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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시명산.
(기장 장안사)
2010. 07. 26
- 칠월의 태양은 푸른 숲 위로 폭염을 쏟아 붓는다. 숲을 나온 바람은 빈 터에서 잠자리처럼 멤 돌다 숲으로 돌아가고 나무의 높은 곳에서 매미는 토해내듯 처절하게 울어댄다. 인고의 세월을 떨쳐버리려 함인가 울음은 그악스럽다. 해마다 칠월의 날들은 그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는 가 보다. 홀로 산행에 재미를 붙이면서 온전하게 시간이 나는 날은 거의 산행을 간다. 술도 독작(獨酌)이 대작(對酌) 못지않게 맛과 풍류가 있듯이 홀로 산행 역시 무리산행과는 또 다른 맛과 끌림이 있다. 스스로 따른 술 한 잔과 홀로 걷는 걸음걸음에는 닮은 듯이 온갖 상념들이 묻어난다. 취기가 돌고 상념의 끝자락에서 기분이 좋아 지듯이 상념에 잠겨 능선의 봉우리를 하나 둘 넘어가면 어느 순간 표현 할 수 없는 희열이 온 몸을 휘감고 소름마저 돋으면서 마음은 평온 해 진다. 저기 동해바다에는 검푸른 물빛이 일렁이고 포말(泡沫)로 부서지는 파도의 아우성이 가득하다. 아 여기는 아득한 날에 동해의 바닷가에 와서 수백m를 치솟은 산들의 봉우리이다. 수평선과 나란히 뻗은 산줄기를 걸으면서 뜬금없이 고래를 생각한다. 귀신고래, 선사시대의 사람들도 알고 있는 그 고래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고래가, 귀신고래가 동해바다 깊은 물에 돌아오는 날 내 상념의 바다에는 무엇이 돌아올까 -
천년사찰 장안사는 숱한 산봉우리가 돌아가며 병풍처럼 둘렀다. 사찰 앞에 흐르는 계곡수는 물고기가 살 만큼 맑다. 입장료도 없고 주차비도 없지만 깔끔한 화장실과 예쁜 바닥벽돌을 깔아 놓은 넓은 주차장을 보면서 장안사 가람(伽藍)을 다스리는 큰 스님의 성품을 짐작하겠다. 이런 것이 자비가 아닐는지. 들머리는 작은 주차장에서 조금 내려와서 화장실과 연결 된 계곡의 다리를 건너면 화장실 뒤로 이어지는 된 비알이다. 콧등이 닿을 만큼 경사는 엄청나다. 10분 걸려 전망대에 이르고 다시 10여분 뒤에 능선에 오른다. 시작부터 들숨과 날숨으로 콧구멍은 풀가동이다.
전망대와 능선에서 내려다 본 가람의 모습은 너무나 아늑하다. 부처님을 모신 곳은 하나 같이 명당이려니.. 길은 능선을 따라 외줄기로 이어지고 무성한 숲은 따가운 볕을 가려준다. 수림(樹林) 사이로 흩어진 볕의 조각들이 하늘의 별을 닮았다. 하늘에는 별이 뜨고 땅에는 빛의 조각들이 피어난다. 산길 주위에 작은 버섯들이 보인다. 모양도 색깔도 가지가지다. 칠월의 낮은 길고도 길어서 해는 아직 중천에도 못 갔으니 서두를 것 없이 디지털그림으로 담아 갈 밖에.
능선에 올라서 10여분이면 헬기장을 만나고 또 20여분이면 아래삼각산이다. 여기서 동쪽으로 동해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저 깊고 푸른 바다에는 고래가 산다지? 울산으로 뚫린 고속도로너머 기장바닷가와 고리원자력발전소도 보인다. 다시 10여분이면 본래의 삼각산이다. 하봉과의 고도차이는 정확히 107m다. 여기서는 해운대cc가 얼핏 보이는데 산을 깎아먹고 필드를 만들었으니 옛 산길은 끊어지고 없다. 창녕성씨묘비를 지나서 5분이면 석은덤과 시명산으로 갈라지는 3거리를 만난다. 이정표 뒤로 경고판이 기우뚱하니 서 있다. 이제부터는 사유지이니 출입을 하지 말 것이며 말을 안 듣고 cc 안으로 산행을 계속하다가 일어나는 안전사고는 니 알아서 할 것이고 사유지 침입으로 고발해서 처벌까지 받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골프공에 맞으면 중상 아니면 사망인데 죽을 동 살 동 모르는 사람을 고발해서 처벌까지 하겠다고? 아 쓰벌 더럽게 겁나네..
