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추리
증오보다도 강한 것은 신념이다.
원한으로 치자면 묶어 놓은 노범호를 살려 두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범호에 대한
사사로운 원한으로 큰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최종 목표는 역시 이후락과 박성철이다. 그리고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진심으로 노옥진을 사랑하는 것도 노 범호를 살려 둔 이유가 되었다. 일본으로 쓰레기처럼
내버린 장본인을 찾기만 하면 절대 살려 두지 않겠다던 백수웅이 노범호의 생명을 두 번이나 포기한 셈이었다.
허열에게 노범호의 위치를 알려 준 다음, 백수웅은 뒤도 돌아보지않고 은신처인 코앞의 구멍가게로 돌아왔다.
의정부에 새집을 구하러 나섰던 주인 여자는 파김치가 되었는지 백수웅의 귀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룻밤쯤 새웠다고 지쳐 버릴 약한 체력이 아니어서, 오만 가지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정확한 회담장 추리였다. 거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위기를 해쳐 가고 완벽한 추리로
앞일을 예측해 나가는 그의 두뇌도, 이번 회담장 파악에는 도무지 바퀴가 돌지 않는 것 같았다.
백수웅은 누운 채 지금까지 드러난 세 곳의 회담장을 놓고 신중하게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영빈관 :(1) 전 관광 공사 직원들이 동원되어 대청소를 실시하고 있다.
(2)정보 요원들이 제일 먼저 투입되어 현장을 접수한 장소다.
(3)박정희 대통령이 일차 현지 답사를 한 장소다.
에메랄드:(1)뛰어난 경관과 최신식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며, 한국 최고의 국빈이라고 할 수 있는 존슨 대통령이
숙박했던 장소로, 회담을 할 공간이 마련된 곳이기도 하다. (2)회담 당사자인 이후락 중앙 정보부장과
테러리스트인 자신을 뒤쫓는 허열이 은밀히 방문한 장소이며, 현재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다.
(3)영빈관과 마찬 가지로 현재 경비 병력이 파견되어 경호하기 시작했다.
온양 별장:(1)서울이 아닌 제3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2)노옥진이 딸 미라의 목숨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알려 준 비밀 장소이다. (3)남북 회담이 장시간을 요하는
회담이 되리라고는 믿지 않으며, 굳이 경관이나 시설에 구애받을 성격이 아니어서, 별장을 택할 가능성도 높다.
(4)이미 박정희와 김일성의 사진, 그리고 태극기와 인공기가 설치된 점으로 미루어 회담장 설치가 끝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세 곳의 가능성은 모두 있었다. 그러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미라의 목숨 보장'을 조건으로
노옥진이 알려 준 온양 별장이다. 여기에도 또 다른 함정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백수웅은 그걸 부인하고 싶었다.
그는 가장 가능성 없는 곳으로 영빈관을 꼽았다. 그런 은밀한 회담을 위해 많은 직원들을 동원시키겠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또 박 대통령의 1차 방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그곳뿐 아니라 워커힐도
다녀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 있어, 그 방문은 다른 목적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가능성이 없는 곳은 워커힐 에메랄드였다. 회담 주최측은 실제 에메랄드를 회담장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이곳을 목표로 침투한 자가 자신이었음을 알았다면, 그들은 위험 부담을 안고
에메랄드로 강행하는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그 곳의 내부 지리까지 익혀 두었다는 사실을
파악했을 텐데, 그 곳에 회담장을 설치하겠는가.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곳은 온양에 있다는 대형 별장이다.
백수웅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직접 온양으로 내려가 현지 답사를 할 작정이었다.
침투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워커힐이나 영빈관보다 외곽이 허술한 별장이 훨씬 쉬울 것이다.
그리고 현지에 가 보면 회담장 여부가 더욱 분명히 판가름날 것이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생각났는지,
누워 있던 백수웅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가방을 열었다. 잡다한 물품들 속에서
작은 지갑을 꺼내, 거기서 신분증 하나를 뽑아 들었다. 대마도를 떠나 부산에 상륙, 밀입국하던 날
그의 손에 피살된 순찰대 순경의 것이었다.
