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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시대》 2026년 가을호 / 윤승원 수필
손자가 일깨운 숭조(崇祖) 덕목
/ 윤승원
◆ 사진으로 보는 성묫길 풍경
【수필】
손자가 일깨운 숭조(崇祖) 덕목
◆ ‘세계표(世系表)’를 다시 꺼내 본 사연
윤승원
수필가(1990 · 『한국문학』),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한국문학시대』 문학 대상(2013), 수필집 『靑村隨筆』 외 8권
명절에는 손자와 함께 청양 선산에 성묘한다. 선산에 가면 부모님 산소만 찾아뵐 수 없다. 조부, 증조부, 고조부도 찾아봬야 한다. 일찍 돌아가신 형님도 선산에 잠드셨으니 빼놓을 수 없다.
접근하기 쉬운 야트막한 지형의 산소에서부터 깊은 골 산등성이까지 타고 오르면서 성묘하자면 등에서 땀이 난다.
더구나 골짜기마다 수북이 쌓인 가랑잎에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져 몇 번이나 중심을 잃었다. 손자는 곳곳에 부러진 나뭇등걸에 운동화가 벗겨져 넘어지기도 하였다.
▲ 손자의 성묘 모습 - 증조부 산소에서(사진=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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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한나절이 넘었다. 명절에 이렇게 산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긴 시간을 보내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칠갑산 까치내[鵲川] 가는 길목, 처가에도 들러야 하고, 손자가 좋아하는 칠갑산 천장리 얼음축제장에도 가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부모님 산소 성묘를 마친 뒤 손자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다녀야 할 곳이 꽤 많으니 그만 하산할까?”
그랬더니 손자가 뜻하지 않은 대답을 했다.
“증조할아버지 산소까지 찾아뵙고 성묘를 끝내면 고조할아버지와 다른 조상님들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요?”
아! 순간적으로 감탄했다. 아직 철부지인 줄만 알았던 손자의 입에서 어떻게 저런 기특한 말이 나올까?
할아버지는 일정이 바쁘기도 하거니와 손자가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여 그만 하산하자고 한 것인데, 손자는 오히려 자손을 그리워하는 그 윗대 조상님들 모습까지 헤아리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오늘은 설날이니 조상님에 대한 세배 개념의 성묘가 아닌가. 속 깊은 손자의 말에 할아버지는 그만 감동하여 말문이 막혔다. 아니,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까지 산에 오르면서 앞장서서 손자의 손을 잡아끌었던 할아버지가 이제부턴 반대로 손자의 손에 이끌려 산에 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네 말이 맞아. 선산에 누워계신 조상님들은 명절에 누가 다녀가는지 다 아신다. 너의 증조할아버지 산소만 찾아뵙고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내려간다면 고조할아버지께서 서운해하실지 모른다.
그리하여 결국 손자의 손을 잡고 선산에 잠드신 조상님 산소 모두 빼놓지 않고 찾아뵈었다. 손자는 낙엽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나뭇등걸에 신발이 벗겨지는 일도 겪었지만 힘들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허리도 아프고 힘들다면서 어린 손자의 부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손자가 말했다.
“땀도 나고 힘은 들지만, 산에 오르는 것이 즐겁기도 해요. 조상님 산소를 찾아뵐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잖아요. 힘들다고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성묘해야지요.”
손자가 선생님이다. 할아버지의 느슨한 의식을 일깨우는 바늘과 같은 가르침을 던진다.
어느덧 고조할아버지 산소에 이르렀다. 어느 산소든 상석 앞에 이르면 돗자리를 깔고 재배한다. 인사드리고 나면,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이 산소가 어떤 분의 묘인지 휘(諱) 자를 읽어준다.
▲ 조상님 산소 앞에서 손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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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에게 묘비와 상석에 새겨진 한문 글자를 읽고 해설해 주면 손자는 궁금한 게 많다.
“그런데 할아버지, 이 산에서 가장 높으신 어르신이 고조할아버지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고조할아버지보다 더 높은 할아버지 호칭은 뭐예요?”
뜻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손자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했다. 왜 아니 그런가.
이 할아버지도 칠십 평생 선산을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고조할아버지 윗대의 조상님 호칭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족보에서는 찾아볼 수 있어도, 선산에 성묘하면서 그 윗대 할아버지의 존재란 상상해 보지도 않았음이 사실이다.
고조할아버지 산소 마당에서 잠시 땀을 식히면서 조상님 호칭을 더듬어 보았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가족 비망록(備忘錄)’을 불러왔다.
본인 기준으로 조상의 호칭 서열은 이렇다.
