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대금리 없앤 시중銀 봐주나
"수요 억제 위한 최선책"
뽀족한 억제 대책없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 듯
생업위해 필요한 돈 빌리는 서민들 위한 보완 방안 필요
재래시장에서 도매업을 하는 한모씨(50)는 최근 1년 만기 신용대출을 은행에서 거절당한 뒤, 다른 은행에서 새로 신용대출을 받았다. 추석 명절을 지낼 돈이 급했던 그는 "대출 금리가 1.5% 포인트나 뛰었지만 당장 돈이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를 핑계로 우대금리를 없애 실제 대출금리를 올리자 한씨처럼 비싼 금리에 불만을 터트리는 소비자가 늘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금리 인상이 수요 억제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지난 주말 "대출금리 가체가 올라야 수요가 억제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시중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없애 실제 대출금리를 올리는 행태에 문제가 없다는 일종의 '용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가계대출, 총량 규제보다 금리로 조여야?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직전월 대출 잔액의 0.6%포인트를 매달 은행의 가계 대출 한도로 정하는 규제는 금융 당국의 의도가 확대 해석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려면 결국 대출금리가 올라야 한다"고 했다. 이런 언급은 지난 8월 초 금융위원회가 시중은행 부행장을 소집해 "대출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니 대출 금액을 관리해달라"고 요구했던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시중은행들 사이에선 금융 당국이 대출자와 은행의 반발이 심했던 총량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대출금리 인상을 용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은 금융 당국과 시중은행들로선 서로 불만이 없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대출 증가 속도를 자연스럽게 억제할 수 있고, 시중은행들은 그간 자산 확대 경쟁을 위해 일부 역마진까지 감수했던 금리를 오려, 대출을 늘리지 않아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한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최근까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2%에서 3.25%로 1%포인트 넘게 오르는 동안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거의 올리지 않았는데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하면 은행이 대출을 확대하지 않아도 이자 마진을 늘려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협, 우리,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대출 총량 규제로 지난달 중순 이후 대출을 일시 중단했다가 9월초 재개하면서 각종 우대금리와 지점장 전결 금리를 없앴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은 1%포인트 안팎, 신용대출은 최대 2% 안팎 실질금리가 높아졌다.
*** 속사정 복잡한 대출금리 인상,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금융위원회가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을 용인하는 것은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할 수단이 마땅히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까지"금융 당국만으로는 가계부채 문제를 풀 수 없다"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내심 기대해왔다. 하지만 지난 8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으로서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금리(인상)이지만 금리는 무차별적으로 적용돼 매우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금리인상을 가계부채 억제 수단으로 쓸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가계대출 억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이 때문에 경제 전체의 활력을 누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고민이다. 이는 경제 정책의 총괄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공유하는 인식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준금리를 올리면 국내 경제 영향은 물론 금리 차익을 노리는 외국자본의 유입을 가속화하는 등 파급 효과가 광범위하다"며 "한은이 이런 부분을 두루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가계대출 억제라는 목표를 위해 현재로선 대출금리 인상이라는 미시적인 방안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이런 선택으로 가계대출 규제의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대출 규제에 반발하는 은행들 주장을 들어주느라 정작 금융 소비자의 권익은 외면하는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은 "대출 억제를 위해 은행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해도 이로 인해 실제 생업을 위해 필요한 돈을 빌리는 서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