칼로 조심스럽게 순경의 사진을 때고 자신의 사진을 붙였다.
복잡하거나 특수 인쇄된 부분이 없어, 30분간의 작업만으로도 훌륭한 경찰 신분증 하나를 얻게 되었다.
백수웅은 남대문으로 달려갔다. 경찰복, 군복, 예비군복 따위들만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남대문 상가 입구의
한 점포로 들어섰다. 그리고 께끗한 경찰복 한벌과 견장, 군화와 장교복 한 벌을 샀다.
경찰복과 군복은 필요에 따라 적절히 이용될 것이다.
백수웅은 우이동 은신처에 메모를 남겨 놓고 떠났다. 회사 일로 갑자기 출장 가게 되었고,
28일에나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의정부 집이 결정나면 언제든 이용하라며 또 5백만 원을 남겨 놓았다.
주인 여자는 추호도 백수웅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만큼 백수웅의 활동의 폭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역 부근의 호텔로 들어간 백수웅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부족했던 수면을 이루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켜가고 있었다.
밤 8시 20분경 호텔을 빠져나온 백수웅은 경찰복과 군복이 들어 있는 가방을 손에 들고 서울역으로 가서
부산행 마지막 열차표 발매소로 갔다. 그리고 천안행 표를 구입했다. 천안에서 일박을 하고 새벽같이 달려가
온양 별장을 점검할 생각이었다. 만일 이번 점검에서 티끌만한 의혹이라도 발견되면 거침없이
에메랄드를 습격할 것이다. 워커힐이 되든 온양 별장이 되든, 분명히 결심이 서면 5월 29일 새벽까지
침투해 숨어 있다가 뛰어들 작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작성 할 성명서와 테러 목적, 왜 이런 테러를
감행하게 되었는지의 이유를 밝힌 글을 남기고 그들과 함께 자폭해 버릴 것이다.
이제 결단의 날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의 창가에 앉아 그는 지나 온 날들을
곱씹으며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 동안 서울 거리를 누비며
보고 느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서울 사람들은 돈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출세와 돈을위해
목숨을 걸 만큼 야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업가, 정치가, 하다못해 뒷골목 창녀들까지도 그들은 재산과
권력을 움켜쥐고도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중 삼중으로 철문을 만들어 처닫고 있었다.
그나마 가진 것들을 잃을까 봐 허둥대고 있었다.
"허-."
백수웅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 신음이 흘러나왔다.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옛날처럼 조국을 생각하는 녀석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풍토는 반드시 씻어 버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부산행 특급 열차는 어둠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고,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창 밖을 백수웅은 하염없이 바라 보고 있었다. 지나 온 악몽 같은 세월들이 떠올랐지만, 그 세월들을
원통해 하거나 분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씨알 하나가 죽어 꽃이 피듯, 자신이 죽어 조국의 밑거름이 된다면
행복한, 그리고 보람된 짧은 일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한 권력과 집단 세력의 횡포에 당당히 맞서는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의 마비된 조국애가 일께워질 것이며, 일본의 정치적 . 경제적 침투 야망도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자기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주변에 하나도 없다는 홀가분함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제 노옥진은 허열에게 돌아가야 하며, 미라도 부모 품에서 구김 없이 살아갈 것이다.
지난 밤 허열과 맞부딪쳤을 때도 그는 불꽃 같은 살의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참아 냈다. 앞으로도 그와의
맞대결이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닥치겠지만, 결코 살해하겠다는 의지는 타오르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죽는다면, 미라와 노옥진은 더없이 불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
백수웅은 이빨을 악물었다. 만일 자신이 선택한 이 장엄한 길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가 설사 노옥진이라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은 이미 잊은 지 오래 되었다.
큰일을 위해, 조국을 위해, 목에 핏줄이 서도록 외쳐 대던 복수의 감정을 말끔히 씻어 냈다.
그러나 이 길을 막는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열차는 수원을 지나고, 마침내 천안역에 검고 둔중한 몸체를 세웠다.
