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스 생일 축하해!
문득 들리는 동료들의 목소리에 엘리시스는 시선을 넘겼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나의 생일이었다지, 시간조차 확인이 힘든 이곳에서 어찌 그리 날짜를 잘 꿰고 있는지 자못 의구심이 들어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메이덴이 알려준건가 싶기도 하다.
"엘리시스."
"네, 에르나시스 님."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다시 시선을 옮겼다.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을 상냥히 감싸주는 듯한 포근함을 주는 이곳, 기억도 안 나는 어린 날에 요람 속에 몸을 누인 적이 있다면 만약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이런 안락한 곳에 나 홀로 있기 미안한걸, 아무리 이곳에 오래 머물어도 현실에선 1분도 채 흐르지 않는다지만 지금쯤 삭막한 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이 떠오르니 물씬 미안함이 밀려왔다.
"이제 그대의 친구들에게 돌아가도 괜찮답니다."
"네, 모든 보고를 마쳤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아, 엘리시스?"
여신이 제 의식을 있던 곳에 되돌려주길 기다리려 눈을 감은 엘리시스는 다시 들려오는 그녀의 부름에 다급히 도로 눈을 떴다.
"자칫 특별한 날을 무미하게 보내는 실수를 저지를 뻔하였네요."
"에르나시스 님..?"
"생일 축하해요, 나의 대리인이여."
"...... 아."
이건,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는가. 말 그대로 실로 상상도 하지 못한 위인에게서 받은 축하라, 그러니까 일단.
"가, 감사합니다."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는 감사 인사 하나 전하는 게 고작이었다. 정말이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떠오르는 방도가 없어 두 눈만 꿈벅이는 엘리시스에게 에르나시스는 사뭇 미소를 띄웠다. 문득 발견한 여신의 미소에 엘리시스는 방금 전만 해도 소란스럽게 생각의 탑을 쌓던 머릿속이 단번에 비워지는 것을 느꼈다.
"부디 많은 축복이 있기를 바라요."
"... 네, 감사합니다. 여신님."
진정 몇 번을 보아도 자애로운 미소구나, 그리고.
아아, 참으로 몇 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저 미소.
어쩐지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엘리시스는 입술을 짓이기며 눈을 굴렸다.
"후후."
"...?"
미세하게 찌푸려진 엘리시스의 얼굴을 보며 여신이 돌연 작게 웃었다.
"엘리시스."
"네."
"우린 왠지 참으로 닮았어요."
"!"
이런, 얼굴에 다 드러났나 보구나. 분명 불경스러운 생각일 터였다. 어떻게 한낱 인간이 감히 여신과 닮았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품겠는가. 하지만..
"은연 중에 느꼈을 테죠."
여신을 접할 때면 자꾸만 불쑥 솟아나는 이 불미스러운 느낌은 사실이었기에 엘리시스는 속내를 들킨 이 순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곧 들려오는 여신의 웃음 소리란 마치 잘못한 학생을 혼내기 위해 다가오는 스승의 발걸음 소리와 같아 엘리시스는 괜스레 제 발이 저렸다.
"이 사실엔 어떤 숨은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잘못 느낀 것일 테니까, 아무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의 생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태어난 날입니다."
다행히 이 질문은 답하기 쉬운 질문이었다.
"비단 그것이 전부일까요."
? 아니었나, 무슨 답을 원하셨던 걸까. 엘리시스의 얼굴이 의아함에 잠기며 작게 기울어졌다.
"엘리시스."
"네."
더 생각할 겨를 없이 또 한 번 여신의 부름이 이어졌다.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 걸까, 하긴 인간인 제가 여신의 의중을 파악하기엔 당연 불가능 할 것이었다. 차근차근 하릴 없는 생각들을 비워 내며 엘리시스는 에르나시스의 입이 열리길 마냥 기다렸다.
"그대는.."
"네."
"그대의 운명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나요?"
"저의 운명이요..?"
'에르나시스의 운명을 타고난 자'
그저 명예로운 전투를 행한 자의 앞에 훈장처럼 하사되는 수식어로 여길 뿐이었다. 마치 선조 지크하트의 이름 앞에 붙는 별칭, '전쟁의 신 아레스' 처럼 말이다. 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문장이 갑자기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언제나 저에겐 과분한 명명이라 여긴 이 문장이.
"필시 제가 여신님의 대리인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번에도 여신의 기대에 부응하기엔 답이 적절하지 않았다. 단순한 답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자꾸 속이 탔다.
"후후, 다음에 만날 그대가 긴 생각을 거쳐 어떤 답을 찾아낼지 벌써 기대되는군요."
이거 숙제를 받은 기분인데, 내가 잘 찾아낼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한 믿음이 현저히 낮은 엘리시스가 금세 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럼."
"네, 에르나시스 님."
일순 주위가 일렁이고 감각이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자 엘리시스는 돌아갈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시 만나요, 나의 대리인."
재회를 고하는 여신의 인사와 함께 엘리시스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팡!
"....!"
주변의 기류가 달라지고,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에게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려 막 눈을 뜨려 한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큰 소리에 엘리시스는 깜짝 놀라 오히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당혹한 얼굴을 할 뿐, 그런 엘리시스의 반응을 지켜보며 주위의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웃음기를 머금고 운을 뗐다.
"이야, 1분. 정확한데?"
