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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성인 잠든 곳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성지는 한국교회 선조들의 거룩한 숨결이 밴 신앙의 요람이다. 바쁜 일손을 잠시 놓고 가족과 함께 성지로 떠나보자. 나태해진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것은 물론 가족 사랑 또한 한층 두텁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평화신문은 성지순례에 나선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자 전국 유명 성지와 인근 명소 그리고 신자가 운영하는 맛집을 한데 묶어 소개하는 '맛과 멋, 그리고 성지순례'를 연재한다.
달빛 아래 은하수 '미리내'
성 김대건 신부 유해를 처음 모셨던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는 이름부터 참 예쁘다. 지금이야 길이 잘 뚫려 서울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 됐지만 200년 전만 해도 이곳은 그야말로 심산유곡(深山幽谷)이었다. 박해를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으로 와서 삼삼오오 모여 살았던 신앙선조들, 밤이면 그들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달빛 아래 냇물과 어우러져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바로 은하수의 순 우리말인 '미리내'다.
성지에 도착하면 우선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든다. 산으로 빼곡히 둘러싸인 성지가 그만큼 넓고 포근하다. 답답한 도시에 사는 신자라면 가슴 속 응어리가 저절로 녹아내리는 기분일 것이다. 공기는 또 얼마나 달고 상쾌한지 모른다.
성지 입구에는 '미리내성지'라는 표지석과 함께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임은 가시고'라는 시비가 순례객을 맞는다. 시비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임은 가시고 진리는 왔습니다. 피로써 가꾼 땅에 무궁화 피나이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향기 가득합니다."
짧은 몇마디 글이지만 의미가 그윽하다. 오늘날 삼천리 방방곡곡에 가득한 복음의 향기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우며 이곳을 순례하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한다.
성지는 입구에서 정면 광장을 지나 곧장 걸어가면 나오는 김대건 신부 묘소와 입구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나있는 게쎄마니 동산을 중심으로 하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오른쪽 언덕길을 오르는 길을 잡았다. 김대건 신부 묘소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할 뿐 아니라 미리내성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만큼 맨 나중에 순례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오른편 언덕에는 게쎄마니 동산 말고도 들를 데가 많다. 올라가면서 차례로 둘러보는 것보다 꼭대기까지 올라간 다음 내려오면서 차분히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이 힘이 덜 들 것 같아 먼저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다. 시원하고 조용한 푸르른 숲길이었다.
꼭대기는 게쎄마니 동산이다.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자고 있는 제자들 모습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았는데, 평소 신앙생활이 게으른 탓인지 아무 생각 없이 잠들어 있는 제자들이 남 같지 않았다. 한참 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성지 인근에 흩어져 있던 무명 순교자 유해를 한데 모은 16위 무명 순교자 합장묘와 함께 '성인 요한 이윤일 천묘(遷墓) 사적비'가 있다.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한 이윤일 성인도 원래 여기 묻혔는데, 대구대교구가 이윤일 성인을 현양하면서 1986년 성인 유해를 관덕정으로 모셔감에 따라 사적비를 남겨 이를 기념하는 것이다.
무명 순교자 묘 바로 아래는 수원교구 성직자 묘역이다. 아는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오랫 동안 수원교구장을 지내며 교구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김남수 주교(1922∼2002)와 성라자로마을 원장으로서 나환우들의 둘도 없는 벗이었던 이경재 신부(1926∼1998)를 비롯한 수많은 사제들이 거기 누워 있었다. 몇몇은 생전에 뵌 적이 있는 분들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층층으로 돼 있고 위에서부터 채워 내려오는 성직자 묘역에는 4개 층이 빈 채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곳에 묻힐 수원교구 사제들을 위한 것이다. 사제들이 1년에 한번만이라도 이 묘역에 들러 일평생 하느님만 따르다가 이곳에 잠든 선배 사제들과 말없는 대화를 나눈다면 사제직을 수행하는 데 그보다 더 좋은 영성수련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어디 사제뿐일까. 그 누구든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언젠가는 죽어서 저렇게 흙 속에 묻힐 인생, 하느님 앞에서 부끄럼 없도록 그분 뜻만 좇아 살다 오라는 고인들의 가르침이 귓전에 울리는 듯했다.
그림같이 예쁜 경당에 성인 유해 모셔
미리내가 성지인 가장 큰 이유는 순교자 김대건 성인 묘가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자들 존경을 한몸에 받고있는 한국교회 첫번째 사제 성 김대건(1821∼1846) 신부.
성지 입구에서 성지 왼쪽 구석 끝에 있는 김대건 성인 묘까지는 사실 멀다고는 할 수 없는 거리이다. 하지만 초여름 한낮의 뙤약볕은 무척이나 따가웠다. 차를 타고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차가 못 들어가게 입구에서 막고 있었다. 설사 차를 들여보낸다 하더라도 차를 타고 횡하니 가는 것은 성인에 대한 도리가 아닐 듯 싶었다.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성인을 만나러 가는 데 그깟 조금 걷는 것이 대수일까.
