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6장
36장과 37장에서 말하는 엘리후의 주장의 주제를 들라 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25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세우신 자비하신 목적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크시고 능력이 많으시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람을 무시하거나 개인들에게 관심이 없으신 분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무궁하신데 그 지혜로 6절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라고 했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당신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않으시고 결국 그들의 상황을 바꾸어 놓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잿더미에서 끌어올리시고 보좌에 앉히시며 사슬을 풀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우리가 교훈을 받고 순종하면 다시금 복을 주시지만 거역하면 우리를 멸하신다고 했습니다. 14절에서 남창과 그 마지막이 같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악인들은 젊어서 죽을 뿐 아니라 수치스럽게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6~25절에서 욥이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합니다. 16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고 했지만 지금 욥은 고통으로 다리가 휘어져 있는 상태가 아닙니까? 욥이 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엘리후는 계속해서 욥 앞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 그에게 경고하려고 합니다.
먼저, 18~19절에서 욥이 고통에서 벗어나겠다고 뇌물을 쓰는 식으로 하겠다고 한다면 잘못되고 도리어 상처만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20절에서 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밤을 사모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살을 기도하리라 본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했지만 그렇다고 죽겠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욥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엘리후는 21절에서 욥이 모든 소망을 포기하고 죄악의 길로 돌아설지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종종 주변에서 보면 일이 잘 안 될 때 하나님께 원망이 가득해서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욥은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택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의 순전함을 지키고 싶은 것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엘리후는 24~25절에서 욥에게 하나님의 크심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찬송을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기도가 상황을 바꿔 놓듯이 찬송도 상황을 바꿉니다.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주님께 내려놓고 기도할 때, 찬송하며 주의 뜻에 순복하려 할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도 겸손함으로 주님을 바라며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께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