백수웅은 열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출구를 향해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저 쪽 출구에
역무원이 서 있고, 그 옆에 건장한 두 명의 헌병이 서 있었다. 백수웅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만일 헌병들이 가방을 검색한다면, 계급장까지 달려 있는 군복과 경찰복이 발견될 것이다.
주춤거리던 그는 한 떼의 승객들을 훑어보다가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한 사병의 뒤에 붙어 섰다.
그는 모험을 피하고 싶었다. 테러 거사를 며칠 앞둔 상태에서 위험을 동반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휴가를 받아 온 듯한 일등병 계급의 사병은 백수웅을 의식하지 못 한 채 출구를 향해 걸어갔고,
그는 기어이 헌병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들은 승객들이 나가는 것을 막아 놓고 사병의 휴가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별 하자가 없는지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휴가증을 돌려 주었다.
다음이 백수웅 차례였다. 군인으로 보기에는 백수웅이 나이가 좀더 들어 보였는지, 아래위를 훑어보고는
그냥 통과시켰다. 백수웅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열차표를 역무원에게 주고 광장으로 나섰다.
천안역에서 내린 승객들은 어두운 광장에서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백수웅은 또다시 외톨이가 된 채 쓸쓸히 서 있었다.
오늘 밤은 또 역 변두리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여관이나 여인숙에는 이따금 경찰들의
불심 검문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그렇다고 언젠가 부산에서처럼 또다시 코를 틀어 막고 화장실에서
밤을 보낼 수도 없다. 또 그 때처럼 위험한 상황도 아니다. 백수웅은 여관보다 한 급 낮은 1천5백 원짜리
여인숙을 찾아 들었디. 역 부근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이 곳 여인숙 주인도 여자를 넣어 주겠다며
필사적으로 덤벼들었고, 백수웅은 그것을 뿌리치는 데 적지 않은 신경을 써야만 했다.
벌써 자정이 가까워졌다. 그는 맥주 두 병을 마시고서야 잠에 떨어질 수가 있었다.
내일, 어둠이 깔려 오면 경찰복으로 갈아 입고 온양 별장을 조사하러 갈 것이다. 그 곳 분위기를 보면,
별장이 회담장의 실체인지 아니면 이마저 위장 장소인지를 육감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판단은 그 때 할 것이다.
잠을 자면서도 백수웅은 악몽에 시달려 온몸이 마치 비에 젖은 것 처럼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밤새도록 고통스러워하던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아침 10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여인숙을 나섰을 때는 이미 거리는 지난 밤과는 달리 주민들과 장사꾼, 여행객들로 혼잡스럽기 짝이 없었다.
백수웅은 사람들 틈에 끼여 커다란 상가로 들어가 중고품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제복 가방을 자전거 뒤에
매단 채 천안을 떠나 온양을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온양에 가서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며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다.
1972년 5월 23일 화요일.
이 날은 백수웅이 온양 온천의 별장을 찾아 떠난 날이며,
허열이 박 상남과 함께 이후락 부장에게 불려 가 마지막 격려를 받고 돌아온다.
허열과 박상남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백수웅의 최후의 목적지인 침투 지점을 추리하느라고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하고 있었다. 박상남은 허열의 곁에 붙어 앉아 허열을 충실히 보필하고 있었다.
특히 허열이 놓치는 생각들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고 있었다.
"백수웅의 발자취로 보아 영빈관이나 에메랄드를 목표로 하고 있는것이 틀림없어."
백수웅이란 태풍의 진로를 점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워커힐 영선과의 윤 주임을 불러
조사한 결과, 백수웅은 에메랄드 화초 관리를 맡아 왔고, 또 자진해서 '영빈관 대청소'에도 참여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영빈관보다는 워커힐에 더 무게를 주고 있었다. 위장 취업, 에메랄드 내부 조사의
기회도 그러려니와, 자신의 위장 병력 배치도를 아내가 훔쳐 보았고, 그것을 그대로 백수웅에게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허열은 얼마 전 아내가 들려 준 말을 기억에 떠올렸다. 아내는 서류를 훔쳐 보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 때 이렇게 말했다.