적반하장격인 공갈성경고문에 충격을 먹었는지 어쨌는지 이정표가 가리키는 시명산 길을 놔두고 눈 뜬 장님처럼 석은덤 가는 길로 갔다가 되돌아온다. 어처구니없게도 30분 넘게 공포의 알바산행을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길가에 핀 꽃들이 어여쁘다. 쓸데없이 힘은 뺐지만 꽃들을 보았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다시 방향을 잡고 가는데 안내표지판 하나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정에 의해서 산행길이 변경되었으니 대단히 죄송하다는 내용인데 끝까지 다 읽어보기 전에는 안내판을 골프장에서 세운 줄 알았다. 그런데 암만 생각해봐도 골프장은 아닌 것 같다. 골프공에 맞아서 사경을 헤매는 사람을 고발이니 처벌이니 하는 싸가지 없는 족속들이 죄송해 하는 안내판을 세울 리는 만무하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골프장의 싸가지 덕분에 봉우리만 하나 더 넘게 생겼다.
봉우리에 올라보니 골프장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빼곡히 들어 선 차들을 보면서 골프공화국임을 실감한다. 동해바다는 이제 많이 멀어졌다. 시간은 어느 새 오후 1시 20분이다. 우선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을 박아 놓고 도시락을 꺼낸다. 찬은 김치와 고추,깻잎장아찌 그리고 방울토마토가 전부다. 아 참 간단하다. 여럿이 함께 하면 찬이 가지가진데 요럴 땐 살짝 아쉽다. 그러나 찬에 미련을 두면 가다가 메뚜기뒷다리에 걸려 배낭을 멘 채로 몽땅 엎는 수가 있느니 이것도 감사하게 먹을 일이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꺼내고 집어넣고, 1시간이 금방이다. 후딱 물을 끓여서 커피와 다시마차를 타먹고 오후 2시 15분, 시명산을 향해 간다. 시명산에 이르기 전에 투구봉에 오른다. 투구봉 가는 길은 호젓한 오솔길이다. 여기도 산그늘이 품은 버섯이 제법 있다. 점심자리에서 40여분 걸렸다. 봉우리에는 표지석 대신에 멋진 글귀가 적힌 석판이 있다. “산은 침묵으로 가르친다”
투구봉이 이번 산행의 거의 절반 지점이다. 오후2시 59분, 알바30분과 점심시간 1시간을 빼도 3시간을 걸은 셈이다. 여름 해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갈 길이 멀다. 투구봉을 내려서니 곧 바로 매곡과 장안사계곡으로 갈라지는 고갯길의 사거리다. 지도상의 시명산은 곧 바로 가야한다. 40여분 걸려서 드디어 시명산이다. 675m의 제 일봉이다. 아직도 660m의 불광산과 400m의 고만 고만한 봉우리들을 몇 개나 넘어야 되지만 이제부터는 줄 곧 내리막길이다. 10여분만에 불광산 바로 밑의 표지판을 만난다. 대운산까지 2km지점이다. 불광산을 넘다가 또 버섯을 본다. 바위틈에 붙은 손톱만한 것은 앙증맞고 제법 손바닥만큼 큰 것은 갓이 벌어져서 먹음직스러운 크림빵을 닮았다. 산은 나무와 풀과 꽃과 그리고 온갖 버섯들을 형형색색으로 빚었다. 그 고운 빛깔과 모양에 이끌려 디지털그림을 정신없이 박아낸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파공음은 습한 공기를 타고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댄다. 오후4시 44분, 갑자기 허기가 든다. 불광산을 넘기 전에 마지막 남은 복숭아 한 알을 먹었고 2L물주머니도 바닥이 났다. 다행히 다른 수통에 차 한잔 끓일 물이 남았다. 버너에 불을 붙이는데 "쑤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바람이 불어 닥친다. 일진광풍이 이런 것일까. 퍼져 앉자 말자 산행 내내 거머리 같이 따라 붙던 모기떼가 종아리로 득달 같이 들러붙는다. 그래 여기까지 악착스레 따라왔는데 느그들도 먹어야 살지.. 잠시 잠깐 맨살의 종아리를 온통 내 맡겼더니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울퉁불퉁 밤송이가 된 종아리가 가려워 걸음마저 불편하지만 그래도 차 한잔으로 급한 허기는 면했다. 드디어 척판암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척판암은 장안사의 지척에 있는 암자다.
