扶餘國(부여국)의 扶餘(부여)는 비스(혹은 비수)로 읽어야한다고 생각합
니당.
첫째로 扶餘의 餘(여)짜는 나 余(여)로 읽는 데,이 나 余짜가 옛 발음이
[스(혹은 수)]였다고 판단됩니당. (물론 더 오랜 옛날에는 토나 투나 트
였겠지만....투(혹은 토나 트)=>터=>처=>서=>여(余).....)
이는 나余로 읽는 한자들(형성문자들?)의 현대 한국발음 가운데 몇개가
[서]로 읽히기 때문이며 이 [서]란 발음은 [스(혹은 수)]란 발음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옷이 짧은 이가 된 예(스(혹은 수)=>서=>여:에서 시옷이 짧은이가 됨)
는 葉은 [엽]으로도 읽고 [섭]으로도 읽는데 이 [섭]이란 발음이 변해서
[엽]이 된 것입니당. 시옷이 짧은이가 되서 뒤의 발음 업과 합쳐
[엽]이 된것이죠..
이는 한자발음에만 있는 발음 현상이 아니고 우리말에도 있는데 예로써
[......를 위하여]는 [......를 위해서]로 사용합니당.이것은 [위해서]
의 [서]가 [위하여]의 [여]로 발음이 변한것입니당.
또 있습니당.예가. 우리말 조사 [사]는 변하여 [야]가 됩니당.이런 현상
들은 세계 공통일 거라 생각됩니당.
[ㅅ]이 변하여 짧은[이]가 되는 겁니당.
또한 옛 역사책에, [北扶餘城州(북부여성주)]를 助利非西(조리비서)라 했
는데, 北을 [조리]라고 읽었습니당 고구리인이나 부여인이 .....고구리
의 5부가운데 北部는 絶奴部(절노부)인데 이때 北을 고구리인들이 [절]
로 읽었습니당.따라서 조리와 절이 같기때문에 [북부여성주]의 본랫말인
[조리비서]의 [조리]가 北이라는 것은 증명 되는 셈이고,[부여]를 [비서]
라 했기에 [부여]의 [부]는 [비]라고 그당시에 읽힌 것이 증명되는 것이
고..흔히 진규라는 사람이름을 준규라고 고쳐 읽듯이 [이]란 발음이 [우]
나 [으]로 변한것입니다..(金을 고대에는 [김]이라고 발음하다가 후에
[이] 발음이 바뀌어 [으] 발음이 되는 바람에 [김]이란 발음을 [금]이라
고 발음하지만 姓氏에는 아직도 [김]이라는 고대 발음이 아직도 남아 있
습니다.)
다음으로 조리비서의 [서]는 [스(혹은 수)]가 변한 발음이라서 스나 수
로 읽을수 있을것이고(고대발음으로)
따라서 [부여]의 [여]짜 발음은 [조리비서]의 [서]의 고대발음인 [스]나
[수]로 발음 된다는 걸 알수 있습니당.
또한 증거로써 우리 姓氏가운데 부여를 본관으로 하는 부여 徐氏(서씨)
가 있는데 족보에 부여 서씨는 부여씨(줄여서 餘氏)였는데 원래 백제 의
자왕의 아들 餘륭이 당으로 끌려가서 당왕에 의해 徐氏(서씨)로 개성되
어 다시 한반도로 오고 이 분이 부여서씨의 조상이 되엇다고 합니당. 여
씨(餘氏) 즉 徐氏는 당 왕조에 의해 餘와 발음이 같은 徐氏로 개성되었다
고 판단되는바, 그렇다면 餘발음은 徐의 고대 당나라시대 발음임을 알수
있습니당.徐의 고대 발음은 [스(혹은 수)]로써 이는 扶餘란 발음을 고대
엔 비스(혹은 비수)라고 했음을 증명하는 또한 증거가 된다 하겠습니
다..
이로써 [扶餘(부여)]가 [비스(혹은 비수)]로 읽힌 다는 것이 증명 되는
셈이며
扶餘(비스[혹은 비수])는 무슨 뜻인가?
비스 (혹은 비수(扶餘))는 삼국사기 잡지의 기록에 따라 [소나무]로 해
석 됩니당.삼국사기 잡지에는 [소나무]란 뜻을 扶蘇(부소),夫斯(부사)라
고 했기 때문에 이는 비스(혹은 비수(扶餘))라는 발음 과 같아서 扶餘(비
스 혹은 비수) 역시 [소나무란 뜻]으로 본 것입니당.
비스나라(혹은 비수나라(扶餘國))에는 [소나무 가 많아서] 나라이름을
[소나무 나라]라고 했거나 비스나라(혹은 비수나라(扶餘國))에선 [소나무
를 신성시 해서] 나라이름을 [소나무나라]라고 했을 거란 추측이 듭니
당.
비스나라(혹은 비수나라(扶餘國)은 [소나무 나라란 뜻을 가졌다고] 생각
됩니당.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스(혹은 비수(扶餘))라는 말은 여러군데에서 쓰이고 잇는 거 같습니
다..어디에선 나라이름으로 어디에선 성씨로 어디에선 지명으로...지명
의 예로썬....
충남 부여군의 扶蘇山(부소산)이 있는데 이는 소나무산이란 의미이며
扶餘山이라고 쓸수도 있을것입니다 발음이 같기에...
개성북쪽에 扶蘇岬(=송악산)이 있는데 이는 소나무 큰산이라 할수 있겠습
니다...
이 또한 扶餘岬(=扶餘岳)이라고 쓸수 있을것입니다
또 제왕운기에서 단군본기를 인용하여 단군이 非西岬(비서갑) 河伯(하백)
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아들이름을 부루이다라 하였는데 이
때 나온 산(비서갑)도 역시 소나무 큰산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非西岬도 扶餘岬(=扶餘岳)이라 쓸수 있을것입니다.
혹시 이 단군과 관련된 산인 비서갑은 개성북쪽의 扶蘇岬(부소갑(=송악
산)=>비스갑(혹은 비수갑이라 읽음))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단군조선
의 수도인 아사달이 개성동쪽에 있으니간요...단군 누구가 평양에서 아사
달(개성동쪽 경기도 장단군 백학산)로 수도를 옮기고 아사달과 가까운 서
쪽의 개성북쪽의 비서갑(=>부소갑=송악산)의 하백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부루를 낳은게 아닌가 합니다...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겠습니다...
月泉(월천:달샘) 仇鍾一(구종일)이엇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扶餘國(부여국)의 扶餘(부여)는 비스(혹은 비수)로 읽는다?.....
구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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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1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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