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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장화한테 욕먹는 날
산 위에서 발원지 찾아 내려오면서 비는 처발처발 내리고, 바로 옆에 내원사 등산로가 있어 계곡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할 때 싸구려 장화가 한마디 한다
"우얄라꼬~~~"
이른 아침 기차 타고 대전으로 다시 비 내리는 호남선 타고 논산에 내린다.
대전 복합터미널에서 곧바로 청양군으로 가서 오서산으로 가도 되지만 전날까지 조용하던 깽이님께서 새벽에 문자로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 자연 휴양림까지 택배 해주시겠단다.
깽이님 백마 타고 가는 길에 일기예보에 없던 소나기가 내리는데 앞 유리에 붙은 한쌍의 와이퍼가 이렇게 열일하는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깽이님 백마로 한 시간 가량 달려 오서산 아래 도착할 무렵에 비는 그치고 오서산 자연 휴양림 앞 차단기 앞에 서니 입장료 1천 원이라고 한다.
깽이님께서는 다시 집안일로 댁으로 가시고 혼자 월정사코스로 조용히 오르니 비는 그쳤는데 산객은 나 혼자뿐이다
비 와야 폭포
평소에 물이 많이 흐르는지 알길 없으나
비 오는 날 산객 없는 산속에 외롭지 않게 시끄러운 물소리를 들려주니 고마울 뿐이고
월정사
조그만 암자에 도착해 계단 위에 세운 대웅전에 계시는 부처님께 인사드리려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니 굳게 닫혀있다.
부처님께서 비 온다고 아직 기침하지 않으셨나
얇은 문 종이 하나 사이로 합장하고 돌아서서 산으로 오른다
두 번째 "오늘만 폭포"를 지나
원추리
하루만 피는 꽃으로 전날 사그라진 형제가 곁에 있어 외롭지 않을 듯하다
순결한 패랭이꽃
이름이 낯설지 않은데 조선시대 때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보부상들이 쓰던 패랭이 모자?
그리고 어버이날에 부모님 가슴에 곱게 달아드리던 분홍빛 카네이션을 닮은 것 같고
짙은 비구름으로 온통 뿌연 세상 속에 한점 피어있는 패랭이는 마음 편하게 해 준다.
오서산 능선에서
안개비와 비구름으로 가득하고
오서산은 보령시나 홍성군의 경계로 금북정맥 언저리에 있으며 서해를 대표하는 산이기에 조망도 아주 좋다
서해안 7천 km를 대표하는 산으로 개인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목포의 유달산, 부안 선운산, 내변산, 오서산, 서산 황금산 정도가 있겠다.
내리던 안개비는 잠시 그치고
정상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라도 불면 비구름이 어디론가 흩어질 텐데
오서산 정상(791m)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살아서 오서산이라 부르는데 경상도 상주땅에 속하는 속리산 천황봉 이후 이어지는 한남, 금북정맥과 금북정맥길의 최고봉이며 서해를 지나는 뱃사람들에게 이정표 및 등대 역할을 하던 멋진 산이다.
잠시 기다리니 산객 한분이 오시고
인증 담아본다
홍성에서 오셨다는 산꾼께서 조망 없다며 올라왔던 길로 다시 가시고
안내판
이곳에서 내원사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오늘 진행할 광천천 발원지는 내원골로 내려가는 등산로 좌측 계곡이며 , 우측으로 비슷한 길이의 계곡이 있는데 좌측이 20m가량 더 길다.
잠시 배낭 벗어 놓고 장화로 갈아 신고
내원사 방향으로
바로 옆에 등산로가 있고 계곡으로는 미끄럽고 나뭇잎에 물이 뚝뚝 떨어져 엄두가 안 난다.
풀 숲이건 물속이건 어디던 따라 가겠다던 전천후의 장화가 한마디 하는 듯 "야가 오늘 와 이카노"
지나간 경로
누적 246개 1만1천 741km
계곡이며
경사진 내리막길 아직 미끄러지지 않았지만 빗물 때문에 조심하면서도 대퇴부가 짜릿짜릿한 건 뭔지
이것도 대리 고통처럼 느껴진다
계곡을 좌측에 두고 물소리를 들으며 등산로 따라 내려와서
광천발원지는 정상 빗물꼭짓점에서 북쪽 계곡 따라 흐르지만 이렇게 비 오는 날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많아 정확하게 어디라고 말할 수 없는데, 갈수기때라면 해발 500m 높이의 내원사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極樂寶殿) 뒤 석간수를 발원지로 삼아야 할것 같다.