'네. 그래서 회담장이 워커힐이란 것도, 또 일자가 5월 29일부터라는 것도 알아 냈어요 고민도 많이 했죠.
하지만 저는 백수웅을 만나 그대로 이야기할 거예요. 당신은 적당한 때에 백수웅을 없애 주세요.
국가도 명예도 제겐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미라예요.'
허열은 입을 다문 채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영빈관보다는 에메랄드 침투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 그 녀석이 워커힐에 위장 취업한 이유도 그 때문이야.
녀석은 주저하지 않는 성격인데다 집념이 강해서, 비록 은신처가 들통나 워커힐에서 도망쳤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덤벼들겠지."
허열의 의견에 박상남이 동조하고 나섰다.
"역시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영빈관보다는 에메랄드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에메랄드 경비를 좀 허술하게 할 필요가 있어. 병력을 바꾸자구."
현재 에메랄드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성동 경찰서 본서의 순경과 형사들이고,
이들을 총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최일우였다.
그런데 병력 교체를 허열이 제안한 것이다.
두 사람은 워커힐로 달려갔다. 그리고 현재 병력을 모두 철수시켜 버리고,
그 자리를 인근 파출소에서 차출한 풋내기 순경들로 채웠다.
경비 근무에 전혀 경력이 없는 순경들, 그리고 침투라면 청와대 중심부라도 뚫고 들어갈 백수웅.
이들의 대결은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못했다. 백수웅은 여유 있게 에메랄드로 침투해 들어올 것이며,
들어오기만 하면 그 때는 요절을 낼 것이다.
허열과 백수웅의 추리는 이렇게 엉뚱하게 빗나갔다.
서로 다른 작전의 길로 들어선 것도 알지 못한 채, 허열과 박상남은 밤 늦게서야 워커힐을 출발해
장충동 수사 본부로 돌아가고 있었다. 허열은, 워커힐 내 객실을 빌려 수사 본부를 이전할 계획을
적극 검토하고 있었다.
"허 검사님."
묵묵히 앉아 운전을 하던 박상남이 불쑥 허열을 불렀다.
"음?"
"제게 내일 저녁까지 시간 좀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시간? 시간이라니? 1초가 아까운 판인데 어디, 갈 데가 있나?"
"개인 일은 아닙니다. 수사하고 싶은 장소가 있어서 그럽니다. 보고는 내일 밤 올리겠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시간만 내 주십시오."
분명한 생각을 말해 주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허열은 판단했다.
"좋다. 그럼 내일 오후 6시까지 본부로 귀대하고, 그 때는 꼭 보고를 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박상남의 얼굴이 밝게 펴졌다.
박상남은 허열을 장충동 수사 본부에 내려놓고 경부 고속 도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풀리지 않는 하나의 미스터리가 남아 있었다. 노옥진이 중앙정보부에서 얻어 간 사진과 깃발 때문이다.
태극기와 인공기, 그리고 박 대통령의 사진과 김일성의 사진을 입수한 노옥진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의문점을 허열에게 말해 보기도 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아내를 추궁해 보겠다는 대답이 고작이었다.
절대 시간을 끌 일이 아니었다. 박상남은 지금 온양으로 가는 중이다. 회담이 열리는 동안 온양에
피신해 있겠다고 했다는 노옥진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깃발과 사진의 용도는 틀림없이 제3의 회담장 설치에 있고, 노옥진과 백수웅이 워커힐 온실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백수웅을 그 제3의 장소로 유인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 틀림없다.'
박상남은 이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을 굳히기 위해 현장을 수사할 작정이었다. 그는 참으로 현명했다.
그렇게 정확히 추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노옥진이 백수웅을 사랑하고 있어,
절대 그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확신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 백수웅은 한두차례 별장을 답사할 것이며,
확신이 서면 에메랄드를 포기하고 온양 별장을 목표로 침투할 것이다.
