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갑: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는 종교적 덕을 함양해야 한다.
갑은 우선 아퀴나스입니다.
우선 앞서 힉스님이 글을 통해 이 선지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신학대전 질문 62에 자세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 중 the theological virtues is directed to his connatural end 부분이 나옵니다.
즉 ‘종교적 덕은 인간의 본래적인 목적과 연관되어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but these two fall short of the order of supernatural happiness, according to Cor. 2:9 “The eye hath not seen, nor ear heard, neither hath it entered into the heart of man, what things God hath prepared for them that love Him.”
이 두 가지는 초자연적인 행복의 질서에는 부족하다라고 말하면서 고린도 전서 2장 9절
“하느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한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다.”을 인용합니다. 즉 인간이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갖추고 있는 능력만으로는 지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맥락에서 man receives certain supernatural principles, which are held by means of a Divine light: these are the articles of faith, about which faith.
신의 은총이 필요함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은총의 내용으로 믿음(믿음의 내용들)이 있음을 말합니다.
결국 완전한 행복 즉 지복을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참고하면 종교적 덕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얻기가 불가능하고 신의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선 힉스님이 제기한 이의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함양이라는 단어가 과연 어울리는 단어일지 그리고 성립할 수 있는 단어일지 말이죠.
이제 다른 방향으로 가보자면(물론 신의 은총과 관련해서는 오로지 신의 영역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노력은 무가치합니다.)
아퀴나스가 인간의 노력을(인간의 노력 그 자체) 무시하거나 무가치하다고 여긴 부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퀴나스는 아시다시피 인간이 철학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해야 함을 주장하였죠. 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노력을 부정하거나 무가치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아퀴나스가 신자들에게 신의 은총은 신에게만 달려있으니 너희들의 노력은 무가치하다고 말하겠습니까? 아퀴나스가 신의 은총은 인간의 노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라고 주장한 부분은 없습니다. 물론 관계가 있다라고 주장한 부분도 찾지 못하였습니다.(찾으신 분이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조금이라도 더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철학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해야 함을 주장한 것은 결국 인간의 이성능력을 갈고 닦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다면 지복이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함을 말이죠.
아퀴나스는 신의 은총이 있어야만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즉 종교적 덕이 있어야만 지복에 다다른다 즉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자들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지옥에 가는가? 카톨릭은 물론 아퀴나스 또한 연옥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지옥에 갈만한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천국에 갈만한 자격이 없기에 영혼들의 감옥에서 죄를 씻고 천국에 가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단계로 말이죠. 비록 신의 은총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살아있을 때의 노력들은 무가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힉스님의 글을 보고 일정부분 오해할 수 있겠구나 혹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부족하지만 글을 씁니다.
(저보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많지만 그냥 부족한 동료가 공부한 내용을 올렸구나 하고 생각해주세요.)
힉스님과 한삶님이 쓴 글을 보면서 부족함을 느낌과 동시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제 글에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 혹은 다르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으시면 꼭 덧글로 알려주세요^^
첫댓글 아퀴나스는 연옥 개념을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아우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 입장에서 보면 '태초'에 은총을 받을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이미 모두 결정되어 있는데, 어느 날 갑돌이가 2000년에 태어나서 '노력'을 한들, 태초에 결정된 신의 은총에 변동이 생기지 않겠죠.
아우구스티누스 당시에 신의 은총이 인간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펠라기우스입니다. 아퀴나스 이후에 유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아르미니우스이고요.
저는 출제자들 중 일부라도 이런 것쯤은 알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들이 몰랐던 것은 '함양'의 철학적 의미죠. 교과서를 보면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갖추고'인가 뭔가 하는, 믿음-소망-사랑이
마치 인간이 스스로 갖출 수 있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과서를 지금 학교에 놔두고 와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유사한 표현이 있어서 그나마 세련되었다고 생각해서 '함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우리 윤리교육과 안에서 '함양'의 철학적 의미를 고민한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예전에 고민한 적이 있고, '함양'이 주제는 아니었지만 어떤 글을 쓰는 와중에 이 '함양'의 의미를 천착한 적이 있어서 대번에 문제된 선지에서 '함양'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겁니다.
