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전투- 황진 장군의 최후, 황진묘소 남원의 정충사엔 잡풀만 우거져 (4회)아침을 여는 창
<전라도가 없었다면 어찌 조선이 유지될 수 있었으리요. 그 중심엔 남원, 남원인이 있었다. 그의 눈부신 활약은 소문을 타고 조선의 백성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 임진왜란 발발직전까지 종 6품의 작은 고을 화순현감에 불과했던 황진, 불과 1년도 안되어 병법과 무예를 갖춘 조선 최고의 무장으로 칭송 되었지만.”
논개에게 홀딱 반해버린 적장은 논개가 주는 대로 술을 계속 들이마신 나머지 취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논개는 노렸던 기회가 왔음을 직감하고는 적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義庵)으로 유도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를 껴안고 의암주위를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극에 달하는 순간 논개는 적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힘껏 껴안고 짙푸른 남강에 몸을 던졌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떨어져 죽은 바위는 훗날 의암(義岩)이라 불렸으며, 사당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 제 2차 진주성전투와 황진 장군의 최후
경상우도의 중심지이자 호남의 길목인 진주성에는 1593년 6월 중하순에 접어들면서 남해안에 집결했던 왜군이 밀려들었다. 6월 28일 새벽, 전쟁이 시작된 지 9일 째 되는 날, 이 치열한 전투에서 장군은 왜장 한 놈을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황진은 총 반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좌우병사들은 일제히 현자총과 화전을 쏘고, 화살을 퍼부으며 풀단을 묶어 기름을 칠해서는 불을 붙여 던지고, 돌을 굴리고, 끓는 물을 퍼붓는 공격을 가하여 왜병 천 여 명을 죽였다.
적들은 전의를 잃고 적장의 시체를 끌며 도망쳤다. 도망치는 왜적을 내려다보며 황진장군은 말했다. “오늘 싸움에서 왜적의 시체가 참호에 가득하니, 가히 대첩이라 할 만 하다.” 황진은 감탄을 하며 성루에서 성 밖의 달아나는 왜적들의 광경을 보며 잠시 승리의 감격을 맛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왜놈들의 시체 속에서 부상을 당해 실신했다가 정신을 차린 왜적 하나가 황진을 올려다보며 조총을 겨누었다.
‘땅!’ 조용한 성 안팎에 한 발의 소총소리가 천지를 뒤흔들 듯 메아리쳤다. 순간 장군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민족의 거목은 이렇게 쓰러진 것이다.
1593년 6월 21일 고립무원의 진주성에서 고작 6000여명의 병력으로 왜군정예 10만 명을 상대로 전사하신 그 날까지 9일 동안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황진장군! 전쟁이 일어 날 것에 대비했던 그 날부터 6월 28일 이날 눈을 감을 때까지 3년 동안 불꽃같은 삶으로 전설 같은 전과를 일궈냈던 임진왜란의 영웅이었다.
진주성함락, 최경회 절도사, 김천일 의병장 등 10여 장수, 북쪽의 임금을 향해 하직인사 올리고 남강에 몸을 던져.
우리 군사들은 격전지마다 사력을 다하여 성을 지켰으나 서문 쪽이 무너지면서 성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왜군을 막지 못했다. 도절제사 김천일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모두 촉석루에 모였다. 최경회, 김천일과 그 아들 김상전 그리고 양산숙, 문홍원, 오비, 김인휘, 고경형, 고종후 등 10여 명의 장수들은 북쪽을 향하여 임금께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리고서 남강 물에 몸을 던졌다.
특히 이종인은 양쪽에 왜군 한 놈씩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며 외쳤다. “김해부사 이종인은 죽는다!” 이렇게 진주성은 왜군에게 함락되었다. 공격을 당한지 9일 만이었다. “아, 강낭 꽃보다도 더 푸른 그 강물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들의 충절이여!”
당시 백사 이항복은 절규했다. “슬프도다! 황진이 순절하지 않았던들 진주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상처가 급하나 오랑캐를 물리칠 의리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정충(精忠)은 진실로 역사에 부끄러움 없는 영웅이었노라.”
지금 황진장군의 묘소인 남원 정충사 화강암계단은 무너져 있고 부근 그 어디에도 정충사에 대한 안내판은 찾아 볼 수 없다. 당시 조선육군의 위엄을 떨치며 황진이란 이름만 들어도 오금을 저리게 했던 임진왜란의 영웅, 목숨을 다해 풍전등화 같은 조선을 구해내 오늘 우리가 있게 한 장군이거늘 오늘 그의 묘소 정충사엔 잡초만 우거져있다. (남원신문 2022, 11, 9 기사참조)
♨출처 / 남원뉴스