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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엄마의 생일을 맞아 내의를 선물하려고 백화점을 쇼핑했습니다. 점원 아가씨가 소년에게 엄마의 옷 치수를 묻자 소년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니까 점원 아가씨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엄마의 키가 크시니, 작으시니? 또 묻기를 뚱뚱하시니, 날씬한 편이시니?” 소년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완벽해요. 우리 엄마는 굉장한 미인이거든요.” 완벽하다는 말에 점원 아가씨는 가장 날씬한 치수의 내의를 예쁘게 포장하여 소년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소년이 찾아와서 내의를 바꾸어 갔습니다. 소년이 바꿔간 치수는 내의로는 가장 큰 치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의 창속에 누군가로 고정 되어 있어야 하겠습니까?
성경은 이 질문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 마음의 창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그동안 마태복음을 통하여 우리 예수님 천국사역을 살펴보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가는 곳곳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 35절도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절 서두에 “무리를 보시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가는 곳곳마다 무리들이 모여오면 그들에게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고치시는 세 가지 사역을 하셨는데 한 곳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시를 두루 다니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예수님 무리들이 따를 때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사람을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한 영혼을 바라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마18:14.....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이처럼 우리 예수님은 한 사람을 보는 영적 마인드가 달랐습니다. 본문 36절 보세요....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우리 예수님 무리를 바라보실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민망히 여기시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민망히 여겼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에스프랑니스데'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창자를 의미하는 생리학적인 용어로 창자가 뒤틀려 아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그런 말을 하지요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프네!!~~그런 아픔을 의미하는 것이 "민망히 여겼다"는 말의 원뜻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 마음을 품고 구원받아야할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문숙어 중에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비참하고 견디기 힘든 슬픔과 고통을 나타내는 뜻입니다.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이고 哀(슬플 애)는口(입)과 衣(옷의)합 자로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입으로 자기 옷을 찟는다는 뜻입니다.
이 숙어가 유래된 것은 중국 진(晋)나라 제후인 환공이 강 길을 따라 유람에 나섰는데 유람 중에 하인 하나가 원숭이 새끼를 한 마리 잡아 왔습니다. 그러자 어미가 구슬피 울면서 무려 100여 리를 따라 온 것입니다. 주위를 살펴본 어미 원숭이는 도저히 자기 새끼를 구할 길이 없으니까 뱃머리를 들이 받으며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어미원숭이가 갑자기 죽었는지 궁금해서 어미의 배를 해부해 보니까 창자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어미는 새끼를 잃고 너무 괴로워서 창자가 다 끊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 입은 사람을 보았을 때 내 아픔으로 알고 처지가 너무 불쌍하여 창자가 뒤틀리고 끊어지는 것 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자식이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로 사경을 헤맬 때 자식을 본 부모는 무어라고 합니까? 저놈이 잘못되기보다는 내가 차라리 아프던지 죽는 것이 낫지!~~~그런 말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막내아들을 통해 그런 아픔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월호 사건을 통하여 꽃다운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모습이 우리들 마음에 지금도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지금 무리를 바라보는 마음이 단장지애(斷腸之哀)의 마음처럼 아픈 것입니다.
