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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은 백제 그리고 음악(2016.10.16.)
이종구 지음
추천사
백제사와 그 음악 연구의 새로운 시각
전인평(아시아 음악학회장)
이종구 교수는 한평생 오페라 운동에 전력하였다. 국악과 오페라에 대한 열정은 국악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백제 금동 향로에 나오는 다섯 악사가 연주하는 악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한 역사 연구의 결정판이다.
이 책은 백제사부터 시작해 백제음악 관련 자료, 백제 악기, 백제음악가지 촘촘하게 백제음악을 다루었다.
이 책은 백제 음악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만하다.
추천사
백제음악의 새로운 지평
오순제(한국고대사연구소장)
음악이란 인간의 삶이며 인간 또한 음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백제야말로 삼국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문화를 지녔던 국가였다.
고구려는 거친 대륙에 있기에 웅건하고 씩씩하나 거칠고, 신라는 외지고 작은 소국이기에 소박하면서 화려하고 세밀하며, 백제 문화는 드넓은 평야와 넓은 바다를 가지고 있기게 개방적이며 우아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종구 교수님은 한성백제와 대륙백제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적 위상을 갖추고 있었던 백제의 음악을 명쾌하게 펼쳐 나가고 있다.
머리말
아무도 말하지 않은 백제 그리고 음악 출판에 붙여
이종구
나는 작곡가다.
1970년대에 나는 고대사, 근대사를 가릴 것 없이 한국사가 왜곡되고 약탈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사의 환경은 당연히 음악을 비롯한 모든 한국학에 영향을 미친다.
제1장 백제음악과 백제사
제1편 백제사 사료
일제강점기 이후 실증사학을 빙자하는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피어나 우리의 고대사를 눈멀게 했으니, 이런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켜 결국 백제사가 수렁 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시간예술이라는 음악의 특성 상 과거음악을 찾아낸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백제음악처럼 오래전의 음악을 찾는 일에는 고고미술학이나 역사학의 도움을 흔히 받게 된다.
1.백제주요문헌사료
2.양직공도 백제사신도
양직공도는 526년에서 536년 사이 즉 양나라 무황제 소연시절에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린 그림과 이를 해설한 두루마리 문건이다.
양(502~557년)은 남북조시대에 지금의 강소성 남쪽에 운남성 일대에서 55년간 4대의 황제가 이어 다스린 나라이다.
토막이야기 백제가 차지한 요서·진평-북경을 포함하는 옥야천리
토막이야기 백제의 요람은 홍산문화의 터전-동이민족이 이룬 인류문명의 시원
3.북사(北史)
북사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위, 제, 주, 수의 역사를 기술한 정사로 12권의 본기와 88권의 열전으로 구성되었다.
토막이야기 다섯 차례의 백제와 북위의 전쟁-전쟁에서 웃은 사람들
백제가 중원에서 맹위를 떨친 사실은 488년부터 498년까지 10년 동안 북위와의 크고 작은 다섯 차례의 전쟁 기록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토막이야기 영원한 우리민족의 고유악기 해금-동방 음악을 밝히다
해금은 해족의 악기라는 뜻이다. 해족은 누구인가? 북사에는 북제의 초대황제였던 고환이 멸망시킨 선비족의 한 종족이 해족이라 하였다. 그러니 해족을 알기 위해서는 선비족을 알아야한다.
4.삼국사기의 백제
토막이야기 식민사학·반식민사학-두 친일파 사학자의 엇갈린 비운
문정창-
5.일본서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
토막이야기 붉은내 아침의 나라-부여·고구려·백제·왜국의 닮은꼴 건국이야기
제2편 백제 강역(疆域)
백제음악은 700년 백제역사에서 그 통치권이 미쳤던 모든 땅의 음악을 총칭한다.
초기백제
한성백제
마한 흡수와 한반도백제
요서진평
오월백제
동성왕 북위 쟁취지역
열로백제
1.건국의 신비
토막이야기 황국사관과 조선사편수위원회-한사군이 동으로 간 까닭은?
2.나라이름
3.한반도의 본국백제
토막이야기 삼국사기가 말하는 백제 월주-다해, 소해 그것이 문제로다
4.대륙박제, 그 뜨거운 논란의 기록들
5.일본열도의 백제 식민지
6.담로
7.백제 존속기간
제2장 백제음악 관련자료
제1편 백제음악 문헌사료
현존하는 백제 음악의 기록으로 가장 앞선 것은 636년부터 656년 사이에 집필된 수서다
1.백제음악 문헌 점검
2.중국 문헌에 나타난 백제음악
3.한국 문헌에 나타난 백제음악
4.일본 문헌에 나타난 백제음악
가.일본서기
나.악보자료 교훈초
토막이야기 조선말에 노래한 백제기악-악시부로 보는 백제악
제2편 백제음악 유물사료
1.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비상에 조각된 악기 연주상들은 모두 백제 멸망 후에 제작되었지만, 백제의 전통에 근거하여 유민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백제 악기로 인정한다.