내원사
내원사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極樂寶殿)
스님이 거주하시는 요사체 앞에 자가용이 한대 있는 것 말고 너무 조용하다.
그리고 극락보전 앞 마당에 잡초가 많이 자라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음침하니 폐찰(廢刹) 같기도 하고
아미타 부처님께 삼배하려고 좌.우측에 난 문을 모두 열어봤지만 굳게 닫혀있다.
극락보전 뒤 조그만 철문속에 석간수가 나오는데
저곳을 광천 발원지로 삼으면 될 듯
물은 아주 깨끗하며
최근에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파란 물 바가지에 조그만 벌레가 많이 붙어 있는걸 볼수있다.
우물 상태로 봐서 최상급으로 최근에 사용한듯하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내원사
마당에 잡초가 신경 쓰이지만 갈길이 멀고 하니
애써 고개를 돌려 물길 따라 내려간다.
비가 오니 여기저기 "비 와야 폭포"가 되고
비 오는 날 숲 속은 언제나 음이온 풍년이라 좋고
내려가는 길
사방댐
홍수 방지한다며 계곡마다 시멘트 옹벽으로 막아 하류로 모래가 유입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7월 장마기간이라 전국에 물난리 소식이 전하는데 비가 많이 온다면 커다란 댐 수문을 열어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댐 수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특히 소양강댐 수문을 열었느니 ,충주댐 수문을 열었느니 하는 뉴스가 나올때
이유가 뭘까?
빗물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댐에 도착하지 않은 산속의 물을 기다렸다가 가장 안전할 때 수문을 열고 아래로 방류한다.
상류로부터 도착하지 않은 물
아직 산속에서 오지 않은 물
이곳 오서산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금북정맥 남쪽인 마온고개,보개산까지 모두 보령방조제로 들어가는데 그곳 5개의 수문 앞에서 기다려야 바다로 갈 수 있으며 이 정도 비로 수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다.
비오니 등산로까지 온통 물이고
이런 날은 장화가 제격이라 철벅철벅
"비 와야 나도 폭포"를 지나고
물은 계곡을 빠져나오면 싫든 좋든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데 이곳의 물도 서해로 흘러가야 하기에 지금처럼 깨끗함을 얼마나 유지할지...
아랫동네가 어떤 동네인가 축산의 1번지라는 홍성땅이다
노란 우산 쓴 꼬마 야생 버섯
전국에 자생하는 야생버섯은 2천 종 이 중에서 20%가 독버섯이고 습기가 많을 시기인 장마기간에 우후죽순으로 올라온다.
하천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다슬기 그리고 거친 산속을 지키는 야생버섯 둘 다 위험한 먹거리?로 모르면 마트에서 사 먹는게 북망산천이나 요단강 건너지 않고 만수무강으로 이어진다.
내원사 방향
여기저기 "비와야 폭포"
조용한 계곡으로 온통 물소리만 요란한데 여름 장마철에 며칠만 들리는 자연이 내는 최고의 소리로 생각하면 되겠다.
도로옆 계곡에서 땀도 씻을 겸 장화는 벗어두고
편한 신발로 갈아신는다.
축산의 1번지 홍성땅
오서산에서 이어지는 금북정맥 마루금
금북정맥이 지나는 인근으로 충절과, 애국, 독립투사분들 애국지사분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산줄기로 성삼문, 이순신, 유관순. 김좌진, 윤봉길, 한용운 같은 이름만 대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분들의 고향이다.
땅값 비싸기로 본다면 한남정맥이 최고
평균 산 높이가 가장 높은 곳은 금, 호남정맥
마루금이 도로는 관통하지만 도심을 지나지 않은 산줄기로 호남이 있고
마루금을 절하해서 끊어진 곳은 한남과 낙남이 있고
마루금을 짜르다가 만곳은 금북정맥이 있다.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에서 본 금북정맥 마루금
오서산과 금북정맥 마루금
길가에 버린? 흘린?
"광성이 아제"가 달구지로 싣고 가다가 버린 건 아닐 테고, 가끔 길 가다 보면 축사 분뇨가 주르르 흘린걸 본적 있는데 같은 뜻으로 해석해야 하나
서해안으로 흐르는 광천길을 걸으며 이곳만 쓰레기고 나머지는 쓰레기나 불법 소각한 곳은 없다.
수초풀인 마름이 가득한 장곡 저수리 반바퀴 돌아가야 하는데
마름 열매는 삶아서 먹으면 맛이 좋고 노화예방에 좋다고 한다.
