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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7:21 야긴(그가 세우다)이라 하고, 왼쪽 것을 보아스(그에게 능력이 있다)라 했습니다.
성전을 버티고 있는 두 기둥처럼 오늘의 하나님의 성전에 귀한 기둥 같은 일군이 있어야합니다. 즉 그 교회에 이 시대에 필요로 하는 기둥 같은 일군, 그러한 일군이 있는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교회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기둥 같은 귀한 일군들이 많은 교회가 천금보다 귀한 교회인 것입니다.
아무리 규모가 크고 화려한 교회일지라도 거기에 거치는 돌과 쓴 뿌리가 있는 교회는 결국 시험이 들고 무너지기 십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둥같이 든든한 일군들이 야긴과 보아스처럼 든든히 성전을 받들게 될 때, 그 교회는 참으로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 할 뿐 아니라 뭇 생명을 구원하는 방주로서 역할을 잘 감당케 될 것입니다.
그 어떠한 환난과 핍박과 시험이 닥쳐도 기둥 같은 일군들이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한다고 하면 그 교회는 만세반석위에 세워진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일군, 즉 기둥 같은 일군이 가득한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면 기둥 같은 일군은 그 어떤 신앙인일까요?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하였듯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시종여일(始終如一) 심지 굳은 심정으로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 바로 그 교회를 기둥같이 받들어 섬기는 일군일 것입니다.
시대 따라, 기분 따라, 환경 따라, 조석지변(朝夕之變)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어떻게 기둥 같은 일군이 되겠습니까?
한사람은 총기난동으로 사람을 쏘아 죽인자요, 또 한 군인은 월남전에서 동료를 총으로 쏘아죽인 자였습니다.
전자는 생각하기를 며칠 후 죽을 터인데 고기나 실컷 먹고 죽자하여 자기 몸을 의과대학에 실험용으로 10만원에 팔아 닭고기를 매일 한 마리씩 사먹었는데
아무도 주지 않고 3만원어치를 사먹고 7만원이 죽는 날 주머니에 남았고, 또 한사람은 주머니에 15,000원이 있었는데 죽기 전에 보람된 일을 하고 죽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어떤 교회서 위문 차 와서 찬송하는 모습을 보고 인솔자 전도사님께 그 돈을(15,000원)주면서 난 얼마 안있어 죽을 사람이니 이 돈을 보람 있게 써달라고 드렸답니다
(교도소에서 전도 받고 교인됨). 전도사님은 이 돈을 그 교도소에 새로 지은 교회 강대상이 없던 차라 강대상 사는데 보태 썼다는 것입니다.
봉헌식 때 목사님이 강대상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했고, 마침 신문 기자가 왔다가 그 사실을 기사화했고,
그 기사를 대통령이 읽고 이런 사람은 사형시키지 말라고 특명을 내려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영어의 몸인 상태에서도 그 안에서 전도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인터넷 자료실).
기둥 위에 바둑판 모양으로 얽어 각각 일곱씩이요(17절), 두 줄 석류를 기둥꼭대기에 두르게 했다합니다(18절).
그러므로 기둥 같은 일군은 향기를 발하는 백합처럼, 또 석류처럼 많은 씨(열매)를 맺는 전도인 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향기와 같은 소문이 퍼져나는 교회가 되는 것이요, 그런 일군이 가득할 때 전도는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석류 속에 알(씨)이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기둥 같은 든든한 일군이 되어서 좋은 소문(향기, 백합)을 퍼뜨리고 또한 열매 맺는 종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제 아무리 위대해도 기둥은 하나로서는 안 됩니다.
둘이나 넷이 든든히 서로 힘을 합하여 연합할 때 그 건물이 튼튼히 서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도 좋은 일군들이 서로 사랑하며 도와주고 위하여 주면서 둥근 기둥처럼 원만하게 일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같이 좋은 교회는 원만한 신앙인격을 갖춘 종들이 늘 서로 사랑으로 종처럼 섬기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협력 단결하여 봉사 할 때 가능합니다. 패기만만한 40세 때 모세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겸손했던 80세 때 모세였고, 온유함이 지면에 모든 사람보다 승할 때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르던 베드로를 쓰신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이나 다짐받고 ‘예’라고 대답할 때 더욱 귀하게 쓰신 것입니다. 아니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가? 아니면 오히려 교회를 허무는 거친돌이나 쓴 뿌리인가?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억지로 주일예배만 참석할 뿐 그 어떤 기관에서도 몸담아 섬기지 않는 성도,
또한 바람난 여인처럼 내 교회에서는 시들하다가 이 교회 저 교회, 이 기도원 저 기도원, 이 설교 저 설교, 쫓아다니며 방황하는 교인,
또 바리새인처럼 성전문을 가로막고 서서 나도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방해꾼 같은 성도, 툭하면 성질부리고 다투고, 남의 험담하고, 이간질하여 교회를 시험 들게 하는 성도, 이러한 잘못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일평생 기둥 같은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초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겠고,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복을 받았으면, 참 신사적이고 고차원적인 신앙인격을 가지고 무식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내 몸같이 돌아봐 주면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주님의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신앙인, 일꾼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저분 때문에 문제야!’이런 몹쓸 소리 듣는 일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