2.백제금동대향로
서로 다른 5종의 백제 악기를 연주하는 5인의 신선은 상단 봉황새 바로 밑, 다섯 기러기 사이사이에 약간 감추어지듯 약간 안쪽에 위치해 있다. 이들은 마치 합주를 하듯 균형있고 정교하에 배열되어 있다.
동아시아의 고대 국가들은 대체로 음악을 정치 수단으로 생각하였던 것만큼, 백제금동대향로의 다섯 신선도 단순한 음악의 차원을 넘어 음악의 화를 통한 정치체계의 통합을 이루려는 백제의 사상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하겠다.
3.월평동 출토 양이두(羊耳頭)
대전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우술군에 속하였던 땅이다. 공주부근의 대전에서 현악기의 주요 부품인 양이두가 나온 것은 이곳이 과거 수준 높은 문화 공간이었음을 알게 한다.
4.신창동 출토 현악기
한반도 백제와 열도 백제가 하나의 문화권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적이 되고 있다.
5.보원사지 석탑의 팔부중상 공후
음악을 담당하는 신장 건달파는 대개 공후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조각했다.
백제시대 창건되어 고려시대 중건된 것으로 알려진 보원사지 5층 석탑에도 기단 상석에 공후를 연주하는 건달파의 상이 있다.
제3장 백제악기
제1편 백제악기 개괄
고대 궁중악기는 음악연주의 도구이자 예악을 상징하는 의물이었다. 어느 나라에 어떤 악기가 있었느냐, 어느 의식에 어떤 악기를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지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문헌사서에서 이렇듯 강조되었던 것이다.
백제 악기만이 유일하게 중국의 내지, 그러니까 당나라 수도 장안 부근의 악기와 같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장안에서 연악으로 사용하였던 내지악기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유물자료의 도상으로 찾은 백제 악기는 횡적, 배소, 장소, 생, 퉁소, 백제생황, 곡경비파, 백제삼현, 백제금, 요고 등의 10종 악기이며 문헌에 보이는 8종의 악기를 합하여 중복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백제악기는 모두 22종으로 정리할 수 있다.
토막이야기 동양의 모음곡 수·당의 연악
여러 유형의 춤곡들을 균형 있게 배치하여 참가 국가의 호감을 이끌어 친선도모에 이바지하는 이시대의 음악이 있었으니 바로 모음곡(suit)이다.
모음곡은 알망드(독일식 춤곡), 쿠랑트(프랑스식 춤곡), 사라반다(스페인식 춤곡), 지그(영국식 춤곡) 등의 큰 국가의 춤들이 기본적으로 배치되었고, 여기에 가보트, 부레, 미뉴에트, 에어, 시실리아노 등 군소국가나 지방의 춤곡들을 필요에 따라 사이사이 첨삭했다.
연악은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가무합동공연 양식이 되었다.
제2편 현악기
1.비파
비파는 줄올림악기로 여러 줄을 갖고 있으며 지판에 주가 있다.
토막이야기 우리 비파의 시련-첫 문화콘텐츠 수출의 유감
우리나라에서는 4현곡경비파를 당비파라고 부르고 있다.
2.백제삼현
백제삼현은 백제금동대향로의 상단에 있는 주악 조소상에서 중앙에 위치한 신선의 악기에 붙인 이름이다.
중국내 56개 소수민족 중 52개의 소수 민족이 운집해 사는 이 백제의 옛 터전에 가장 숫자가 많은 민족이 장족이다. 이 장족의 악기도 3현이 많다. 이밖에도 이 지역의 문화자산이 오늘날의 한반도 문화와 유사성이 많다는 보고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한족의 악기다 4현 위주의 완함이라면 백제권 악기는 3현 중심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토막이야기 백제삼현을 찾아서-박자이라 부르는 중국 속의 백제
중국 광서장족자치구-아직도 백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가 있다. 중국의 서남쪽 베트남과 인접한 곳에 있다.
장족의 민속춤인 삼현춤을 출 때는 춤꾼들이 둥근 원을 그리는 가운데 춤을 이끄는 남자가 삼현금으로 반주하면, 그 밖의 사람들은 박자에 따라 노래하고 춤추면서 원을 줄이기도 하고 확대하기도 하면서 긴 소맷자락을 내젓는다. 이 춤은 중국의 역사책 삼국지 동이전 마한편에 나오는 강강술래와 흡사한 것이다. 마한 곧 백제의 역사로 이어진다.
