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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0일 금요일 묵상 (렘 14:1-12)
[이스라엘의 타락(backsliding)은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1. 본문 말씀 (예레미야 14:1-12)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
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6.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
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오 고난당할 때의 구원자이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
하는 나그네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
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10.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11.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2. 시작기도
아버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며 살아가는 땅에 속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의 인생은 무엇을 해도 죄의 종노릇이며 결국 사망으로 가는 인생임을 아나이다.
만물 안에 속하여 땅의 썩어질 것을 구하며 세상의 정상을 향해 고군분투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만물 위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십자가 사건에 연합하는 믿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살길임을 아나이다.
더위가 계속되는 날씨이지만 이또한 지나가는 시간 속에 있으니 언젠가 지나가리라 여기며 오늘을 맞이합니다.
아버지의 성실하심으로 말씀 앞에 나와 엎드리오니 주의 보혈로 정케 하사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사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 집에 들어가 안식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복종과 사랑의 영원의 존재법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그 언약백성의 불의함을 방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창세전 아들 안의 생명인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땅의 먼지로 지으시고 그 코에 숨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말씀하셨다.
모든 천지만물은 말씀으로 지으셨으나 사람은 땅의 먼지로 지으시고 말씀하셨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광 가운데 세상만물을 통치하는 창조언약 안에서 지음받은 언약적 교제의 존재임을 말한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영생을 얻기 전에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반드시 죽으리라’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죽음에 이르렀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들어와 천지만물도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고 아담은 이마에 땀이 흐르는 수고를 통해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으며, 여자는 잉태와 해산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들이 이러한 수고와 고통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아들을 보내어 그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창 3:15,21)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믿는 이들을 통해 구속의 은총을 베푸신다.
아브라함을 불러 자손과 땅을 약속하시고 요셉을 통해 입애굽을, 모세를 통해 출애굽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애굽에 들어간 지 4대 만에 장정만 60만 명이 넘는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이 소유된 백성과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을 통해 열방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함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됨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귐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마음에 완악한대로 행하여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떠나는 교만에 빠졌다.
그들은 주변 나라들과 협상하며 바알을 섬김으로 세상을 따라갔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도록 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함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대로 행할 것을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에 가뭄이 들게 할 것임을 말씀하신다.(1절)
그들은 가뭄이 주는 고통으로 인해 슬피 울며 하늘에까지 이르도록 부르짖는다.(2절)
귀족들은 하인을 시켜 물을 구해오라 하지만 하인들은 물을 얻지 못하고 수치가운데 돌아온다.(3절)
가뭄으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농부들은 어쩔 줄 몰라 머리를 가린다.(4절)
물이 없음으로 인한 고통은 모든 자연만물에 미친다.
암사슴은 새끼를 낳았지만 풀이 없어 그 새끼를 내버리고 들나귀들은 황폐하게 된 들판에서 풀이 없음으로 눈이 흐려진다.(5-6절)
가뭄으로 인해 황폐하게 된 유다를 위해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탄식의 기도를 한다.
우리의 죄악이 분명하지만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backsliidng, 퇴보)함이 크기 때문에 주께 범죄하였습니다.(7절)
예레미야는 유다의 범죄가 하나님의 언약백성됨에서 멀리 떠나 옛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임을 직시한다.
언약적 의를 다하지 않는 백성의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실 것을 간구한다.
‘주’는 이스라엘의 소망이며 고난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자이시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하여 방관자처럼 이스라엘의 고난을 외면하시는가 묻는다.(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그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주’를 신뢰한다.(9절)
예레미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과 함께하시는 ‘주’를 신뢰하며 의지한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며 만물 안의 그 백성을 돌보시고 함께 하신다.
그런데 만물 안의 그 백성이 불의한 길로 가고 있다면 그 백성을 심판하고 돌이켜 의의 길로 인도하심이 마땅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주의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말 것을 중보한다.(9절)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들은 나를 저버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한 곳에 붙어 있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제 그들이 저지른 악한 짓을 기억하고 그들의 죄를 벌하겠다.”(10절)
이스라엘의 불의함은 여호와의 말씀 앞에 머무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좋아한 데에 기인한다.
그들은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그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임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금식하며 부르짖어도 듣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드리는 번제물과 소제물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심판하고 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다.(11-12절)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의 타락(backsliding)은 언약백성 됨에서 멀리 떠나 퇴보한 것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종되었던 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의 종노릇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들의 존재됨은 생수의 근원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에서 목마름을 채웠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뭄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시며 만물 위에 계신다.
