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신윤복의 미인도/ 박성민
상무역 5번 출구 신윤복이 개업했다
붓 대신 메스로 미인을 만드는 혜원
갸름한 턱선과 눈매 교태까지 그린다
회전문 밖으로 미인들이 나온다
바코드 찍힌 가슴 애플힙에 레깅스
밤이면 부분 마취한 거리들이 반짝인다 --------------------------
광주 지하철 상무역 5번 출구로 나가면 성형외과병원이 여러 곳 있나 보다. 서울에 는 강남에 성형외과병원이 즐비하다. 어떤 여성은 미인이 될 꿈에 부풀어, 어떤 여 성은 다소 기형인 얼굴의 모양을 바로잡으려고 병원에 간다. 요즈음에는 남성도 많 이 간다고 한다. 수술이 잘 되면 미인이 아닌 사람이 미인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 병원이 성업 중일 것이다. 얼굴만 성형하는 것이 아니라 힙과 다리까지 해준다니 몸매도 고쳐주는 모양이다. 혜원 신윤복은 조선조 후기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로서 미인도를 특히 잘 그렸다. 머리를 높게 올려 그린 미인도는 서구의 미인과는 확실히 다른 우리나라 미인의 전 형적인 모습이다. 신윤복은 여염집 아낙보다는 기생을 즐겨 그렸다. 박성민의 시조는 제목은 이렇게 붙였지만 실은 오늘날 성형수술로 미인이 되는 여성들을 은근히 비꼬고 있는 내용이다.
사람에 따라 시인에게 이렇게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좀 들여 외모를 가꾸겠다고 하는데 꼭 이렇게 초를 쳐야 되겠는가?
낙화, 첫사랑 / 김선우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아주 조그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
나뭇잎 편지 / 복효근
누가 보낸 엽서인가
떨어져 내 앞에 놓인 나뭇잎
어느 하늘 먼 나라의 소식
누구라도 읽으라고 봉인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펼쳐놓은 한 뼘 면적 위에
얼마나 깊은 사연이기에 그 변두리를 가늠할 수 없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이렇게 발음할 수 없다는 듯 가장 깊은 사랑은 다만 침묵으로만 들려줄 수 있다는 듯
글자는 하나도 없어 보낸 이의 숨결처럼 실핏줄만 새겨져 있어 아무나 아무렇게나 읽을 수는 없겠다
누구의 경전인가
종이 한 장의 두께 속에서도 떫은 시간들은 발효되고 죄의 살들이 육탈하여 소멸조차 이렇게 향기로운가
소인 대신 신의 지문이 가득 찍힌 이 엽서는 보내온 그이를 찾아가는 지도인지도 모른다
언젠간 나도 이 모습으로 가야 하겠다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바람은 그대 쪽으로 / 기형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곳을 찾고 있다.
외 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의 잠속에서 끼여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 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꺽 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 생의 벽지를 조 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등피를 다 닦아내는 박명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 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