가장 먼저 입을 연 지크하트가 웃음을 삼키며 능글맞게 손에 들고 있던 폭죽을 빙글빙글 돌려댔다.
".... 뭐하는.."
사람을 놀래켜 죽일 작정인가, 동료들이 터트린 것이 파티에서나 사용하는 작은 폭죽들이란 사실을 확인한 엘리시스가 일순 울컥했던 빡침을 진정시키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너의 생일을 그냥 넘길 수는 없잖아? 헤헤-"
엘리시스의 반응을 가장 즐겁게 지켜보았던 아르메가 윙크를 하며 대꾸했다. 그래, 이번에도 네가 주도한 짓이렸다. 꿀밤이라도 한 방 먹일까 엘리시스는 짧게 고민했다.
"그래서 이번엔 뭐라고 하셨어?"
"어디로 가야 할지 가르쳐 주셨어."
"근데근데, 오늘 엘리시스 생일인데 혹시 축하는 안 해주셨어?"
"정말 감사하게도 해주셨어."
헉, 엘리시스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근원지를 향해 눈길을 돌리니 그곳엔 라임이 커다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무려 여신님의 축하라니, 오늘 하루는 분명 그 어느 날보다 큰 축복이 있을 겁니다! 너무 부러워요, 선배님!"
"라임도 꼭 받을 수 있을 거야."
"헉, 감사합니다. 선배님!"
라임은 이내 두 팔을 흔들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그보다 이번 엘리 생일은 이런 데서 챙기게 되었네."
"말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
"안 돼! 파티 열어야지, 파티!"
그게 목적이로구만, 엘리시스가 지그시 노려보자 아르메는 슬그머니 그녀의 눈총을 피했다.
"애당초 시간 없어. 빨리 이동해야지."
"힝.."
"그런데 폭죽은 어디서 구한 거야?"
대체 이런 걸 이런 곳에서 어떻게 찾았담, 땅 위에 잔뜩 깔린 폭죽의 잔해를 내려다보며 엘리시스가 질문했다.
"아이가 만든 겁니다."
엘리시스의 질문에 답을 한 이는 마리였다.
"폭죽의 잔해는 자동으로 소멸할 테니 청소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렇군, 기발한데? 아이."
"엘리시스가 칭찬했다고 아이에게 전해줘야겠네요."
마리가 옅게 미소 지었다.
"다만 아쉽긴 하네요. 엘리시스의 생일을 그저 지나쳐야 한다니."
"그치? 마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르메가 동지라도 만난 듯 금세 만면에 화색이 돌며 엘리시스와 마리 사이에 불쑥 들어왔다.
"약소하게나마 하자, 응? 응?"
"여신님께서도 축하해 주셨다며, 잠깐 딴 길로 샌다고 뭐라 하진 않으실 거야."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잠자코 있던 린이 동조하자 브람이 찬동하며 한 소리 거들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엘리시스는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홀로그램으로 꾸밀까요?"
"오, 재밌겠는데?"
마리는 은근히 신난 듯 보였다. 라스 또한 마리의 제안에 은근히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그램?"
"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을 거야, 솔. 뭔가 분명 그 자리에 있는데 만져지지는 않았던 거."
그렇구나,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렴풋이 뭔가를 떠올린 솔이 납득한 반응을 보였다.
"제가 도와드릴 게 있나요?"
"리르는 나랑 같이 이것 좀 설치하러 가자."
"리르, 아르메, 그럴 시간 없다니까."
하여간 꼭 이럴 때만 귀신처럼 하나같이 단결해서 속전속결로 움직인다니까, 고맙긴 하지만 진짜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 없다고.
"너무 급하게 굴지 말게."
엘리시스의 등을 가볍게 툭- 두드리며 지크하트는 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왕 이리된 거, 잠깐 취하는 휴식이라 생각하게. 긴장 좀 풀라니까."
"지크하트..."
입장이 손바닥 뒤집듯 이토록 쉽게 바뀌는 것이었던가,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 예전엔 선조였다면 현재는 자신이라는 사실이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뭐, 저 녀석들 본심은 순수히 네 생일을 축하하려는 것만은 아닐 테지만."
말을 마치며 실없이 웃어대는 지크하트의 옆에서 엘리시스는 마냥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요새 너무 일정에 쫓기기만 했나.
"무르기엔 이미 늦었지 않나."
"맞아, 늦어도 한참 늦었지."
"생일은 즐겁게 보내야 한다구."
"옳으신 말씀입니다, 선배님."
"피하지 못한다면 즐기란 말도 있잖아."
"그래그래, 즐겁게 보내자."
"오늘 만큼은 말이지요."
"......."
축하를 받아서 기분 나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괜히 시간을 뺏는 것만 같아 미안할 따름인 거지.
"짠! 진짜로 먹진 못하겠지만 케익도 만들었지~ 기분 내자구!"
"... 하하."
"생일 축하해, 엘리시스!"
"축하드립니다."
"축하해, 대장."
다들 너무나도 고마워.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정말 고마워, 모두."
드디어 맞이한 엘리시스의 생일! 엘리시스 생일 너무너무 축하해 ㅠㅠㅠㅠ 🥳🥳🥳🥳🥳😘😘😘😘😘😘😘 앞으로도 쭉 함께하자 사랑해 엘리시스!!
첫댓글 축하합니다
(skip)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