@힉스 말씀하신 함양이라는 용어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고 그걸 지적하신 부분은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퀴나스는 제가 알기로 연옥 개념을 사용하였고 그가 쓴 사도신경 강해설교에도 나와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읽지 않았기에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플라톤 지금 교과서 5종 및 연계교재를 다 살펴봤는데,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하면 완전한 행복에 이른다는 식으로 서술해놓았네요. 그래서 선지에 '함양'이라는 말을 쓴 듯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한 후에' 은총이 오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실천(노력)과 무관하게 은총이 오는 것인지를 해결해야 하고, 믿음, 소망, 사랑이 바로 은총의 내용인지, 아니면 은총과 무관하게 인간의 노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갖게 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믿음, 소망, 사랑이 은총의 내용이라고 보는데요. 더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만일 제가 맞는다면, 5종 교과서 및 연계교재, 그리고 이번 윤사 6번의
@플라톤 ㄴ 선지까지, 아주 엄청난 오류임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겠죠. 확인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힉스 우선 제가 확인한 바로는 은총과 무관하게 인간의 노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갖출 수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또한 사랑없는 믿음이 없고 믿음없는 사랑이 없다면서 각 덕관의 관계를 밝히기도 했구요. 사랑없이 믿음이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완벽하지 않다면서 결국에는 믿음, 소망, 사랑은 다 필요하고 완벽하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요. 완벽한 의미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은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불완전한 믿음, 소망, 사랑으로는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구요.
@플라톤 우선 정리하자면(쓰신 순서대로) 1.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한 후에' 은총이 오는가? -> 불완전한 믿음, 소망, 사랑은 있지만 완전한 의미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은 신의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 2. 인간의 실천(노력)과 무관하게 은총이 오는가? -> 이런 부분은 아직 못보았습니다. / 3. 믿음, 소망, 사랑이 바로 은총의 내용인가? -> 확인한 부분입니다. 그것들이 종교적 덕이고 신의 빛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덕의 뿌리라고 표현을 하죠. 그러한 사랑은 믿음, 소망과 관계가 있구요. / 4. 은총과 무관하게 인간의 노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갖게 되는가? -> 불가능합니다. /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플라톤 결국 '신의 은총이 있어야지만 완전한 의미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며(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갖출 수 있으며) 이러한 사람은 지복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가능하고 이 부분은 확실한 내용이라고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저는 신학대전 질문62, 63,64,65,109를 참고하였습니다.
@플라톤 좀 추가하자면 Hence it is necessary for man to receive from God some additional priinciples, whereby he may be directed to supernatural happiness, even as he is directed to his connatural end, by means of his natural principles, albeit not without Divine assistance. Such like principles are called "theological virtues" / 인간은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해 주는 몇몇의 추가적인 원리들을 신에게서 받아야 한다. 인간의 본래적인 목적은 인간이 완전한 행복을 얻는 것이고, 그의 자연적인 원리들을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지만 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한 원리들은 "종교적 덕"이라고 불린다.
@플라톤 "theological virtues": first, because their object is God, inasmuch as they direct us aright to God: secondly, because they are infused in us by Hod alone: thirdly, because these virtues are not made known to us, save by Dvine revelation, contained in Holy Writ. / 첫째로 그것들은 우리를 제대로 신에게로 안내하기 때문에 그것들의 목표(대상)는 신이다. 둘째로, 그것들은 신에의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셋째로, 그 덕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데 우리들만으로는 제대로 알 수 없다. 신의 계시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 해석이 유려하지 못함을 이해해주세요.
@플라톤 잘 찾아주셨네요. 결국, 믿음, 소망, 사랑은 은총의 내용이고 신에 의해 주어진다고 하고 있네요. 교과서 서술을 다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윤사 6번 ㄴ 선지도 당연히 오류고요.
@플라톤 윤사 6번 ㄴ 선지에 대한 글은 평가원게시판에는 올리고, 그리고 이 카페에도 올렸지만, 오르비나 수만휘에는 안 올렸는데,
플라톤 님이 찾아주신 원문을 포함해서(갈무리해서) 오르비와 수만휘에 올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힉스 옙 해석이 유려하진 못하지만 원문 그대로 가져온 내용이니 잘 정리하셔서 올린다면 모든분들에게도 좋을것 같습니다.
