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1] 김기영 (金基榮) - 나의 삶을 돌아보며 9. 축복 후 순회활동과 출산 - 2
9 뜻길을 가는 동안 여러 가지 사연으로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하는 식구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나는 식구들에게 주는 것보다 내가 모르는 것을 깨닫고 심정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순회 기간을 은혜의 기간으로 생각하였다. 10 20리 30리 40리 길을 걸어서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전남 강진에 갔을 때는 삼복더위에 시달리며 걷다 보니 소화불량이 되어서 이문원 교회장이 땀을 흘리며 힘들게 사 온 수박을 먹지를 못했다.
11 경남 마산에 갔을 때도 지역장인 신미식(36가정) 여사가 호박죽을 만들었는데 한 수저도 먹을 수가 없었다. 고맙고 미안하여 먹어보려 해도 넘어가지 않았다. 10월에 서울에 올라와 병원 진찰을 받아보니 임신이었다. 순회 중 먹지 못한 것이 입덧 때문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12 남편은 예산 지역장이었는데 4개 지구를 8개 지구로 개편하는 인사이동에 따라 충북지구장이 되었다. 지구본부인 청주에 가보니 살림을 맡은 이상분 집사와 사업 대원인 이상록 두 자매 부인 식구가 교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13 나는 출산 예정이므로 청주에서 살림을 할 생각으로 갔는데 방이 없어 전혀 그럴 사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충주 비료 공장 옆에 있던 목행면의 목행교회장으로 지구장님의 발령을 받아 따로 기거하였다. 14 그러다가 다음 해 2월 참부모님 탄신 행사 때 상경하였는데 시댁은 셋방 한 칸에서 6식구가 함께 생활하였으므로 시아버지는 방 옆 작은 공간에 사과 궤짝 위에 다다미 두 장을 깔고 천막으로 벽과 지붕을 꾸민 임시 거처를 만드셨다.
15 해산 날짜가 다가오자 몸 풀 곳이 없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그런 처지의 36가정 색시들이 여럿 있었다. 참부모님은 청파동 본부교회 성전과 경비실 사이에 방 한 칸을 임산부들은 위한 방으로 급하게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16 아버님은 해산을 위한 비용을 주시며 어머님께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셨고 어머님은 자세하게 그 품목들을 말씀하셨다. 그 당시 5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