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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69번째 강연이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콜로라도주(State of Colorado)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주로서 면적 269,837 km2, 인구 약 502만 명(2011년 추계)이며, 1876년 독립 100주년을 맞는 해에 승격된 주로 "100년주(Centennial State)"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주의 남북으로 로키 산맥이 관통하고 있어 주 전체의 평균 표고가 미국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산악 지대의 주이지만, 주의 동쪽은 대평원입니다. 주도이자 최대 도시는 로키 산맥 동쪽에 있는 덴버(Denver)입니다. 주의 이름은 콜로라도강에서 따 왔으며, 콜로라도는 스페인어로 ‘붉은 빛을 띠다’를 의미합니다. 한편 콜로라도의 어원은 콜로라도 전역에 많이 산재되어 있는 특이한 붉은색 적사암(赤砂岩)들을 보고 최초에 이 지역에 들어왔던 스페인 사람들이 이 지역을 ‘Color Red’라고 호칭한 것이 변형되어 콜로라도라는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라 전해지기도 합니다. 콜로라도의 제2의 도시인 콜로라도 스프링스 인근에 공군사관학교가 있습니다. 콜로라도는 6개월 동안 눈이 오는 지역으로 유명하며, 이러한 특징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장이 많이 있습니다.
북미 대륙의 등뼈 역할을 하는 로키마운틴의 영향으로 콜로라도에는 해발 14,000피트(4,300m) 가량의 고산들이 무려 53개나 솟아있으며 미국 대륙에서 해발 10,000피트(3,000m)가 넘는 고봉들 중 75%가 모두 콜로라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각 도시들은 평균 고도 약 1,600 ~1,7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중 푸른 하늘을 구경할 수 있는 평균 쾌청일수가 296일로서 마이애미(Miami)나 샌디에고(San Diego)보다 더 맑고 아름다우며 고산지역 사막성 기후의 영향으로 약간 건조합니다.
인구의 대부분인 75%가 백인이며 나머지는 히스패닉(17%), 흑인(3.8%), 아시아계(2.2%)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 대도시 중 유일하게 흑인의 인구구성 비율이 극소수인 곳 중의 하나로서 흑인들의 인구는 주로 덴버시에 집중되어 있고, 주 전체에 한국 교민은 32,0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밋 롬니가 64개 군 중 37개 군에서 이겼으나 덴버를 주축으로 한 지역이 진보적 성향을 보여 버락 오바마가 최종 승리를 확정지었던 경합주 중 하나입니다.
▲ 오늘 강연이 열리는 덴버(Denver)의 다운타운 풍경
오늘 강연이 열리는 덴버(Denver)는 미국 콜로라도주 중부에 있는 도시로, 콜로라도 주의 주도이자 최대도시로서, 인구는 시내가 약 62만, 도시권이 약 259만으로 로키 산맥지대와 대평원 지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로키 산맥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고도는 해발 약 1600m로서, 도시의 고도가 약 1마일에 해당하므로, '마일하이 시티'(The Mile-High city)라는 별칭이 있으며, 미국 대도시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로키의 여왕’이라고도 불리며, 요양지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목축지대의 중심이며 각종 공업도 발달해 있습니다. 덴버 주민의 약 22%가 멕시코 계통이며, 흑인은 인구의 약 12%이고 아시아계와 인디언들도 소수로 살고 있습니다. 물 맑고 깨끗한 곳이며 대도시이기는 하나 크게 북적거리지 않는 편이라 느긋하게 살기 좋은 곳이고 날씨도 크게 춥지 않아 은퇴한 노인들이 많이 와서 살고 있습니다.