장곡저수지 배수로에서 물이 방류되는 모습
깨끗하던 물이 저수지에 들어가면 흙탕물이 되어 나오는 것도 신기하다.
꼬마 농부의 힘찬 괭이질
할아버지는 고추밭에서 일하시고 손자는 쓰지 못하는 예초기 날로 만든 괭이로 땅바닥을 콕콕치며 놀고 있다
축산 1번지라는 홍성
전국에서 돼지를 가장 많이 키우는 곳이며
한우 소고기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전국의 수많은 하천으로 갈대가 빼곡하게 많이 자라는데 어릴 적에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지게 지고 소먹일 풀 베러 가서 갈대풀도 지고 와서 소 먹이던 때가 생각나는데 볏짚 보다 단백질 함량이 2배 정도로 높다고 한다.
요즘은 하천에 자라는 갈대는 동, 식물이 사는 곳이기에 무단으로 벌채하면 벌금 나오기에 관할군청에 알아보고 사료로 써야 한다
조금 베 가는 건 뭐라 안 할 듯...
월림천
금북정맥이 지나는 마루금에서 흘러온 물인데
이물이나 저물이나 물속 풍경은 비슷하다
들판 너머 오서산
어떤 물고기가 살까?
족대질하시는 마을분들
어릴적에 족대 들고 마을 앞 조그만 저수지에서 새우 잡아 프라이펜이 소금, 식용유 살짝 넣고 빨갛게 볶아 먹었는데...
지금은 고향에 가도 70대 이상의 어르신들뿐이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큰 저수지에 앉아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 외지인들이다.
광천읍 소암리와 가정리를 이어주는 소용 2교를 지나
하천 맞은편 소암리 마을 느티나무
허리둘레와 짤막한 자태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지만
다리 맞은편에 있기에 돌아가기도 그렇고 먼발치에서 한 장 담아본다.
광천읍 광천리에 들어서니 오서산 북쪽 끝자락에 열녀 원주변씨정려(烈女 原州邊氏 旌閭)가 외롭게 마을을 지킨다.
함경도 땅 길주(吉州) 목사를 지낸 변성화의 딸이자 전라수사(조선시대 정 3품 무관 벼슬이며 지금 벼슬로는 준장급*) 이유수의 부인 원주 변 씨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웠는데 남편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자신의 허벅지를 깊게 도려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흘러 넣었을 정도로 지극한 간병에도 남편이 숨지자 장례를 마치고 남편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비석은 없고 정려 현판만 있다
열려(烈女)...
수군 절도사 이유수 처(妻) "증 정부인 원주변씨지려"라 쓰여있다.
사대부집이나 평민집안의 아내들은 남편이 아프면 기본적으로 허벅지 살을 도려내 피를 마시게 했다는 이야기와 남편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이야기는 늘 마음 아프게 한다.
광천읍에 들어와서
한때는 서해바다물이 들어오던 곳이며
보령 오천항의 충청수영에서 광천, 홍성, 예산, 아산, 팽성,평택, 수원을 지나 한양으로 넘던 과거길이며, 보부상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던 곳이다.
광천 시장 동문
광천에 왔으면 시장 안에 있는 한밭식당에 들러
냉면 정도는 먹어줘야 하기에 들어간다
지난해 겨울이던가
보령 오천항의 충청 수영길을 걸으며 이곳 광천에 들러 라면이라도 먹고 갔나 생각해보는데 모르겠다.
오늘은 라면 아닌 냉면으로...
한밭 식당은 유명맛집이라 손님이 많고 맛도 아주 좋은 곳이다.
옹암교를 지나
옹암마을로 가는 길에 철 지난 장미 터널을 지나며
장미가 한창이던 계절이 끝나고 뒤늦게 핀 장미가 반기는 터널을 지난다.
옹암마을
오천항에서 13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1997년 보령 방조제 건설로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고 그 시절 포구 주위로 길게 늘어섰던 토굴 새우젓 가게들만 1km 정도로 길게 서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지...
광천 젓갈, 부안 곰소 젓갈도 유명한데 강경 젓갈과 함께 우리나를 대표하는 젓갈이다.
이곳 광천은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하며 보령 방조제가 없던 시절 서해바다로 떠나는 포구가 있던 마을로 광천에는 100개의 새우젓 제조 판매 업체와 40개의 새우젓토굴이 전통사업으로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옹암포구 앞
1950년 옹암포구 사진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한 옹암리는 한때 시집가고 싶은 곳 1순위에 올랐던 만큼 부자들이 많이 살았지만 보령 방조제를 막으면서 점차 인기가 시들해졌으며 바다는 보이지 않고 갈대만 무성하다.