박상남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심었다. 태극기와 인공기, 박정희와 김일성의 사진이 걸려 있을 별장을
자동차는 미친 듯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워커힐에서의 병력 교체 때문에 많은 시간이 흘러,
벌써 고속 도로는 캄캄한 밤이 되었고, 시간은 9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 지점에선가 경부선 하행 특급 열차가 스쳐 갔는데, 박상남은 그 열차에 백수웅이 타고 있으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그것은 백수웅도 마찬가지였다. 박상남이 운전하는 승용차는 마침내 천안
톨게이트를 지나 온양으로 방향을 바꿨다(그로부터 15분 후 열차가 천안에 도착하고,
백수웅은 천안에서 머물게 된다.).
천안을 지나, 잘 닦여진 아스팔트 도로를 달려, 이윽고 승용차는 온양에 도착했다. 박상남은 허열이 말해 준
위치를 기억에 떠올리며 읍내를 지나, 마침내 노옥진이 피신해 있겠다던 별장에 도착했다.
밤 늦은 시간인데도 2명의 경찰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경찰 외에 회사에서 파견한 경비원도 2명이 있었다.
이들은 낯선 사내의 방문에 잔뜩 긴장했다.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누구를 막론하고
들여보내지 말라는 엄중한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요? 서시오."
경찰이 칼빈 소총 총구를 박상남에게 겨누며 고함을 질렸다.
어둠 속의 방문객, 통보도 없었고 지시도 받은 일이 없는 낯선 방문객을 향해 구석쪽 순경은
총구를 겨누며 다가왔고, 동료 순경이 좌측으로 돌아 박상남의 도주로를 차단했다.
"손들엇! 누구요, 당신?"
"총 치워! 나, 중앙정보부에서 나왔다."
정보부란 말에 순경들의 행동이 멈칫해졌다.
"여긴 왜 왔습니까?"
"별장에 조사할 일이 생겨서"
경비원들과 순경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점검할 일이 있으면 낮에 찾아왔어야 했고, 밤의 점검이라면
최소한 허열 검사나 노범호 회장, 그도 아니면 사모님인 노옥진으로부터라도 연락이 있어야 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는데요."
박상남은 어이가 없었다.
중앙정보부 특수대의 중견 요원이 시골 순경에게 저지당한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30분이 넘는 실랑이와 서울 본부(특수대가 아닌 이후락 부장직속기관)와의 연락 후에야
겨우 통과가 허락되었다. 박상남은 순경들을 주먹으로라도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들의 근무 태도가 썩 마음에 들어 오히려 칭찬까지 해 주었다.
순경들과 경비원들을 밖에 새워 둔 채 박상남은 내실로 들어섰다.
별장은 오랜만에 불이 켜졌다. 박상남은 놀란 토끼눈으로 실내를 둘러보았다. 단정하게 정리된
테이블 위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고, 그 뒤에는 정보부에서 얻어 온 박정희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의 추리가 적중된 것이다.
노옥진이 백수웅을 유인하기 위하여 설치한 위장 회담장이다. 커튼이 잔뜩 드리워져 있어,
외부에서는 전혀 눈치챌수 없었다.
"그렇다. 백수웅은 29일 이 곳으로 침투해 들어올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밝혀졌다. 백수웅의 생명을 건질 노옥진의 작전이다. 노옥진은 여기서 백수웅을 설득하여
어디론가로 빼돌릴 작정이다.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끄덕이던 박상남은 불을 끄고 내실에서 빠져나왔디.
그는 순경들과 경비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에게서 아직까지 자신 외에는 방문객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아직 백수웅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내부 정돈 상태로 보아 백수웅이 경비를 따돌리고
침투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도 없었다.
"당분간 이 별장은 우리 중앙정보부에서 직접 관리한다. 나는 28일 우리 요원 몇 명과 다시 내려온다.
너희들은 다음 나의 몇 가지 지시 사항을 명심해서 듣고 지켜라. 내일 너희 경찰서장으로부터 같은
지시를 받게 될 것이다."
순경들과 경비원들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직계 부하라는 이 젊은이를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본부로 연락하는 과정에서 정보부 요원의 방문을 알게 되었는지, 온양 경찰서장이 황급히 찾아왔다.