▲ 오늘 이동 거리 : 켄자스시티 → 덴버, 613마일(986km)
[지도보기] https://goo.gl/maps/I60uE
오전 7시 덴버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새벽 5시에 Inn에서 켄사스시티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인디애나폴리스에서부터 오늘 캔사스시티 공항까지 10일 동안 약 2,300마일(3700km)를 운전봉사해준 장형원님께 작별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로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캐나다 위니팩까지 가야 하는 장거리 운전이니 안전운전해서 조심히 돌아갈 것을 당부하시고, 내년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중부지구의 하일숙 지구장님도 중부의 10개 지역 강연을 총괄하면서 시카고에서부터 오늘까지 동행하였는데 스님께서 “그동안 수고했다”고 감사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분과 함께 그동안 타고 다닌 밴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미주 중부지역 강연을 위해 운전을 해주신 장형원님(오른쪽)과 중부지구 강연 총괄을 해주신 하일숙님(왼쪽)
수속을 마치고 공항의 Gate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으로 정일사 수련에 참가하러 떠나는 하일숙 지구장님과도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일행은 켄사스시티에서 덴버로 이동하였는데 실제 비행시간은 1시간 50분이나 시차가 있어서 오전 7시 50분에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 있으면 그 전날 밤을 꼬박 세우며 일을 하실 때가 많은데, 어제밤에도 밤을 꼬박 세우고 새책 원고 교정을 하셨다고 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미주 서남부 지구의 김명례 지구장님과 덴버 강연을 담당하고 있는 장재영님과 그 아드님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 공항에 마중을 나와 준 김명례 지구장님, 장재영님과 그 아드님
김명례 지구장님은 어제밤에 미리 덴버로 왔다고 합니다. 짐을 오늘 묵을 호텔에 내려놓고 장재영님의 댁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덴버를 방문하신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 교정을 더 보시다가 이번행사를 총괄해서 담당하시고 아침식사까지 준비해주신 장재영, 석진숙 부부의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덴버에서 아침식사를 제공해준 행사담당자 장재영, 석진숙 부부와 가족
어제까지 덴버는 날씨가 추웠다고 하는데 오늘은 기온이 올라가서 따뜻한 가을날처럼 날씨가 좋았고 약간 더운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덴버는 고도가 높아서 고산병 증상도 올 수 있는데 다행이 스님과 스텝진 중에서 두통을 호소하는 분 없이 다들 잘 적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식사 후에 강기태님이 운전봉사를 하여 잠시 로키 산맥과 덴버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공원을 방문해 멋진 풍경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 저 뒤에 보이는 눈 덮힌 산이 로키 산맥입니다
다시 시내로 와서는 오랜만에 장재영님의 보시로 한국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점심식사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서 방을 배정받고 스님께서는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늘 숙소는 Embassy Suites Denver 라는 곳인데, 오늘 강연이 이 숙소에 딸린 미팅룸에서 열리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오니 자원봉사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숙소에서 내려와 강연장에 들어서니 입구에서부터 봉사자들이 즐겁게 강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3시 50분에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스님께서는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4시부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자를 250석 준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의자가 부족했습니다. 25석을 더 추가했음에도 3시간 내내 서서 듣거나 앞쪽과 옆쪽에서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듣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약 300명이 오늘 강연에 함께 한 것 같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길을 함께 찾아보자고 하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지금 115개 도시를 매일 한 개 도시씩 강의를 하러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미국 100회 강연 일정을 잡았는데, 유럽에서도 요청이 있고, 동남아에서도 요청이 있고 해서 남미까지 가게 되다 보니까 115회 강연이 되었어요. (청중들 박수) 처음에는 까마득하더니 벌써 절반이 넘었습니다.
자, 그럼 어떤 것이든 궁금한 것은 함께 얘기를 나눠봅시다. 또 자기 할 얘기가 있는 사람은 3분 스피치를 하셔도 됩니다. 주제는 아무 제한이 없어요. 개인 얘기도 좋고, 사회 얘기도 좋고, 불교 얘기도 좋고, 기독교 얘기도 좋고, 과학 얘기도 좋고, 아무 얘기나 제한 없이 자유 방담을 하는 거예요. 뭐든지 진리에 대해서 토론할 수가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진실을 규명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이지 즉문즉답이 아닙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요. 답을 주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길을 찾아가려는 겁니다. 진리의 길로 가도록 도와주는 얘기를 설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깨달음에 관심이 많고 깨닫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달려는 분, 그리고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이 많고 깨달음에도 레벨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레벨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묻는 분, 스님께서 지금까지 전 세계 60여 군데를 다니면서 다양한 교민들을 만나고 계신데 여러 군데를 다니다보면 이민자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이슈가 있을 것 같은데 스님의 자비심으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듣고 싶다는 분, 아들이 음주운전자에 의해 갑작스럽게 죽고 모든 게 혼돈스러운데 아들을 화장한 것을 땅에 묻어야 하는지 강에 뿌려야 하는지 삼재가 정말 있는 것인지 묻는 분, 낙태 문제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미국에서도 많은 토론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이런 논쟁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지 묻는 분, 불교에서는 네가 있음으로 인해서 나도 있다고 하고 또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하는데 일체유심조란 무슨 뜻인지 묻는 분, 공부도 일종의 진리를 찾아가는 수행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수행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외로움이나 고독이 따라오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 각 질문마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강연 시간이 3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낮시간 강연이여서 스님께서 더 여유를 갖고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습니다. 매번 질문의 답이 끝날 때마다 스님께 감사의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아이들 유학을 위해 남편과 떨어져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길인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스님 말씀이 항상 주님이 저에게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사하는 마음과 회개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사업 때문에 혼자 생활하고 있고 저는 아이들과 이곳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기러기 부부입니다. 이렇게 사는게 과연 옳은지 회의가 들어서 질문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살려고 결심할 때는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가 몇 년 고생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혼자서 이곳에 와 아이 둘을 키우는 게 너무 힘듭니다. 영어를 못해서 불편하고 사춘기 아들과의 갈등,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의 갈등, 특히 기러기 엄마라는 것을 이곳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사실을 알고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눈물) 그래서 부모가 이렇게 따로 사는게 옳은 것인지 회의가 들어서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되는지 질문 드립니다.”