바다는 없고 호수를 닮은 하천만
새우 양식장
하천가에 자라는 어린 옥수수와 서해안 고속도로
지나온 서해고속도로
지나는 길에 항일 애국열사 류준근 님 묘소에 잠시 들러본다
류준근 님 묘소
깨끗하게 벌초한 묘소를 가운데 두고 좌, 우에 장군 무인석(武人石)과 석등(石燈)을 모셨고
보령의 특산품이 오석(烏石)으로 비석을 썼는데
友鹿柳濬根烈士抗日運動事蹟碑
(우록류준근열사 항일운동사적비)가 써있다
잠시 묵념하고
내용은 읽어보시고
바다였기에 바다가 더욱 그리운 곳
잠시 돌아가는데
광천 지류에 비엣남 남자 둘이서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게 보이고
부모님 중 한 분은 외국분 같은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외국인 모습으로
한국말과 충청도 사투리까지
고기 잡겠다며 준비하는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수영, 낚시, 물놀이 금지라고 현수막이 쓰여있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소용없는 듯하다
지나가는 분께 보리차 음료 한병 얻어 들고
친절을 보고 배우고 싶다면 산 위보다 산 아래를 지나보라 말하고 싶고, 국토종주를 해보라 하고 싶다.
다만,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지 못할꺼라면 집에 있는게 몸과 건강에 좋다는 것만 알고
이곳도 바다였던 곳
도미항 마을
바다였던 때가 좋았을 것 같은데...
도미란 이름이 낯설지 않기에 몇 자 적으면 도미(돔)는 물고기 이름이 아닌 삼국시대 때 설화 속의 주인공이야기다.
백제 개루왕 시절에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던 "도미"의 아내로 미모와 절개가 높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이를 진짜인지 시험하기 위해 왕이 온갖 유혹과 협박을 했으며, 남편 도미의 두 눈을 뽑아 내쫓는 등 잔인한 방법을 가했음에도 도미부인은 끝까지 정절을 지켰다.
"나한테 왜 이래?"
이에 도미부인이 "이 나라에서 못살겠다"며 탈출하여 북쪽으로 가던 중 한강 가에서 남편 생각에 통곡하다가 지나가는 배 한 척을 얻어 타고 고구려 산산국에 이르러 극적으로 남편을 만나 평생을 함께 보냈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다.
인근에 옥녀봉 자락에 도미부인 정절사가 있으나 차시간도 그렇고 찾아보지 못한다.
한때는 섬(島)이었던 때도 있었을 텐데
"다 옛날이야기"라는 북배산
도미부인 둘레길
지나며 다 가본 곳이라...
저짜 보령방조제 수문이 보이고
보령방조제 길이 1km
이곳에서 광천 28km는 정리하고
방조제에서 본 간척지
예전에 광천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갔다고 하니 전체 면적은 25㎢ 정도는 될듯하다.
이곳은 바다를 품은 항구
바닷물은 한치 속을 보여주지 못하고 더럽기만 하다.
보령호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에 농경지 확보와 농업 용수를 위해 1991년 시공해서 1997년에 완공했는데
개발면적 8,100ha,만수면적 582ha이며
저수량은 1,933만톤이다
오천읍,천북면,은하면,광천읍,청소면에 걸쳐 있다
이곳 인근으로 농경지와 농업용수 확보한다며 만든 간척지인 평택,석문,서산,새만금 방조제가 있겠다.
바다로 나가고 싶으면 위로부터 많은 물이 들어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고
이제 하천은 끝내고
충청 수영이 있는 영보정까지 다시 걸음하며
충청 수영길
조선시대 영남대로, 삼남대로. 통영좌, 우대로, 관동대로, 의주대로, 경흥대로. 봉화대로, 충청수영길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로써 배고픔, 풍찬노숙, 한겨울 강 건너기, 부싯돌로 불 붙이기, 산도적, 산짐승과 깡다구하나로 맞짱 떠가며 하루 평균 70리에서 80리를 걸음 하는 동안 생사를 몰랐던 극한의 생존길이다.
