문에 서로의 의사가 제각각 흘러 앵돌아짐으로 자리하기 때문이지.
늙으면 애가 된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즈음이란다.
너희들은 별 뜻 없이 늘 하던 대로 했던 말들이, 젊었을 때는 개의치 않게 들렸으나 늙은 귀에는 왜 그렇게 뇌깝게 들리는지 미루어 짐작건대 늙음의 ‘콤플렉스’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단다. 소리가 들리긴 들리는데 정확히 들리지 않고 윙윙거려 무슨 말인지 인지하기가 어려워 묻고 또 묻는 심정, 어느 때는 다시 묻기가 미안하고 번거러워 대답을 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는 지청구가 또 귀를 울리지!
너희들이 걱정하는 병원비 문제는 단독주택에 들어 있는 1억은 우리 병원비로 예비했으니 너희들은 너무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한 병원비가 될지 그렇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비 계산엔 대충 마무리할 돈은 되지 않겠나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매월 나오는 금액 안에서 우리가 자유로이 쓰는 것에 너그러운 이해로 간섭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주위 노인들의 독백과 푸념의 그리메가 머릿속을 꽉 채워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먹먹한 심정이란다. 노인 기초연금이 나오면 부모 몰래 찾아 쓰고도 돈 내놓으라고 말하면 자식이 필요해서 썼는데 노인이 무슨 돈이 필요해 치사하게 그런다고 행패 부리는 일이 빈번하다는 푸념을 들으면서, 너희들이 매오로시 보내주는 깊은 사랑 속에 오히려 투정이 웃자란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생 끝자락 열반적정, 윤슬 같은 아름다움 속에 잠길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단다. 어쨌거나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가 오면 요양원으로 보내다오. 정신적으로도 너무 퇴화해서 자식도 몰라본다면 요양원이나 집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너희들의 효심은 가슴이 넘치도록 뿌듯한 마음으로 늘 감사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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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 냈을 때 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고 이름을 불러대면 창피해서 얼굴을 돌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자나깨나 자식들 생각 뿐인 보모님드인데
자식들은 아직 그 마음을 모릅니다.
알아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리사랑이라 했습니다.
아들은 그 아들에게 또 사랑을 다하는 거구요.
생은 다 마찬가지 입니다.
꽃처럼 싹일 튀우고 잎이 자라 꽃을 피우지만 시들어 흔터져 날리지요.
그러나 영혼은 영원합니다.
육신은 잠시 생에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영혼으로 영원하지요.
육신을 다할 때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게 고통을 줍니다. 그 고통은 즐거움입니다.
어디에 계시던 축복일겁니다.
가족들에 자식들에 남기는 잠언들의 말씀이 측은하게 다가옵니다.
끝까지 필 놓지 마시고 즐거운 나날 보내시고 날마다 의미있는 시간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김무영 시인님!
행복에 겨운 넉두리,
말씀과 같이 즐거운 고통입니다.
솔직, 담백하게, 담담하게 마음을 다 보여준 어버이의 글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남은 여생 화이팅!!! ~~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늦닢 시인님?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닌 연로한 세대가
경험하는 일인것 같기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