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僧) 뱃속에서 나온 물고기 - 중태미
깨끗한 민물에 사는 중태미는 말 그대로 중(僧)의 태(胎)에서 나온 물고기란 뜻이다.
그런데 이 물고기는 정말 스님과 꼭 닮았다(?). 색깔도 스님의 벗겨진 머리처럼 누르스레한 바탕에,
군데군데 검은 점이박혀 있어 더 실감나게 한다.
중태미의 행동 역시 스님을 닮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다. 깨끗한 물에서 느릿느릿 헤엄을 치고 사는 이 물고기는,
곧잘 아이들의 맨 손에도 잡히곤 한다.
날카로운 이나 날렵한 지느러미도 없고, 자신을위장 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중태미에게는 재미난 전설이 늘 따라 다닌다.
조선조 명조와 인조시대 사이 진묵스님(震默 1562-1633)이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진묵대사는 속가(俗家)의 누님을 만나기 위해 절에서 내려와 강을 건너고 있었다.
이 날 따라 강가에서는 이 동네 청년들이 모여 천렵(川獵)을 하고 있었다.
흥에 겨워 거나하게 취해 있던 청년들은 마침 중(스님)이 지나가자 갑자기 골탕을 먹이고 싶어 졌다.
당시만 해도 숭유억불(崇儒抑佛) 시대인지라, 스님은 천민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세도가(양반)에서 이들을 구박하거나 폭행을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청년들은 지나가는 진묵대사를 불러 세운 다음, 큰 인심이나 쓰듯 자기들이 끓인 생선매운탕을
스님 앞에 내 놓고 먹기를 권했다.
진묵대사는 참으로 난감했다. 왜냐하면 고기를 먹게되면 계율을 어기게 되고,
먹지 않겠다고 버티다가는 사대부 집안 자녀들의 호의를 거절한 죄(?)로 행패를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진묵대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한동안 눈을 감고 있더니, 곧 바로 청년이 권해 온 생선 매운탕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 본 청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 들었다.
'파계승(破戒僧)은 맞아 죽어도 싸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이 때 입을 닦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잠깐. 이제 나는 계율을 어겨 당신들에게 맞아 죽게 됐소.
그러니 마지막으로 내 부탁 한가지만 들어 주시오"
"좋다. 그게 무엇이더냐"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는 인연법과 인과법이 있소.
오늘 당신들과 이런 나쁜 인연을 맺게된 것도 과거 나의 인연이 나빴기 때문일 것이오.
이제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맞아 죽으면 나는 전생의 악연의 짐을 벗어 던질 수 있어 나로 써는 매우 잘된 일이요.
그러나 나는 물고기를 먹었소. 먹었으니 그만큼 내 놓아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가 아니오.
그러니 내가 대변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시오"
이런 엉뚱한 부탁 아닌, 부탁을 들은 마을 청년들은 스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스님은 청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가에 가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웬일인가.
스님의 하체에서는 변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물고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 먹은 생선 매운탕속의 물고기가 다시 살아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마을 청년들은 대경실색(大驚失色)을 하며 스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태연히 승복자락을 걷어올린 뒤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 후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일러 스님의 뱃속에서 나 온 것이라 해 중태미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물고기는 중 뱃속에서 나온 까닦인지 생김새나 행동이 영낙 없이 스님을 닮아 있다.
이 고기는 지금도 시골의 맑은 물속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진묵대사 일화(震默大師 逸話)
진묵대사는 김제 만경면 화포리 불거촌(佛居村) 이란 해변에서 출생했다.
7세때 출가 전주 서방산(西方山) 불거촌(佛居村)에서 선(禪)공부를 하고 득도(得道)하고 기종이적(寄踪異跡)의 일화(逸話)가 많다. 잉어를 먹고 잠시후 토하면 수백마리 산 물고기가 헤엄쳐 가기도하고. 해인사 대 화재가 일어났는데 도술(道術)로 진화했는가 하면.
모악산 대원사(大源寺) 마당에 목조로 사자 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노천(露天)에 있는데도 400년이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전하며. 진목 대사 비석문에는 소석가, 조선진묵 역석가응신야(小釋迦, 朝鮮震黙 亦釋迦應身也) 라 하였다.
진묵대사 어머니 묘는 자손이 없거나 이 묘를 벌초를 하거나 제례를 지내면 면화치복(免禍致福)한 응험(應驗)이 있어 연중 사람들이 앞 다투어 행하니 400여넌에 걸쳐 묘소수호(墓所守護)와 제례(祭禮)가 많은 자손을 있는 묘보다 잘되고 향화(香火)가 끊일 날이 없다고 한다.
또 진묵대사의 부도(浮屠)가 봉서사(鳳棲寺)에 있는데 요즘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부도는 원래 회색 빛 화강암(花崗巖)이였는데 요즘 갑자기 수정처럼 하얗게 변하기 시작할 뿐 아니라
돌이 살아있는 듯 크기까지 하여 신기하다고 들 말한다.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 조선 인조 때의 스님. 이름은 일옥(一玉).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으며,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행하였다고 한다.
신통이 자재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책장에 한번 눈길이 스쳐 지나가면 그냥 모두 기억할 만큼 대단하였다
震默大師 悟道誦(진묵대사 오도송)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無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게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려지네~
-다음카페"나그네"에서 옮김
첫댓글 우리는 시골에서 중태기라고도 불렀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중태기 잡아오면 할머니 꾸지람이 말이 아니었지요? 아가야~~앞으로는 잡지 말아야 한다....그 때는 할머니 말씀을 이해하지 못 했었습니다~~~눈만 껌뻑 거리는 커다란 두 마리의 중태기를 당장 살던 곳에 놓아주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나는... 본적이없습니다..
언제! 시간내어 보러가 보아야 겠습니다.
중태기는 맛이 없어요..저 고향이 해인사인데 큰도랑에 많이 서식합니다..
어릴적 냇가에서 또랑막고 물 퍼내고~~손바닥 펼치면 그냥 잡히던 놈이었지요..눈만 껌뻑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