배고픈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겠는데 다른건 못 참을듯
충청수영 영보정
조선시대 충청수영 관할 구역은 금강 하구 군산부터 평택에 이르렀으며, 군선 47척, 수군 8415명으로 운선 보호 관리를 담당하였고, 본영에서는 군선 40척, 선군 1176명, 선직 114명, 최고 사령관인 정 삼품의 수군절도사, 부사령관인 정 사품의 우후(虞候)가 자리했다.(우후는 중령급 직급으로 보면 될듯하다)
성내에는 동헌과 영보정등이 있었는데 약 500년 동안 서해안 방어의 중심지였던 충청 수영은 1896년인 갑오개혁 때 폐영되었다.
영원히 보존한다는 뜻의 영보정(1504)
오천항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는 영보정은 1504년 수사 이량이 지은 건물로 갑오개혁 때 충청 수영(1896년)이 폐지되면서 없어졌다가 2015년에 다시 복원한 건물인데 조선시대 때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백사 이항복 같은 분들이 이곳 영보정을 조선 최고의 정자라 칭했다고 하셨던 곳이다.
보령항과 보령 방조제 모습
충청 수영 장교청
조선 초기에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최고 사령부 수군절도사 수영이 있던 곳
경상도 낙동강으로 이어져 장흥, 법성포, 안흥창을 지나 한양으로 올라가는 조운선 보호와 왜적을 감시하며 침입을 막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다
그리고 충청도 수군은 임진왜란 때 남해 바다를 지킨 삼도수군(三道水軍) 통제사 이순신장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는데 삼도수영은 여수의 전라수영, 충무의 경상수영, 그리고 충청 수영이 있으며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를 하셨던 이순신장군께서는 한산도에 계셨다
충청 수영 내삼문과 비석 군
수군절도사 15기와 관찰사 3, 어사 1기 그 외 여러 기가 줄지어 서있다.
금 간 비석은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1784~1835년) 순조 때 암행어사로 활동하신 분인데 대전시 대덕구에도 영세 불망비가 한기 더 있다
좌측으로 3기는 관찰사
수군절도사(종 2품의 ☆하나이며, 광역시장급 벼슬) 비석 15기가 서있고
충청 수영 내삼문인 공해관(控海館)
충청 수영 500년간 수군절도사가 집무하던 공예관의 출입문으로 역할하던 삼문이다.
짧은 걸음 걸으며 후덥지근하더니 이렇게 마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가 퍼붓는데
오서산 산행하기 전에 소나기가 그쳤고 하천 끝나니 소나기 쏟아진다
복도 복도 이런 복이 또 있을까
이제 버스 타고 보령으로 나가서 내일은 부여 금강으로 흐르는 금천의 최장 발원지 구룡천 28km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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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저께는 영인지맥길을 걸으면서 멀리서나마
아산만 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를 접하였는데
오늘은 방장님의 산행기로 보령 방조제를
접하여 봅니다.
사실 보령방조제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지만
농사를 지으려면 방조제가 필요한건 어쩔수없는
선택인것 같습니다.
사방댐도 비슷한 이유에서 필요한것 같구요.
소나기가 늦게 내리는것도 우리팀과 비슷하게
고생했으니 시원하게 마무리 하라는
하늘의 배려가 아닐까요....ㅎ
방조제로 물길이 막히니 고인물은 탁도가 심하고 더럽습니다.
개발보다 보전을 했더라면 더 좋은 환경이 아니였나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예전에 비해 쌀이 많이 생산되지만 상대적으로 쌀 소비가 적은것도 사실입니다.
이동할때는 소낙비가 많이 왔으나 걸을때는 비가 오지 않아 걷기에 좋은 하루였습니다
광천천 잘하고 가셨네요.
^^
산속 폭포들 지나며 음이온 팍팍~
이번 강행하고 몸이 더 좋아지셨을 듯 합니다.
축산의 1번지... 그래도 강가로
소나 돼지 키우는 곳이 많지 않았던 듯 언급은 아니 보입니다.
쓰레기는 쓰레기차가 싣고 가다가 쏟아진게 틀림없는 듯 ㅎㅎㅎ
꼬마 농부의 단단한 다리며 팔
들고 있는게 많이 보던 것이다 싶었는데
예초기였군요. ㅎㅎㅎ 고녀석 참... 이쁩니다.
허벅지 살을 도려내 그 피를 남편에게 먹이고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는 원주변씨의 절개?에
씁쓸해지며...
도미부인에 관한 이야기 덕분에 찾아보며
잘 봅니다.
날도 안좋았는데 한걸음 다녀가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인들이 늘 희생되었던 시대에 열녀라는 이름으로만든 정절문,그리고 붉은 홍살문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나 생각해본 걸음 이였습니다
택배 감사합니다
작년 뙤약볕 오서산 정상 ... 생생합니다.