"방금 본부로부터 연락 받았습니다."
그는 허리를 굽실거렸다.
천하의 노범호 회장 별장, 그리고 정치 권력의 제2인자 이후락부장의 직계 부하. 경찰서장으로서는
목이 왔다 갔다 할 인물을 앞에 세워 놓고 있는 셈이다.
박상남은 잘 됐다 싶어, 서장에게 직접 지시 사항을 말했다.
"2~3일 내에 한 남자가 이곳을 은밀히 방문할 겁니다. 어떤 신분으로 찾아오든 별장 내부로 들여보내십시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아니면 경비 병력을 따돌리고 비밀리에 침투하든, 모른 체하고 놓아 두십시오.
그 대신, 그가 왔다가 돌아가면 지체없이 긴급으로 보고하십시오."
박상남은 장충동 수사 본부 사무실 전화 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이건 이후락 부장님의 특명입니다. 나의 오늘 방문은 절대 비밀입니다. 박 대통령 각하 외에는
누구에게나 비밀입니다. 만일 이 비밀이 밖으로 알려지면 당신들은 반공법으로 처벌될 겁니다."
박상남은 서장과 경비원들을 단단히 교육시킨 다음, 온양 읍내로 돌아와 호텔에서 휴식했다.
반드시 백수웅이 찾아오리라고 확신했다. 그가 회담장 내부를 목격해야 다시 침투할 것이다.
이제 모든 작전은 끝난 점이다. 그래도 만일을 생각해 영빈관은 중앙정보부에서 직접 경비할 것이며,
에메랄드는 허열 검사가, 이 곳은 몇 명의 명사수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직접 지킬 것이다.
허열의 치밀하고도 명석한 두뇌, 그토록 백수웅을 괴롭히던 추격 작전은 아내 노옥진이 이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했다면,
깃발과 사진이 온양에 걸리게 되리란 걸 눈치 못 챌 허열이 아니다.
백수웅이 에메랄드로 침투하리라는 생각이 요지부동이 되어, 아내가 왜 정보부에서 깃발과 사진을
얻어 갔느냐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박상남 또한 깃발과 사진에 관한 것을 액면
그대로 보고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백수웅임을 감안한다면,
실제 그는 에메랄드를 테러하러 덤빌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백수웅이 천안에서 자전거를 구입하던 다음 날 아침, 박상남은 온양을 떠나 천안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오후 6시까지 시간 허락을 받았지만, 박상남은 정확히 오후 2시에 모든 일을 마치고 수사 본부로 돌아왔다.
허열은 그의 이런 외출을 무척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건가?"
"온양, 검사님 별장엘 다녀왔습니다."
"온양 별장에? 거긴 왜?"
"사모님께서 곧 피신하실 곳 아닙니까? 그래서 안전을 위해 미리 점검 좀 하고, 그 곳 서장에게 경비 강화를
부탁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혹 백수웅이 테러롤 포기하고 사모님을 해칠지도 모르니까요."
" "
"영빈관은 정보부 자체에서 경비토록 하고, 백수웅이 유인될 에메랄드는 검사님께서 맡으십시오.
저는 그 동안 사모님을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백수웅은 기우뚱거리며 온양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온양에 도착한 후에는 싸구려 대중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한 시간 정도 쉬면서 별장 탐색 방법을 모색했다. 군복과 경찰복, 그리고 서울서 입고 온
사복을 놓고 선택에 고심하다가, 마침내 사복에 순찰대 순경 신분증을 사용키로 했다.
그는 테러 후의 도주로까지 생각해 가며 낡은 자전거를 몰고 노옥진이 알려 준 별장으로 달려갔다.
도고 방면의 별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약간 경사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보기에 깨끗하고 아담했디.
멀리 정복 순경과 경비원 복장의 사내들 모습이 보였다. 백수웅은 자전거를 숲 속에 감춰 놓고
별장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도 박상남처럼 순경들의 칼빈 총에 저지되었다.
"누구냐? 정지하라!"
"소리지를 것 없소."
