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진 기자의 느낌] 션·정혜영 부부… 13년간 후원한 아동 900명, 기부금만 40억원
"만난 지 5898일"
아직도 남편은 매일 아침 날짜를 세… 연애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요
아직 전셋집 살아요
적금도 보험도 없이 매달 3000만원씩 기부, 처음엔 소박했는데 돌아보니 이렇게 됐네요
'아이 러브 마미, 혜영'
필리핀서 온 편지에 봉사 여행까지 떠나… 집 사려고 모은 돈으로아이 200명 후원 시작
“물 한잔 떠줘도 ‘고맙다’는 이 남자… 어떻게 싸우겠어요?”
가출 청소년이었던 션
16세때 집에서 나와 막노동 하면서 지내… 화려한 연예인 생활도 마음은 늘 괴로웠어요
자꾸 소문 내고 싶어요
제가 욕 좀 먹더라도 더 많은 사람 돕잖아요… 광고 수익·강연료 기부·마라톤 뛰며 기금 모아
완벽한 부부는 없다
아내가 까탈부려도 심심하지 않아 재밌어…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서로 기대어 사는거죠
완벽한 부부가 세상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을 보며 여전히 이렇게 마지막 한 톨 미심쩍음을 거두지 못한다. 2004년
션과 정혜영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연극하는 건 아니냐고 묻고 싶은 거죠? 그런 말 너무 많이
집도 보험도 적금도 없이 40억 기부
―결혼 13년째인데 아직 집이 없나요.
정혜영 "전셋집에 살아요. 여섯 식구 전부 건강보험·국민연금 빼고는 보험이나 적금 같은 것 없고요.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절대 아니고, (남편을 바라보며) 이 남자 덕분에 이렇게 됐죠(웃음)."
션 "시작은 소박했어요. 2004년 10월 혜영이와 결혼하면서 '이토록 사랑하는 여자와 가정을 이루게 됐으니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일 하루 1만원씩 따로 모아 이웃과 나누고 싶어졌고요. 그렇게 결혼기념일마다 365만원씩 기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죠. 그게 어느 순간 돌아보니 900명의 아이, 40억원으로 불어나게 된 것이고요(웃음)."
션·정혜영은 그렇게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365만원을 노숙인, 무의탁 노인에게 밥을 나눠주는 '밥퍼나눔운동본부'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정혜영은 "이때만 해도 우리의 나눔 활동은 그게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또 다른 후원은 2005년에
시작됐다. 정혜영이 첫째 아이를 갖자 션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 한국컴패션을 통해 케냐에 있는
쉐일라라는 아이와 일대일 후원을 맺으면서다. 후원 아동은 2007년 무렵 6명으로, 2008년 정혜영이 필리핀 봉사 여행을 다녀
오면서 100명으로 불어났고 2011년엔 아이티 어린이 100명과 추가로 결연을 맺으면서 200명이 돼버렸다. 한국컴패션 측은 "두
사람이 현재 우리를 통해 총 300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단체 후원까지 합치면 900명이다. 이날 두 사람이
한남동 컴패션센터에 온 것도 후원 어린이 중 두 명이 지난 7~8년 동안 두 사람에게 꾸준히 받은 후원금으로 어느덧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으로 자라나 '(결연) 졸업'을 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온두라스에 산다는 이셀라(19), 볼리비아에
사는 바리나(18)가 그 두 명의 졸업생이었다.
―후원 아이가 6명에서 200명으로 불어나 버린 기간이 특히나 짧더라고요.
정혜영 "아, 그건 정말이지 운명이자 음모랄까(웃음)? 그 필리핀 여행은 원래 남편이 가기로 돼 있었어요. 저는 그때 둘째를
낳은 직후라서 해외여행을 가기도 쉽지 않을 때였고요. 그런데 남편이 아이 6명 후원을 모두 제 이름으로 해놓았던 거예요.
필리핀에 있다는 아이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비뚤비뚤 크레용으로 '아이 러브 마미, 혜영'이라고 써놓았더라고요. 남편이
그걸 보여주면서 '혜영아, 아무래도 네가 가야 될 것 같아' 했고요. 어후, 그걸 읽고 어떻게 안 가요. 결국 제가 갔죠."