3.공후
공후는 서양의 하프처럼 줄울림악기이고 한 줄에서 하나의 소리를 내기 때문에 많은 줄이 필요한 악기이다.
4.군후
이혜구는 거문고의 고대형이라 했다. 하프 종류로 한 줄에서 하나의 쇠를 얻는 다현 악기이다.
5.백제8현금
월평동 양이두를 근거로 복원하여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중이다.
6.금(琴)
금은 보편적으로 7줄을 사용하기에 흔히 칠현금이라 한다. 그러나 드물게 10줄, 9줄, 5줄, 3줄, 1줄짜리도 있다.
7.쟁(爭)
인조손톱을 사용하여 향비파나 피크를 사용하는 기타 소리처럼 예리한 음빛깔을 낼 수 있다.
쟁을 본받아 개량한 가야금은 기능이나 음향에서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대중화되었다.
제3편 관악기
1.횡적(橫笛)
우리말로 가로피리를 뜻하는 횡적이 국보 106호 계유명전씨아이타불비상의 왼쪽 석상 위 오른쪽 연주 소상에 있다. 횡적은 공기울림악기로 일명 횡취라고도 한다.
2.적(笛)
우리말에서 피리라는 말은 겹서 악기인 대피리, 세피리, 당피리 등을 지칭하지만 때로는 모든 관악기를 총칭하기도 한다. 적이라는 한자어도 역시 피리처럼 가로피리, 세로피리를 가리지 않고 모든 관악기에 두루 쓰인다.
3.배소(排簫)
배소는 길이가 서로 다른 여러개의 관대를 나열하여 만든 악기이며, 하나의 관대에서 하나의 음을 내는 대표적인 다관악기다.
소상에 나타난 백제금동대향로의 배소는 12관이다.
4.지(篪)
지는 아악 팔음 중 죽부에 속하는 관악기이며 가로로 분다. 지금 한반도에서 쓰는 지는 고려 예종(116)에 송나라에서 문묘제례악과 함께 들어와 그 전통이 이어가고 있다.
5.도피필률
피리의 한자어는 필률(觱篥)로 중국발은 삐리이다.
도피필률은 복숭아나무 껍질을 재료료 만든 피리라는 뜻이다.
토막이야기 벽사 주술의 힘을 숨긴 도피필률의 진실
도피필률은 악기로써의 기능보다 주술적 상징을 갖는 일종의 의물로써의 가치가 더 컸으리라 생각한다.
6.막목
이혜구는 막목을 오현 호 향필률 중의 하나일 것으로 해석했다.
7.각(角)
우리 국악기에는 나각이 그 대표적인 악기로 위아래 입술을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
8.우(竽)
우는 떨청악기로 다관이다.
9.생(笙)
생은 우리말로 떨청이라는 황편을 진동해 발음하는 오래된 악기이다.
10.소 또는 퉁소
세로 피리 계열의 악기를 흔히 소라 한다.
퉁소는 한반도와 지금의 중국 동북 삼성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이 즐기던 공기울림악기다.
11.장소(長簫)
긴 퉁소 종류의 악기는 중국의 남방과 북부 베트남까지 퍼져 있다. 중국 남방에는 묘족 악기 직통소, 중국 서남부 운남성 부근에 사는 하니족의 악기인 다세파락, 운남성 라고족의 악기 열도, 운남성은 물론 베트남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와족의 악기 율서, 중국 귀주의 소수민족인 동족의 악기 옥병소 등이 그것이다.
12.백제생황
이 악기는 백제금동대향로 조소상 오른쪽1악사의 악기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악기가 없다는 점에서 백제 자생악기일 가능성이 높다.
제4편 타악기
1.고(鼓)
북은 음악에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의물로도 사용했다. 그래서 삼재 즉 천 지 인 사상에서 북은 지축을 흔드는 악기로 인식되었다. 왕이나 고관, 장군, 무당 등이 벌이는 의식에서 상징성이나 위엄을 나타내는 의물로 쓰인 것이다.
2.요고(腰鼓)
요고는 악기를 허리에 매고 연주하거나 춤출 때 쓰는 북이다. 국보 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의 석상에 새겨진 요고는 세요고이다.