@플라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평가원게시판에도 새로 올리려고 합니다.
플라톤님 신학대전까지 찾아주신 깊은 연구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신학대전을 구입해 두고 읽어본다고 하는 것이 아직 손을 못대고 있네요.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믿음, 소망, 사랑이 신의 은총이 있을 때 완전해진다고 했는데 플라톤님께서 본문에서 쓰신 것처럼 이것이 '인간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인간의 노력+신의 은총 반드시 필요=완전)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그리고 '신의 은총이 있어야지만 완전한 의미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며'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것을 믿음, 소망, 사랑의 '함양'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플라톤님의 견
질문만 하려 하지 마시고...반드시 근거가 있는 주장이어야 하고요.
그러니까 믿음, 소망, 사랑이 신의 은총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쟁점인데, 플라톤 님의 인용문에 의하면 '신의 은총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고 있네요? 명확하게 그렇게 아퀴나스가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과 다른 주장을 하고 싶거나 아퀴나스의 취지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으시다면 근거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한번 찾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플라톤 님이 먼저 찾아주셔서 수고를 덜게 되었네요.ㅎㅎㅎ
@힉스 신의 은총에 의해 주어진 것이면 함양할 수 없는 것인지요?
성리학은 하늘에 의해 주어진 성을 함양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우선 명확한 것은 종교적 덕을 얻기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이외에 과연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는가 그 예로 인간의 노력을 들 수 있는가 라는 점이 저도 궁금하지만 아직 그 부분을 찾지 못하였습니다.(이 내용은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구요.) / 함양이 길러서 쌓거나 갖춤인데 결국 덕을 함양하려면 인간이 스스로 덕을 얻을 수 있거나 혹은 이미 씨앗이 있어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의미인데, 아퀴나스가 말한 종교적 덕이 '종교적 덕을 함양해야 한다.'라는 표현에 적합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플라톤 우선 국어선생님에게 물어보니 품성이나 능력을 길러서 / 쌓거나 갖춤 이렇게 성립된다 하더군요. 즉 품성이나 능력을 길러야만 쌓거나 갖출 수 있다는 것이죠. 품성이나 능력을 길러야 종교적 덕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 아퀴나스에 따르면 인간의 품성이나 능력을 기른다 할지라도 신의 은총이 없다면 종교적 덕을 갖출 수 없고 그렇다면 인간에게 종교적 덕을 함양해야한다 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는 보기 힘들죠. 함양은 능동적 성격이 있는데, 종교적 덕은 오로지 신에 의해 주어지니까요. 굳이 함양이 가능해지려면 신학대전에 인간의 노력과 신의 은총과의 관계성이 있고 긍정적?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생각이 많아지네요
@플라톤 네~ 감사합니다
@이충 주자학에서 왜 '함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는...원래 맹자가 사단의 '확충'을 얘기합니다. 확충의 대용어로 '함양'을 사용했다는 사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교적 덕이 신에 의해 주어지지만 그 주어진 것을 '실천'하고 길러 '함양'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닐지요?
말씀하신 주장이 성립되려면 신학대전에 관련 내용이 나와야 합니다. 가령 은총을 받았지만 죄를 짓는다던지 혹은 은총을 받은것으로는 불충분하다던지 말이죠. 허나 그러한 내용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찾으신다면 알려주세요!
이충 님! 5종 교과서와 연계교재에서는 님이 말하는 그 <'실천'을 해야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신이 은총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개인에게 주었는데, 그 종교적 덕들을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이 아퀴나스 원전에 나와 있어야 한다고요.
우리는 신의 은총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신의 은총 내용이 믿음, 소망, 사랑이고요. 그런데 인간이 그 덕들을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면(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면), 신의 은총 외에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게 됩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가 배제하고자 했던 주장이라고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아우구스티누스든 아퀴나스든, 책에서 근거를 가져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근거 없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만 하시면...
@힉스 넵~신학대전을 한번 읽어보고 글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