백수웅은 태연한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함부로 총을 쏘아 대지는 못할 것이다.
"멈춰. 멈추지 않으면 발포한다."
"경찰이 경찰을 쏘는 법도 있소? 자"
백수웅은 주머니에서 부산 시경 순찰대 신분증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그들은 부산에서 올라온 순찰대 경관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책임자가 누구요?"
"난데요. 도대체 부산에서?"
"난 부산 시경의 최정운이오. 하지만 오늘부터 청와대로 발령나, 노 범호 회장님의 경호를 당분간 맡게 된 사람이오."
"청와대?"
그 때서야 이들은 중앙정보부 박상남이 남기고 간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신분으로든 사람이 찾아오면
별장으로 들여보내라는 명령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잠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왜 이 별장이 타깃이 되어
정보부에서 찾아오고 또 청와대에서 찾아오고 당분간 외곽경비를 철저히 하라는지,
이들로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날 밤 찾아온 사람도 아주 떳떳했다. 더구나 부산 시경의 순찰대
요원이며, 앞으로 이 별장 주인이며 한국 경제의 1인자인 노범호의 경호를 맡게 될 사람이라는 것이다.
순경들은 단단하고 야무져 보이는 키 작은 사내를 향해 경례를 붙였다.
"혹 찾아온 사람은 없었나?"
백수웅의 머리가 재빨리 돌아갔다.
이런 중요한 회담장이라면 거물급이나 실무자들이 한두 번은 찾아와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말해 주기 바란다. 이 별장에서 며칠 후 중대한 회의가 열리는데, 불순 분자가 침투할 가능성이 있어서 그래."
'아하, 그랬었구나.'
그 때서야 순경들은 무릎을 치며, 법석을 떨어 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네. 어제, 바로 이후락 부장님의 직속 부하 되시는 분이 찾아왔었습니다. 박상남이라는"
박상남, 이후락 부장의 직속 부하. 그가 회담을 불과 며칠 남겨 두지 않고 심야에 이 곳을 방문했다면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회담이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회담에 비해 경비가 너무나 허술해 보였다.
'허허실실 전법인지도 모른다. 이런 시골에 그런 중대한 회담장을 마련하리라고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요란한 경비나 경호는 눈에 잘 띌 뿐이지.'
백수웅은 노옥진이 넘겨 준 사진을 생각하며 열쇠를 요구했다.
"내가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겠다. 노 회장님의 직접 지시니까. 아무튼 나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이 곳에
들여보내지 마라. 여기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 각하와 노범호 회장, 이후락 부장님과 허열 검사,
그리고 그분들과 동행하는 인물들뿐이다. 설혹 도지사가 찾아와도 들여보내선 안 된다. 29일 10시에 정식
경비 병력이 서울에서 도착할 것이다. 그 때까지만 수고하면 된다."
연극은 완벽했다. 백수웅의 멋진 연기에 속아넘어간 이들은 별장 철문 열쇠를 백수웅에게 넘겨 주었다.
배짱 좋고 겁 없는 백수웅도 온몸의 근육이 얼어붙는 듯한 긴장으로 뒤덮였다. 마침내 길고 긴 여행의
종점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집 안에 잠복자는 없는지, 머리 좋은 허열이 의자 뒤에 숨어
총구를 겨누고 있지는 않은지, 회담장 정보 제공이 들통나 이미 철수해 버린 것은 아닌지,
도무지 가슴이 떨려 문도 제대로 열수 없었다.
'철컹' 철문이 열렸고, 한 발을 들이밀었다. 조용했다. 사람의 기척은 전혀 나지 않았다.
정원을 지나 응접실이 있음 직한 문에 백수웅은 키를 꽃고 돌렸다. 문이 열리자 백수웅은 잽싸게 뛰어들어
전기 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아아, 마침내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노옥진이 건네 주어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혀 있는 회담장 현장이 이 곳에 있었다. 대형 원형 테이블 위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세워져 있고,
뒤에는 사진 두 장이 걸려 있었다.
백수웅은 허벅지까지 후들후들 떨려 왔고, 소름이 돋았다.