그 하나님은 만물 안에서 보이지 않으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때 말씀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바 된다.
말씀 앞에 머무름이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기생각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찌 만물위의 하나님이 계시되겠는가?
그런 자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여 티끌과 재 가운데서 하늘의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신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머물게 하시고 비로소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게 하신다.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발을 멈추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심은 곧은길,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행동하심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에서 어그러진 길을 가는 자들의 발을 멈추게 하시고 곧은길,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하던 말씀이신 아들(요 1:1)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요1:14)
이는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딛 1:2)
아버지의 명령인 영생을 위해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주는 구원을 성취하셨다.(요 12:50, 19:30)
이로써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자는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물러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사귐 가운데 거하게 된다.
아들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하는 생명의 삶을 통하여 선한 일을 하고 빛 가운데 행하게 하신다.
그럴 때 아직도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생명으로 나아오도록 인도할 수 있다.
어그러진 길을 가며 사망의 길로 가는 아담적 실존의 인생들을 위해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아들에게 다 부으셨다.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물러 말씀을 묵상할 때에 만물 안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는 땅에 속한 옛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음을 확인하고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 주안에서 살아가는 복있는 자가 된다.(시1편)
그러므로 이제 구할 것은 오직 아버지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진리 안에 거해야 한다.(마 6:33)
그렇지 않으면 개가 그 토한 것을 먹는 퇴보(타락, backsliding)를 피할 수 없다.(벧후 2:21-22)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 2:21-22)
3. 나의 묵상
나는 예수를 믿고 교회 안에 있었으나 여전히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내 발을 멈추지 않았던 자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아담 안의 옛사람으로 살면서 내 인생을 얻기 위해 부르짖으며 핑크빛 인생을 꿈꾸었다.
나의 죄는 생수의 근원되신 여호와를 버리고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면서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말씀 앞에 머무는 묵상없이 말씀을 이용하여 내 인생을 살고자 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공의대로 심판하셨다.
보란듯한 세상의 정상을 꿈꾸는 나를 재가운데 두시고 고통가운데 부르짖게 하셨다.
그 부르짖음은 나의 목마름이 되었고 하늘의 하나님을 갈망하는 깊은 층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건드리셨다.
그 목마름의 끝에 야곱의 우물에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 생수의 복음을 듣게 하셨다.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생명의 말씀이 진리로 계시되었다.
계시된 진리의 말씀 앞에 날마다 머물며 묵상하는 복있는 자가 되게 하셨다.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나의 아담적 실체는 옛사람으로 죄의 종노릇하며 사망을 삯으로 받는 어그러진 길을 가는 자였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구속의 은총으로 하루하루 살게 하신다.
비로소 생수의 근원되신 주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귐 가운데서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신다.
말씀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기에 십자가 사건을 통해 틈입해 오셔서 만물 안의 주의 백성된 나를 돌아보시며 만물 위로 이끄신다.
그래서 하루라도 말씀 앞에 머물지 않으면 더 비참한 목마름에 내동댕이 쳐진다.
이제 나의 존재됨은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물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 가운데 행하는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비로소 아들 안에서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함께 함이 나의 존재됨이다.
그러니 개가 토하였던 것에 돌아감 같은 퇴보를 어찌 반복하겠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힘써 주를 알고 날마다 묵상하며 주안에 거함이 가장 큰 지복이다.
더 이상 탕자와 같이 허랑방탕하지 않으며 날마다 아버지 집에 거하기를 구할 뿐이다.
4.묵상 기도
아버지, 아버지를 멀리 떠나 허랑방탕하던 탕자였습니다.
생수의 근원되는 주를 버리고 짐승같이 살았나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죄를 기억하고 공의대로 심판하시고 심히 목마르게 하신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해 이제 생수의 근원되신 주를 가까이 하는 복을 누리나이다.
아무것도 아닌 자에게 가장 큰 복을 주셔서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물게 하시니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아버지, 이제 나의 삶은 오직 주안에 거하는 것임을 아나이다.
하오니 날마다 육신을 쳐 복종시키며 말씀 앞에 머물며 묵상을 통해 아들과 아버지를 아는 사귐 가운데로 인도하소서.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함으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늘 언약 안에 거하는 형통함으로 이끄소서.
아버지, 아들을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구속의 은총으로 하루하루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오늘 하루도 생명의 길로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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