“어떻게 살든 그건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만약 아이를 위해서 부부가 떨어져서 이곳에 와서 아이를 공부시키면 아이의 장래가 실패할 확률이 90%입니다. 무조건 실패한다가 아니라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많다는 것을 첫째 알아야 됩니다.
두 번째는 인간의 도리상 남편이 “너 안가면 이혼해 버릴거야” 하고 정말 죽일 듯이 밀어내서 할 수 없이 와있다면 그럴 수도 있는데 내가 주장해서 왔다 한다면 이것은 부부 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아이를 핑계 대고 부부의 도리를 어긋나게 하는 것은 일륜에 어긋나는 겁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편에게 이혼을 해줘서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길을 열어주든지, 이혼은 안하겠다면 내가 여기 와 있는 동안에 남편과 함께 지낼 여자를 구해 주든지 이렇게 하고 오는 것은 차선책 정도는 됩니다. 이래야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여자입니다. 이렇게 하면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도리로 돌아간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습니다. 아이들은 여기 있겠다고 하면 그냥 두고요. 돈이 없으면 그냥 같이 데리고 가고요. 그래서 아이가 울고 불고 하는 건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면 스무살까지는 키워줘야 되는데 그것은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 보내주면 되는 겁니다. 유학까지 보내주는 건 반드시 해야할 책임 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부부가 무리해서 헤어지면서까지 유학을 시키겠다는 것은 아이를 위한 것이 라기보다는 자기의 욕심일 때가 더 많습니다.
아이가 유학보내달라고 만약 울고 불고 딩굴고 난리를 칠 때 경제적으로 형편이 안되면 “그래, 너가 돈 있으면 가거라” 이렇게 허락해주면 돼요. 이런 걸로 전전긍긍하면서 고민하거나 아이와 싸울 필요는 없어요. 부모는 아이와 싸우면 안 됩니다. 만약에 부모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성질내고 화내면서 싸우면 나중에 자식으로부터 구타 받을 인연을 짓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절대로 자식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어,그러니? 그러면 니가 알아서 가봐라. 허락해줄게” 이렇게 얘기해주면 되거든요. 아이들이 어릴 때 “밥 안 먹어!” 하고 나오면 “아이고, 잘 됐다. 안그래도 양식이 없었는데 착하네” 하고 밥그릇을 치워버리면 돼요. 그리고 저녁도 안 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 밥죠” 그러면 “아이고, 엄마가 오늘 아파서 밥을 못했는데 니가 엄마 밥도 좀 해줘” 이러면 됩니다. 아이를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아이가 검소하기를 바라면 아무리 부자라도 아이를 위해서 내가 검소하게 살아야 됩니다. 아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나를 희생하는 겁니다. 이렇게 3일만 내가 굶어버리면 이 문제는 깨끗이 해결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를 위해서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정성껏 돌봐주는 게 부모의 사랑이라면, 사춘기가 넘어서면 아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아주 냉정하게 지도해주는 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야 아이가 자립을 할 수 있거든요.
자기가 여기에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은 과잉보호에 속하는 겁니다. 아이가 왜 저항하는지 알아요? 보통 기러기 엄마들이 “이놈아, 나는 말이야. 너 때문에 아빠랑 헤어져가지고 여기와서 이렇게까지 고생하는데 너는 공부도 안하고 뭐하느냐?” 이렇게 아이들한테 얘기하죠. 그러면 아이가 절대로 밖으로는 얘기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흥, 내 때문에 왔나? 엄마가 오고 싶어서 왔지” 이럽니다. 그래서 교육이 안되고 90%가 실패하는 겁니다.
