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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30.금 신년말씀사경회 설교
*본문; 왕상 19:18
*제목; 가나안에서 승리하는 비결(4)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
1.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보호하고 계시는지를 알고 계십니까?
유성이 내리면 아름답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유성 충돌로 인해서 생명체가 다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유성이 바로 이웃 행성인 ‘화성’에는 1년에 200개 이상의 큰 유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화성에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지구의 위성인 ‘달’에는 1시간에 1개 꼴로 유성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달 표면이 ‘크레이터’로 곰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지구는 유성이 떨어져 큰 피해를 입혔다는 보도가 전혀 없습니다. 바로 이웃의 화성과 위성인 달은 그렇게 유성이 많이 떨어지는데 왜 지구는 이토록 깨끗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지구를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지구에 창조하신 생명들과 자녀들이 있기에 친히 보호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들을 깨닫는 것입니다.
광야는 그 은혜를 깨달을 수밖에 없는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영적으로는 광야가 더 안전한 곳일 수 있습니다.
위험하기는 ‘가나안’이 더 위험합니다. 이 곳에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지 않다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곳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다 가나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위험한 곳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광야에서처럼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나안의 위험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타락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가나안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정착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늘 목축생활만 하던 이스라엘이 농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토착민인 가나안 족속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농사를 지어왔기 때문에 풍성한 수확을 거둡니다. 이스라엘이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은 자랑스러운 듯이 ‘바알신’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나안의 토착신이 바알은 풍요의 신이요, 농사를 관장하는 신이요, 비의 신입니다. 그래서 비신이 바알을 섬기는 그들이 농사의 풍성한 수확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처럼 거짓말쟁이입니다. 비는 바알의 관장합니까?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 안에 작은 욕심이 자리하면 이런 어이없는 말들을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이없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도 다 이런 이치입니다. 사탄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기에 우리를 속이고 풍요의 신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우리 신앙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 부귀, 인생의 모든 필요한 것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그 은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우리도 ‘욕심’이 그 안에 자리하면 이 어이없는 사기를 믿고 따라갑니다. 정신 차립시다!
바알 신이 돈에 대해 속임수가 이러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스라엘의 성적 타락을 가져온 것입니다.
가나안에는 바알 신과 그 아내 신이 아세라 신이 있습니다. 그 두 신이 성관계를 해서 나오는 정액이 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바알과 아세라 신전에 들어가서 난잡한 성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바알이 흥분해서 비를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그래서 이스라엘도 성적으로 말할 수 없이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난잡한 성관계로 태어난 아이들은 바알신에게 인신제사로 태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바알종교에는 도덕도 윤리도 없습니다. 계명도 계명에 대한 순종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제사만 잘 드리고, 예물만 잘 올리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신앙이 타락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이 세 가지가 그대로 지금의 신앙인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해서 돈을 정신없이 좇아갑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믿지만 삶은 욕심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돈이 명령하면 예수님의 말씀조차도 가벼워지게 된 것입니다.
성적으로도 너무나 타락한 시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의 신앙이 그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또한 예배만 드리고 헌금만 제대로 했으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만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순종에 대해서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바알신앙의 위기는 아직도 그대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3. 혼합주의 신앙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완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바알에게도 예배한 것입니다. 신앙의 영역은 하나님을 섬기고, 삶의 영역은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이것도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세상의 원칙을 따르며 어리석은 죄인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분을 강하게 거부하시고 경고하셨습니다. ‘사 1:11~17’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 1:11~17)
이제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다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은 같은 말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텔 아라스’라는 곳에 ‘성전’이 발견되었습니다.이 성전의 구조는 예루살렘의 성전 구조와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발굴팀이 지성소 앞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분향단이 2개인 것입니다. 원래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한 개의 분향단이 있어야 하는 데 말입니다. 나아가 신을 상징하는 돌기둥이 두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살펴보니 이 지방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신 아세라를 섬기는 제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남신으로 여기고, 여신을 함께 모신 것입니다.
전형적인 바알신앙과의 혼합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모습 아닙니까?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서 누리길 원하고, 부귀와 영화는 세상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모습 그 자체인 것입니다.
4.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이런 모습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혼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위대한 영적 승리를 거두고, 그 우상 제사장들을 다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영적 역사를 경험하고도 이스라엘이 전혀 삶이 바뀌지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위협도 있었지만, 이에 실망한 엘리야는 광야까지 도망을 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왕상 19:14’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왕상 19:14)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왕상 19:18’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
우리가 볼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바알신앙에 젖어 믿음을 저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여호와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칠천 명”이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칠천 명”에 드는 믿음의 자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믿음이 무너져도 여전히 순전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제 돌이키지 않는다면 ‘가나안’에 있던 우리는 다시 ‘광야’로 나아가게 됩니다. 광야는 그 믿음을 배우는 ‘믿음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믿음학교인 광야를 나와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그 믿음을 잃어버릴 때에 70년 ‘바벨론포로 광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정말 다시 광야로 나아가기 싫다면 이제 돌이키셔야 합니다.
5.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
바알신앙을 이기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포로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회당’을 만들고, 제사 대신에 말씀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장 신앙이 거룩했던 시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구약의 대부분의 성경이 이 시기에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 바로 “말씀으로 돌아가고, 순종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제 가나안을 살아가는 방법도 이것입니다. 매일 말씀으로 돌아가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때, 가나안의 삶을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복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백성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이 설교는 성도가 참된 승리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진정한 승리란 결과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이며, 은혜는 새롭게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어주신 사랑을 믿음으로 깨닫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풍요 속에서 바알 신앙의 유혹에 빠져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했던 역사를 통해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태도를 경고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순종이며, 고난 속에서도 영혼의 잘됨을 위해 인도하시는 분임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엘리야 시대의 칠천 명의 남은 자처럼, 세상의 가치관에 무릎 꿇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 신실함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