너른 밭과 광장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서 빙 둘러 왼쪽 끝에 있는 묘소까지 걷는 20여분은 둘도 없는 산책길이다. 한적할 뿐더러 차 피하느라 신경쓸 필요도 없다. 날씨가 좋든 볕이 뜨겁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는 것보다는 신자답게 뭔가를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걷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묵주기도 각 단을 돌에 형상화시켜놓은 조각이 눈에 띄었다. 그러면 그렇지! 기도, 특히 묵주기도 하면 우리나라 신자들이 가히 세계 대표급 아닌가.
묘소까지 길목길목에 서 있는 묵주기도 조각들을 지나며 묵주기도 5단을 다 바칠 때쯤이면 김대건 성인 동상이 순례객을 반갑게 맞는다. 묘소 입구라는 표지다.
동상을 뒤로 하고 김대건 성인 묘소쪽으로 올라갔더니 너른 소나무 숲이 나왔다. 땡볕에서 한참 걷느라 너무나 그리웠던 그늘이다. 공터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선 소나무 숲 아래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자니 별천지가 따로 없다. 김대건 성인의 넋이 깃들어서일까. 성인의 묘소와 경당 앞에 있는 소나무 숲은 순례객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편안하게 하는 신비스러운 힘을 지녔다. 그냥 쉼터로 봐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자연 공원이 바로 경당 앞이다.
1928년에 완공된 김대건 성인 경당은 또 얼마나 아담하고 예쁜지 모른다. 하얀 벽돌에 빨간 지붕. 한폭 수채화 같은 경당이다. 경당 안으로 들어가자 경당을 안내하는 수녀가 순례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김대건 신부 발뼈 유해에 입을 맞추고 수녀에게 김대건 성인의 생애를 들었다. 익히 들어온 것이지만 김 신부가 처음 묻혔던 곳에서 그분 유해에 입맞추고 난 다음에 듣는 이야기는 또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경당 구내에는 왼쪽부터 강도영 신부, 김대건 신부, 페레올 주교, 최문식 신부 등 모두 네 분의 묘가 나란히 있다. 김대건과 최양업에 이어 한국교회 세번째 사제인 강도영(1863∼1928) 신부는 초대 미리내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죽을 때까지 34년간 사목하며 김대건 신부와 페레올 주교 묘소를 단장하고 지금의 경당을 건립한 이.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1845년 김대건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페레올(1808∼1853) 주교는 "거룩한 순교자 곁에 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묻혔다. 최문식(1881∼1952) 신부는 한국교회 19번째 사제로, 미리내본당 3대 주임을 지낸 분이다.
잘 모르고 이곳을 찾은 이는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경당에 있는 김대건 성인 묘는 사실 빈 무덤이다. 성인이 순교한 곳은 서울 용산의 새남터. 성인 유해가 고향도 아닌 이곳 미리내로 모셔진 연유는 순교 40일 후 성인 유해를 거둔 이민식(빈첸시오, 1829∼1921)의 고향이 바로 미리내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오늘날 미리내 성지를 있게 한 이는 다름 아닌 이민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인 유해는 1901년 서울 용산에 있는 예수성심신학교 성당으로 옮겨졌다가 1960년 다시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에 안치하는 과정에서 하악골(아래턱뼈)만 분리해서 미리내성당으로 옮겨왔다. 결국 온전한 성인 유해가 이곳에 묻혀 있었던 기간은 1846년부터 1901년까지 55년간이라고 볼 수 있다.
경당 왼편에는 성인의 어머니인 고 우르술라와 이민식이 나란히 누워 있다. 7년 사이로 남편과 아들을 여의고 이집 저집 문전 걸식을 하다시피하며 눈물겨운 삶을 살았던 고 우르술라는 이민식에 의해 아들 묘 옆에 모셔져 생전에 함께 있지 못한 한을 풀었다. 아침 저녁으로 성인의 묘를 보살피던 이민식도 92살까지 장수하다가 성인 옆에 묻혔다. 그야말로 선종(善終)했을 것이다. 미리내는 김대건 성인이 처음 묻혔던, 그래서 그분의 얼을 되새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김대건 성인과 관련된 많은 이들의 삶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성지이다.
묘소를 둘러보고 나올 때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쪽 길을 택했다. 미리내성지를 소개하는 사진이나 책자를 볼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요새같은 건물이 1991년에 세워진 103위 시성 기념성당이다. 성당 1층에는 103위 성인들 이름을 한명씩 적은 휘장이 빙 둘러싸고 있으며, 2층에는 순교 장면과 형구들을 모형으로 전시해 놓고 있다. 순교의 고통을 절절이 느끼게 해주는 곳으로, 꼭 한번 둘러볼 만하다.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14처를 지나 다시 성지 입구에 이르렀다. 광장을 중심으로 성지를 한바퀴 돈 셈이다. 스피커에서 잔잔한 성가가 흘러나왔다. 순례객을 배웅하는 김대건 성인의 포근한 음성인 듯했다.
