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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삼한사온 겨울 추위 기조가 안 통하는 요즘입니다.
뭐,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 옛날 기온 법칙도 이제 안 통할 때가 됐죠.
원래 2월에 등록할 생각이었는데요, 다음 주부터 바빠질 예정이라서요. 시간 있을 때 책 추천 남기려 합니다.
도서명: 신이 떠나도
저자: 윤이나
* 이 작품은 전자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통해 독서했습니다.
* 소개글 서평
겨울의 밤은 길다.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필요하다. 단, 호러 레벨이 높은 작품은 사절이다. 그냥 기담 언저리에 발가락 좀 담근 수준의 요소와 재미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이면 족했다.
♥️ 그렇게 갑종 플랫폼을 둘러보던 중 찾았다. 오컬트 요소가 적당히 함유된 휴머니티한 소설을.
《신이 떠나도》 - 문제를 풀기 위한 ‘인간’의 신명나는 굿장단!
소설의 주요 무대는 무연동 1번지, 무연맨션이다. 동네와 건물 이름부터가 참, 막막하기 그지없다. 이름 때문인지 드넓은 세상에, 의지가지할 인연도 없고, 되는 일도 없어 허탈한 이들이 주로 모였다.
그중 한 명이 쥐띠 ‘문강우’이다. 그는 실제는 4층이지만, 멘션 층수로는 503호에 마이클과 함께 거주한다. 본래 배우를 꿈꾸며 뮤지컬 무대와 소속사 오디션을 전전했으나,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꼭 중요한 순간, 타이밍이 좋다 싶을 때, 뭔가 될 것 같은 시점마다 사고를 당하거나 일이 터졌던 것이다. 심지어 믿고 의지한 누나에게마저 사기를 당했다. 그리고 거리를 떠돌다 흘러흘러 무연동 무연멘션까지 오게 되었다.
생년미상의 한국어 능숙한 외국인 마이클의 도움과 멘션 1층에서 무연부동산을 운영하는 205호 영감님 토끼띠 ‘박길순’의 호의로 겨우 비와 바람, 새벽 이슬 피할 수 있는 둥지를 틀었다. 현재는 친화력 끝장나는 ‘마이클’과 무연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태풍심부름센터를 동업 중이다.
그런 어느 날,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소녀에게서 운이 좋을 거라는 덕담을 듣는다. 길에 떨어진 지갑을 찾아준 일에 대한 감사 치고는 좀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넘겼는데 그날 하루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게 아닌가?
💸 평소 눈독 들이던 전기 자전거가 싼 값에 중고맛켓에 올라왔다. 의뢰 경로도 잘 짜여져서 당일 수입이 확 올라갔다. 팔고 싶은 물건도 임자가 나타났다. 그러나 강우의 운수 ‘좋은 날’에도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반전이 있었다. 무연멘션 505호에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맡긴 ‘자시에서 해시 사이에 청소’ 의뢰에서 그 조짐이 시작되었다.
집안 청소를 하는 그의 앞에 나타난 505호 거주민, 용하디용한 무당 ‘재림아씨’ 현재림과 그녀의 딸 현미래는 말했다. 강우가 오늘 하루 겪은 일은 전부 그들의 설계에서 비롯되었노라고. 그리고 재림은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한다. 망설이는 사람들을 살짝 밀어주는, 좋은 방향으로 일을 하자고 말이다. 그의 누나 문강은이 강우의 이름으로 사기를 친 건으로 고소를 날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재림은 왜 강우와 일하려는 것일까? 누나의 사기에 대한 앙갚음?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엄마가 마지막 문제를 풀면 돌아오실 거래.” 👻🙇♀️
재림은 본디 여의도 ‘재림아씨’로 통하며 K-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신빨을 날리던 무속인이었다. 그녀를 안 찾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찾는 고객은 없었다. 예약을 하려면 최소 1~2년 단위로 대기해야 하는 유명 무당, 그것이 재림의 찬란한 영광이었다.
