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교회는 오늘 12세기의 스페인 성인 도미니코 사제 학자를 기념합니다. 1170년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 지방의 칼라루에가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인은 사제가 되어 가톨릭교회 안에 잘못된 교리 이해로 인해 이단으로 기운 교회 내 세력과 대항하여 충실한 교리적 지식과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힘 있는 설교가로 그 이름을 떨칩니다. 이와 같은 설교로 성인은 가톨릭교회의 정통 교리를 지켜내고, 이를 바탕으로 설교와 종교교육을 담당하는 성 도미니코 수도회를 창설하여 설교와 복음의 진리 탐구에 평생을 매진한 성인이 바로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도미니코 사제 학자입니다.
이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서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새 계약, 곧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하여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을 새롭게 완성하는 새 계약이 맺어졌음을 이야기하며 그 계약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새롭게 형성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ㄴ)
이스라엘인들의 가슴에 하느님의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법을 한 자 한 자 아로새겨 그들이 행여나 그 법을 잃어버리거나 마음속에서 잊지 않도록 해 주시는 하느님. 바로 이 법과 계명으로 이스라엘인들은 한순간도 하느님의 백성이 아닌 순간이 없게 되며, 하느님 역시 단 한 순간도 이스라엘인들의 하느님이 아니신 적이 없도록, 언제나 한결같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한편,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서가 이야기하는 새 계약의 완성을 위해 이 세상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새 계약을 설명해 주는 모습을 전합니다. 언제나 예수님을 주님이자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라고 믿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3.15)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믿고 있는지를 물으신 예수님은 그 이후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그렇다면 제 3자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 너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를 누구라고 믿고 있는지를 고백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놀랍게도 예수님의 물음에 너무도 정확하고도 적확한 대답을 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평소의 베드로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적확한 대답을 현명하게 한 후, 베드로는 역시나 그의 본래 모습, 곧 단순하고 우직하면서도 성미가 급한 자신의 성격 그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메시아의 참된 모습에 토를 달며 예수님을 말씀을 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이야기하며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뜯어말리려듭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에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말씀을 건네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물음에 너무도 현명하고 정확하게 대답함으로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듣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까지도 예수님으로부터 수여받은 베드로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졸지에 사탄에, 예수님의 걸림돌이 되는 이 상황은 분명 당황스러우며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조울증 양극성 장애 환자가 아닌 이상, 이렇게 갑자기 변화하는 태도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어떤 모습에 이토록 화를 내신 것일까? 베드로는 도대체 예수님께 어떤 잘못을 했던 것일까? 사탄이며 걸림돌이 될 정도로 베드로가 잘못한 점을 과연 무엇일까?
예수님의 말씀 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자 걸림돌이라고 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ㄴ)
베드로가 너무도 잘 대답했던 그 질문, 곧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이제 곧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였을 때, 그 일들이 박해와 고난 그리고 죽음이라는 설명을 듣고 베드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끊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이 같은 행동, 곧 오늘 제 1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서가 전한 우리 가슴과 마음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법이 아닌 자신의 인간적 바람과 뜻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하느님의 뜻보다 우선시 하는 마음,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 곧 나만의 바람과 나만의 뜻 그리고 나의 인간적 의지를 하느님의 것보다 우선시 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탄이자 예수님의 걸림돌이라 이야기하신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보다 나의 인간적 뜻을 우선시 할 때 우리 역시 예수님께로부터 사탄이자 걸림돌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오늘 화답송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제물이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이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나만을 내세우고 나의 인간적인 뜻을 우선시 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계획에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길 수 있는 자세, 비록 그 하느님의 뜻이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나의 삶의 최우선 순위로 삼을 수 있는 마음, 곧 시편의 표현대로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 순종의 영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할 때에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시며 우리의 힘,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도미니코 성인은 그러한 면에서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진리의 빛을 굳게 믿으며 그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한 성인이십니다. 그와 같은 성인을 기억하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진리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굳게 믿음으로서 그 분 안에서 참된 자유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느냐?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 16,13.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