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청포도를 그리워하였으면-(젊은 수필가들에게 드림)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7월 1일은 2024년도 하반기가 시작되는 날이네요. 이념 논쟁으로 번질 위험을 띠는 무의미한 대화를 중단하려고 동기님들 단톡방을 나가면서 7월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대로 다시 돌아오면서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우고 암송한 이육사의 청포도를 올립니다. 내가 바라는 손님이 저 만치서 보이는 데, 육신은 고달파 보이지만 그 분의 마음과 영혼에는 희망의 꿈을 가득 품고서 나를 찾아오고 있네요. 내가 가진 최고로 정갈한 것(=깨끗한 마음 가짐/ 새 술을 담으려면 새 부대가 필요 하겠지요)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타락하고 병든 모든 구시대적인 정신과 사상을 쓸어 내고, 청포도 송이처럼 맑고 싱싱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것입니다.
나는 인류역사 이래로, 시대와 시대의 전환점 마다, 메시아(그 분)가 재림하셔서 우리를 밝은 곳으로 인도해 내어 왔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 눈이 어두워서 메시아 (그 분)가 왔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지만 메시아는 분명히 왔고 지금도 오고 있고 또 앞으로도 올 것입니다. 청포도가 익어 가면 푸른 바다 저 만치서 청포를 입고 흰 돛단배를 타고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메시아를 고대하는 마음을 놓아버리면 죽어도 우리는 메시아를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주다 벤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늙고 병든 앉은뱅이 눈먼 집사처럼 마음의 귀를 열고 그 분을 기다립니다. 나는 나다니엘 호오손 처럼 모두가 떠나고 없는 내 고향 마을을 지키며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립니다. 어느 날 그분을 만나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손을 부여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자유롭게 할 분이시여!
어서 오소서~
내가 바라는 그 분은 이 시를 읽는 독자님 여러분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2024.06.30)
먼동이 트는 새벽을 찬양하며
- 멋진 사나이, 멋진 지도자의 등장을 축하하며
필자는 “사공의 삿대질 소리가 잠든 잉어를 깨워 수면 위로 뛰게 하는 먼동이 트는 새벽, 물안개가 자욱한 금호강나루를 건너 아버지를 따라 소를 사러 갔던” 어린 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생생한 꿈이었고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내가 본 그 먼동 트는 새벽을 생각하며 나보다 한살이라도 젊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나보다는 더 의식이 개혁적이고 진보적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 뒤에 오는 인간 세상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는 때문이다. 나는 내 뒤에 오는 분들의 의식이 나보다 더 타락했을 때는 분노했고 절망했다. 내 속에 피어오르는 검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고 “뒷물 맑기 운동” “노상알현도와 슬픈 명자 꽃” “왕 개구리의 전설” “슬픈 진보” 같은 유(類)의 글을 썼다.
나는 언론의 뉴스를 통해 최근 멋진 청년 지도자 두 분을 만나고 기뻐서 이 글을 쓴다. 한분은 필자보다 열여덟 살이나 적은 1973년생인 한동훈 장관이고 한분은 스물여섯 살이나 손아래인 1981년 생으로 전국 최연소 자치단체장에 군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최재훈 달성군수 당선인이다.
한동훈 장관을 멋있다고 하는 이유는 법무부 공무원들에게
"차 문 여는 의전 금지"
"향후 모든 보고서, 문서 등에서 법무부 간부를 호칭할 때 '님'자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한 때문이고
최재훈 달성군수 당선인을 멋있다고 하는 이유는
“군수 개인의 자존심은 처참하게 버리겠다"
“자신을 버리고 오직 군민의 영달만을 위해 헌신 할 것”
이라고 외친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했다. 이 두 분의 마음에 무엇이 가득하기에 이런 말을 토해 냈을까?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세상을 고쳐나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런 말을 내뱉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가 “뒷물 맑기 운동”의 글을 쓴 때가 44세이던 1998년 10월 27일이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2022. 6. 1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