그런 어느 날, 하루아침에 그녀의 신이 떠났다. 엎친 데 덮쳤다고, 그녀의 일상 전반을 관리해주던 매니저 문강은이 아파트 사기 및 금액 절도를 하고 잠적했다. 그런데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했던가?
미래에게도 여러 사달이 생겼다. 첫사랑이자 아이돌 대비조 남학생의 배신, 스토킹 누명, 교내 왕따와 폭력, 그로 인해 계단에서 밀쳐져 얻게 된 후유증 미주신경성 실신까지.
그런 일련의 사건 끝에 여의도에서 신빨 날리던 재림아씨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신이 돌아오길 바라며 각종 사찰과 명승지와 기도소 등을 전전하던 중 미래에게서 ‘꿈’에 대해 듣는다. 모전자전이라 했던가, 그녀 역시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예지몽 같은 것이었다. 미래의 꿈에 나타난 재림의 할머니는 말했다. 마지막 문제를 풀라고.
재림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문제라 함은 럭키즈엔터테인먼트의 강해진 대표로부터 의뢰받은 신사옥 부지를 찾는 일이었다. 그녀는 과거 자신의 밑에서 일하다 떠난 강은을 추적하던 중 그의 동생 강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를 찾아내면서 신사옥이 들어설 자리를 확신하게 된다. 바로 무연동 1번지 무연멘션이었다. 놀랍게도 재개발도 안 되고, 부동산 입지도 부실하며, 월세가 싼게 유일한 장점인 듯한 그곳이 ‘명당’이란다. 심지어 귀신 출몰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당’ 맞단다.
하지만 그런 무연멘션에도, 그러니까 뭔가 시대에 뒤처진 것 같은, 죽음(4)도 없고 연고(무연)도 없는, 무연멘션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203호 백말띠 ‘황민영’, 여성병원을 운영하며 알 수 없는 발신인으로부터 비난 메일을 받는 303호 백말띠 ‘신유경’ 등.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연멘션 자리에 럭키즈엔터테인먼트의 강해진 대표의 신사옥이 들어설 수 있게 해야 한다. 재림은 무연멘션의 입주민들을 내보낼 방법을 궁리하며 그곳에서 신이 돌아오길 바라기로 하는데... 🌃
그것을 위해 강우의 손을 빌리기로 한다. 신이 떠나 이제 더는 무당이 아닌 그녀에게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이 나간 건물이 싼 값에 팔릴 수 있도록 손을 쓰고, 그리하여 마지막 문제를 해결해 신이 돌아오는 것이 재림의 목표였다. 그렇게 재림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 한편 미래는 엄마를 망하게 만든 뒤 그녀로부터 떠나기 위해, 모든 일을 방해할 '청개구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과연 동상이몽 같은 그들의 작전의 결과는?
신이 떠난 자리에서 구원을 풀어내는 굿판 - 《신이 떠나도》
《신이 떠나도》라는 도서명에서 느낀 건 2가지 인상이었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신의 부재 속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인간의 성장 서사, 부정적으로는 믿음의 붕괴와 상실이 남기는 심리적 압박 혹은 공포감이었다. 또 여태껏 읽어온 동양 오컬트 관점에서 보자면, 신이 떠난 자리를 잡귀나 악귀가 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치성이든 구마든 해서 수호신의 가호를 회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 이런 모호한 예측 가운데서도 확실한 건, 좌우간 ‘신이 떠나고 없다’는 소설적 설정이었다. 남은 방법은 새로운 신과 인연이 닿아 다시 좌정하게 하든, 떠나버린 신을 다시 불러 돌아오게 하는 길뿐이었다.
“사람들이 무당을 찾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빈칸을 채우려고. 비어 있는 걸 채워서 받아들이고 싶어서.” 🙇♀️👻
책의 주요 인물 재림은 후자의 성사를 위해 노력한다. 신이 떠나서 앞날을 예지할 수 없게 되어버린 무당이란, 그 얼마나 무서운 운명에 놓여 있는 존재인가. 언제나 누군가가 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고 알려주었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된다면?