올해는 비에 젖은, 조망 없는 오서산 정상을 봅니다.
사람이 변하지 산은 변하지 않는군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걸음, 한걸음 의미 있는 걸음, 잘 보고 갑니다.
이번 호미대왕 고생 많이하셨죠
임도길이 길고,비오고,찜통같은 날씨
고생 많이 하셨구요
후기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외출하듯 다녀온 걸음
이제서야 돌아와 피곤한 눈으로 한줄한줄 생각없이 읽어 내려가는데
"대리고통"이란 단어 하나가 마음에 꽂혀버립니다
잠시 글 읽기를 멈추고
그간 말은 하지 못했으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그 장화
방장님께서 느끼셨던 찌릿함이 어쩌면 장화의 대리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하시니..
ㅎㅎ
하필이면 그 말씀 한마디에 저 역시 돌아보게 됩니다
빨갛게 어깨를 짖누르던 배낭
숨도 못쉬게 답답한 등산화
걸치고 있는 모든것들이 비오는 날의 덕석과 같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는데
어쩌면 대리고통이라니..
말씀처럼 그리 생각하니
이젠 볼멘 소리도 못하겠습니다 ㅎㅎ
대리 고통을 아시나
걸어봐야 느끼고 아는데
노트에 적어놓은 하천이 다음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직 다음장이 여백이라 다시 작성해야 합니다.
호미대왕 후기 따뜻한 햇살처럼 따끈하고 재미나게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충남 보령의 오서산과 홍성땅.광천 새우젓 토굴과 보령방조제 충청의 역사와 문화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에 고향이고 광천에서 학창시절 보냈고 해서 많이 생각나고 광천 시장 사진보니 새롭네요.현제 이모님이 광천역에 사시고 해서 유명한 광천 새우젓 토굴단지와 광천김이 고려시대부터 전해져왔고 전국새우젓 생산량의 약60%를 차지할 정도로 판매량과 비중이 크다고. 합니다.또한 홍성의 조양문 홍주 산성도 어릴적에 놀던곳 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고향 떠나온지
오래돼서 지금은 새롭게 많이 변했을겁니다.그리고 광천 이름도 오서산에서 발원한 하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지난번에 계룡 두계천과 이번에
광천천 발원지을 어렵게 발굴 하시고 널리 공유 해주셨서 감사드림니다.장마비로 걸음 하시느라 고생 하셨겠네요.담 부여 구룡천 걸음도 잘 다녀오시고 무탈 기원합니다.
배고프던 시절 농지확보 차원으로 1965년부터 시작한 간척지 공사로 인해
진짜 소중하고 아껴야할것들을 땅에 묻어버렸죠
시화지구,대호지구,평택,석문,서산,새만금,해남까지
간척지확보와 담수화로 농업용수 확보한다고 했지만 가둔곳의 물은 너무 더럽습니다.
이번주에 구봉산에서 봽겠습니다
비와야폭포.
오늘만 폭포.
(그런곳 천지삐깔ㅋ)
베스트 오브 더 백마태워줄
수제자가 있어 천만다행 입니다.
혼자서 맨날 뭘 찿아다니시는지 ㅎㅎ
비와야 폭포도 나름 멋진곳이 많죠 ㅎㅎ
혼자가야 생각할게 많은데 같이가면 떠들다가
다 놓쳐 버립니다.
누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어디든 명승지 휴양림 기타 유적지
동강주변에도 모두 입장료를 내야한다
오서산 저번 정맥하면서 곁봉으로 다녀왔던곳 그때는 날씨가좋아 웅장했던 기억이
비가내려 수량이 많아 발원지 찿기가 쉬웠는지 모르겠네요
광천천 발원지 주변에 즐감하면서
새로운역사공부 많이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동강 아름답죠
한국에 한강이 있어 좋고 그가운데 동강은 낙동강 청량산 아래와 비슷한 경치가 나오죠
하천은 길거나 짧거나 특징이 있는데 찾아보시면 재미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비 와야 폭포들을 보니 갑자기 10년전쯤에 다녀온 제주도 엉또폭포가 생각이 납니다. 거기도 비 와야 폭포!ㅋㅋ
날씨운은 좋지만 조망은 꽝이네요!
날씨가 습하고 후덥지근해보입니다.ㅠㅠ
더운날 고생하셨고 깽이선배도 드라이브 잘 하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