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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2. “성령의 선물”(행 2:38절)에 대한 칼빈의 이해
이지끼을
행 2: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다음은 행 2:38절,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는 말씀에 대한 칼빈의 주석입니다.
(칼빈의 글을 A - D로 나눈 것, 그리고 밑줄과 강조는 제가 한 것입니다.)
A.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Spirit.
Because they were touched with wondering when they saw
the apostles suddenly begin to speak with strange tongues,
Peter saith that they shall be partakers of the same gift
if they will pass over unto Christ.
너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이 갑자기 이상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넘어가면 같은 은사에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고 말하였다고
칼빈은 말합니다
[칼빈 1]에서 말씀드렸듯이
칼빈은 고전 12:13절의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성령 안에서(성령의 영향으로 인해) 성찬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칼빈이 참고한 헬라어성경에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라고 쓰여있지 않고
"또 다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전 12:13절에서 "성령의 내주하심"을 읽어내지 못하면
고전 12:13절과 병행구절이라 할 수 있는 행 2:38절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고전 12:13절은 성령께서 인도하신 세례를 받아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는 말씀이고
행 2:3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두 말씀을 비교하면,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이 바로 고전 12:13절의 "성령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마시는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이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칼빈은 고전 12:13절에서, 세례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어진다는 이해를 할 수 없었으므로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A 글에서 같은 선물(the same gift)은 방언 말함(speaking with strange tongues)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령의 선물"(행 2:38절)을
방언의 은사로, 곧 "성령의 은사"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 if they will pass over unto Christ." 라는 말은 "그들이 예수께로 넘어 가면" 이라는 말인데
칼빈이 세례와 관련하여 이 말을 한 것이므로
세례를 받아 예수께 속하게 된다, 또는 세례를 통해 예수께 접붙임을 받는다는 의미로 쓴 것 입니다.
그러니까
"Peter saith that they shall be partakers of the same gift
if they will pass over unto Christ." 라는 칼빈의 말은
"세례를 받아 예수께 속하게 되면 같은 은사를 받을 것이라고 베드로가 말했다"는 의미입니다.
칼빈은, 고전 12:13절에서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읽어 낼 수 없었고
그래서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방언의 은사 곧 "성령의 은사"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이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단어가 쓰였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은 헬라어로
τὴν δωρεὰν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텐 도레안 투 하기우 프뉴마토스) 입니다.
the gift of the Holy Spirit
선물이 δωρεά (도레아)라는 단어로 쓰여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 성령의 은사(Spiritual gifts)를 기록할 때
사용한 단어는 χαρίσματα (카리스마타)입니다.
그러므로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δωρεά 도레아)"을
방언은사로, 곧 성령의 은사(χαρίσματα 카리스마타)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방언의 은사와 같은 성령의 은사는 성령세례를 받아서, 얻게 되는 능력(power)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사와 같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례로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고 칼빈이 이해한 것은
세례로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이해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세례로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는다는 말씀(행 2:38절)을
세례로 성령세례를 받는다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B. Remission of sins and newness of life were the principal things,
and this was, as it were, an addition, that Christ should show forth unto them
his power by some visible gift.
칼빈은, 죄사함과 새 생명(Newness of life)이 주된 것들이었고
성령의 은사(the gift of the Spirit)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가시적 은사를 통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시려는 부가적인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 글에서 죄사함과 새 생명(Newness of life)이 세례의 주된 것이라고만 말하고
세례를 통해서 죄사함과 새 생명(Newness of life) 을 받는다 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전 12:13절에 대한 주석에서
"but believers, along with the sacrament, receive the reality."
(믿는 자들은 성례와 함께 실체를 받는다)고 하였으므로
칼빈이 이 부분에서, 세례를 받아 죄사함과 새 생명(Newness of life),
그리고 성령의 은사(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베드로는 행 2:3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말씀과 칼빈의 말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세례로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고 말씀하였는데
칼빈은 세례로 죄사함과 새생명(Newness of life), 그리고 성령의 은사(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세례로 2 가지를 받는다고 말씀하였는데,
칼빈은 세례로 3가지를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씀과 칼빈의 말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죄사함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말씀한 성령의 선물을, 칼빈은 성령의 은사(성령세례)로 이해합니다.
그러면 새 생명(Newness of life)은 칼빈이 무슨 근거로 말한 것입니까?
새 생명 (Newness of Life, 생명의 새로움) 이라는 말은 로마서 6:4절에 있습니다.
로마서 6:3-4절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새번역]
Or do you not know that all of us who have been baptized into Christ Jesus
have been baptized into His death?
Therefore we have been buried with Him through baptism into death,
so that as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through the glory of the Father,
so we too might walk in newness of life. [NASB]
바울이 말씀하는 새 생명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어 함께 묻혔다가 살아난 자가 얻게 되는 새 생명입니다.
