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하나 (롬14:7-8)
로마서 배경
신약 성서는 27권이고
이중 바울이 13권을 썼다. 바울서신의 순서는 연대순이 아니라 책의 두께에 따라 배열을 했다. 로마서가 가장 두껍기 때문에 가장 앞에 있다.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3개월을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쓴 글이 로마서이다. 바울이 선교하기 전에도 로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 책을 가리켜 ‘성서 속의 다이아몬드’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듯이
다른 서신서에서 볼 수 없는 구원론의 진수가 들어 있다. 고대에 방탕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말씀을 읽고 변화되었다. 중세의 마틴 루터는 로마서를
통하여 감동을 받고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레는 그의 일기장에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모인 작은 집회에서 사회자가 마틴 루터의 책 ‘로마서 서문’을 읽을 때 회심을 체험하였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신학자인 칼 바르트에게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로마서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서신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7)
예수를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세 차례 언급되었다. 사도행전 11:26 , 26:28; 베드로전서 4:16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하여 안디옥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안디옥 사람들은 자기들과 말, 문화, 행동, 세계관 등이 다른 이상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인은 안디옥에 살고 있지만, 안디옥에 속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시민권(빌3:20)을 가지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는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가 나의 주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주인이 바뀐 것이고, 중심이 바뀐 것이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다"(빌1:2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8)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 왜냐하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3:23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전10:31)고 했다.
사는 것도 주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전반적인 삶을 지배하는 기본원리이다. 교회에서 하는 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은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과 연관되어야 한다. ‘왜 아침에 눈을 뜨는가, 왜 직장에서 일을 하는가, 왜 친구를 만나는가, 왜 공부 하는가’ 등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관학생
때 자선냄비 대신 기업모금을 했었다. 그때 유한킴벌리 인력개발 부장을 만났다. 그는 갈보리 교회 집사였다. "제 본업은 전도이고 제가
하는 일은 부업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부업이니까
소홀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일을 대하는 태도이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 28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이덕진
지난주 수요일 몰링 칼리지 학장과 인터뷰하였다. 이분은 변호사였다가, 목회자로, 신학자로, 방송인 그리고 정치인으로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무엇을
하든지 '목회자의 심정으로 한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을 13년간
주일 밤 9시부터 12시까지 일반 방송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다. 주일 오전과 오후에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밤에는
방송하고 집에 귀가하면 거의 새벽 2시가 된다. 피곤하지만 학교나 교회에서 할 수 없는 일, 방송을 통하여 복음을 안방에까지 전하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왜 정치를 하게 되었는가도 물어 보았다. "초기 호주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세워진 나라인데 점점 세속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최근 몇 년 동안에 급속화되고 있습니다. 내일의 호주를 위하여, 내 자녀들을 위하여 이제 크리스천이 일어나 적극적으로 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호주 교회가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기독교 전통을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 위하여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5월말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가 국민투표(referendum)를
통해 첫 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되면서 “호주에서도 합법화 법안 추진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럽, 북미, 남미
등 22개국 합법화 아르헨티나 벨기에 브라질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아이슬란드 룩셈부르크 멕시코(일부) 뉴질랜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아일랜드 슬로베니아 남아공화국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미국(일부) 우루과이 등 22개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있다.
죽는 것도 주를 위하여
2015년 6월호 ‘크리스찬 리뷰’에 라오스로 선교를 떠나는 백대석, 유제실 선교사와 인터뷰한 글이 실렸다.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이고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일반 선교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험하다고 해서 나라이름 대신에 L국이라고 했다. 그들은 전문인 선교사로 국제학교 교사비자를 받고
그곳에 갔다. 조금 걱정이 되어 심경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부인되는
유제실 선교사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한 것이니, 뭐 선교한다는 것에 특별하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선교란
한국에서 살던 크리스천의 삶을 L국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 부담 갖지 않고 L국으로 떠나려 합니다."
지난 월요일에 이슬람권을 선교하는 한 선교단체의 초청을 받아 설교를
했다. 선교의 사각지대인 이슬람권을 선교하는 것은 순교를 각오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증인이란 단어는 순교자이다. 자기 신앙도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슬람권의 선교가 그렇다. 어찌 이들이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떠날 수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죽음이란 땅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늘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본향으로 가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다.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동일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다르다면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살아왔던 삶에 대하여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하여 살 수는 있지만 자신을 위하여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바울은 살아야 될 이유와 죽어야
될 이유가 동일하였기에 죽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겠는가? 주를 위해 살다가, 주를 위해 죽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첫댓글 대전 장태산의 시가 있는 구멍가게,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