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다가오면서 기쁨을 주는데 우리 일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봄은 꽃으로 세상을 매혹하는 위대한 계절이다.
꽃은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도 없이 봉오리가 터지는 대로 피어난다. 수선화, 동백, 매화, 산수유, 벚꽃, 진달래, 개나리, 목련, 복숭아꽃, 사과나무 꽃, 자두나무 꽃, 철쭉이 피고 라일락과 아카시아, 이팝나무 꽃이 피었다. 꽃 바다, 꽃 천지에 벌 나비가 날아들고 꽃구경하는 인파로 주말마다 산과 들은 북새통이다. 누가 시간을 정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피고 지는 민들레, 제비꽃, 매발톱꽃과 금낭화에 찬탄을 금하지 못한다. 작약과 모란이 피고 지면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가 피고 낭만을 연출하는 덩굴장미가 만발할 것이다.
꽃은 순서 없이 다가오면서 기쁨을 주는데 우리 일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보통은 가벼운 부담과 함께 나누며 섬기는 기쁨이 함께 오는데 올해는 부담 때문에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어깨가 무겁다. 감당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떠밀려 언제까지 나누고 섬기는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작년에 인도 마니푸르 폭동 난민과 미얀마 난민 양쪽을 긴급하게 섬기면서 밀리고 쌓인 것들과 새로운 요구들이 밀물처럼 일시에 몰려 들었다.
나의 형편과 심정을 모르는 현장의 지도자들은 앞을 다투어서 자기의 필요만 열심히 구한다.
모든 현장들은 여름성경학교 행사비, 과부 자립 프로젝트, 중단된 건축비 후원, 학교 교사 지원 프로젝트, 신학교 장학금, 고아원 새 학기 유니폼과 가방 및 학용품 구입비. 공동체 운영비, 난민긴급구호(사랑의 쌀), 빈민 장학금 등을 당장 5월에 다 지원받고 싶어 한다. 만약에 예년처럼 기도에 응답이 오면 여름이 가기 전에 어렵지 않게 나눌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하고 답답하다. 따스한 나눔이 IMF때 보다 더 느리고 더디어진 것 같다.
그러므로 무엇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하는가? 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가장 급한가? 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머리속이 편치 않다.
양식, 밥이 가장 급하므로 우선순위로 엊그제 긴급구호를 위한 사랑의 쌀을 보냈다. 그러나 사랑의 쌀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보내야한다. 배고픈 고통을 모든 것 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만 그러므로 다른 지원들이 뒤로 미루어지고 늦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생각하면 저것이 걸리고 저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걸린다.
장학금을 보내려니 고아들이 걸리고 과부들을 챙기려니 가난한 청년들이 걸린다.
누군가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이해타산 없는 사람이 상식적인 단순한 눈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주면 골치 썩을 일이 없이 순서에 따라 그대로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다하지 못하는 마음의 불편을 덜고 차례대로 마음 가볍게 나누고 싶은 것이다.
정초에 신년 인사와 함께 기백 명의 개인과 단체에 개별적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며 도움을 간청하였고 지난 사순절 기간에 이백 명의 개인과 단체에 개별적으로 편지를 써서 미얀마 난민들을 위한 긴급구호를 하소연했고 지난주에 다시 백 명의 개인과 단체에 개별적인 편지로 도움을 호소하였는데 그리 반응이 없었다. 반응이 없으니 벼라 별 생각이 다 일어난다.
사람들이 후원금 피로감에 빠졌구나!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구나!
계속되는 구호에 지쳤구나!
불안해서 주머니를 닫았구나!
물가고로 더 힘들어졌구나 ! 등.
코로나팬데믹 때만해도 후원을 호소하면 반응이 바로 바로 나타나서 신명과 감동으로 뜨거운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이제는 그것이 과거의 일이 되고있다.
실로 지난 20여 년 동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무식하고 용감하게 구하며 무식하고 용감하게 현장의 필요에 따라 나누며 섬겼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구하라”고 가르쳤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리라”고 약속하였으므로 그대로 믿고 그대로 실천하였다. 그리고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임을 증언하였다. 또한 주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이웃과 나누고 섬기며 신명나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무식하고 용감하게 구하고 더 무식하고 용감하게 나누어야 할 때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후하게 점수를 주는 것이 있다면 “무식하고 용감하게 구하는 것과 무식하고 용감하게 나누는 것” 뿐인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왜 나는 멈칫거리고 있는 것인가? IMF와 2008년 미국의 경제파탄에도 무식하고 용감하게 저돌적으로 나누고 섬긴 내가 왜 웅크리고 있는가? 다름 아니다. 그때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죽으면 죽으리다’ 는 심정으로 매사에 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 언론에 세뇌되어서다. 세상의 기운에 오염되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불안에 빠져 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마인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코로나 후유증 때문에 경제가 파탄이 나서 안 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틴과 이스라엘 전쟁 때문에 안 되고!
한반도의 남북 긴장 때문에 안 되고!
경제정책의 실수로 물가고 때문에 안 되고!
한국 교회 교세가 약해져서 안 되고!
사람들이 이런 이유들로 불안에 떨며 마음의 문을 닫아서 안 되고!
이렇게 세상에는 될 이유가 하나도 없고 안 될 이유만 가득하다.
그 이전의 하나님이나 지금의 하나님이 동일한 분이신데 나 또한 세상의 언론과 무드에 사로 잡혀서 창조주 하나님, 만유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며 당연히 안 되고 안 되니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일꾼이 되기 위하여 세상에게 받은 우울감, 무력감, 스트레스를 떨구기 위해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는 말씀을 반복해 읽는다. 그리고 옛날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의 회복을 위해 뜨겁게 간구한다. 만사를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며 이루어 가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은 선교의 주관자시며 기획자시며 공급자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주이십니다.
주님은 보혜사이며 함께 일하는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은 부족한 자를 일꾼으로 쓰며 증인으로 세우는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인간의 입으로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거룩한 주님이십니다.
주님!
무례하고 방자하고 교만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교만하고 조급한 마음과 불평과 의심을 내려놓고 다시금 엎드립니다.
세상에 오염된 부정적인 마음과 패거리 의식을 내려놓습니다.
탐욕에 갇히지 않게 하시고 이 시대를 넘어서게 하소서.
우상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이 세상을 뛰어넘게 하소서.
부디 당신의 자비와 은혜로 굶주림을 극복하게 하소서.
부디 당신의 평화와 긍휼로 폭력을 이기게 하소서.
주님! 겸손케 하시고 독선과 독재를 넘어서게 하소서.
주님!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금 용감하게 살게 하소서. 아멘
2024년 5월 8일 축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