곧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얻게 되는 새 생명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된 자들이 얻게 되는 새 생명입니다.
칼빈은 로마서 6: 4절에 있는 새 생명 (Newness of life, 생명의 새로움)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가 세례로 새 생명(Newness of life)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세례에 있어서, 죄사함과 새 생명(Newness of life)이 주된 것들이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Remission of sins and newness of life were the principal things,)
하지만 칼빈은 자신이 생각하는 새 생명(Newness of life)이
베드로가 말씀한 성령의 선물(행 2:38절)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성령의 선물이 성령의 내주하심이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새 생명(newness of life)을 얻는 것이므로
베드로가 말씀한 성령의 선물이 새 생명 (Newness of life)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성령의 선물"(행 2:38절)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령의 선물이 새 생명 (Newness of life)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세례에 있어서 죄사함과 새 생명 (Newness of life)이 주된 것이고
성령의 선물은, 같은 장인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12 사도들이 성령세례를 통해 받았던, 방언의 은사로,
곧 성령의 은사로 생각하여 부가적인 것이다 라고 설명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마치 자신의 생각과 베드로의 말씀을 합쳐 놓은 것 같습니다.
C. Neither ought this place to be understood of the grace of sanctification,
which is given generally to all the godly.
Therefore he promiseth them the gift of the Spirit, whereof they saw a pattern
in the diversity of tongues.
Therefore this doth not properly appertain unto us.
For because Christ meant to set forth the beginning of his kingdom with
those miracles, they lasted but for a time;
yet because the visible graces which the Lord did distribute to his did shoe [show],
as it were in a glass, that Christ was the giver of the Spirit,
therefore, that which Peter saith doth in some respect appertain unto all the whole
Church:
칼빈은,
이 부분을 모든 경건한 자에게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성화의 은혜(grace of sanctification)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세례로 받게 되는 성령의 선물을 모든 사람이 받아야 되는
성화의 은혜(the grace of sanctification)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선물이 우리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선물이 성령의 내주하심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성화의 은혜(the grace of sanctification)가 맞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성령의 선물(δωρεά) 을 성령의 은사 (χαρίσματα)로 오해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그 기적들로 그의 나라의 시작을 알리려고 하셨기 때문에
그 기적들은 잠시 동안만 지속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가시적은혜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수여자이심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말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온 교회에 해당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기적들로 그의 나라의 시작을 알리려고 하셨기 때문에
그 기적들은 잠시 동안만 지속되었다"는 칼빈의 말을 보면
칼빈은 직접적으로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도 방언의 은사를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언같은 은사가 신약시대 초기에만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전 1:7절에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고전 1:7절
너희가 모든 은사(χαρίσματα)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단 하나의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곧, 예수님의 재림때까지 단 하나의 은사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기적들로 그의 나라의 시작을 알리려고 하셨기 때문에
그 기적들은 잠시 동안만 지속되었다"라는 칼빈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그 가시적은혜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수여자이심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말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온 교회에 해당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베드로는 행 2:39절에서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교회전체를 향하여 말씀하신 것이라기 보다는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구원받는 사람들, 각 개인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행 2:39절 말씀의 약속이 의미하는 것은 행 2:38절입니다.
행 2: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의 말씀 중 "너희"는 "너희 각 사람" (every one of you)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의 세례를 받으면
각 개인이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약속입니다.
곧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의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지만, 칼빈은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내주하심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 오해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는 약속이 각 개인이 아니라 교회전체에 관계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교회 초기에 일부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던 것은
교회 전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지
교회의 각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칼빈이 말한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이 성령의 내주하심이므로 각 개인에게 약속된 것인데
칼빈은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은사로 오해하였기 때문에
이 성령의 선물이, 각 개인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 관계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D.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Spirit.
For although we do not receive it, that we may speak with tongues,
that we may be prophets, that we may cure the sick, that we may work
miracles;
yet is it given us for a better use, that we may believe with the heart unto
righteousness, that our tongues may be framed unto true confession,
(Romans 10:10,) that we may pass from death to life, (John 5:24)
that we, which are poor and empty, may be made rich, that we may withstand
Satan and the world stoutly. Therefore, the grace of the Spirit shall always be
annexed unto baptism, unless the let be in ourselves.
칼빈은
"너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Spirit.)라는 말을 하고,
이어서
"우리가 성령의 선물(칼빈에게는 성령의 은사)을 받지 못해도
우리가 혀로 말할 수 있고(we may speak with tongues)
선지자가 될 수도 있고, 병든 자를 고칠 수도 있고, 기적을 행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너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라고 성경에 있는 말씀을 말하고
이어서, 성령의 선물은 안 받아도 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행 2:38절)이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하는 것인데
칼빈은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은사"로 생각하기 때문에
"너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라는 성경말씀에 이어서
성령의 선물은 안 받아도 된다는 의미의 말을 한 것입니다.