그런데 사실 그게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의 인생이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해 주고 내다봐주는 신이 없다. 그렇기에 때때로 혹은 종종, 또는 늘상 불안하고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 끝에 사람들이 왜 무당을 찾고, 점사를 보고, 하다못해 재미로 본다면서 타로카드 점이나 별자리 운세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 좀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 속의 재림의 말마따나 빈칸 채우기인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 알려주면 불안감이 덜해지니까. 혹은 이유가 없는 것 같은 불행이나 불운에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주니까.
👩🦯 개인적으로 생각컨대, 그 외에도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 외에 원망할 상대를 찾기 위함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 결과는 내 책임이 아니다 하는 식의 회피성 말이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리하여 돌이킬 수 없기에, 그만큼 인생의 무게가 무겁다는 방증이리라. 그리고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은 그 인생의 무게가 곱절로 더 나갈 테고.
그렇기에 신이 없어진 재림의 절박함이 이해가 되었다. 모르긴 해도 비시각장애인이 어느 날 갑자기 시각장애인이 된 만큼의 충격일 것이다. 수술이든 약물적 치료든, 다시 시력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에 다시 신을 만나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은, 빈칸을 채우고 싶은 재림의 마음도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서 신이 떠나고 나서야 재림은 진정 인간 세상에 발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신을 통해 알던 것을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고, 신의 계획 아래 행하던 일을 스스로의 추진력으로 실앵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요컨대, 윤이나 작가의 《신이 떠나도》는 신이 떠나버린 무당이 어쩌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삶에 진짜로 연루되어 버리는 이야기인 셈이다.
보통의 전개는 위기가 닥치고, 신이 개입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그리하여 결국 질서가 회복된다. 요컨대 ‘데우스 엑스마키나’ 식의 구성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르다. 신이 떠나고, 문제는 미궁에 빠진 채로 남아 있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신이 떠나고 다 끝나버린 자리에서, 비로소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 “강우는 스톰맨. 무당의 능력도 some kind of, super power, Right? 그러니까 재림도 히어로. 둘은 히어로즈.”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생명체이다. 한 사람을 놓고 봤을 때 그는 영원한 회색 분자일 수밖에 없다. 집안에서 잘하는 사람이 밖에서는 독하게 굴 수도 있는 거고, 가정에서 옹졸한 사람이 외부 활동은 체면 차리게 할 수도 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대우받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다.
여하튼, 회색 분자인 인간이지만, 그래도 흰색에 더 가까운지 검정에 더 가까운지 하는 농도의 차이는 있다. 무연멘션의 입주민들도 완벽하게 선하거나 완전히 이기적이지만은 않았다.
가령, 여성의원 개업의 신유경이 그랬다. 불법으로 임신중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의 사정과 정의와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시술로 인해 인생의 구원을 받았다는 여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법적인 테두리에서 보면, 유경의 행위는 엄연히 위법이었다.
유경에게 협박 메일을 보낸 범인 은영은 좀 더 심하다. 무연멘션 입주민은 아니지만, 그 주변인인 그녀는 자신의 액운을 ‘액댐’하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 비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에게 협박 메일을 보냈다. 비록 법적 또는 사회적으로 처벌이 안 된다 해도, ‘도덕적’으로는 충분히 비난받을 일이었다.