"노옥진, 고맙다. 이렇게 해서 우리 조국은 다시 태어날 기회를 맞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여기 머물 필요가 없다.
그는 길고 깊은 숨을 내쉰 뒤 되도록 천천히 걸어 나가,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정원을 지나
다시 철문 밖으로 나갔다. 순경들과 경비원들은 여전히 건물을 돌며 순찰을 하고 있었다.
오후 6시부터 아침 9시까지는 이들이 근무하고, 낮에는 다른 조의 순경들과 경비원들이 지킨다고 했다.
백수웅은 미리 준비한 봉투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건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노 회장님께서 하사하시는 거다. 똑같이 나눠 쓰도록 해.
나중에 청와대에서 정식으로 근무하게 되면 표창을 상신하겠다 한 가지 특별 지시를 내린다.
내가 왔다 간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또 아무도 출입시키면 안 된다. 노 회장님의 특별 지시니까 잊지 않도록"
백수웅이 경비 요원들에게 건네 준 봉투 속에는 10만 원권 수표가 다섯 장이나 들어 있었다.
그들은, 밤새워 고생하며 근무하는 자신들에게 거액의 하사금을 내린 노 회장의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했다. 등을 돌려 내려가는 백 수웅에게 거수 경례를 힘껏 붙여 올렸다.
밤에 불쑥 나타난 이 사내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그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 사람, 정말 노 회장님이 보낸 사람일까? 아무래도 기분이"
순경 하나가 수표를 만지작거리며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 질문은 노 범호의 회사측에서 파견된 경비원에 의해 일축되었다.
"그는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순경 나리. 허열이 누군지 아십니까?"
"글쎄 아까 허열이란 사람 이름이 나왔을 때 그가 누군가 했죠."
"바로 노 회장님 사위 되는 사람입니다. 회장님 가족 사항까지 훤히 아는 사람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이들은 백수웅의 심야 방문을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 돈을 공평하게 나눠 쓰기로 했다.
백수웅은 온양 읍내로 돌아와 구석진 여관에 투숙했다. 이제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후락의 직속 부하 박상남의 출현은 그의 사기를 한껏 높여 주었고, 회담장에 대한 의혹을
일시에 뿌리치도록 해 주었다. 백수웅은 누운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특유의 조직적인 두뇌가 또 다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8일 미라가 찾아올 것이다. 자신은 미라를 볼모로 잡아
온양 별장으로 미리 침투해 들어갈 것이다.
박성철 . 이후락 회담이 시작되면 폭탄을 들고 나타날 것이며, 경찰과 기관원들이 몰려오면
기자 회견을 자청해 앞으로 준비할 성명서를 뿌린 뒤 자폭해 버릴 것이다. 기자 회견 동안 미라는 돌려 보낼 것이다.
이제 작전 구상은 모두 끝난 셈이다.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미련이 남을 것도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잃어버릴 것은 모두 잃어버린 새월들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노옥진도, 사랑도 슬픔도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깊은 상념에 잠기던 백수웅은 애써 잠을 청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서둘러 일어나 천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하루 종일 오토바이 상가를 헤매어 250cc 오토바이 중고품
한 대를 구입했고, 만일을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경찰복과 군복을 불태워 버렸다.
무엇을 준비하는지 그는 무척 바빴다. 오토바이를 몰고 수원으로 가서, 수원역 부근의 한 식품점에
1만 원을 지불하고 오토바이를 며칠 동안 보관시켰다. 그는 수첩을 꺼내 지금까지 다녀온 천안과 온양,
수원과 천안사이의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두기도 했다.
바쁜 하루를 보낸 백수웅은 그 날 밤 열차를 이용하여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 남은 것은 결행의 시간뿐이었다. 운명의 28일 밤은 쉽게 찾아 올 것이다.
첫댓글 백수웅이 끝까지 회담장소를 온양으로 알게된다면 백수웅의 앞날은 어찌되는 걸까요?
죽을사람이 한사람 늘었나요?!
즐감요 ~~
잘 읽고갑니다~~
감사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