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을까 싶을 정도, 오늘의 만보 선택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성산과 표선은 거리도 얼마 되지도 않는데 표선에 가면 훨씬 따뜻한 느낌입니다. 하긴 오늘 전체적으로 기온이 좀 높기는 했습니다. 대설이라는 절기가 좀 무색할 정도의 맑고 밝은 햇살과 바람도 잠잠해서 그냥 가을날씨 같은 오늘, 표선해수욕장에서 소금막 해변을 돌았습니다.
표선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표선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길을 걷다 차도 옆의 자전거/걷기도로를 따라 소금막해변을 거쳐 해안산책로를 따라 다시 표선해수욕장으로 돌아오는데 그야말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표선해수욕장 산책로. 표선해수욕장은 드넓은 모래해변이 일품이고 너른 바다풍광도 훌륭해서 대규모 관광지답게 주변까지 다양한 시설들이나 조형물들이 다양하게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해수욕장 공원 내 운동도구에서 신나게 몸도 풀고!
표선해수욕장을 지나 큰 도로인 성산방면 일주동로로 합류하기 위한 도로변에는 먼나무들이 즐비합니다. 빨간색 열매가 얼마나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지 그것도 보기좋은데, 그 열매들은 추운 겨울에도 그 모양 그대로, 때로 눈을 뒤집어 쓰고도 그대로 있답니다.
도로에서 소금막 해변 가는 길쪽으로 들어서면 거의 무, 파, 당근밭이 쫙 펼쳐져 있지만 특이하게 잘 지어진 집 두 채가 마음을 확 당깁니다. 저는 외국에 가서도 예쁜 집 구경하기가 취미입니다. 살 맛이 팍팍 나도록 넓찍하고 멋지게 지어진 집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소금막해변 전에 두 채의 집이 멋지게 느껴지는 것 특이한 담장때문입니다. 하나는 동백울타리, 하나는 이름은 모르겠으나 멋집니다. 길가에는 칸나가 가득합니다. 깔끔하게 쌓아올린 현무암 돌벽도 보이는 것과 달리 꽤 견고하다고 합니다.
소금막해변은 서핑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파고가 제법 세고 높은 해변이지만 오늘은 맨발걷기하는 하는 몇 명의 사람만 있을 뿐... 어디를 가도 고요한 분위기입니다.
소금막해변에서 바닷가따라 나있는 산책길이 압권 중에 압권. 멋진 바다풍경과 해안가 둔덕들의 기막힌 조화가 이토록 아름답게 어울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일부 구간에서 연이어진 나무터널은 몽환적 분위기를 주기까지... 마치 밀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 아이들도 신기한듯 신나서 나무터널 속으로 쏙 사라집니다. 근데 안쪽은 전혀 어둡지 않고 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햇빛때문에 투명한 빛들이 쏟아집니다.
나무터널 숲을 지나니 올레길은 해안가로 연결되어 표선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지나게 되는데 그 풍경은 동남아시아에 온 듯한 분위기.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눈은 호강 그 자체인데 마음은 영 편칠 않습니다. 두 녀석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완이와 준이녀석... 오늘 완이는 가방을 매어주질 않았는데 벌주느라 그랬습니다. 오늘 집에서나 차에서나 특유의 쥐기질이 발동해서 여기저기 뒤지고, 그렇게 하지말라고 하는데도 제가 잠시 운전석을 비우면 차 뒤 트렁크까지 침입해 가방을 뒤져댑니다. 솔직히 너무 싫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결코 버리지 않는 나쁜 습성.
그래서 오늘은 먹을 것 없다고 선언하고 가방도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표선해수욕장 벗어나기까지 인상쓰기가 보통이 아닙니다. 코까지 심하게 파내서 코피도 쏟고. 이렇게 오로지 먹을 것에만 집착하는 모습에 더 화가 납니다.
그러고는 저한테 소득이 없으니 태균이한테만 자꾸 붙고, 태균이가 걷다가 잠시 앉는다 싶으면 가방을 열어 먹을 것을 꺼내려 자꾸 시도합니다. 보기에는 마치 태균이와 다정히 손잡고 다니는 것 같지만 그 속내는 오로지 먹을 것에의 집착 모양새라서 하나도 이뻐보이지가 않습니다. 이게 전두엽이 작동하지 않을 때의 사람에 대한 태도인 것 같아 오늘은 괜히 속상합니다. 제 마음을 읽는 듯 태균이도 완이의 이런 접근이 달가와하지 않지만 완이녀석 태균이가 종이호랑이란 걸 다 압니다.
준이녀석은 두통이 좀 오래간다싶어서 걱정에 걱정을 하는데 (하필 이 싯점에...) 편두통약으로는 한계가 있어 제게 있는 간질약을 먹여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 정말 8년만에 처음으로 퍼준 밥을 절반이나 남긴 것으로 보아 이 또한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사춘기 경기인가 정말 걱정도 많이 되고, 어제도 아침에 조증이 심하다 싶었더니 걷기내내 헛소리가 너무 심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헛소리야 워낙 오래 해왔고 늘 혼자서 떠드는 것이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어제부터 이 놈의 헛소리를 저한테 집착하면서 들으라고 괴롭힙니다. 저에 대한 행동집착이 너무 심해져서 잠시도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데다 헛소리 폭탄을 자꾸 쏟아붓습니다. 어쩌다 말같은 소리, '머리아파'와 같은 소리를 해서 '많이 아프냐?'하고 걱정스럽게 반문하면 싫어 아니야 하며 냉정하게 퍼붓는 소리도 어제 오늘 상처가 되서 가슴을 후빕니다. 무엇보다 저를 향해 무수히 반복해대는 똑같은 말의 숨겨진 현상이 무엇인지 알기에 걱정이 제 가슴을 내내 억누릅니다.
사람에 대한 집착, 언어강박, 지속되는 두통 등이 내포한 뇌적 현상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기에 너무 겁이 납니다. 이 아름다운 산책길에도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어찌해야 하나 의논할 사람이 없어진 것에 대한 현실적 대응이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준이는 나름 태균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피해가고자 매일 노력했는데도 피해갈 수가 없이 겪어야 하는 단계가 된 것인지... 제발 무수한 징조들이 잘 넘어갔듯이 무사히 넘겨주기를 바라고 바라는 수 밖에 없습니다.
첫댓글 교육효과가 더딘 것이 공통점 같습니다. 늦는 것도 백인백태고요.
어지간한 지구력 없음 포기하는 부모 있는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힘들고 무겁습니다.
대표님은 정말 멘탈 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