척판암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424m 봉우리 하나가 남았다. 마무리을 향한 고비답게 비알이 보통이 아니다. 꼭대기로 가는 길은 나무말뚝을 박고 굵은 줄로 엮었다. 그나마 방부목으로 계단을 만들지 않아서 오르기가 한결 수월하다. 오후 5시 21분, 꼭대기에 닿는다. 투구봉에서 거의 2시간 30분 거리다. 바위 끝에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장안사 가람이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너머 낮은 산봉우리 뒤로 동해바다가 짙은 해무에 잠겼다. 이제 발아래가 바로 척판암이다. 산모통이를 돌자말자 척판암 산신각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높다란 계단 끝의 유리벽 안에서 산신은 좌정하고 동자승은 시립한 채 동해바다를 향해 있다. 척판암의 산신각은 볼 때마다 기괴한 느낌을 받는다. 벼랑에 매단 산신각은 상식을 벗어났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계단 역시 그러하다. 그렇지만 여기는 신라문무대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 한 천년암자다. 장안사본당과 척판암의 암자는 지금 새 단장 중이다. 결이 고운 소나무를 정성으로 다듬어서 기둥과 서까래며 기와까지 새로 얹었다. 속세 대중의 시주(施主)로 이루는 불사(佛事)는 정성과 깊은 불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용왕각의 용왕과 벽화는 불화(佛畵)가 그러하듯이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온통 바위투성이의 벼랑 아래에 있는 척판암에 물이 솟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물탱크에 가두었다가 꼭지까지 배관으로 연결한 탓에 산중 암자의 범상하지 않은 물맛은 잃어버린 것 같은데 차를 몰고 와서 큰 통으로 몇 개씩 받아가는 것을 보면 좋은 물임엔 틀림없다. 암자의 작은 뜰에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다섯 개의 분홍꽃잎이 곱고도 어여쁘다. 문 밖을 나서기 전에 척판암의 유래를 적어 놓은 알림판을 본다. 척판암은 정확히 신라문무대왕13년에 원효대사와 당나라의 태화사 그리고 천성산의 산신에 얽힌 일화를 밝혀 놓았다. 천년도 더 된 이야기는 화석처럼 오래되어서 실감이 나지 않지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 원효대사의 자비심은 천년의 시공(時空)을 아우르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장안사의 가람에서 마시는 물은 차고 달다. 대나무 대롱에서 떨어지는 물은 맑고 투명한데 돌을 깎아 만든 커다란 물받이는 물맛을 한층 시원하게 한다. 가람에는 지킴이가 둘 있다. 백구(白狗)와 흑구(黑狗)다. 흰 것은 표정이 티 없이 맑고 순하고 검은 것은 눈에서 총기가 초롱초롱하다. 가람의 터에서 두 미물에게 불심이 옮았음인가 사람 대하는데 전혀 스스럼이 없고 자연스럽다. 귀엽고 대견해서 디지털그림판을 들이대었더니 둘 다 기다렸다는 듯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가람의 문을 나서는데 종루에서 예불을 알리는 타종을 막 시작한다. “데엥~ 데엥~” 산행의 끝에서 산사의 종소리를 듣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쁘다. 오전 10시 24분부터 정각 오후 6시까지 7시간 36분, 456분의 시간 동안 장안사가람의 주변 산봉우리를 쏘다니다가 왔다. 산에 들고 나는 것이 자신의 의지라 여기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직도 계곡에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발을 담그고 산 노을 속으로 퍼져 나가는 저 종소리를 들으리라. 28天의 하늘세계와 33궁에 울려 퍼질 서른 세 번의 종소리는 영혼까지 맑게 하는 부처님의 음성이리니 듣는 이여 손 모아 합장하라.
첫댓글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독작도 하시고 대작도 하심이 어떨런지요
홀로 산행에 취하면 약도 없을낀데 부디 정신을 홀리는 글귀는 조심하
그참 대단하구만...부럼...
다지민, 산리식,초개아, 당굴빠.. ㅎㅎㅎ~ 그런거여 산다는 것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달렸으니.. 다산도, 지리도, 민식이도 다다 애틋구마는.. 안 갈 땐 가지못하는 줄 알고 가지 못 할 땐 안 가는 줄 아셔, 아 띠바 세상은 다~아 지 잘 난 맛에 살더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