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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고라 자유토론방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785348&RIGHT_DEBATE=R11
용산을 향한 은밀한 불복종 -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 검은머리gerti
번호 2785348 | 09.06.22 12:04 IP 119.65.***.131 조회 7036
이번 주 한겨레 21의 커버는 ‘은밀한 불복종’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매 공연마다 ‘imagine’을 부르기로 한 인디밴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하는 기업체 사장에게 ‘서거라고 해야지 왜 자살이냐’며 20만원 팁을 양심과 바꾼 20대 룸살롱 아가씨, 한국방송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주고 위해 ‘개콘’을 끊은 주부 등 ‘개인의 이름’으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불복종 이야기들이 소개 됐다.
아이러니하지만 ‘국민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도 ‘은밀한 불복종’의 이름표를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가끔이지만 MBC 로비나 현관입구에서 오프닝 할 때 무도 멤버들 뒤로 ‘언론법 반대’ 관련 글귀들이 ‘스-윽’ 하고 보일 때마다 ‘은밀’했지만 ‘의도’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통위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아직까지 무도 제작진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오버하는 것이거나 혹은 방통위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무디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들이 무도를 안 보거나...
한데 어제 방송을 본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여드름 브레이크를 감행한 4명의 죄수들이 시민 아파트를 향해 뛸 때, 쇠로 된 아파트 주변 담벼락에 걸린 빨간색 걸괘에 “도시계획 철거민” “보상” “웬말이냐” 같은 글귀가 화면에 ‘스-윽’ 스치는 걸 보고 또 다시 ‘은밀한 불복종이로구나’ 했는데, 연예인 아파트가 나오면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급기야 프로그램이 끝난 후 ‘찌르르’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변태도 아니고 예능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전율을 느낀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더니, 며칠 전 ‘떡 발언’을 들으면서 쾌감을 느꼈던 게 떠오른다. 날이 선 비판에 대한 ‘기대 임계치’가 그만큼 땅바닥을 기고 있다는 증거이리라...하면서 뒤돌았는데, 그게 다는 아니다. 토요일 방영이 끝나자마자 ‘웬만한 스릴러보다 낫다’는 식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너무나도 ‘명확’한 의도를 ‘은밀’하게 감추기 위해 제작진이 준비한 치밀함의 밀도가 그저 ‘특집으로 준비한 토요일 예능’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도발을 위한 은밀함1 - 장르적 접근
<여드름 브레이크>는 용산참사에 대해 '정.확.하.게' 발언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을 비판한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을 장관 개인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골 때리는 시추에이션이 난무하는 상황인지라, ‘도발’ 하려면 ‘은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or’의 뜻도 오역하는 방통위가(작년 7월 16일 방통위의 PD수첩 심의 내용을 찾아보자!!) ‘이런 소’와 ‘vCJD’ 등의 의역을 문제 삼고, <PD수첩> 같은 고발 프로그램에도 기계적 균형의 잣대를 들이대며 검찰이 프로그램 PD를 구속하고, <PD수첩>의 정치적 의도를 증명한다면서 프로그램 작가의 이메일을 뒤지는 시대에, 하물며 무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프로그램에 담았다면 '대역 죄인' 취급을 당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드름 브레이크>의 ‘은밀함’은 장르극 패러디의 재미를 완벽하게 구현할수록 더욱더 확실해진다. 만약 '엉성한 패러디물'이 나와 버리면, ‘정부 깔라고 기획했지?’하며 시비를 걸게 분명하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무한도전의 재미는 지금껏 방영됐던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치밀한 구성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치밀함은 ‘시민 아파트 시퀀스’에서 잘 나타난다. 시민 아파트 에피소드는 도망치는 죄수와 이들을 쫓는 형사팀이 동시에 쫓고 쫓기는 모습을 교차 편집하는 형식으로 진행 한다. 말이 교차편집이지, 아무리 잘라붙인다고 해도(예를 들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컷을 오려 붙였다.) 그야말로 ‘동시에 풀어놓고 찍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동선을 정한 뒤 카메라 위치를 정하고 콘티를 완벽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찍을 수 없는 컷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특히 건물의 어둠 속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 '유반장과 정형사'가 3층 복도 중간에서 아쉬워하는 장면에서는, 어느덧 그들이 쫓고 있는 것이 ‘여드름 난 등에 파리와 트럭 등을 그린 개그맨 박명수’란 사실을 잊은 채, 그 둘을 ‘범인’을 놓친 장르극 형사 콤비로 대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공간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서사의 힘 때문이다. 시민아파트의 내부에서 범인을 쫓는 유재석과 정형돈은 <소름>에 나왔던 무너질 듯 한 아파트나 <살인의 추억>의 형사콤비 같은 ‘이야기’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물론 이 모든 것은 무도 제작진이 짠 완벽한 콘티 안에서 의도한 대로 만들어지는 함의다.
