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확실히 입증하는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 입수.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확실히 입증하는 북한군문서와 보위부문서가 입수되었다. 내가 입수한 건 아니고 입수를 한 사람이 동영상을 만들어 구글과 유튜브에 올려놓았더라.
구글에서 검색하려면 검색어를 광주사태. 북한군으로 넣고 검색하면 나온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려면 검색어를 북한군으로 넣고 검색하면 나온다.
그 동영상의 제목은 5.18광주사태 북한군 개입에 대한 북한군과 보위부문서 증거들이라는 제목이다.
그 동영상의 내용을 요약하고 설명도 덧붙이겠다. 원본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구글과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찾아봐라.
북한군과 북한보위부가 광주사태 때 북한특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했다는 문서를 작성해서 그것이 입수되었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나.
북한군과 북한보위부가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건을 만들어 놓았고 그 문건이 입수되었는데 다른 주장을 하는 자들은 사상이나 신원이 의심스럽다.
북한정찰국소속 534군 부대원 600명은 잠수함과 땅굴로 광주에 침투하여 맹활약을 하다가 490명이 사망하고 110명이 살아서 북한으로 돌아갔다.
전사한 북한특수부대 490명 중에 475명은 광주 근교에 암매장되었고 11명은 광주 망월동묘역에 매장되었고 4명은 귀환 중 사망했다고 한다.
534군부대는 124군부대의 후신이라고 한다. 124군부대는 1.21사태를 일으켰던 1968년 1월 21일 서울에 침투하여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북한무장공비들의 소속부대이다.
북한정찰국소속 534군부대원 600명은 한 특수부대원들은 잠수함을 타고 서해로 침투하고 한 특수부대원들은 땅굴로 침투한다.
서해로 침투한 북한특수부대는 1980년 5월 2일 새벽 3시 남포에서 잠수함을 타고 출발하여 서해로 내려와서 전남 영광군 염전면 두우리 백바위 해변에 상륙했다 그 해변에는 미리 온 대기자와 안내원이 있었고 그들을 따라 광주로 잠입했다.
땅굴로 침투한 북한특수부대는 강원도 철원군 땅굴로 침투 후 땅굴 출구에 대기하고 있던 노인을 따라서 광주로 잠입했다.
문건에 북한군이 수행한 작전이란 제목으로 침투한 북한특수부대가 작전을 한 활동들이 적혀있다.
1. 5월 21일 20사단 지휘부 차량공격 탈취 및 운행.
2. 아세아자동차 공격 장갑차 6대 군트럭 305대 버스 100대 고속버스 5대 탈취 운행.
3. 군부대 무기고 등 49(47)무기고 공격 무기 탈취.
4.전남도청 점령작전.
5.광주교도소 5차례 공격 7.장흥교도소 공격.
8.전남도청 지하실에서 8톤 트럭 1대 분량의 폭발물 설치 (약 2600상자)
9.잔혹한 시민학살.
북한특수부대는 맹활약을 했다. 그동안 우파들이 북한특수부대 소행으로 의심이 된다던 일들 북한특수부대가 한 짓들이다.
위의 활동들은 최고의 특수부대훈련을 받은 군인들만이 가능할 거라고 그동안 우파들 중 일부는 주장했다. 그렇게 주장한 우파들의 주장이 맞았지.
오합지졸인 광주시민폭도들과 데모하던 학생들이 저런 활동들을 못한다.
광주교도소 습격과 장흥교도소 습격. 민주화운동하던 학생들이 교도소 습격하는 것 보았나?
전남도청 지하실에 설치한 8톤 트럭분량의 폭발물설치. 북한특수부대는 TNT8톤 분량을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폭탄들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폭탄들을 해체할 수 있는 폭탄전문가는 남한에 몇 명 되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폭탄제조기술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수부대훈련을 많이 받은 군인들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우파들이 제기했지.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부정하는 자들이 그 근거로 제기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계엄령 상태에서 침투 못한다라는 것을 드는데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몰래 침투하면 침투할 수 있다. 계엄령 상태에서는 침투를 못한다고 주장하면 대한민국 수립 이후 휴전선으로 많은 무장공비들이 침투했는데 그들은 어떻게 침투했다는 말인가? 휴전선 철책선과 그 부근은 항상 계엄령이 내려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이다.
휴전선을 돌파하여 침투하는 것보다 잠수함으로 또 땅굴로 침투를 하는 것이 100배는 쉽지.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 600명이 광주에서 맹활약을 하다가 북한으로 철수한다.
북한특수부대 600명 중에 전사자는 490명이고 생존해서 북한으로 돌아간 군인들이 110명이라고 한다.
전사자 490명 중에 475명의 시신은 광주 근교에 암매장되었고 11명의 시신은 광주 망월동 묘역에 매장되었고 4명은 귀환 중 사망했다고 한다.
600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300명 중에 생존 귀환자 57명 (부상자 46명) 사망 및 행방불명 243명 (사망자 165명 행방불명 78명)
다른 300명은 생존 귀환자 53명, 사망 및 행방불명은 247명, 전사자 관리부대 534군부대 158명, 108군부대 112명, 806군부대 74명, 광주폭동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묻힌 광주 망월동묘역에 매장된 시신 중 신원이 아직도 확인이 안 된 시신이 12구가 있다고 하던데
위에서 11명의 시신이 광주 망월동묘역에 매장되었다는 내용과 거의 일치하지. 1명 정도야 차이가 날 수 있지.