그런데 36절 다시 보면 우리 예수님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무엇으로 비유했나요? 목자 없는 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의 모습은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맨다고 합니다. 양이 헤맨 이유가 있어요 목자가 오랫동안 수백 마리씩의 양을 몰고 푸른 초장이 있는 곳으로 천막을 쳐가며 이동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 목자가 심한 병이 걸리거나 쇠약해지게 되어 죽게 되는 상황이 발생 한답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양 무리는 갈 곳을 몰라 헤매고 이리 저리 사방으로 흩어져 지게 된데요
성도여러분! 이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목자가 없으니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양들!~~~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는 양들!~~ 그러나 목자가 있으면 한 마리만 데리고 앞서가면 줄줄 순하게 따라온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이 목자인데 목자 없이 흩어져 있는 양처럼 우리 예수님 지금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마음을 품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 사람을 한번 보세요. 네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달리 보입니다...... 만약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우리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일본 작가 중에 미우라 아야꼬라는 기독교 작가가 계셨습니다. 일본 북쪽 홋카이도 아사히카에서 태어나 교사로써 7년을 봉사하다가 작가가 되었는데 78세로 죽었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영향력을 미친 여류작가였습니다. 그녀는 24살 때부터 13년 동안 폐결핵과 척추 질병 등으로 병상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요양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장편소설 <빙점>을 썼습니다. 인간의 원죄와 용서를 그린 내용인데 읽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빙점 소설이 1963년 당시 아사히신문사 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후 71만부라는 기록적인 판매를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번역하여 출간되기도 했습니다.(1965~) 그녀는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탤런트 김영애씨가 주연을 맡아 드라마로도 제작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우라 아야꼬를 전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에가와 다다시 청년으로 그녀가 사는 마을로 이사와 초등학교 2년 선배인데 미우라 아야꼬가 폐병 환자로 생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매일매일 각혈을 하며 투병생활을 하고 있을 때 청년이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해 준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것이죠
그녀는 각혈을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초라한 여자에게 마에가와 청년이 그녀를 붙들고 "예수님이 당신의 구주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믿으면 당신은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라며 전도하며 무려 1600통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도 청년은 전도서 말씀을 읽으라고 성경을 그녀에게 전해주었는데 그녀는 “전도자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말씀에 감명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그녀가 예수를 믿게 되고 병상에서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마에가와 청년~~ 이 여인이 나중에 일본 열도에 큰 영향력을 미칠 엄청난 작가가 될거라는 것을 알기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 청년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목자 없는 양 같은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여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누군가가 나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기에 나에게 복음을 전하여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예수님처럼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7-38....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을 비유로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하고 마음 아파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기도를 당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떤 일꾼을 원하신 걸까요?
먼저 저와 여러분을 주님이 먼저 부르셔서 천국 백성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추수할 일꾼으로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그리고 추수할 일꾼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봄이 되어 묵은 땅을 가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렸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가서 김도 메야 되지요, 거름도 물도 주어야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를 키우듯이 정성을 다하여 식물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땀을 닦으며 소망 중에 가을이 올 것을 생각합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들녘 곡식을 바라보면 이제 추수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 예수님 무리들 앞에 영혼의 추수 때를 바라보며 일꾼을 부른 것입니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오실 때가 다가왔음을 인식한다면 긴박한 마음으로 깨어 복음 전하는 추수꾼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신학교 동기로 아버지 같은 최제균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우리교회를 건축할 때 건축헌금도 하신 분이십니다. 미디어 쪽에 은사가 있으셔서 모든 도시 두루 다니시며 노년 때 젊음의 열정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폰으로 다 볼 수 있지만 30년 전 만해도 영상매체가 발달되지 않아 장로님이 영사기를 가지고 영화를 상영해주며 복음을 전파하셨던 장로님이셨습니다. 제가 거제도에서 목회할 때 광주에서 거제도까지 차를 몰고 밤에 오셨다가 기독교영화를 관람하도록 하시고 그냥 다시 광주로 가셨던 그런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고 추수할 일꾼처럼 사명을 감당 하신 것입니다. 장로님!! 천국에 가면 보겠지만 참 보고 싶습니다.
이번 주 3.18 토요일 민들레 심리 상담 회복 센터를 오푼하는 날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혼돈의 시기로 모든 분야에서 고쳐서 새로 써야하는 회복의 시기입니다. 학교교육도 교회도 나라도 경제도 회복을 부르짖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사람이 먼저 전인회복이 되어야하는데 정말 필요한 때 김민자권사님 주님이 미리미리 준비케 하시고 때가 되어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김권사님 중보기도처럼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기도제목처럼 한 영혼을 회복시키는 추수할 일꾼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추수하는 것은 기쁨입니다..... 축제입니다...... 추수할 때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모두가 내 곡식이던 남의 곡식이던 내 밭이던 남의 밭이던 다 같이 기쁜 마음으로 거둬들이는 겁니다. 이것이 추수하는 기쁨입니다.
주향성도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아셨습니까?......목자 없는 양을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부탁하신 기도......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이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