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로 가는 길

[대약초]

수억 년의 시간이 더께로 덮인 유타의 광대한 대지는 살아 있는 지질학 박물관이자 한 편의 드라마다. 아메리칸인디언이 그 땅에 심어둔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글 허태우 ・ 사진 이한구

아치스 국립공원의 주요 도로인 시닉 드라이브를 달리는 라이더. © 이한구

서부로 가는 길

금요일 오후, 유타의 주도 솔트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를 가로지르는 15번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15)에 차량의 행렬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펼쳐진 와사치 산맥(Wasatch Mountains)의 봉우리는 아직 잔설에 덮여있고, 그 위를 짙은 먹구름이 감싼다. 얼마 안 가 고속도로 위로 소나기가 떨어진다. 이론적으로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하염없이 달리면, 캐나다를 넘어 알래스카 페어뱅크스(Fairbanks)까지 갈 수 있고, 남쪽으로 생각 없이 달리면 라스베이거스를 지나 샌디에이고와 멕시코 국경에 닿는다. 물론 그렇게까지 멀리 가려는 차량들 때문에 일행이 탄 9인승 밴이 느릿느릿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소나기에 차가 밀리는 것도 아니다. 금요일 오후는 솔트레이크 시티 권역의 주민이 앞다퉈 집을 나설 때.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들은 서부의 향취와 자연의 경이가 오롯이 살아 있는 대지를 향하고 있다. 우리의 밴은 모아브를 지나 산후안 카운티의 작고 멋들어진 동네 블러프(Bluff)를 거쳐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까지 달려가야 한다. 가끔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이게 유타의 교통 체증입니다. 서울에 비할 바 안되지만, 금요일만 되면 유타 주 남쪽의 국립공원과 휴양지로 떠나는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죠. 사실 출퇴근 시간에는 이 정도로 막히지 않아요.” 운전 중인 찰리 드롬(Charlie DeLorme)이 말한다. 그는 Brand USA(미국관광청) 로고가 박힌 선글라스를 쓰고, ‘Utah, Life Elevated’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었다. 여행업계에서만 3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지금은 유타 주 남부 산후안 카운티(San Juan County)의 여행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유타 주 여행에 관해서는 당연히 최고의 전문가. 그런 만큼 유타를 자랑하는 일도 능숙하다. “조사에 따르면 유타는 미국에서 학력 수준이 가장 높은 주예요. 삶의 질이 높고 안전해서 유입 인구가 늘고 있고요. 현재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인데, 여행 산업에 투자를 많이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케어(미국의 건강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를 발 빠르게 받아들일 만큼 개혁적이고 합리적이기도 하고요.” 그가 쏟아내는 설명은 베일에 쌓인 듯한 유타를 한 꺼풀씩 벗겨낸다.

데드호스 포인트 주립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콜로라도 강과 메사의 경이로운 조화. © 이한구

흔히 유타 하면, 무척이나 보수적이고 조용한 서부의 마을을 상상하기 십상이다. 주민의 약 62퍼센트가 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모르몬교(Mormon)라고 부르는)를 믿기 때문에 아직도 검은색 정장과 롱 드레스를 입은 백인이 거리를 활보하고, 카우보이모자를 쓴 중년이 시가를 피우며 흔들의자에 앉아 있을 것 같다. 1847년 브리검 영(Brigham Young)이 신도를 이끌고 그레이트 솔트 호에 도착해 정착촌을 건설한 이래로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의 모습은 딴판이다. 유타는 에너지와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한때 염분이 높은 호수와 척박한 땅으로 정착민을 애먹이던 자연환경을 이제는 누구나 부러워한다. 유타라는 이름은 아메리칸인디언 유트(Ute) 족의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산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 산을 활용해 솔트레이크 시티는 2002년에는 미국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고, 파크 시티(Park City)에서는 오늘도 미국 동계 스포츠 대표 선수들이 훈련 중이다. 모아브(Moab)는 젊음 가득한 미국 최고의 아웃도어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 정도면, 유타가 고리타분할 것 같다는 말을 입밖에 내놓지 못할 것이다. 물론 주 정부가 모든 주류 판매점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유타에서는 수천만 년 동안 형성된 지질학적 경이 앞에서 인간의 초라함을 절감한다. 콜로라도 고원은 자연의 온갖 풍파를 겪으며 일련의 작품을 완성했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의 랜드마크인 메사 뷰 아치. © 이한구

