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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별, 거리에 투사되다
예부터 재난은 ‘별들이 길을 잃은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 시대에 유난히 길 잃은 별들이 많다. 크고 작은 재난을 따지면 해마다 꼬리를 물며 끊이지 않는다. 대개 유난히 어리거나, 젊은이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별을 바라보면 아스라하고, 가슴 시리다.
눈앞에서 벌어진 생생한 일이고,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는 가족이 있는데, 재난에 대한 기억은 번번이 박제화되어 간다. “우리들끼리는 유가족이라 안 하고 별 가족이라 부릅니다”(이태원 참사 유가족 오일석 님의 증언 중). 말들은 그렇게 하지만, 마치 캄캄한 밤하늘로 점점이 유형(流刑)을 당한 가족의 모습이 애처롭다.
내년에 벌써 10주년을 맞는 세월호 사건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전체 탑승자 476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
진실은 <세월호, 그날의 기억들>(진실의힘)의 두께로도 다 담지 못할 만큼 아직 미완의 보고서에 불과한데, 사건 요약이 너무 단촐하여 서럽다.
지난해 10월 말에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대한 단순한 요약본도 찾을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경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119-3번지 일대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핼러윈을 즐기려는 다수의 인파가 몰리면서 300명이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참사.
진실은커녕 단순한 사고의 재구성도 아직 이루어진 적이 없다. 슬픔과 분노를 배제한 채, 구체적인 사실만이라도 담아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더 이상 추모해야 할 사회적 참사가 없기를 바랐으나, 일순 폭격을 맞은 듯 다시 일어났다. 잊혀질 만하면 반복되는 참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세월호와 이태원에서 일어난 비극을 나란히 들여다보면서 참람함을 느낀다.
이태원에 밀집된 핼로윈 인파는 전날의 정황을 보더라도 충분히 예상할만한 일이었다. 도심 한복판 골목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상식 밖의 치안 부재와 공권력의 무능은 마땅히 들어야 할 비난이었다. 경찰 수십 명만 사전에 배치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너무 크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주최 측이 없어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변명을 되풀이하였다.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싶어 무엇 하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당국의 무책임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행여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 집중된 경호 인력의 규모가 트집 잡힐 새라, 정권 안보 차원의 궁색한 변명들은 국민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하였다.
심지어 참사 직후 정부가 벌인 추모식은 이름 모를 위패와 얼굴 없는 영정 때문에 유족의 마음에 더욱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게다가 행정안전부는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고, 근조(謹弔) 없는 검은 리본만을 사용하도록 공문을 내어, 공분을 샀다. 그들은 이태원 참사를 비트는 세력을 핑계로 국민적 추모를 봉쇄하고, 국민의 슬픔마저 통제하려고 들었다.
2022년 12월 11일, 유가족협의회가 비로소 구성되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첫 행사에서 가족들은 서로 부대끼며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래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49일째, 이태원 현장과 거리에서 대규모 추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유가족은 희생자의 사진과 함께 이름을 처음 공개하였다. 이태원 참사 현장과 조금 거리가 있는 녹사평역 입구에 시민분향소가 차려졌지만, 추모마저 훼방하는 악행은 계속되었다. 광화문 세월호 추모 천막 안에서 금식 농성하던 가족들 보라는 듯 저지르던 폭식 만행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이태원 분향소 곁에서 신자유연대란 기치를 내건 단체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신을 스스로 영상중계 하고 있었다.
2023년 1월 30일에는 약 60여 그리스도교 단체가 연대하여 ‘10·29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을 출범하였다. 이들은 순서를 정해 기도회를 이어가며, 시청 앞으로 옮긴 이태원 참사 분향소 지킴이를 지원 중이다. 그리고 3월 14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4대 종단 추모행사에서 보듯 유족을 중심으로 연대의 지경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참사 200일을 보내면서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국회 앞에 농성장을 꾸렸다. 참사 228일째 되는 6월 13일부터는 유가족과 시민이 날마다 시청 앞 분향소에서 국회 앞 농성장까지 무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야 4당이 연합하여 추진 중인 ‘이태원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기구 설치를 위한 범국민적 특별법 제정’은 사실과 진실로 다가서기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이제 별 가족은 거리와 광장의 투사가 되었다. 얼마 전에 감옥에 있던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병보석으로 석방되자, 그들은 “박희영이 공황장애면 우린 산 시체”라며 용산구청을 찾아가 강하게 면담을 요구하였다. 하늘을 찌른 분노는 여전히 서슬이 퍼렇다.
왜 권력은 평범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드는가? 세월호든 이태원이든 권력을 쥔 국가는 기억을 빨리 과거로 만들려고 한다. 책임자들은 더 멀리 미래로, 무한 책임이 아닌 무책임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그럼에도 공감의 능력이 식지 않는 한 이 참람함에 대한 분노와 아픔, 연민과 연대는 땅끝까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