글=남정률 기자njyu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heelen@pbc.co.kr
가볼만한 곳
안성이 1919년 3ㆍ1만세 운동 당시 평북 의주, 황해도 수안과 함께 3대 항쟁지로 꼽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세 곳 가운데도 가장 격렬했던 안성은 특히 다른 지역과 연계해 조직적으로 맞선 것이 아니라 농민들을 주축으로 전 주민이 참가했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당시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만세고개에 있는 안성 3ㆍ1운동 기념관은 이 지역 3ㆍ1 운동 항쟁사와 국난 극복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지상 2층 374평 규모인 전시관은 이 지역 만세운동과 관련한 유물과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펼쳐진 시위운동 및 역사적 자료들을 실물 크기 전시와 모형, 체험관, 영상물 등을 통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구내에는 순국선열 위패를 모신 광복사와 3ㆍ1운동 기념탑도 있다.
기념관은 미리내성지에서 안성시내로 나와 경부고속도로 안성IC 방향인 38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기념관 푯말이 나오는 23번 도로로 꺾어 10㎞정도 가면 나온다. 문의: 031-651-0741.
안성시내와 경부고속도로 안성IC 중간쯤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입구에 있는 안성맞춤박물관도 어린이 교육을 위해서 한번쯤 가볼만한 박물관이다. △유기 역사와 제작방법, 다양한 유기 등을 전시해놓은 유기전시실 △안성 농업의 역사와 계절에 따른 농사 모습을 보여주는 농업전시실 △안성 옛 모습을 담은 사진과 갖가지 문화유산으로 가득찬 향토사료실로 나눠져 있으며, 아이들 흥미를 유도하는 터치 스크린식 설명이 눈길을 끈다. 문의: 031-676-4352.
이밖에도 안성문화관광 홈페이지(ht tp://tour.anseong.go.kr)에 들어가면 안성 지역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관광 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구봉가든-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한 옻닭 '별미'
이기종(야고보, 45, 미리내본당)ㆍ이금화(베로니카, 41)씨 부부가 운영하는 구봉가든은 맛도 맛이지만 남쪽으로 미리내 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나무 아래 시원한 야외 탁자에 앉으면 향긋한 풀냄새가 살살 올라오는 것이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풀린다.
구봉가든의 주 식단은 옻닭과 엄나무 백숙(3인 기준 각 3만원). 옻닭은 옻나무와 옻나무 독성을 없애는 한약재를 같이 삶은 물에 닭을 넣어서 고는 것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고기 맛이 혀를 녹인다. 옻닭에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한 엄나무 백숙은 옻나무 대신 엄나무로 삶는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옻나무는 위를 보호하는 기능이 탁월하고, 엄나무는 피를 맑게 하고 통풍에 아주 좋다고 한다.
구봉가든의 특징은 옻나무나 엄나무 모두 직접 산에 가서 캐올 뿐 아니라 닭도 근처 농장에서기른 토종닭만 쓰고, 쌀과 취나물ㆍ고사리ㆍ배추ㆍ고추 등 밑반찬 재료를 직접 재배한 농산물만 쓴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입에 들어가는 것 전부가 우리 땅에서 난 토종 먹을거리인 셈이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묵밥(5000원)과 묵무침(7000원)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버섯민물매운탕(3만원)도 있으며, 동동주(8000원)까지 한잔 곁들이면 신선이 따로 없다. 손님이 많지 않은 평일에는 방갈로에서 한숨 자고 가도 된다. 미리내성지 입구에 있으며, 목요일은 쉰다. 손님이 많은 주말보다는 평일에 가는 것이 좀더 여유로울 듯. 전화번호는 031-674-7822.
글=남정률 기자njyul@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heelen@pbc.co.kr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829호-830호
발행일 : 2005-07-03, 2005-07-10
▨ 성지순례 문의:031-674-1254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를 가다가 서안성IC에서 빠져나온다. 서안성 톨게이트에서 용인ㆍ안성 방면(45번 국도)으로 10분 정도 가다가 미리내성지 표지가 함께 있는 안성ㆍ고삼(82번 지방도) 방향으로 꺾어 계속 달리면 성지가 나온다. 서안성IC에서 성지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용인IC에서 나와 용인ㆍ안성 방면(45번 국도)으로 오다 보면 경부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미리내성지 표지가 있는 82번 지방도로 이어진다. 중부고속도로에서는 일죽IC(38번 국도)→안성→비봉터널→고삼(82번 지방도)→노곡→미리내성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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