북한의 고위인사들이 왜 광주 망월동묘역에 가서 꼭 참배를 하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네. 광주폭동을 주도하다가 사망해서 광주 망월동묘역에 매장된 11명의 북한특수부대에 참배하기 위해서 그런 거구나.
작전 종결일은 1980년 6월 19일이라고 한다. 1980년 8월 1일자로 사망자명단을 만듦.
1980년 8월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 조성. 1998년 2월 8일 묘비 세움.
2012년 9월 한국에서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 및 비석발표. 2013년 2014년 인민군 영웅들의 열사비석을 6.25참전 인민군 열사비로 교체하여 숨김.
한국에서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증명하는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 및 비석이 널리 알려지면 친북성향이 강한 전라도 것들과 남한의 친북좌익들의 세력이 위축될지 모르니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 비석을 6.25참전 인민군 열사비로 교체하여 위장했네.
문건에 전사자 명단이 나오는데 그 페이지 제목이 남조선 통일전선을 위한 투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역사자료라고 되어 있다.
그 역사자료에 조선인민군 무력부 534군부대(1980.8.1) 성명, 난곳(출생지), 생년월일, 입대년도, 전사한 년월일, 군사칭호 (계급)이 적혀 있다.
전사자들의 전사한 년월일 모두 1980년 6월 19일로 되어 있다.
또 문건에 조국 통일독립을 위한 인민군 전사들의 전투기록장이 나온다. 조선인민군 무력부 534군부대 (1980년 6월)
문건의 다음 페이지에 534군부대 158명 전사자묘지 및 비문이 나온다.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 사진이 있다. 광주 침투 534군부대 전사자묘지라고 되어 있다.
그 묘지에는 유품 등이 매장되어 있고 시신들이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시신들은 광주 근교에 475구가 암매장되어 있고 광주 망월동묘역에 11구가 매장되어 있다.
묘지의 위치는 청진 청진역 북방 600m 낙타산 해발 70m이다.
그 다음에 묘비사진이 나온다. 묘비에 많은 이름들이 적혀 있다. 앞의 명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파의 일부사람들이 위의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와 묘비를 제시하며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니 전라도 것들은 그런 묘와 묘비는 북한의 어느 지역에나 다 있는 것이다 라고 말도 안 되는 반박을 하더라.
광주폭동 때 광주에 침투하여 맹활약을 하다가 광주와 광주 근교에서 사망한 북한특수부대 사망자들의 묘와 묘비인데도 그런 엉터리 반박을 하더라.
문건에 날짜가 광주폭동 때이고 광주침투 534군부대 전사자 묘지라고 되어 있잖아.
위에서 5.18광주사태 북한군 개입에 대한 북한군과 보위부 문서내용은 끝났다. 아래는 나의 주장과 생각을 적는다.
광주폭동 때 광주에 침투하여 활동한 북한군들이 누구일까가 문제 되었다. 나의 생각으로는 광주폭동 때 맹활약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연고대생이라 칭하는 600명이나 광주폭동 때 맹활약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복면부대가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부대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하면 연고대생이라 칭하는 600명이 등장하며 20사단 지휘부 차량을 공격해 탈취하고 무기고 47곳이 털리며 엄청난 무기들을 탈취해가고 차량도 수백 대 탈취해 가고 교도소도 습격하고 연고대생이라 칭하는 그 600명에 의해
광주에 있던 계엄군이 광주 밖으로 쫓겨난다. 그런 맹활약을 하는 자들은 오합지졸인 광주시민폭도들과 학생들이 아니라 특수부대훈련을 받은 자들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학생들과 양아치들이 많은 광주시민폭도들이 그런 맹활약을 한다는 건 믿기 어렵지.
군사훈련도 받지 않은 평범한 연고대생들 600명이 어떻게 최고의 군사훈련을 받았고 숫자도 훨씬 많은 막강한 공수부대를 광주에서 쫓아낼 수 있나? 복면부대도 맹활약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연고대생이라 칭하는 600명과 복면부대는 사망자 중에 한 명도 없다. 연고대생이라 칭하는 600명은 공수부대를 광주에서 쫓아내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5.18유공자들 명단에 한 명도 없다. 유공자로 나타나면 보상금도 타고 여러가지 혜택도 받고 지들 딴에는 명예롭게 생각할 텐데 한 명도 안 나타났다.
전라도 것들과 일부 사람들 중에는 그들이 광주폭동 때 광주에 있었는데 북한군을 전혀 못 봤다고 말하며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말을 정확히 해야지 광주폭동 때 광주에서 북한군을 보기는 보았는데 북한군인지 알지 못했다 라고 정확히 말해야지
광주폭동 때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이 북한군복을 입고 오거나 북한말을 쓸 줄 알았나?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외관상 구분이 되나?
광주폭동 때 시위대와 시민군과 북한군은 구분이 안 되었다. 그러니 북한군임을 못 알아본 거지. 광주에 있었다고 모든 걸 다 정확히 아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되지.
위의 내용으로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이 역사적 진실임에 입증이 되었으니 전라도 것들과 기타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부정하던 자들은 더 이상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부정하지 말고 광주폭동 북한군 침투설을 인정하라.
1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