정혜영은 그렇게 필리핀으로 날아가 편지를 보낸 클라리제라는 일곱 살 여자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나무와 함석지붕으로
지어진 집에서 살면서 땔감을 긁어다 불을 피워 밥을 짓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혜영은 마음이 몹시 복잡해졌다. 당시 션과 정혜영은 서울 마포 전셋집에 살고 있었고, 신혼부부답게 매달 적금을 붓고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할 꿈을 키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정혜영은 고민 끝에 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사려고 모은
돈 말야. 그 돈으로 집 사지 말고 200명 아이를 후원하는 건 어떨까…. 어떻게 생각해?" 션의 대답은 들어볼 것도 없이 "정말
좋아"였다.
―아무리 그래도 집을 포기하는 게 쉽던가요.
정혜영 "아니, 당연히 안 쉽죠. 얼마나 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는데요(웃음). '내가 미쳤나' '내가 어쩌다 봉사 여행을 왔지'
'이게 다 남편 때문이야' 이런 생각 수백 번도 더 하다가 내린 결정이었어요!"
션 "제겐 사실 집이 별 의미가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집을 꼭 사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내는 달랐을 거예요. 여자에게 신혼집을 장만한다는 건 정말 큰일이잖아요. 아마 제가 그 필리핀
여행을 갔다면 그때 아내에게 집을 포기하고 200명의 아이를 후원하자고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정혜영 "어우, 만약 남편이 저한테 '집 포기하고 아이 후원할래?' 그랬다면 전 '말이 되느냐'고 난리 쳤을 걸요? 이게 다
클라리제가 편지에 '엄마'라고 써서 그래요(웃음)!"
―그럼 이 모든 게 결국 션의 엄청난 계획이었던 건가요.
션 "그분(신)의 계획인 거죠(웃음)."
션은 서울 이태원에서 나고 자랐다. 미주·중동 지역을 돌며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왜 가출을 했던 거죠.
“이젠 기억도 잘 안 나요. 부모님과 사소한 걸로 옥신각신하다가 욱하는 마음에 집을 나왔어요. 며칠 친구 집에 얹혀
―지금 모습을 보면 당시 반항했던 게 참 의외인데요.
션 “네…. (잠시 할 말을 찾더니) 부모님과 그렇게 잘 지내질 못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가깝다고 할 수는 없고요.
션과 정혜영이 만난 건 현재 YG 사장인 양현석의 생일 파티에서다. 크리스마스였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션은 그러나 이 시절을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시기였어요. 가수이고 연예인이니 화려하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다고요?
“네…. 그전까지 전 항상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자라났고, 아프고 외롭게 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그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션이 덧붙였다. “나처럼 자랑할 것 없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지금 이토록 소중한 가정을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매스컴에 이런 활동이 자꾸 소개될수록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죠?
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데, 너는 왜 이렇게 소문내고 다니냐’는 말 많이 들었죠(웃음).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보단 내 가족이 먼저 아닙니까.
션 “물론이죠. 제 안의 사랑이 넘쳐나고 우리 가정이 행복하니까 그 사랑과 기쁨 덕분에 저도 이렇게 이웃에게 잘할
정혜영 “한 번도 남편은 제게 ‘기부하자’고 강요한 적이 없어요. 늘 의견을 묻고 제가 ‘더는 못하겠다’고 하면 조용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한 번도 큰 소리로 싸운 적이 없습니까. 버럭 화를 낸 적도 없고요?
정혜영 “이 남자랑 살아보세요(웃음). 항상 조용조용 묻고, 물 한 잔 떠줘도 ‘고마워’ 해요. 제가 아무리 까탈을 부려도
션 “재밌잖아요. 먹는 것도, 잠자는 습관도, 성격도 다 다르지만 그래서 그 덕에 이토록 심심하지 않게 살 수 있는데,
마음에 오래 품은 질문을 마지막으로 꺼내봤다.
―두 사람은 진짜 위기를 한 번도 겪지 않아서 계속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갑자기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식구
션은 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셋째 아이가 무척 작고 약하게 태어났어요. 그 이후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