칼빈도 이 부분에서 조금 이상하게 여겼는지
"yet is it given us for a better use"
(그러나 그것은 더 나은 사용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칼빈의 말에서 " it " (그것)은 성령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을 칼빈은 성령의 은사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칼빈이 다음에 말한 것들은 성령의 은사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칼빈은,
"그러나 그것(성령의 은사)은 더 나은 사용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곧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우리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롬 10:10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게 되고 (요 5:24)
가난하고 공허한 우리가 부하게 되고
사탄과 세상을 견고히 대적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러므로 성령의 은혜는, 우리 안에 있지 않는 한, 항상 세례에 부가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이 부분을 성령의 은사로 시작해서 성령의 은혜로 마무리한 것입니다.
칼빈이 이 부분에서 말한 것들은 대부분,
칼빈이 말한 대로, 세례에 부가되는 "성령의 은혜"로 인한 것들이지만
성령의 은사와는 상관없는 것들입니다.
칼빈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죄사함과 새 생명(Newness of life)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생각으로 베드로가 말씀한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새 생명(Newness of life)이 바로 베드로가 말씀한 성령의 선물인데
베드로가 말씀한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은사"로 오해하고
자신의 생각과 베드로의 말씀을 합쳐서
세례와 관계있는 것들은
죄사함, 새 생명(Newness of Life), 그리고 성령의 은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칼빈은 이 중에서 성령의 은사는 지속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지속된 것이 아니므로, 우리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선물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 것이라고 말씀하였는데
칼빈은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은사로 오해하여 우리와 관계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칼빈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하는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을 성령의 은사로 오해하였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행 2:38절은 신약시대에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행 2:39절)입니다.
행 2: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런데 이 말씀은, 베드로가 막 16:16절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전한 것입니다.
막 16: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이 예수님의 말씀 중, 구원은, 곧 우리가 받는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입니다.
곧 죄사함을 받음과 영생을 얻는 것인데,
이 중에서 영생은 중생으로, 곧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막 16:16절 말씀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곧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얻을 것이다 라는 의미인 예수님의 말씀을,
행 2:38절에서 죄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은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이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의미한다는 것은
고전 12:13절 말씀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막 16:16절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고전 12:13절을, 세례에 관한 말씀으로 알고 있었던 칼빈과 달리,
성령세례에 관한 말씀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글 [칼빈1]에서 말씀드린대로, 고전 12:13절의 세례를 성령세례로 이해하면
고전 12:13절은
성령께서 인도하신 세례(물세례)를 받아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얻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얻는다는 말씀이 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얻는다는 말씀은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고전 12:13절에서, 세례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16:16절)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얻을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 중, 세례와 구원의 순서를 바꾸어
"믿음으로 구원(죄사함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얻고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라고 읽는 것입니다..
곧 세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고 읽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막 16:16절 말씀을 정리해서 쓰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 는 말씀이 됩니다.
중세 카톨릭에서는 교회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중 믿음을 제외하여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 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곧 교회가 세례를 베풀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중세 카톨릭의 세례중생론입니다.
반면에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중 세례를 제외하여
(믿음)이 있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라고 이해합니다.
곧 세례가 구원에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중세 카톨릭의 구원론은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 중 (믿음)을 제외한 구원론이고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구원론은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 중 (세례)를 제외한 구원론입니다.
칼빈은, 자신의 고전 12:13절 주석에서
but believers, along with the sacrament, receive the reality.
(그러나 믿는 자들은 성례(세례)와 함께 실체를 받는다)고 말하였는데
칼빈의 이 말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잘 맞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고전 12:13절의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행 2:38절의 "성령의 선물"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행 2:38절의 "세례"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세례에 관하여 모두 9번의 기록이 있는데
그 첫번째 기록이 행 2:38절입니다.
그러므로 행 2:38절의 "세례"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행 2:38절 이후에 기록된 세례에 관하여 바른 이해를 할 수 없게 되는데
칼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고넬료가 받은 세례에 대해
칼빈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의 해석을 합니다.
이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 중
세례와 구원의 순서를 바꾼 것입니다.
칼빈 자신이 고전 12:13절 주석에서
but believers, along with the sacrament, receive the reality.
(그러나 믿는 자들은 성례(세례)와 함께 실체를 받는다)고 말하였으면서
고넬료가 받은 세례에 대해서는
믿는 자들이 실체를 받고 그리고 성례(세례)를 받는다는 의미의 해석을 한 것입니다.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바로 칼빈의 이 해석을 따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는 신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곧 구원을 얻음에 세례가 필요하지 않다는 구원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칼빈 3]과 [칼빈 4]로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