토막이야기 타악기의 왕-천상천하를 넘나드는 음양의 소리
우리가 표준말로 쓰는 장구는 장고라는 한자말이 변한 것이다. 세요고의 한 종류이다. 2개의 서로 다른 북통을 하나로 연결해 저음과 고음을 한 악기에 두고 서로 돕고 배음까지 조화를 이루어 풍부하게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 섬서고무의 요고춤: 중국 섬서성의 빗물질문화유산인 요고 춤, 이들이 메고 있는 악기는 세요고가 아닌 배가 부른 요고이다.
제4장 백제음악
제1편 백제음악의 성격
1.백제음악의 특성
이혜구가 1985년에 슨 일본에 전해진 백제악은 순수한 백제음악의 최초 연구라는 큰 의미가 있다.
2.음률
토막이야기 황금색 민족의 우주관을 담은 알타이 동이민족의 삼신오황 사상
제2편 백제악과 수·당 연악
음악을 처세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였던 동양에서는 음악을 국가적 위엄의 상징으로 소중히 여겼다. 특히 아악은 종묘와 사직을 섬기는 제사의식으로 중요하였다.
연악은 자국의 상징인 아악을 앞세우고, 주변국의 민속적 악 가 무를 함께 연희하던 공연양식이었다. 이렇게 패망시킨 국가의 민속악을 승전국에서 연주한 이유는, 그 유민들을 감싸 안아 위무하는 한편 위엄으로 제압하는 등의 여러 가지 요소가 있었다.
토막이야기 기악의 스승 미마지(味摩之)-미마지,그는 백제를 떠난 일이 없었다
미마지는 백제의 음악가이다. 그는 오늘날의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 땅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에서 기악이라는 양식의 탈놀이 공연을 개발해 완성하고 계승시켰다.
제3편 백제불교와 음악
토막이야기 미륵전쟁, 누가 이긴 싸움일까?-신라미륵 선화공주 백제를 멸망시키다
요서백제, 열도백제, 오월백제 등을 경영하며 식민지에서 벌어들인 나라의 재정을 선화왕비와 무왕이 모두 기울게 만든 것이다.
토막이야기 불교사물-신성한 범음-중생의 깨달음을 향한 회향의 소리
제4편 백제가요
1.백제가요
1)서동요
2)숙세가
3)선운산곡
4)무등산가
5)방등산가
6)지리산가
7)정읍사
토막이야기 백제에서 온 그대-유네스코, 수제천을 으뜸으로 꼽다
옛 궁중음악 중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는 하나를 꼽으라면 대부분 수제천을 우선 떠올린 것이다. 1970년 유네스코 아시아음악제의 전통음악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수제천의 원류를 백제음악으로 유명한 정읍사에 두는데 무리가 없다.
집을 떠난 남편이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원하는 정읍사는 7세기 백제에서 조선 초기까지 1000년이상을 노래로 불러왔다. 조선시대 중반부터 노래가 빠지고 기악합주곡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변하게 되었다.
모두 4장 23장단으로 구성되며 연주시간은 15분가량으로 1장에서는 가락을 제시하고, 2장에서는 이를 반복하며 3장에서는 극적인 변화를 이루고, 4장에서는 이를 마무리하여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저 웅혼하였던 백제의 기상을 담고 1천500년 이상을 우리 겨레와 함게 해 온 수제천에는 결 고운 가락이 굽이굽이 유장하게 물결치고 하늘의 이상으로 만물을 고르게 키운다는 정신이 배어 있는 듯하다.
2.만엽집이 전하는 백제가요
만엽집은 7~8세기에 만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가사집이다. 백제의 식민국으로 존재하던 응신왜국 시절부터 백제부흥을 염원하던 제명여왕 시기를 거쳐,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며 한반도백제로부터 독립한 669년 이전까지 그 격변하던 시기의 노래들도 몇 수 담겨 있다.
토막이야기 이영희의 한·일 옛 이야기 노래하는 역사-영원한 백제의 여인 제명여왕
제명여왕은 두 번이나 왕위에 오른 왜의 여왕이다. 그녀가 백제 무왕의 딸 보왕녀로 의자왕의 누이라고 한다.
제명여왕이 조국 즉 반도백제를 지극히 우려하고 사랑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영희 한·일 옛이야기 노래하는 역사/ 또 하나의 만엽집/ 침사의 비밀/ 천무와 지통/ 일본어의 진상/ 불가사이 한 일본어/ 되살아나는 만엽집/ 무서운 노래
3.민요 속에서 찾은 백제음악 산유화가
부록
악보 1 정읍사(계면조) 오음악보
악보 2 산유화가
악보 3 백제찬가
악보 4 백제뱃노래
지은이 이종구
1947년 충남 당진군 출생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독일 국립 칼스루에 음악원 작곡과 졸업
1983~2013년 한양대학교 교수,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1984~1986년 KBS FM 음악의 산책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