신은 유타의 국립공원을 창조했다

산후안 카운티 북쪽의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Dead Horse Point State Park) 전망대에 다다르자마자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주위를 한참 바라본 후에는 도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혼란스럽다. 수천만 년 동안 형성된 지질학적 경이 앞에서 인간의 초라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콜로라도 강(Colorado River)이 깎아낸 단 몇 센티미터 두께의 암석보다 문명의 역사가 짧다는 사실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바다에서 융기한 콜로라도 고원은 자연의 온갖 풍파를 겪으며 일련의 작품을 완성해왔다. 거대한 구멍을 두른 아치(arch), 홀로 우뚝 솟아오른 타워, 수직의 절벽에 올라선 거대하고 평평한 고원 뷰트(butte)와 작은 규모의 뷰트를 일컫는 메사(messa) 등. 전망대 600미터 아래에서 굽이 흐르는 콜로라도 강의 물살이 아마 이 모든 풍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그 강은 어제도 오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흘러가지만 말이다.

유타의 초창기 원주민 푸에블로(Pueblo)는 둘째 치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조차 태어나지 않은 시절. 독일의 지질학자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L. Wegener)의 이론에 따르면, 1억 4,0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걸쳐 지구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헤아릴 수 없는 융기와 침하가 반복됐고, 하나의 대륙이 거대한 조각들로 갈라섰다. 이윽고 약 6,000만 년 전 미국 남서부는 바다에서 융기해 육지로 변했는데, 그게 바로 콜로라도 고원(Colorado Plateau)이다.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애리조나에 걸친 33만7,000제곱킬로미터의 땅이자, 신이 빚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풍경이 흩뿌려진 곳. 유타 주에 서린 억겁의 시간을 콜로라도 고원에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치스 국립공원의 수많은 아치 중 하나 더블 아치(Double Arch). © 이한구

콜로라도 고원의 고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채선인장. © 이한구

유타 주 전체에 5개의 국립공원과 43개의 주립공원이 있는데, 국립공원은 모두 콜로라도 고원 지대에 속한다. 그중 캐니언랜즈 국립공원(Canyonlands National Park)이 가장 큰 규모로, 약 1,366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이곳에는 부유하는 대륙 같은 거대한 메사와 황무지가 나무 덩굴처럼 이어지고, 아직도 많은 지역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있다. 그랜드 뷰 포인트 로드(Grand View Point Road)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접근로인데, 이 길은 데드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에서 이어진다. 국립공원 입구를 지나 차로 약 10분쯤 가면, 메사 뷰 아치(Mesa View Arch)로 이어지는 트레일에 도착할 수 있다. 이 아치는 공원의 상징 같은 자연물이다. 트레일 전용 주차장에서부터 DSLR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인 여행객 무리가 눈에 띈다. 1킬로미터 남짓한 트레일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아치는 단순하면서 오묘하다. 낭떠러지의 시작점에 단 1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아래로 파도 치듯 멀리 캐니언랜즈의 한 조각 풍경이 뻗어나간다. 한낮 돌다리 같은 메사 뷰 아치는 사실 질기고 고독한 생존자다. 물과 바람의 침식으로 주변의 모든 암석이 자취를 감추던 수천만 년을 오롯이 살아남았으니까.

캐니언랜즈에서 불과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아치스 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에는 그런 생존자가 2,000여 개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암 공원이자 연간 1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곳. 유타뿐 아니라 미국 남서부에서 가장 멋들어진 매력을 지닌 국립공원으로 손꼽힌다.

늦은 오후에 찾은 아치스는 공상과학영화의 배경을 준비하는 듯하다. 아치스 시닉 드라이브(Arches Scenic Drive)를 따라 달리는 내내 시선을 한 방향에 두기가 어렵다.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하염없이 파란 하늘에 찍힌 흰 점 같은 달, 외계 생명체처럼 여기저기에서 웅크리고 있는 사암 덩어리들. 사암이 내뿜은 붉은빛 너머로 짙은 청록색을 뒤집어쓴 라 살 산맥(La Sal Mountains)이 대비된다. 도대체 이 초현실적인 풍경의 끝은 어디일까? 아치스는 쉽게 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당장 노스 윈도(North Window) 아치에 도착하자 석양이 내려앉고, 연달아 서 있는 2개의 아치는 커다란 눈동자로 변해버린다.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실루엣은 또렷하다. 달빛을 받아 또 다른 아치스의 세상이 열릴 기세다. 그리하여 밤. 저 멀리 공원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사라져간다.

해 질 녁 아치스 국립공원의 에덴의 동산(Garden of Eden)쪽 풍경. 우뚝 솟아 있는 암석 기둥들이 매혹을 더한다. © 이한구

[lee나그네]

굿~~~~~~~~~*^^*

[김용환]

한나라안에살면서 아직은 못가봤네예가고파라 가고파라

[ganemc]

넘웅장해서 경탄할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