특히 무도 제작진의 철저한 콘티 작업이 빛을 발한 장면은 노홍철이 오쇠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이다. '도대체 오쇠 삼거리의 사진은 어디서 어떻게 구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마법 같은 장면에 그저 넋을 잃게 된다.
물론 비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유-정 콤비가 힘들다며 물 마실 때, 유재석 어깨 너머 보이는 난간 위에 엎드린 박명수가 보일 때는 옆에 카메라맨이 없다. 한데, 바로 다음 컷에는 박명수를 부감으로 찍은 컷이 나온다. 이 컷은 박명수 바로 옆에 카메라맨이 없으면 불가능한 컷이다.
또 유-정 라인에게 쫓기던 박명수가 427호로 혼자 들어오는 장면도 그렇다. 박명수가 뛰면, 카메라도 뛴다. 박명수가 방안에 들어섰을 때 카메라맨도 따라 들어왔어야 한다. 하지만 박명수가 방에 들어갔을 때 방안에 카메라맨은 없다. 박명수가 방을 나서는 장면도 방송엔 나오지 않는다. 즉, 그 장면은 박명수만 들어가 언제든지 '따로' 찍을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비약은 시민 아파트 시퀀스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추격전이 철저하게 ‘대본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발을 위한 은밀함2 - 나의 사랑 '돈'형사
상황 극 패러디는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야구장, 한강 고수부지 등등 서울 도심 곳곳을 누비는 도망자와 추적자를 번갈아 보여줬던! 특히 한강에서 자전거 타고 쫓고 쫓을 때 똥줄이 타는 듯한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덕분에 무도 멤버들은 상황 극에서의 확실한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었고, [여드름 브레이크]는 [돈을 갖고 튀어라]를 자산으로 좀 더 세밀하게 캐릭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쟌진-정중앙은 편집 콤비였고 하찮은-노찌롱 콤비는 티격태격하면서 서사를 전환하는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냈다. 시민 아파트에서 죄수들이 '쟌진-정중앙', '하찮은-노찌롱'으로 갈리는 것은 물론 의도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속고 속이는' 것의 반복을 넘어, '서사'를 만들고 그 안에 기존에 만들어진 캐릭터를 설치하는 식이었다. 한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빛났던 건 '돈'형사였다.
브이넥 러닝을 뚫고 나오려는 배와 겨자색 작업복 점퍼를 입은 정형돈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미장센이었다. 특히 ‘폴라포’ 물고 있는 장면이나, 427호에서 폴리스 라인 치는 장면, 연예인 아파트에서 벽에 기대어 ‘이주길’을 노려보는 장면 등에서는 ‘멍청하지만 성실한 형사’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여드름 브레이크가 탈옥범들끼리의 300만원 강탈을 위한 개인전이었다면 도니는 또다시 '편집의 제왕'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여드름 브레이크>에서는 유재석과 정형돈에게 형사역을 맡겨 기본적으로 '탈옥범과 경찰'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때문에 6명이 정신없이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쫓았다가 쫓겼다가 하는 재미와는 달리, '추격전'을 중심으로 한 서사와 구성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도발을 위한 은밀함3 - 콩트
완벽하게 짜인 추격 극 속에서도 끊이지 않았던 무한도전 표 웃음은 ‘도발을 위한 은밀함’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짜고짜 ‘사인하라!’고 하는 시민 아파트 할머니들, 짧은 폴리스 라인을 만들었던 돈형사, 이주길의 머리를 도끼빗으로 빗는 유반장 등은 돌발 상황에서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무한도전 표’ 웃음이다. 반대로 427호와 215호 방에서 ‘뒤돌아 앉아 있는 대머리’를 반복하거나 머리에 듬성듬성 가발을 붙이고 나타난 이주길의 모습 등은 전형적인 ‘B급 설정’ 웃음이다.