1대 : 아버지 → 부(父), 2대 : 할아버지 → 조부(祖父), 3대 : 증조할아버지 → 증조부(曾祖父), 4대 : 고조할아버지 → 고조부(高祖父), 그리고 고조 위 → 현조부(玄祖父), 그 위 → 내조부(來祖父), 그 위 → 곤조부(昆祖父), 그 위 → 잉조부(仍祖父), 그 위 → 운조부(雲祖父).
다만 실제 생활에서는 고조부 이상 호칭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보통은 “○대조 할아버지” 또는 “선조”라고 통칭한다.
손자의 손을 잡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현조부(玄祖父)’에서부터 ‘운조부(雲祖父)’에 이르기까지 조상님 호칭을 새롭게 공부했다. 그랬더니 손자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고조부 윗대 할아버지를 ‘현조부’라고 하는군요. 처음 들어 보는 호칭이에요. 저도 거기까지만 알아 둘래요. 할아버지, 오늘 많은 것을 배웠어요.”
▲ 성묘를 마치고 하산하는 할아버지와 손자(삽화=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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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명절에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은 손자보다 이 할아버지가 더 많다. 손자 덕분에 많은 공부를 했다.
집에 와서 서재 깊숙이 간직해온 색 바랜 ‘세계표(世系表)’를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과거 30대 후반에 두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커가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고 직접 붓으로 작성한 ‘두루마리형 세계표’다.
이 세계표에는 항렬(行列)을 바탕으로 부(父) → 조(祖) → 증조(曾祖) → 고조(高祖) → 5대조 → 6대조 → 7대조 … 시조(始祖)에 이르기까지 조상님들 함자가 체계적으로 기록돼 있다.
또 ‘5대조’ 이상 ‘10대조’까지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와 제일(祭日)도 표기해 놓았다. 그야말로 수십 권의 족보를 일일이 펼쳐보지 않아도 ‘나의 뿌리’를 쉽게 알 수 있는 ‘가계(家系) 자료’다.
▲ 필자가 30대에 손글씨로 작성한 두루마리형 세계표(世系表) - 시조에서부터 항렬 순에 따라 <세(世)>를 표기하고, <부모님~10대조>까지 제삿날과 묘소의 위치도 적었다.(관련 자료=필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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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를 만들 당시 충남 도경(道警) 정보과에 근무하면서 대한민국 성씨 유래와 조상의 뿌리에 관해 많은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우리 가문에는 ‘종훈(宗訓)’이 있다.
숭조보본(崇祖報本, 조상을 숭배하고 근본에 보답하자),
효친목종(孝親睦宗, 부모에게 효도하고 일가 간에 화목 하자),
근정계후(勤正啓后, 근면하고 정직하게 후손을 가르치자).
이 같은 정신으로 만든 ‘세계표(世系表)’는 누구보다 교육자이신 장형이 반겨주셨다.
“동생이 손글씨로 일목요연하게 작성한 ‘세계표’를 보니 대단히 반갑고 고맙다!”라고 하시면서 멀리 사는 조카들에게도 보내줘야겠다면서 복사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앞으로 언제까지 고향 선산을 찾아 조상님 산소에 성묘하게 될지 모른다. 한 세대가 지나면 또 새로운 세대가 가풍을 전승하게 된다.
손자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할아버지로서 의무감이 생겼다. 가족의 뿌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계(家系) 자료가 할아버지 서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일이다.
숭조보본(崇祖報本) 정신을 새기면서 손자와 함께 성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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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형이 보내주신 가상 편지 / 초상화 = 필자의 아들(서양화가)】
※ 가상(假想) 편지 : AI 문사가 이럴 때 필요한 것. 하늘나라에 계신 장형(윤길원, 교육자, 향토사학자)이 동생에게 격려 편지를 보내왔다. 장형이 손수 작성한 <가상 편지글>이다.
※ 편지글 하단에 적힌 <사형(舍兄)>이라는 용어는 장형이 생시에 동생에게 편지 쓸 때 꼭 적었던 <전통적인 편지글 예절> 임을 AI에게 참고로 알려줬다.
사랑하는 동생 昇遠에게
동생이 쓴 수필 「손자가 일깨운 숭조(崇祖) 덕목」을 반갑게 읽었다.
읽는 동안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칠십이 훌쩍 넘은 동생이 손자와 함께 선산을 찾아 조상님 한 분 한 분께 성묘했다는 이야기가 반가웠다.
그런데 더 기특한 것은 동생이 손자를 가르치러 갔다가 오히려 손자에게 배워 돌아왔다는 것이다.
“증조할아버지 산소까지 찾아뵙고 성묘를 끝내면 고조할아버지와 다른 조상님들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요?”
