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한 참을 울고나니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몇가지 노래를 들어봅니다.
1. 먼저 임을 위한 행진곡 입니다.
https://youtu.be/oWjVuL7NqqE?list=RDoWjVuL7NqqE
2, 광주출정가 입니다.
https://youtu.be/18bubVb-8P4
3. 오월의 노래
https://youtu.be/m9JeQXgUUhU?list=RDm9JeQXgUUhU
기억납니다.
1980년 5월 17일 토요일 오전 7시.
학교 운동장에 몽고텐트 용머리가 보이길래,,, 뭐지? 하면서 걸어갔는데,,,
공수부데가 어제 잠에 운동장에 설치한 막사였습니다.
학교 앞 다리까지 학생들이 모이고,,,, 공수부대와 대치하고,,,,,
난 아무생각 없이 20번 버스를 타고 금남로 광주학생회관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어머님께서 넌 절대 대모허지 말아라! 모난 돌이 먼저 정을 맞는다! 엄명하시길래 시위현장을 떠나 공부하려 갔습니다.
오후 3시가 되니 최루탄 소리가 진동하여 밖에 나가니 광주우체국 4거리 공수부대 쫙 깔리고 금남로는 진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침 5시부터 박찬희 세계타이틀매치 권투중계도 있고 해서 우채국 건너면 2층 우당방에서 커피시켜놓고 죽쳐있는데,, 유리창이 깨지면서 촤루까스가 다방에 진동함과 아울러 입구에서 많은 시민들이 공수부대 피해서 들어노다보니 물이 열려 다방안에 온통 최루까스로 범벅이 되었지요.
난 코너 화정실로 들어갔는데 1평도 못되는 대변실에 도대체 몇명이 틀러박혔는지 모를정도로 겨우 숨만 쉬다가 한참지나 2층에서 우체국을 바라보니 많은 시민들이 공수부대원에게 구타당하는 것입니다.
집에 가기가 까마득하는 찰라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 옆에 있던 아가씨에게 연기를 할 자신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러자 해서,,, 우린 대모족이 아니라 충장로에 대이트하러 나온 것 처럼 행세하면서 유유히 길거리를 활보하면서 도청엎에서 유동3거리, 아시아극장까지 모든 참상을 보면서 서로의 팔을 꽉 잡고 걸었는데,,,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걸어왔는지 머리가 하해졌습니다,
아시아 극장엎에서 그 아가씨와 해여졌는데 긴장헤서인지 아무런 인적사항도 몰랐고,,, 다방 앞에서 그 여자 친구와 헤어질 때 대화를 보건데 방통고 여학생이었고 나이는 25세 정도로 추정됩니다.
물론 그 후론 그 아가씨 그림자도 못보았습니다.
돌고개 너머 집에오니 마을 사람들이 마치 전승한 군인 맞이하듯이 나를 보고 살아서 왔다고 만세를 부르는데 정작 어머님은 속이 타들어갔답니다. 나를 찾아오라고 둘째형을 학교로 보낸 모양입니다.,
다행히 1시간 후 둘때형은 살아서 돌아왔지요, 형님은 체형이 왜소하여 공수부대 포함 누가 보더라도 중학생정도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5월 17일은 잠들었습니다.
난 당시 박정희 종교 신도였습니다.
어머님의 간곡한 당부,, 아침에 학교 갈때마다 제 손을 잡고 신신당부하신 말씀,. :넌 빠져라 모난 돌이 먼저 정을 맞는다!
왜놈시대를 거쳐 이승만 반공타령에 그리도 당하셨고,,, 빨갱이 놀음으로 아버님도 감옥가시고 고문으로 불구가 되시고,, 이런 남편과 7남매를 이끌고 가려는 맘은 ,,,, 당장 이승만 박정희 정수리를 호미로 자근자근 또아 죽여도 속이 풀리지않을 실 법도 하실텐데.... 넌 빠져라.
이 말씀만 혼이 나갈정도로 아들에게 거듭 강조하신 어머님 덕분에
난 도저히 대모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이런 죄스런 맘으로 윗 곡을 5.18 열령들에게 바칩니다.
당시 학생회장 박관현 형님에게 오늘도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죄스런 맘으로 살아갑니다. 지금은,
사실 저도 그 때 죽었어야 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죄스런 시대에 저는 살았습니다.
어머님 말씀으로 교우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저를 당시 학생회장은 이해한다 하시면서 저를 감싸주신 모습을 한 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전 78학번입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학업일수보다 휴교등 이런 저런 사유로 교실밖에 일수가 더 많았던 그 시절.
정말이지... 박정희 일당의 살인정권에 같이하지 못했던 저는, 살아서 괴로운 지금입니다.
노무현대통령님 서거 17주년 행사장 배경음악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자 내 맘은 광주 5.18로 날아가서 지금 이 글을 갈기고 있습니다.
지금 사라진 학우들이여, 미안합니다.
다음 날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