그리고 엄마가 아버지를 제 1의 가치로 두지 않는 집에서 자란 아이는 나중에 부모를 우습게 압니다. 그래서 3살 때까지만 무조건 아이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되 3살 이후부터는 딱 부부 우선적으로 지내야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우선으로 하고 아내는 남편을 우선으로 하고 아이는 뒷전으로 두어야 합니다. 만약 방 하나에 응접실 하나 딸린 집에 산다면, 부부가 응접실을 쓰면 안되고 아이가 응접실을 쓰게 해야 합니다. 인간사회에는 질서가 있어야만 하거든요. 질서를 흐트러뜨리면 공부는 잘할지 몰라도 결국 행복하지는 못합니다. 질문자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하셔서 선택을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도 버리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부부지간에도 안좋습니다.
각자 따로 살다가 결혼해서 처음 같이 살려고 하면 서로 충돌하는 게 많죠? 반대로 같이 살다가 또 서로 헤어지면 섭섭하죠? 또 헤어져서 5~6년 살다가 다시 같이 살려고 하면 힘듭니다. 사람의 습관이 그렇습니다. 또 남편과 헤어져서 살아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그리울 때가 있는 것처럼 남자가 혼자 있으면 무성애자가 아닌 이상 자기가 남편을 고문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렇다고 “그럼 너가 알아서 해결해라” 고 말하는 것도 상대를 부도덕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질문자는 사람의 도리와 심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고 여기 온 겁니다. 그러니까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두 번 생각하지 말고 내일이라도 당장 정리하고 최고로 빠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가겠다고 할 정도로 결심이 딱 서야 돼요. 아이들한테도 “엄마는 아빠한테 돌아가야겠다. 공부는 너 알아서 해라” 이렇게 얘기해 주고요.”
“남편이 유학생활을 해봐서 아이들이 부모 없이 지내는 것을 안 된다고 생각하더라구요. 남편은 제가 여기서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여기 있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합의해서 있는다 하더라도 그건 도리는 아니다 싶어요. 무조건 따라 가는 게 좋아요. 같이 살라고 결혼한 거 아니예요? 그럼 같이 살아야지요. 따로 살거면 저처럼 이렇게 혼자 살지 뭐 때문에 결혼해서 살아요? 부부가 따로 살면 많은 문제가 파생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도 절대로 좋은 게 아니예요. 저는 많은 경우 이런 상담을 하면 “딱 아이만 보내라” 그럽니다. 아이만 못보낸다고 하면 “최대로 한달만 같이 가서 자리 잡아 주고 바로 돌아오라”고 그럽니다. 한달 이상은 절대로 안됩니다. 그게 안되면 “이혼해주고 가거라” 그럽니다. 그런 정도로 원칙을 딱 지켜줘야 나중에 아이들이 행복해집니다. 이건 아이들에게도 나중에 결혼하면 부부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학습이 되거든요. 아이가 성적이 좋아서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나중에 결혼을 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도록 훈련시켜 주는 것이 가장 아이를 위하는 일입니다.
사람이란 결혼을 했으면 그 도리에 맞게 살아야 하고, 스님이 혼자 살기로 결정했으면 그 도리에 맞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자세를 분명히 하고 사는 게 좋습니다.”
질문할 때 울먹이던 질문자의 표정이 어느덧 담담해져 있었고, 스님의 답변을 듣고 질문자가 “고맙습니다” 하고 크게 대답까지 하자 청중들도 속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를 격려하는 큰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질문자까지 답변을 마치니 벌써 3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서로 맞추고 살아야 결혼생활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결혼을 할 때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러니 한 집에 같이 살려면 서로 맞춰야 합니다. 행복의 근원은 서로 다른 것을 적절히 맞추는 겁니다. 결혼이 100% 성공하려면 내가 100% 맞춰버리면 됩니다. 뭐든지 ”오케이“ 해버리면 아무 문제 없어요. 이렇게만 할 수 있으면 길가는 아무 여자나 아무 남자를 만나도 하나도 문제가 안돼요.(청중들 웃음)
그런데 다 자기를 움켜쥐고 살려고 해요. ‘너가 나한테 맞춰라’고 요구하니까 100% 실패하는 겁니다. 같이 살긴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억지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최소한 자기 권리의 절반은 버려야 합니다. 절반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으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고, 절반을 버릴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은 결혼할 준비가 안된 것입니다. 양보를 안 하면 다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절반은 딱 접어줘야 합니다. 절반 접으면 절반 성공합니다. 내가 절반을 접어도 상대가 100% 자기 식대로 하겠다고 하면 나머지 절반은 해결을 못합니다. 그래서 놓아버려야 돼요. 기독교 신자라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놓아버리면 문제가 풀려져 버립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참선하고 염불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아서 해결을 하고, 그래도 못하면 과보를 기꺼이 받고, 과보를 받기 싫으면 힘들어도 고치고, 이렇게 적응해가면 사는 게 재미있어요.