한편 황민영 같은 경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법적인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와 절묘한 상황에 낚여서 결혼을 결정한 바람에 인생이 그야말로 끝장날 뻔했다. 그녀가 결혼을 결심한 그 남자, 알고 보니 부친이 국회의원이었다. 시어머니 등살이 만만치 않을 것 같지만, 집안 좋고 남자도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결혼을 계기로 삶이 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기현수’라는 남자, 알고 보니 약쟁이에 바람둥이에 절대 상종해서는 안 될 다이옥신 배출의 온상이자 미세 플라스틱의 주범 쓰레기였다.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진짜 실현될 뻔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무속인 재림이나 딸 미래 역시 그랬다. 뭔가 초탈해야 할 것 같은 무속인 재림은 실상 누구보다 화려한 세계에 있었다.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하진 않았으나, 강우에게 접근한 동기가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엄마를 떠나고 싶다 외치던 미래는 길순의 손녀 아론이 유괴당하고, 재림이 강우를 포함한 무연멘션 사람들과 함께 그 사건을 해결하러 뛰어들자, 그 과정에서 불의의 일로 엄마가 그녀의 곁을 떠날까 두려워하는 자신을 마주한다. 참으로 모순적이다. 회색도 이런 회색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인간은 어느 방향으로도, 그 어떤 쪽으로도 다 나아갈 수 있다. 혼자서는 불안하지만, 함께한다면, 누군가 지탱해준다면, 얼마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거창하게 인류를 구하거나 우주를 지키는 등의 영웅은 아니지만, 내 이웃,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고급스럽게 표현한다면, ‘연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작은 선의가 쌓이고, 미미한 선행이 쌓여서, 결국 누군가의 삶을 아주 조금쯤 바꾼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을 무너지지 않게 받쳐줄 수도 있다. 동양 사상에서 보면 인간 개개인을 각각의 ‘소우주’라 표현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 사람은 곧 하나의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런 소소한 행동으로 한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는 건 참으로 멋진 일이다.
“세차를 하면 비가 내리는 징크스가 있어요. 오늘 세차할게요. 오늘 맑다는데 비 안 온 만큼 운을 가져가요.” 👼
소설에서 이 점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아론이 유괴사건’ 때 SNS 댓글을 통해 진행된 ‘불운 적립 첼린지’일 것이다. 참고로 소설상에서 딱히 첼린지 명칭이 나오진 않았고, 그냥 내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실종된 아론이가 무사할 수 있게 당신들의 행운을 나눠달라는 글 아래 달린 무수한 불운 적립 릴레이들은 웃긴 한편 감동적이었다. 누군가는 일부러 양말 짝짝이로 신고, 누구는 음식 배달을 시켜놓고 부러 시간 맞춰 샤워를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복 달아나게끔 연거푸 한숨을 쉬고, 또 다른 사람은 오늘의 재수가 없게끔 일부러 문지방을 밟고 서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운’을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눠주었다.
👩🦯 나도 종종 복 달아나게 한숨을 쉰다. 다리 달달달 떨면 재수가 없다는데, 내 다리는 이따금 책상 밑에서 자기 혼자 칼로리를 소비하고 있다. 특정 사업을 진행할 때, 이 많은 일감을 특정 기간 안에 다 출력 내고내야 한다는 일정이 실화냐 하며 바닥아 좀 꺼져라 하고 한숨을 쉰다. 교정을 끝내고 온 책을 검수하며 오류를 발견했을 때, 왜 이런 내용을 그 어떤 교정사도 검수지에 적지 않았냐, 이 도서 재교정 보내 말아 갈등하면서 잇새로 한숨을 토한다. 9시 2분 전인데 팀원이 출근하지 않고 자리에 없으면 정신 줄이 조금 헐거워지고 다리가 열심히 책상 밑에서 내 심경을 반영한다. 그쯤 머릿속에서는 ‘사유서’가 펄럭펄럭 돌아다닌다. 이 모든 운 없는 상황을 하루에 한 종류만 겪을 때도 있고, 세트로 와르르 쏟아질 때도 있다. 일명 ‘일진 안 좋은 날’ 혹은 ‘운 별로 없는 하루’가 되시겠다. 그때는 운인지 행운인지 재수인지 징크스인지를 저주하거나 아주 격하게 찾고 싶어진다. 오늘 하루 왜 이래?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은근 기복을 위한 풍습이 다수인 것 같다. 이사할 때 손 없는 날 택하기, 개업하면 고사 지내기, 집안에 밥솣 먼저 들여놓기 등.
반대로 우리나라는 금기도 은근히 많다. 깨지거나 금이 간 거울 후딱 밖에 버리기, 빨간색 색연필이든 뭐든 좌우간 빨간색으로 이름 쓰지 않기 등.
그만큼 살기 힘들었고, 운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일 것이다. 왜 있지 않은가, ‘운칠기삼’이란 말.