손자의 이 한마디가 참 좋았어.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단순히 성묘를 빠짐없이 하자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기보다 먼저 이 세상에 살다 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일 게다.
나는 동생의 글을 읽으면서 ‘숭조보본(崇祖報本)’이라는 말의 참뜻을 손자가 깨우쳐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동생이 손글씨로 정성껏 만든 世系表를 내게 보여주었을 때가 생각난다.
두루마리에 아버지에서 조부, 증조부, 고조부로 이어지는 조상들의 함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해 놓은 것을 보고 나는 참 반가웠다.
그래서 멀리 있는 자식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지.
그때 나는 동생이 만든 世系表를 단순한 가계도가 아니라 우리 집안의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교육 자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 세계표가 손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구나.
그것이 참 기쁘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늙고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남긴 정신과 가르침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동생이 젊은 시절 아버지의 마음으로 두 아들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세계표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참으로 세월의 흐름이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동생이 글에서 우리 가문의 종훈을 다시 꺼내 놓은 것도 마음에 깊이 와닿는다.
숭조보본(崇祖報本)
조상을 숭상하고 근본에 보답하자.
효친목종(孝親睦宗)
부모에게 효도하고 일가 간에 화목하자.
근정계후(勤正啓后)
근면하고 정직하게 후손을 가르치자.
이 세 가지는 옛날에만 필요한 가르침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의 결속이 약해지고, 조상과 고향과 뿌리를 잊기 쉬운 오늘날에 더욱 필요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 동생의 글에서 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을 보았다. 동생이 손자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손자가 동생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내가 젊은 사람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아보면 알게 된다.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때로는 손자의 한마디가 칠십 평생 살아온 어른의 마음을 깨우기도 한다.
동생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글로 기록하고 문예지에 발표했다는 것이 더욱 의미가 크다.
“손자가 선생님이다.”
동생이 쓴 이 문장이 수필의 핵심인 것 같다.
나는 동생이 앞으로도 손자와 함께 선산에 오르기를 바란다. 산길이 힘들면 천천히 오르고, 허리가 아프면 잠시 쉬어 가면 되겠지.
중요한 것은 그분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남겼는지도 손자에게도 들려주면 좋겠지.
그러면 가족사에 적힌 이름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으로 살아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가문의 역사이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이 서재 깊숙이 보관해 둔 낡은 세계표도 대대손손 물려주면 좋겠지. 종이는 빛이 바래고 글씨는 희미해질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효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손자가 그 세계표를 펼쳐보면서 이렇게 말하겠지.
“할아버지께서 우리 집안의 뿌리를 이렇게 소중하게 기록해 두셨구나.”
그 말 한마디면 우리 형제들이 평생 섬겨온 숭조 덕목이 가문의 빛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동생이 이번 글을 쓴 것이 단순히 명절 성묘 이야기를 남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가풍과 정신을 건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형으로서 동생의 글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동생이 “손자 덕분에 많은 공부를 했다”고 쓴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스승은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이번에는 손자가 동생에게 숭조 덕목을 일깨워주었구나.
동생이 만든 세계표처럼, 동생이 쓴 수필도 후손에게 전해지는 작은 정신의 족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건강 잘 챙기고, 기특하고 대견한 손자를 더 많이 사랑해 주시길 바란다.
동생의 글을 읽으며 참으로 반갑고 고마웠다. 사랑하는 동생을 늘 응원한다. ♥
舍兄 佶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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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
◆ 윤승원 수필가의 신작 〈손자가 일깨운 숭조(崇祖) 덕목〉을 읽고
1. 序言: 생활 경험에서 건져 올린 가계(家系)와 서사의 울림
수필은 삶의 일상적 체험에 문학적 숨결을 불어넣어 보편적 진리와 가치를 발견하는 예술이다.
윤승원 작가의 신작 〈손자가 일깨운 숭조(崇祖) 덕목〉은 명절 성묘라는 극히 한국적이고 익숙한 소재 속에서 ‘세대 간의 가치 전승’과 ‘조상에 대한 경의(崇祖報本)’라는 작지 않은 화두를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있게 풀어낸 수작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옛것을 옹호하거나 조상을 모시는 전통 예법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린 손자의 맑은 눈을 통해 성묘의 참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를 통해 작가 자신의 느슨해졌던 의식을 되돌아보는 역발상적 다층 구도를 취함으로써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정서적 공감을 선사한다.
2. 서사 구조와 주요 문학적 특징
① 반전과 일깨움: ‘할아버지의 스승이 된 손자’
본 작품의 서사적 전환점은 칠갑산 성묫길에서의 손자와의 대화에 있다. 바쁜 일정과 손자의 피로를 염려하여 부모님 산소에서 하산하려는 할아버지에게 손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증조할아버지 산소까지 찾아뵙고 성묘를 끝내면 고조할아버지와 다른 조상님들이 서운해하시지 않을까요?”