은밀함을 빌린 날카로운 비판
<여드름 브레이크>에서 가장 가시적인 도발은 ‘철거’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온다는 사실이다. 한 번은 탈주범들이 시민아파트 입구로 들어설 때 벽에 걸린 걸괘글씨에서, 하나는 노홍철이 120번에 전화를 걸어 연예인 아파트 위치를 물으면서 “아...철거를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할때, 마지막 하나는 오쇠 삼거리에 도착한 박명수가 “근데 여기 건물이 없어졌네..”라고 말할 때 ‘철거’라는 자막이 함께 나온다.
그것보다 '조금 더 은밀한’ 것은 준하-쟌진이 택시 타고 오쇠 삼거리는 가는 도중에 보이는 주상복합 아파트 컷이다. 철거 대상인 앞의 두 건물들과 시간적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 컷은 시민 아파트와 연예인아파트에서 보여준 이미지들과 너무나 분명하게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조금 뒤 ‘용산참사’를 전달했던 수많은 보도사진들이 택했던 프레임을 떠올리게 된다. 택시 안에서 잠든 쟌진-준하의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 타버린 4층 건물 저 뒤로 높게 올라선 삐까뻔쩍 주상복합 아파트를 함께 실었던 보도사진들을 떠올리게 될 때쯤, ‘누가 돈을 찾게 될까’보다 과연 그들이 향하고 있는 다음 장소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더 커지게 된다.
한데 ‘오쇠 삼거리’라는 지명도 낯설거니와 세 번째 장소는 ‘사진과의 일치’에 초점을 맞추면서 왠지 더 이상의 ‘발언’을 하지 않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시민아파트와 연예인 아파트 그리고 ‘철거’라는 단어의 연속 등등을 보게 되면, [여드름 브레이크]는 완벽하게 짜인 각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호 놀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은 삽질에 몰두한 멤버들과 ‘힝~ 속았지’하는 제작진의 장난질만 보여준다. ‘뭔가’ 분명히 있는데 시치미 뚝 떼고 있는 장면을 보니 서스펜스 수치가 훅! 올라간다. 그리고 ‘찌르르’ 전율의 순간은 방송 후 몇 분 뒤 기사를 읽을 때 찾아온다.
인터넷에서 ‘오쇠’를 치자 곧 “죽은 마을 오쇠동에도 봄은 올까”라는 헤드의 오마이뉴스 2008.12.17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오쇠동은 1992년 공항시설구역으로 지정되어 골프장을 건설한다는 이유로 주택 강제 철거가 시작된 곳이었다. 오쇠동 세입자들이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투쟁하던 중 2002년 11월 25일 오쇠동 4남매가 화재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세입자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오쇠동의 이야기를 검색해서 읽을 때 ‘걸괘의 글씨들’을 보면서 들기 시작한 ‘의문’이 너무나도 명확하고 의도적으로 계산된 장치였음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여드름 브레이크>의 완벽한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물론 다음 주가 남았긴 하지만)은 ‘석호필’ 등에 그려진 문신이 감옥의 지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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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국토부에 의해 공포된 도시정비법 개정안은 “조합원의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산정 시 조합원이 둔 세입자로 인하여 손실보상이 필요한 경우 조합의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조합원이 둔 세입자에 대한 손실보상액을 뺀 나머지 가격을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의 가격으로 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재개발 지역 조합원들이 자신의 부동산 가격을 산정할 때 좀 더 가격을 높이기 위해 세입자들을 내쫓을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며, 이러한 법 개정이 ‘용산참사’ 이후 정부에 의해 진행된다는 사실과 함께, 사람 6명이 죽어도 사과하는 정부나 책임지는 경찰이 없음은 물론, 세입자 관련법마저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용산참사’는 오쇠동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무한도전이 만들어 낸 완벽한 '기호 놀음'의 퍼즐을 맞추게 될 때, 그저 전율하는 순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내 생각에는 무한도전 제작진이 승리한(할)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나 검찰, 혹은 한나라당 사람들이 꼬투리를 잡기 힘들만큼 ‘완벽한 은밀함’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보는 사람 뒤로 넘어가게 하는 'B급' 웃음과 눈물 찔끔하게 만드는 감동을 만들어 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예능 PD로 하여금 이토록 철저하게 계산된 서브 텍스트를 완성케 한 원동력은 다름 아닌 현 정부라는 사실 말이다.
여드름브레이크, 용산참사, 남산시민아파트, 무한도전, 연예인아파트, 오쇠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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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온 국민이 용산참사의 진실에 눈을 돌릴 때 진실이 밝혀지겠지요...언론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개념PD, 천재PD 김태호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