다람쥐가 도토리 없다고 자살하는 거 봤어요? 그런데 사람이 다람쥐보다 낫다고 그러잖아요. 그럼 다람쥐보다는 나아야 하잖아요. 다람쥐는 괴롭지도 않지만 특별히 기쁜 것도 아니예요. 그냥 사는 거예요. 우리가 기쁘면 다람쥐보다 나은 거고, 괴로우면 다람쥐보다 못한 거예요. 괴로워하면 짐승보다 못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마음의 원리를 알아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가 행복하게 해주는게 아닙니다. 모두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청중들도 3시간 넘게 열강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이 너무 쿨하고 코메디언보다 더 재미있었다” 합니다. 또 어떤 분은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자발적으로 모인것은 처음있는 일이고, 기독교인들도 많이 참석한 것 같아 놀라웠다” 하면서 “내년에도 스님께서 꼭 덴버를 방문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각 질문 끝에 스님께서 정리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것이 참 좋았다”고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스님 말씀은 정말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유튜브로만 보다가 이렇게 실제로 뵐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장에서는 준비한 책이 모두 판매가 되어서 책을 더 구입하고자 하는 분들께 드릴 수 없어서 죄송했습니다. 그 열기와 더불어 스님께 사인을 받기 위한 줄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질문도 하시면서 인사도 하고 사진 촬영에도 응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수고해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외국인도 2명이나 자원봉사를 했는데 스님께서는 그분들께도 단주를 끼워주시면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이후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외국인들을 포함하여 32명이나 되었습니다. 카톨릭 신자라고 하신 한 분은 “최근에 언니를 잃었는데 스님의 유튜브 “엄마 안녕 잘가” 편을 보고 많이 좋았졌으며, 아직 눈물은 나지만 마음은 힘들지 않다고 하면서 스님이 이곳 덴버에 오신다고 해서 더욱더 봉사를 하고 싶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분은 “이번에 자원봉사를 신청하면서 정토회 홈페이지를 통해 스님께서 하고 있는 평화재단과 정토회의 활동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칠순을 넘기신 어르신은 “스님의 하루를 보기 위해서 새글이 올라올 때까지 매일 밤 12시까지 기다리고 있으며, 매일 매일 정말 기다려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분은 “스님 법문을 영어로 더빙해줄 수 없냐?”고 물어보면서 “2세들이 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다들 이번에 함께 봉사를 하면서 너무 즐거웠기에 이곳 덴버에도 정토회 모임이 새로 생겼으면 한다”고 바램을 나눠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 행사를 마치고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는 봉사자들
오늘 봉사자들의 마음을 들어보니 정말 홍보를 열심히 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학생들이 많은 인근 볼더(Boulder)까지 홍보했다고 합니다. 다들 개신교, 카톨릭 등 종교가 서로 달랐지만 유튜브로 스님 법문을 보며 많은 도움을 받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봉사할 마음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홍보하는 도중에 외국인들도 강연에 참가하고 싶다고 문의를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는 왜 정토회 모임이 없냐는 질문도 하고,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 강연도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이분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세계 100강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뒷마무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오늘 강연을 3시간이나 하다보니 목도 아직 좋지 않는데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시면서 “행사를 준비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먼저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7시 40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과의 마음나누기 후에 김명례 지구장님과 장재영님 가족이 스님께 인사를 하러 숙소로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행사의 총괄 책임을 맡아 준 장재영님과 석진숙님께 수고많았다고 하시면서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자원봉사도 하고 또 운전봉사까지 한 아드님께는 영문기도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 부모님과 함께 오늘 하루 운전과 강연준비 자원봉사를 해준 장재영님의 두 아들
오늘 저녁은 이강승님께서 보시를 해주셨는데, 특히 저녁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시락까지 정성껏 다 준비해 주셨습니다. 책이 부족해 선물로 드릴 여분이 없었는데, 마침 라스베가스 강연에 오신다고 하여 그때 책을 선물해 드리기로 하고 준비해 주신 도시락으로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 내일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오늘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69번째 콜로라도주 덴버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0번째 강연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