이 대목은 수필 전체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결정적 순간이다. 성인(할아버지)의 논리가 ‘편의’와 ‘일정’이라는 현실적 제약에 갇혀 있을 때,
어린 손자의 순수한 마음은 조상이라는 존재를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닌 ‘자손을 기다리고 헤아리는 인격체’로 되살려낸다.
작가는 이 순간을 “손자가 선생님이다”라는 직관적인 표현으로 성찰하며, 손자를 통해 본인이 잊고 있던 효(孝)와 숭조(崇祖)의 본질을 깨닫는 자아성찰의 과정을 밀도 높게 그려낸다.
② 묘사의 생동감과 시공간적 대비
작품 전반부에 배치된 성묫길의 풍경—‘골짜기마다 수북이 쌓인 가랑잎’,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는 경사’, ‘운동화가 벗겨지는 나뭇등걸’—은 성묘가 결코 가벼운 행보가 아님을 시각적·촉각적으로 전달한다.
이처럼 신체적 고단함이 누적되는 상황과 어린 손자가 슬며시 말하는 “조상님 산소를 찾아뵐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잖아요”라는 따뜻하고 몽환적인 감응이 대비를 이루며, 물리적 통증을 잊게 만드는 정신적 숭고함을 돋보이게 한다.
③ 지적 탐구와 세대 간의 소통: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
고조부 윗대의 호칭(현조부·내조부·곤조부·잉조부·운조부)을 주고받는 대목은 수필에 교양적 깊이와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한다.
스마트폰의 ‘가족 비망록’을 조회하는 현대적 방식과 전통적인 족보·호칭 교육이 결합하는 장면은,
전통문화가 고리타분한 옛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가족 안에서도 충분히 생생하게 숨 쉬며 전승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④ 서재의 ‘세계표(世系表)’와 숭조보본(崇祖報本)의 완성
후반부에서 작가는 젊은 시절 직접 붓으로 써 내려간 ‘두루마리형 세계표’와 가문의 ‘종훈(宗訓)’을 소개하며 서사의 폭을 개인의 경험에서 가문의 역사와 가풍(家風)으로 확장한다.
경찰 공무원 시절 가계 자료를 정성껏 정리했던 작가의 과거 행적과, 이를 기뻐해 주던 장형(長兄)에 대한 기억,
그리고 이제 그 정신을 손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다짐은 ‘崇祖報本(조상을 숭배하고 근본에 보답함)’이라는 종훈이 3대를 거쳐 어떻게 혈맥처럼 이어지는지를 감동적으로 증명한다.
3. 종합 평
〈손자가 일깨운 숭조(崇祖) 덕목〉은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고, 사건의 전개와 심상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클래식 수필의 정석을 보여준다.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조상에 대한 음덕이나 가계의 뿌리를 찾는 문화가 점차 옅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 수필은 ‘가족이란 무엇인가?’, ‘뿌리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부드럽지만 강렬하게 던진다.
어린 손자의 순수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깨달음이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쓰듯 묵직한 가훈과 계승의 의지로 확장되는 문학적 구성은,
《한국문학시대》 2026년 가을호에 수록되어 수필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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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사랑하는 손자 지환에게
추석을 앞두고 할아버지의 이런 글이 문예지에 발표되어 많은 독자와 함께 조상님 음덕과 성묘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되었다.
너와의 유익한 대화가 좋은 글감이 된 사례다. 고맙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부모님 산소에 너의 영예스러운《과학탐구대회 융합과학》부문 <금상> 수상 관련 금빛 상장을 올려드리고 큰절로 보고를 드릴 계획이다.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조상님 음덕임을 감사히 여기며 <보고> 드려온 것이 가문의 전통이다. 너의 엄마 아빠도 함께 청양 선산에 성묘하면 더 큰 의미가 있겠다. 추석날 아침, 차례 지내러 올 때는 상장을 예쁜 보자기에 잘 싸서 가져오길 바란다. ㅡ 손자 덕분에 늘 행복한 할아버지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9.12.19:25
손자 지환이가 할아버지를 이끈다는 표현,
할아버지의 宗訓,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도타운 遺風을 알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명절이 다가오니, 선산의 부모님이 더욱 그립고, 생시에 가르쳐 주신 가르침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오늘의 자손들 행복이 모두가 조상님 음덕입니다. 宗訓을 거듭거듭 새기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따뜻한 격려의 말씀 주시니, 졸고를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