그런데 소설의 나온 상황을 보면서, 자기 운이 다른 사람에게, 더 절실한 이에게 가길 바라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오늘 하루 운이 부족했다면, 오늘 내 하루가 좀 불운했다면, 어쩌면 그 운이 다른 누군가에게, 세상 어딘가에 더 절박하게 운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지 않았을까?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세상의 이치인지 섭리인지 그런 게 있다면, 내 작은 운이 그런 좋은 일에 쓰였다고 한다면, 썩 나쁜 기분은 아닐 것 같다. 설령 오늘 운이 좀 부족하면 뭐 어떤가? 더 절실한 누군가를 위해 쓰였다는데.
🙇♀️ 심지어 무당 없이 민간에서 행하던 ‘굿’ 비슷한 것도 있었다. 그 과정을 아주 간략하게 축약하면 이렇다. 그릇에 식은 국물과 밥을 말아, 한 손에는 식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그릇을 든 채, 현관 문을 열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이거 먹고 곱게 떨어져 나갈래, 아니면 나한테 횟감 취급 당할래?
먹거리는 회유책, 칼은 위협이다. 물론 이 객귀 물리기 의식은 지방마다, 또 전하는 기록마다 다르다. 전문가 아닌 이상 괜히 쓸데없이 따라하지 마라.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말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무당을 수식하는 여러 말 가운데 하나가 ‘다리’이다. 치성이나 기복, 진혼이나 씻김 등의 의례를 진행하는 한편, 이승과 저승, 산자와 망자,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잇고,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매개 역할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 들어 다 미신이나 사기 취급되기 일쑤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기사, 사물인터넷이 기본 옵션이고, AI 인공지능이 대세이며, 챗GPT가 일상을 차지한 시대에, 무당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향한 사업은 불경기 없이 항상 호황이라지만, 누가 사주를 진지하게 보고, 누가 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일까? 📜
그저 재미로 보고, 그냥 기분상 지닐 뿐일 것이다. ‘신의 존재’는 거의 터만 남은 오늘과 소설의 《신이 떠나도》의 배경은 동일하다. 하물며 재림처럼 신이 진짜 떠난 무당은 더 논할 것도 없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무당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한다. 바로 ‘증인’이다. 그 순간 무당은 더 이상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인간의 증인으로서 더 좋은 방향으로 일이 풀리도록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렇다고 해서, 뭐 권력을 잡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고민 상담 및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그 상담이라든가 해결이라는 것도 막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저 사람이 사람을 돕고 끝내 살아가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구원’이라 하기에는 너무 소소하고, 그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 작품은 신이 떠난 세계에서 그런 ‘소박한 구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에서의 구원은 초월의 개입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이며, 문제의 해결이나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아 주는 일임을 보여준다. 데우스 엑스마키나 같은 기적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을 구하는 건 오직 사람이라고... 우리의 신은 서로가 될 수밖에 없노라고...
동시에, 책의 제목이자 일종의 슬로건 같은 ‘신이 떠나도’라는 말을 나는 ‘소중한 무언가가 떠나도’로 바꿔서 읽어본다. 나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가 어느 날 사라지거나 떠난다 해도,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삶을 버티게 해줄 만한 무언가가 우리 각자에게는 필요하다. 책은 그 또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당이 주관하는 의식을 ‘굿’이라 한다. 굿판을 벌이고 굿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사설도 푼다. 굿을 통해 복을 기원한다. 신기하게도, 그 ‘굿’은 영어의 ‘GOOD’과 발음이 같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굿을 통해 좋은(GOOD) 일을 기원하는 게 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복은 무턱대고 오지 않는다. ‘인과응보’라고 하지 않던가?
한마디로 될 수 있는 한, ‘착하게 살자’가 답이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살아야 바른 인생이겠다. 삶이라는 무대를 진짜 좋은 굿(GOOD)판으로 만들려면, 그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주체인 나부터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맞겠지.
결국 이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신은 없지만 사람으로서 스스로 만든 결말... 무속을 소재로 했으나, 결코 무속 아닌, 휴머니티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